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1) 계 5장 1-14절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2-12-11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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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미의 이름과 요한계시록
올 한해 여러 스터디 그룹 가운데 CRC 교단 목사님들과 함께 한 중년을 걷는 중세 모임이 있었습니다. 40-50년대 중년의 목회자 5명이 한 달에 한번 중세 시대의 철학, 역사, 신학을 함께 공부하면서 서로 사역을 위해서 격려하며 기도하는 모임이었습니다.
12월 마지막 모임에서 다룬 책이 영화로도 잘 알려진 소설 <장미의 이름>이었습니다. 세계적인 기호학자이자 중세 연구가인 움베르토 에코의 베스트셀러 소설입니다. 소설을 읽을 시간이 없어서 오랫만에 장미의 이름 영화를 다시 보니 과거에는 보지 못했던 여러가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숀 코넬리가 주연한 주인공 윌리엄 수도사는 제자 아드소를 데리고 한 베네딕트 수도원을 방문합니다. 방문의 주된 이유는 그 수도원에서 이상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수도원은 수도사들의 죽음을 은폐하기 위해서 다른 힘이 없는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아서 마녀사냥을 하기 시작하고, 이단논쟁을 벌입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수도사들의 살인 사건이 어느 한 권의 책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죽은 수도사들의 공통점을 발견하니 손과 혀에 묻어있는 잉크였습니다. 죽은 수도사들은 어떤 책을 읽다가 결국에는 죽음에 이른 것입니다.
범인은 누구일까요? 수도원의 장님 수도사 호르헤입니다. 흐르헤 수도사는 그 책을 필사적으로 감추려고 합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 책을 읽는 사람들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그 책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 웃음편이었습니다.
호르헤 수도사의 신념은 중세의 교회와 신학과 수도원을 지키기 위해서 불경한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웃음과 관련된 책을 읽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웃음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제거하고, 두려움이 사라지면 신앙이 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수도원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한 배경으로 요한계시록이 낭독됩니다. 오늘날도 요한계시록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줍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 당시에 요한계시록은 박해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위로의 말씀입니다.
2. 위로의 책
지난 주 토요일 요한계시록 4장에서 사도 요한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의 열린 문을 통해서 하늘 보좌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보좌에 앉으신 분을 보았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분을 설명할 단어가 없어서 보석으로 설명하며, 보좌 주면에 있는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사도 요한에게는 말할 수 없는 큰 위로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소망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위로의 말씀이 요한계시록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위로와 격려의 말씀입니다. 오늘 요한계시록 5장 말씀도 사도 요한에게 계속되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무엇이 사도 요한에게 위로의 말씀이겠습니까?
첫째 위로는 봉해진 두루마리를 펼 수 있는 것이 위로입니다.
5장 1-3절을 보면 봉해진 두루마리가 있습니다.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두루마리가 있습니다. 그 두루마리는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분은 거룩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며 장차 오실 하나님,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습니다.
두루마리에는 안팎으로 글이 쓰여져있지만, 동시에 아무도 읽을 수 없도록 일곱 인으로 봉해져 있습니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질문합니다.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늘 위에도 땅 위에도 땅 아래에도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볼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두루마리는 완전히 봉해져있습니다.
묵시문학인 요한계시록 말씀은 구약의 동일한 묵시문학인 에스겔과 다니엘을 참조로 읽으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 2:9-10절 말씀입니다. “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는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다니엘서 12장 4절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에스겔서의 환상에 등장하는 두루마리 책의 내용은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어 있는데, 다니엘서을 보면 마지막 때까지 봉해져 있습니다. 이제 일곱 인으로 봉해져있는 그 두루마리의 봉인이 해제되고 열리려고 합니다.
3. 누가 두루마리를 펼 수 있는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 누가 그 두루마리의 일곱 인을 떼고 그 두루마리를 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사도 요한에게 주는 위로의 핵심입니다. 4-5절 말씀 같이 읽습니다.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드디어 봉인된 두루마리를 펼 수 있는 합당한 분이 계십니다. 누구이십니까? 24장로중의 한 장로가 말합니다.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입니다. 사자는 말씀을 전하는 메신저의 사자가 아니라 The Lion of the tribe of Judah입니다. 진짜 사자입니다. 동시에 다윗의 뿌리입니다. 유다 지파의 사자는 창세기 49장을 보면 야곱의 유언의 축복 가운데 있는 유다 지파에서 오실 메시야이며, 다윗의 뿌리도 메시야를 가리킵니다.
유다 지파의 사자이며, 다윗의 뿌리인 메시야 그리스도가 그 두루마리 인봉을 여실 수 있습니다. 6-7절 그런데 사자이며 뿌리이신 그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조금 더 자세히 보여줍니다.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유다 지파의 사자이신 분, 다윗왕의 뿌리이신 분은 한 어린양으로 나타납니다. 사자와 어린 양은 서로 얼마나 맞지 않는 모습입니까? 사자는 강력합니다. 다윗의 뿌리도 막강합니다. 그러나 어린 양은 연약합니다.
그 어린 양은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습니다. 일찍 죽임 당하신 어린양은 이제 부활하시어 승천하시어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더이상 연약하지 않습니다. 일곱 뿔을 가진 완전한 힘과 권세의 주님이시며, 일곱 눈을 가지신 하나님의 일곱 영이신 성령의 으로 온 세상을 감찰하시는 전지하신 우리 주님이십니다.
4장에서는 하늘의 보좌와, 네 생물과 24 장로님들만 보였다면, 이제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보입니다. 사도 요한에게 사랑을 가르쳐주신 요한의 지극히 사랑하는 주님이십니다. 바로 이 분이 두루마리를 취하시며, 두루마리의 봉인을 떼시며, 두루마리을 여실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사도 요한에게 엄청난 위로였습니다. 우리가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사자이며 뿌리이신 능력의 주님이시지만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친히 일찍이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는 그 힘과 권세로 온 세상을 심판하실 심판의 주님으로 당당하게 등장하십니다.
4. 어린양께 드리는 기도와 찬송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루마리를 취하자마자 두 가지 일이 천상 하늘에서 일어납니다. 8절 말씀입니다.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하나님의 보좌에 있던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동일하게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는 경배를 받습니다. 경배만이 아닙니다. 어린 양 예수님은 금대접의 가득한 향을 받으십니다. 그 향은 성도의 기도라고 말씀합니다. 경배와 기도를 받으시는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예수님,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실 심판의 주가 되신 예수님을 어떻게 경배하는 것이 합당합니까?
오늘 5장의 마지막 부분은 4장과 동일하게 찬송으로 마칩니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찬송합니다. 하늘의 만만이요 천천인 천사들이 찬송합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모든 피조물들이 다 찬양합니다. 하늘의 삼중 찬양의 소리가 하늘과 온 땅에 가득합니다.
9-10절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의 새로운 찬양의 가사입니다.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12절 하늘의 천군 천사들의 찬양입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능력과 부과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13-14절 이제는 온 피조물의 찬양의 가사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속합니다. 함께 읽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우리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하니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우리 주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진정한 위로자이십니까?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어린 양이십니다. 바로 그 분이 온 세상을 심판하실 두루마리를 떼실 수 있는 유일한 심판주이십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경배와 기도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해야 할 믿음에 합당한 모습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할 대상은 사람이 아닙니다. 힘이 있는 로마의 황제도 아니고, 힘과 권세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분 앞에 기도합니다. 우리 평생에 기도합니다. 기도만이 아니라 찬양합니다. 전심을 다하여 찬양합니다.
5. 우리의 기도
고난과 박해 가운데 있는 사도 요한에게, 로마의 핍박 가운데 있는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주신 위로의 말씀으로 이 시간 기도합니다. 첫째,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바르게 알기를 원합니다. 심판주이십니다. 우리의 예배와 기도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온전한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우리 주님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둘째,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기도의 향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지속적으로 아름다운 향기가 되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어린 양 예수님께 올려드릴 수 있는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찬송입니다. 찬송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우리 입에서 찬송이 끊이지 아니하도록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사도 요한을 통하여 하늘의 열린 문을 통하여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의 거룩하시며, 영광스러우며,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찬송합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하늘 보좌에서 불꽃같은 눈으로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의 마음을 다해 찬양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일찍이 죽임 당하게 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크신 은혜를 이 시간 감사하며 찬송합니다. 그분이 온 세상을 심판하실 심판주이심을 우리의 기도의 향을 받아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 기도의 중보자이심을,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우리 주님이심을 이 시간 고백하며 찬송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으로 우리의 부족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게 하시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더 능력있게 증거하지 못하는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 우리 주님을 향한 기도와 찬양이 끊이지 아니하는 주님의 교회 되게 하시며, 우리의 믿음의 눈을 밝혀주시어 이 땅에서 온전히 주님을 경배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올 한해 여러 스터디 그룹 가운데 CRC 교단 목사님들과 함께 한 중년을 걷는 중세 모임이 있었습니다. 40-50년대 중년의 목회자 5명이 한 달에 한번 중세 시대의 철학, 역사, 신학을 함께 공부하면서 서로 사역을 위해서 격려하며 기도하는 모임이었습니다.
12월 마지막 모임에서 다룬 책이 영화로도 잘 알려진 소설 <장미의 이름>이었습니다. 세계적인 기호학자이자 중세 연구가인 움베르토 에코의 베스트셀러 소설입니다. 소설을 읽을 시간이 없어서 오랫만에 장미의 이름 영화를 다시 보니 과거에는 보지 못했던 여러가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숀 코넬리가 주연한 주인공 윌리엄 수도사는 제자 아드소를 데리고 한 베네딕트 수도원을 방문합니다. 방문의 주된 이유는 그 수도원에서 이상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수도원은 수도사들의 죽음을 은폐하기 위해서 다른 힘이 없는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아서 마녀사냥을 하기 시작하고, 이단논쟁을 벌입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수도사들의 살인 사건이 어느 한 권의 책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죽은 수도사들의 공통점을 발견하니 손과 혀에 묻어있는 잉크였습니다. 죽은 수도사들은 어떤 책을 읽다가 결국에는 죽음에 이른 것입니다.
범인은 누구일까요? 수도원의 장님 수도사 호르헤입니다. 흐르헤 수도사는 그 책을 필사적으로 감추려고 합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 책을 읽는 사람들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그 책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 웃음편이었습니다.
호르헤 수도사의 신념은 중세의 교회와 신학과 수도원을 지키기 위해서 불경한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웃음과 관련된 책을 읽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웃음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제거하고, 두려움이 사라지면 신앙이 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수도원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한 배경으로 요한계시록이 낭독됩니다. 오늘날도 요한계시록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줍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 당시에 요한계시록은 박해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위로의 말씀입니다.
2. 위로의 책
지난 주 토요일 요한계시록 4장에서 사도 요한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의 열린 문을 통해서 하늘 보좌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보좌에 앉으신 분을 보았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분을 설명할 단어가 없어서 보석으로 설명하며, 보좌 주면에 있는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사도 요한에게는 말할 수 없는 큰 위로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소망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위로의 말씀이 요한계시록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위로와 격려의 말씀입니다. 오늘 요한계시록 5장 말씀도 사도 요한에게 계속되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무엇이 사도 요한에게 위로의 말씀이겠습니까?
첫째 위로는 봉해진 두루마리를 펼 수 있는 것이 위로입니다.
5장 1-3절을 보면 봉해진 두루마리가 있습니다.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두루마리가 있습니다. 그 두루마리는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분은 거룩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며 장차 오실 하나님,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습니다.
두루마리에는 안팎으로 글이 쓰여져있지만, 동시에 아무도 읽을 수 없도록 일곱 인으로 봉해져 있습니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질문합니다.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늘 위에도 땅 위에도 땅 아래에도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볼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두루마리는 완전히 봉해져있습니다.
묵시문학인 요한계시록 말씀은 구약의 동일한 묵시문학인 에스겔과 다니엘을 참조로 읽으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 2:9-10절 말씀입니다. “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는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다니엘서 12장 4절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에스겔서의 환상에 등장하는 두루마리 책의 내용은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어 있는데, 다니엘서을 보면 마지막 때까지 봉해져 있습니다. 이제 일곱 인으로 봉해져있는 그 두루마리의 봉인이 해제되고 열리려고 합니다.
3. 누가 두루마리를 펼 수 있는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 누가 그 두루마리의 일곱 인을 떼고 그 두루마리를 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사도 요한에게 주는 위로의 핵심입니다. 4-5절 말씀 같이 읽습니다.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드디어 봉인된 두루마리를 펼 수 있는 합당한 분이 계십니다. 누구이십니까? 24장로중의 한 장로가 말합니다.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입니다. 사자는 말씀을 전하는 메신저의 사자가 아니라 The Lion of the tribe of Judah입니다. 진짜 사자입니다. 동시에 다윗의 뿌리입니다. 유다 지파의 사자는 창세기 49장을 보면 야곱의 유언의 축복 가운데 있는 유다 지파에서 오실 메시야이며, 다윗의 뿌리도 메시야를 가리킵니다.
유다 지파의 사자이며, 다윗의 뿌리인 메시야 그리스도가 그 두루마리 인봉을 여실 수 있습니다. 6-7절 그런데 사자이며 뿌리이신 그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조금 더 자세히 보여줍니다.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유다 지파의 사자이신 분, 다윗왕의 뿌리이신 분은 한 어린양으로 나타납니다. 사자와 어린 양은 서로 얼마나 맞지 않는 모습입니까? 사자는 강력합니다. 다윗의 뿌리도 막강합니다. 그러나 어린 양은 연약합니다.
그 어린 양은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습니다. 일찍 죽임 당하신 어린양은 이제 부활하시어 승천하시어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더이상 연약하지 않습니다. 일곱 뿔을 가진 완전한 힘과 권세의 주님이시며, 일곱 눈을 가지신 하나님의 일곱 영이신 성령의 으로 온 세상을 감찰하시는 전지하신 우리 주님이십니다.
4장에서는 하늘의 보좌와, 네 생물과 24 장로님들만 보였다면, 이제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보입니다. 사도 요한에게 사랑을 가르쳐주신 요한의 지극히 사랑하는 주님이십니다. 바로 이 분이 두루마리를 취하시며, 두루마리의 봉인을 떼시며, 두루마리을 여실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사도 요한에게 엄청난 위로였습니다. 우리가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사자이며 뿌리이신 능력의 주님이시지만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친히 일찍이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는 그 힘과 권세로 온 세상을 심판하실 심판의 주님으로 당당하게 등장하십니다.
4. 어린양께 드리는 기도와 찬송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루마리를 취하자마자 두 가지 일이 천상 하늘에서 일어납니다. 8절 말씀입니다.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하나님의 보좌에 있던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동일하게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는 경배를 받습니다. 경배만이 아닙니다. 어린 양 예수님은 금대접의 가득한 향을 받으십니다. 그 향은 성도의 기도라고 말씀합니다. 경배와 기도를 받으시는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예수님,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실 심판의 주가 되신 예수님을 어떻게 경배하는 것이 합당합니까?
오늘 5장의 마지막 부분은 4장과 동일하게 찬송으로 마칩니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찬송합니다. 하늘의 만만이요 천천인 천사들이 찬송합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모든 피조물들이 다 찬양합니다. 하늘의 삼중 찬양의 소리가 하늘과 온 땅에 가득합니다.
9-10절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의 새로운 찬양의 가사입니다.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12절 하늘의 천군 천사들의 찬양입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능력과 부과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13-14절 이제는 온 피조물의 찬양의 가사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속합니다. 함께 읽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우리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하니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우리 주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진정한 위로자이십니까?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어린 양이십니다. 바로 그 분이 온 세상을 심판하실 두루마리를 떼실 수 있는 유일한 심판주이십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경배와 기도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해야 할 믿음에 합당한 모습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할 대상은 사람이 아닙니다. 힘이 있는 로마의 황제도 아니고, 힘과 권세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분 앞에 기도합니다. 우리 평생에 기도합니다. 기도만이 아니라 찬양합니다. 전심을 다하여 찬양합니다.
5. 우리의 기도
고난과 박해 가운데 있는 사도 요한에게, 로마의 핍박 가운데 있는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주신 위로의 말씀으로 이 시간 기도합니다. 첫째,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바르게 알기를 원합니다. 심판주이십니다. 우리의 예배와 기도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온전한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우리 주님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둘째,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기도의 향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지속적으로 아름다운 향기가 되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어린 양 예수님께 올려드릴 수 있는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찬송입니다. 찬송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우리 입에서 찬송이 끊이지 아니하도록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사도 요한을 통하여 하늘의 열린 문을 통하여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의 거룩하시며, 영광스러우며,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찬송합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하늘 보좌에서 불꽃같은 눈으로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의 마음을 다해 찬양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일찍이 죽임 당하게 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크신 은혜를 이 시간 감사하며 찬송합니다. 그분이 온 세상을 심판하실 심판주이심을 우리의 기도의 향을 받아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 기도의 중보자이심을,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우리 주님이심을 이 시간 고백하며 찬송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으로 우리의 부족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게 하시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더 능력있게 증거하지 못하는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 우리 주님을 향한 기도와 찬양이 끊이지 아니하는 주님의 교회 되게 하시며, 우리의 믿음의 눈을 밝혀주시어 이 땅에서 온전히 주님을 경배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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