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36) 막 10장 13-16절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3-01-31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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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은 아주 중요한 질문으로 말씀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생각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우리 교회에서 가장 높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잠시 시간을 드립니다. 누구일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절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설교를 시작하면서 드린 질문은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의 질문입니다. 천국,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누가 큰 사
람입니까? 정답은? 목사가 아닙니다. 당회원도, 카운셀 회원도, 서리집사님, 교사도 아닙니다. 정답은?
마태복음 18장 2-4절에 우리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우리 같이 읽습니다.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어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천국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은 누구입니까? 돌이켜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가장 큰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럼, 우리교회에서 가장 큰 우리 가장 큰 가장 나이 어린 아이는 누구일까요?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리 조장희 형제님, 이수현 자매님의 둘째 온유입니다. 곧 3월이면 온유 동생도 태어납니다.
이렇게 귀하고 귀한 우리 어린아이를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합니까? 관심을 갖고 지극히 사랑하고 볼때마다 인사하고, 가장 아껴 주어야 합니다.
오늘 마가복음 10장 13-16절 말씀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린아이를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우리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오늘 어린아이를 대하는 방식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합당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2. 꾸짖는 제자들
마가복음 10장 13절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제자들의 마음과 태도가 나와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다가가는 어린아이를 어떻게 대합니까?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어린아이를 대하는 제자들의 태도는 무관심을 넘어서 꾸짖고 있습니다. 꾸짖다 중요한 동사입니다. 예수님은 종종 이 동사를 사용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 25-26절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우리 예수님께서 누구를 꾸짖습니까? 더러운 귀신을 꾸짖습니다.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강하게 꾸짖으셨습니다. 꾸짖다는 이런 경우에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마가복음 4장 39절 이번에도 예수님은 꾸짖습니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갈릴리 바다에서 배에서 주무시고 있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위협하던 바다의 바람을 예수님은 꾸짖으시며 잠잠하고 고요하라 명하십니다.
귀신을 꾸짖으시는 예수님, 바람을 꾸짖으신 예수님, 예수님의 제자들을 누구를 꾸짖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만져 주기를 바라고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들을 꾸짖었습니다.
어린 아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건한 유대인 부모님들에게는 유명한 랍비에게 어린아이를 데리고 와서 축복을 구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여기 유명한 랍비보다 더 위대하신 우리 예수님이 계십니다. 어린아이를 둔 부모님은 우리 아이를 예수님께서 만져주시고 안수하여주시고 복을 주시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어린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너무나 잘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어린아이를 데리온 사람들을 왜 그렇게 심하게 꾸짖고 있습니까?
예수님 당시에 유대 사람들은 지난 주일 본문의 이혼의 문제, 여성의 문제처럼 어린아이를 무시했습니다. 사회에서 경제적인 기여를 할 수 없는 사람들,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무시했습니다. 남성이 아닌 여성, 어른이 아닌 어린아이, 정상인이 아닌 장애인 모두 사회적인 차별과 편견의 대상이었습니다. 오직 남성, 성인, 정상적인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린 자녀를 사랑하고 존중하시는지요?
하버드 교육대학원 조세핀 김 교수님의 한인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문화적 정체성과 문화적 적응이라는 강의였습니다. 강의중에 교수님은 어린시절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교수님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백인 아이 생일에 초대를 받아서 Sleepover를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교수님이 너무 놀랐습니다. 생일 아이의 아빠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요리를 하는데 교수님 집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백인 아이 아빠가 묻습니다. 너 아침으로 뭐 먹을래? 오믈렛? 시리엘? 빵? 교수님이 엄청 놀라면서 문화충격을 경험합니다. 우리 집에서는 선택권이 없는데, 엄마가 주는대로 먹어라. 그런데 미국 백인 가정은 아침을 먹는 것도 선택권이 있구나!!!
어린시절 가정에서 선택권이 있는 상태에서 자란 아이들과 어린시절 가정에서 선택권이 없는 상태에서 자란 아이들은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서 전공을 선택할 때 어린시절 선택권이 있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부모님이 결정해주지 않고 본인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어린시절 부모님이 다 결정하고 아이들은 그냥 따라오는 방식으로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결정장애가 있는 것처럼 선택하는 것이 힘듭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자녀 양육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질문입니다. 질문과 경청으로 커피브레이크 소그룹 성경공부하듯이 우리는 가정의 아이들에게 질문과 경청으로 자녀를 양육해야합니다.
어려서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 것을 연습할 기회가 없다면 갑자기 선택의 상황에서 선택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스킬이고, 이것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사소한 것부터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교수님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린시절 목사가정에서 자란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는 왜 안 그럴까? 생각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녀들에게 질문하면서 양육하십니까? 자녀들에게 경청하면서 양육하십니까? 아니면 자녀들에게 일상적으로 꾸짖으면서 양육하십니까?
3. 노하시는 예수님
제자들의 어린아이와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신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우리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어떤 태도로 대하십니까?
마가복음 10장 14절 말씀입니다. 우리 같이 읽습니다.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제자들의 꾸짖는 모습은 우리 예수님은 반대로 제자들에게 노하셨습니다. 헬라어 아가낙테오 노하시다. 매우 슬퍼하다, 대단히 화가나서 분히여기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몹시 화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왜 그토록 화가나셨을까요?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자의 것이니라. 사랑하는 제자들이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금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지 않고, 금하는 모습은 어린 아이들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우리 예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며, 깊은 상처를 주며 몹시 화나게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아이들이 어린시절부터 예수님께 가까이 가도록 하기 위해서 여러분은 정말 노력을 하십니까? 주일예배에 우리 아이들을 데려오기 위해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오시는 여러분을 우리 예수님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실까요?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이 어린시절부터 예수님을 알고, 사랑하고, 예배하고, 섬기는 자녀로 양육할 수 있다면 얼마나 자녀를 잘 양육한 것입니까?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자녀의 부모님은 가정에서 하나님을 대신하는 하나님 대리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우리에게 소중한 선물로주신 우리 자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합니다. 우리 자녀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4. 자녀의 유아세례
우리교회 같은 장로교회와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아이들의 유아세례를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태어난지 팔일만에 할례를 받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7장 12-14절 말씀입니다.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일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아이가 태어난지 팔일만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의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받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명령입니다.
구약의 8일만의 할례만이 아니라, 신약을 보면 아직 믿음이 없는 어린아이들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아직 교회가 없는 유럽의 첫성 마게도냐 지역의 빌립보를 방문한 사도바울은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를 만나서 복음을 전하고, 그리고 루디아 만이 아니라 그 집안의 모든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14-15절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루디아와 그의 집의 모든 사람들이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빌립보교회의 루디아와 그의 가족만이 아니라, 빌립보 감옥의 간수와 그의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빌립보 감옥에서 나온 사도 바울은 빌립보 감옥의 간수와 그의 가족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행 16:33-34절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주고 자기와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빌립보 성의 루디아와 빌립보 감옥의 간수는 자신들의 믿음으로 세례를 받은 것 만이 아니라, 가족들도 자녀들도 세례를 받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세례를 받으셨는지요? 여러분의 자녀들도 모두 세례를 받으셨는지요?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이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았다면, 2023년 올해는 우리 자녀들도 모두 세례를 받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녀가 독립적으로 자라서 성장할 때까지 가정의 부모임의 역할이 결정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대리하여 가정의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최대한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예배하고 믿음 안에서 자라가도록 우리의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요즘 부쩍 키가 크고 있는 막내 동률이가 어느날 저에게 심각하게 질문했습니다. 아빠, 언제부터 교회를 선택할 수 있어? 마음속으로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매주 화요일 우리 지역의 Citizen 교회의 유스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데 너무 좋다고 합니다. 같은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 찬양하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교제하는 시간이 즐겁다고 합니다. 그날 수영 연습은 못가도 화요일 저녁시간만큼은 유스 모임에 꼭 참석하고 있습니다. 유스 모임을 마치고 오늘 무슨 말씀을 들었는지 질문을 하면, 배운 말씀을 기억하고 나누고 있습니다. 말씀 안에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 얼마나 감사한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교회에는 우리 아이들이 예배 안내위원도 하고, 성경봉독도 하고, 우리만의 예배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도 우리와 함께 예배하며 하나님을 알아가고 사랑하고 섬기며 자라납니다.
저의 마음의 소원은 우리 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가정과 교회에서 믿음 가운데 성장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의 제자로 잘 양육되어 세상을 변화시키고 캠퍼스를 변화시키는 주님의 파송받은 선교사로, 주님의 신실한 제자로 양육하고 싶습니다.
5.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
하나님의 나라는 어른 성도만을 위한 나라가 아닙니다.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고 더 적극적으로 예수님께 다가올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의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마가복음 10장 15-16절 우리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누구인지 말씀하십니다. 두 구절 함께 읽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아이를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어린아이를 통해서 우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동일한 말씀 마태복음 18장 3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모습을 어린아이들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어야 합니까? 어린아이의 가장 큰 특징은 철저하게 부모님께 의존합니다. 어리면 어릴수록 더욱 부모님께 의존합니다. 부모님이 없으면 어린아이들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돈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오직 부모님만 의존합니다.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입니까? 어린아이처럼 하나님만 의존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그는 바리새인처럼 예수님을 시험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어린아이처럼 받아들입니다. 그는 다음주일 본문에 나오는 부자청년처럼 돈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는 오직 부모님만 의존하듯이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고 의존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존하는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보이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춥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존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의 마음은 높은데 두지 않습니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그의 마음은 온유하며, 겸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하신지요?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십니까? 여러분 삶에서 꼭 없으면 안되는 그것이 무엇입니까? 어린아이는 어릴수록 엄마 한분이면 족합니다. 엄마가 주는 젖이면 행복합니다. 그의 마음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합니다. 하나님나라에 합당한 사람의 마음이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다. 그의 마음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존합니다. 그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합니다.
6. 우리의 기도
이 시간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특별히 우리 가정의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우리 자녀들을 예수님께로 열심으로 데리고 오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자녀들이 우리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거듭나게 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자녀들에게 돈이 아니라 믿음을 유산으로 남기게 하옵소서.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도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의 믿음이 자자손손 대대로 이어지는 믿음의 가문이 되게 하옵소서. 이 시간 어린아이같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며 의존하는 마음,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자기를 낮추는 어린아이같은 마음을 우리에게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번주 금요일부터 시작되는 신년기도부흥회 어린아이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기도를 배우게 하시며, 어린아이같은 마음으로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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