창 20장 1-18절 연약하고 부족한 선지자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0-01-29 11:04
Views
738
2020년 1월 29일 (수) 창 20장 1-18절 연약하고 부족한 선지자
1. 반복되는 아브라함의 연약함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반복되는 연약함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기에 참 창피한 사람입니다. 한번 실수는 이해가 되지만, 똑같이 반복되는 실수는 실수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면, 그는 이 창 20장은 빼 버리고 싶을 것입니다. 세상의 영웅들의 전기를 보면, 연약한 이야기, 죄악된 이야기는 다 빼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 내시고, 연약한 인간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저와 여러분도 얼마나 연약합니까? 예전과 달리 오늘 이 말씀이 저에게는 큰 위로로 다가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거짓말도 하고, 때로는 실수도 하고, 때로는 낯뜨거운 죄도 짓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연약한 우리, 죄악 투성이인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연약한 우리를 들어 사용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을 의지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통해서 일 하시려는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아무런 자격 없지만, 믿음으로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2. 그랄 왕 앞에서의 연약함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창 20:1-2절).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을 당할 때 간절히 기도하는 아브라함은 굉장이 멋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브라함은 어떻습니까? 완전히 체면 구겨집니다. 다시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합니다. 그랄 왕 앞에서 변명하는 아브라함의 변명을 들어봅시다. 얼마나 창피한 변명입니까? 아비멜렉의 책망입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기에 네가 나와 내 나라가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으냐 네가 합당하지 아니한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창 20:9-10절).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창 20:11절). 아브라함의 변명은 참 창피한 변명입니다.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연약한 아브라함에 비해서 오히려 그랄 왕 아비멜렉이 더 의로워보입니다. 아비멜렉은 이런 아브라함을 오히려 후대 합니다. “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종들을 이끌어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의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 보내고…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네가 보기에 좋은 대로 거주하라 하고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 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가리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해결되었느니라” (창 20:14-16절).
3. 연약한 아브라함을 사용하시는 이유
연약한 아브라함입니다. 오히려 그랄 왕이 더 의로워 보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사용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십니다. 불의하고 연약하고, 실수 투성이인 아브라함을 사용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변명은 참 창피할 뿐만 아니라 심각하지만, 그럼에도 아브라함을 사용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실수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모든 것이 파기될 위기 가운데 있는 심각한 죄악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인간의 연약함과 죄악으로 말미암아 파기될 것인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반복적으로 언약하시며, 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 12:2절).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창 13:15-16절).“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창 17:19절). 연약하고 부족한 아브라함이지만,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을 큰 민족이 되게 하시겠다고 친히 언약하셨습니다. 불완전하고 죄악 투성이 아브라함이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서 이삭을 주겠고 이삭과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4. 연약한 자를 선지자로 사용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담대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는 넘어지지만 하나님은 넘어진 우리를 붙들어주십니다. 우리는 자주 실수하고 죄를 짓지만, 하나님은 실수하고 죄 짓는 우리를 품어주십니다. 아브라함의 아브라함됨은 연약한 아브라함에게 있지 아니하고 신실한 살아계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연약한 아브라함이지만,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을 뭐라고 부르십니까? 7절을 봅니다.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지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연약한 아브라함을 오늘 하나님은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선지자가 될 만한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전적인 은혜로 아브라함을 선지자라 부릅니다. 오히려 의로운 아비멜렉 앞에서 불의한 아브라함을 높여주십니다. 선지자 아브라함을 통해서 아비멜렉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십니다.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창 20:17절). 저와 여러분도 참 연약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5. 기도와 찬송: 새찬송가 406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오늘은 우리의 연약함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첫째, 우리의 연약함과 죄악을 주님 앞에 내어 놓습니다. 주님, 참 부족한 우리 입니다. 주님 아무런 자격이 없는 불의한 백성입니다. 주님 앞에 솔직히 고백합니다.
둘째, 불의하고 연약한 우리 이지만, 또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합니다. 부족한 자를 들어 쓰시는 우리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셋째, 불의한 우리이지만, 세상을 향해서 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비멜렉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명..아브라함의 사명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갑니다. 세상을 향해 중보하는 신실한 중보기도자가 되길 원합니다. .
넷째, 우리 교회의 연약한 교역자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부족합니다. 실수 투성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하나님, 연약한 교역자들 붙들어 주옵소서. 사명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힘과 능력과 성령의 충만함을 부어 주옵소서. 성도들 참 사랑하게 하시고, 주의 말씀의 능력이 모든 교역자들 가운데 함께 하시고, 가정을 붙들어 주시고, 자녀들이 교역자들이 목회하면서 시험들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 성도들 연약한 교역자를 귀히 여기고 비난하지 않고, 기도할 수 있도록 사랑의 마음도 주옵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wen7f7NnLLE
1. 반복되는 아브라함의 연약함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반복되는 연약함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기에 참 창피한 사람입니다. 한번 실수는 이해가 되지만, 똑같이 반복되는 실수는 실수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면, 그는 이 창 20장은 빼 버리고 싶을 것입니다. 세상의 영웅들의 전기를 보면, 연약한 이야기, 죄악된 이야기는 다 빼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 내시고, 연약한 인간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저와 여러분도 얼마나 연약합니까? 예전과 달리 오늘 이 말씀이 저에게는 큰 위로로 다가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거짓말도 하고, 때로는 실수도 하고, 때로는 낯뜨거운 죄도 짓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연약한 우리, 죄악 투성이인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연약한 우리를 들어 사용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을 의지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통해서 일 하시려는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아무런 자격 없지만, 믿음으로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2. 그랄 왕 앞에서의 연약함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창 20:1-2절).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을 당할 때 간절히 기도하는 아브라함은 굉장이 멋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브라함은 어떻습니까? 완전히 체면 구겨집니다. 다시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합니다. 그랄 왕 앞에서 변명하는 아브라함의 변명을 들어봅시다. 얼마나 창피한 변명입니까? 아비멜렉의 책망입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기에 네가 나와 내 나라가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으냐 네가 합당하지 아니한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창 20:9-10절).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창 20:11절). 아브라함의 변명은 참 창피한 변명입니다.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연약한 아브라함에 비해서 오히려 그랄 왕 아비멜렉이 더 의로워보입니다. 아비멜렉은 이런 아브라함을 오히려 후대 합니다. “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종들을 이끌어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의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 보내고…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네가 보기에 좋은 대로 거주하라 하고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 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가리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해결되었느니라” (창 20:14-16절).
3. 연약한 아브라함을 사용하시는 이유
연약한 아브라함입니다. 오히려 그랄 왕이 더 의로워 보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사용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십니다. 불의하고 연약하고, 실수 투성이인 아브라함을 사용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변명은 참 창피할 뿐만 아니라 심각하지만, 그럼에도 아브라함을 사용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실수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모든 것이 파기될 위기 가운데 있는 심각한 죄악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인간의 연약함과 죄악으로 말미암아 파기될 것인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반복적으로 언약하시며, 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 12:2절).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창 13:15-16절).“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창 17:19절). 연약하고 부족한 아브라함이지만,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을 큰 민족이 되게 하시겠다고 친히 언약하셨습니다. 불완전하고 죄악 투성이 아브라함이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서 이삭을 주겠고 이삭과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4. 연약한 자를 선지자로 사용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담대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는 넘어지지만 하나님은 넘어진 우리를 붙들어주십니다. 우리는 자주 실수하고 죄를 짓지만, 하나님은 실수하고 죄 짓는 우리를 품어주십니다. 아브라함의 아브라함됨은 연약한 아브라함에게 있지 아니하고 신실한 살아계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연약한 아브라함이지만,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을 뭐라고 부르십니까? 7절을 봅니다.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지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연약한 아브라함을 오늘 하나님은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선지자가 될 만한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전적인 은혜로 아브라함을 선지자라 부릅니다. 오히려 의로운 아비멜렉 앞에서 불의한 아브라함을 높여주십니다. 선지자 아브라함을 통해서 아비멜렉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십니다.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창 20:17절). 저와 여러분도 참 연약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5. 기도와 찬송: 새찬송가 406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오늘은 우리의 연약함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첫째, 우리의 연약함과 죄악을 주님 앞에 내어 놓습니다. 주님, 참 부족한 우리 입니다. 주님 아무런 자격이 없는 불의한 백성입니다. 주님 앞에 솔직히 고백합니다.
둘째, 불의하고 연약한 우리 이지만, 또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합니다. 부족한 자를 들어 쓰시는 우리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셋째, 불의한 우리이지만, 세상을 향해서 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비멜렉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명..아브라함의 사명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갑니다. 세상을 향해 중보하는 신실한 중보기도자가 되길 원합니다. .
넷째, 우리 교회의 연약한 교역자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부족합니다. 실수 투성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하나님, 연약한 교역자들 붙들어 주옵소서. 사명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힘과 능력과 성령의 충만함을 부어 주옵소서. 성도들 참 사랑하게 하시고, 주의 말씀의 능력이 모든 교역자들 가운데 함께 하시고, 가정을 붙들어 주시고, 자녀들이 교역자들이 목회하면서 시험들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 성도들 연약한 교역자를 귀히 여기고 비난하지 않고, 기도할 수 있도록 사랑의 마음도 주옵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wen7f7Nn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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