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교육

마가복음 (33) 막 9장 30-37절 섬기는 제자, 섬기는 리더쉽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2-12-11 21:14
Views
83


1. 두 나라, 두 주장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 금요일 대한민국과 포루투칼 축구 경기 모두 잘 보셨는지요? 대한민국이 후반전 추가시간에 극적으로 손흥민 선수의 기가막힌 어시스트와 황희찬 선수의 골로 2:1로 이기고 16강전에 진출했습니다. 골을 넣고 마지막 남은 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졌습니다.

대한민국의 경기를 마치고, 선수들은 우르과이와 가나전 경기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르과이가 가나를 2:0으로 이기고 있었는데, 우르과이가 한골만 더 넣으면 대한민국은 탈락을 하고 우르과이가 16강전으로 진출하는 경기였습니다. 후반전을 마치고 남은 시간이 왜 그리 길게 느껴졌는지요?

미국은 어제 네덜란드와 16강전에서 패했습니다. 이제 내일 정오 12시 FIFA 랭킹 세계 1위 브라질과 16강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감사한 마음으로 응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과 포루투칼 경기를 마치고 두 명의 주장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주장은 손흥민 선수, 포루투칼의 주장은 호날두였습니다. 손흥민 선수는 평소에 호날두 선수를 축구 영웅으로 인정하고 호날두 선수를 배우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어제 경기만 보면 포루투칼 주장 호날두 선수는 더 어린 주장 손홍민 선수에게 배워야 하는 경기였습니다.

한 신문 기사에 “손흥민은 있었고, 호날두는 없었다. 승부를 가른 주장의 품격”이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승부를 가른 결정적인 차이는 주장의 품격이라는 기사였습니다. 포루투칼의 주장 호날두는 최악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결정적인 기회는 번번히 놓치고 코너킥을 등으로 받아서 우리나라에게 첫번째 골을 먹었습니다.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메시보다 더 골을 많이 넣고 싶은 골 욕심은 가득한데 다른 선수에 대한 배려도 부족하고, 오직 자신이 골을 넣고 싶어 합니다. 부진한 호날두 선수를 교체하자 호날두는 감독에게 욕을 하고, 빨리 나가달라는 조규성 선수에게도 욕을 했습니다.

대한민국 주장 손흥민 선수는 경기전에는 하나님께 기도했고, 경기후에 많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저보다 선수들에게 이 공을 돌리고 싶다. 선수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 발 더 뛰어준 덕분에 이런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한다고, 같이 뛴 선수들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주장인 제가 부족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선수들이 커버해줬다”고 모든 공을 다른 선수들에게 돌렸습니다.

그리고 기자의 마지막 질문 16강에서 브라질을 만날 수도 있는데 어떻게 준비하고 싶은지 물는 질문에 마지막 인터뷰 질문에서 “가장 감사한 것은 감독님의 마지막 경기가 벤치에서 같이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드립니다”라고 마쳤습니다. 벤투 감독님의 조국 포루투칼과의 경기가 국가대표 감독님의 마지막 경기가 아니라, 한번 더 남은 경기를 감독님과 함께 할 수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저는 손흥민 선수가 월드 클래스로 성장한 것도 좋지만, 최고의 인성의 선수로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참 좋습니다. 만일, 호날두가 주장으로 있는 팀과 손홍민 선수가 주장으로 있는 팀을 선택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느 팀으로 가시겠씁니까? 만일 호날두가 있는 교회와 손홍민이 있는 교회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교회로 가시겠습니까? 호날두 선수가 있는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와 손홍민 선수가 있는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가 있다면, 어느 공동체로 가시겠는지요?

오늘 본문 말씀 호날두 같은 제자들을 데리시고, 훈련하시는 계속되는 예수님의 집중되는 제자들을 훈련하시는 말씀입니다. 지난 주일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믿음의 문제, 둘째는 기도의 문제 였습니다.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너희 믿음이 겨자씨 한 말 만큼만 있어도 산을 옮길 것이다. 둘째는 기도 외에는 다른 거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믿음과 기도의 문제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믿음과 기도의 문제에 이어서 오늘 3가지를 더 제자들에게 교훈하십니다. 첫째는 영적 이해력, 둘째는 누가 크냐, 셋째는 섬기는 제자입니다.

2. 제자들의 영적인 이해력

예수님의 제자들의 무능력한 모습은 그들의 믿음에, 그들의 기도의 부족에, 또한 그들이 영적인 이해력에 문제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 30-32절 말씀입니다.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예수님은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나가고 계십니다. 그 곳은 갈릴리 북부 지역인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들으시고, 헤르몬 산으로 추정되는 산에서 영광스럽게 변화되시고, 산 아래에서 내려오신 후에는 귀신 들린 아들을 고쳐주시고, 이제 갈릴리로 통과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는 사역의 핵심지 갈릴리에서의 거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곧 예수님은 유다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갈릴리에서 유다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이제 예수님은 이 땅에서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죽게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실 고난에 대한 세번째 예언의 말씀입니다.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지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예수님은 오직 제자들에게만 이 중요한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기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으십니다. 갈릴리에서 더 이상 치유도 없고, 기적도 없습니다. 갈릴리에서의 마지막 시간은 집중적으로 제자들과 시간을 보내시며 가르쳐주십니다.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지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 인자, 그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입니다.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이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사역이고,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때문에 이 땅에 성육신하여 오셨고,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이루집니다.

로마서 4장 25절 한 구절만 살펴봅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은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역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저와 여러분을 위한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우리가 범죄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신 것이며,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범죄한 우리를 의롭다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신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없다면,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죄의 문제도 해결이 안되며, 우리를 의롭다 여겨주시는 칭의도 불가능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인자, 그 사람의 아들이 되어 주셨습니다. 12월 성탄의 계절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주신 겸손의 시간입니다. 그렇게 성탄하신 예수님이 고난의 생애를 사시고, 십자가에서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시고,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유일한 복음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3절 말씀 다시 기억합니다. “너희가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밎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역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천공이라는 한국의 최근 유명한 도사가 있습니다. 그자가 말하기를 “예수 고난은 미련해서 당한 것”이라 합니다. 그자가 아무리 한국 대통령의 멘토여도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들어야 합니다. 한 구절만 더 읽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모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왜 그렇습니까? 그들의 영적인 이해력에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삶과 사역에 대한 영적인 이해입니다. 그러니 지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만 집중하시고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쳐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부족한 영적인 이해를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부족한 영적인 이해력을 높이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무엇이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깨닫고 물을 수 있는 성숙한 영적인 이해력이 제자가 될 수 있을까요?

한 주간 제 삶에서 기대가되는 모임이 있습니다. 격주로 모이는 커피브레이크 인도자 모임입니다. 제가 모임을 주도하지 않습니다. 인도자 모임을 돌아가면서 준비하시는 인도자, 부인도자가 계십니다. 서로 질문하면서 설교본문 말씀 미리 예습도 하고, 커피브레이크 모임도 인도하십니다. 인도자, 부인도자가 되시면 얼마나 영적인 이해력을 높일 수 있을까요?

매월 마지막주 월요일 한국시간 오후 4시, 뉴멕시코 시간 새벽 1시 한국의 부흥과 개혁사 운영하시며 예수가족교회 담임목사님이신 백금산 목사님과 평공목: 평공 공부하는 목회자 모임에 기쁜 마음으로 참석합니다. 코로나가 저에게 준 선물이었습니다. 지난 달부터 읽고 있는 책이 <신좌파의 성혁명과 성정치화>라는 중요한 책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어떻게 동성애와 LGBTQ 세상이 되었는지 그 사상적 기반이 무엇이었는지 심도있게 살펴보는 책입니다.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 루소는 여기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찰스 다윈과 니체와 프로이트는어떤 기여를 했는지 살펴보면서 오늘날 세상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교는 가르칠 교입니다. 교회의 목사는 교사, 가르치는 자입니다. 교회에서 목사가 가르치지 않으면 교회는 성장 할 수 없습니다. 목사로 가르치기 위해서 배우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습니다. 영적인 이해를 위해서 배우셔야합니다. 책도 일고, 매일성경으로 말씀묵상도 하고, 연령대별 커피브레이크 소그룹 모임에도 들어가시고, 자와 함께 성경공부도 하고, 제자훈련도 해야 합니다.

목사님, 그러면 머리만 커지는 것이 아닙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머리만 커지는 것이 문제지만, 머리도 커져야 합니다.

영적인 이해력을 높이기 위해서 어려운 책도 읽고, 신학 책도 읽고 철학 책도 읽고, 스터디도 하고, 모임도해야 합니다.

3. 말하기 부끄러운 논쟁: 누가 크냐?

제자들의 영적인 이해력이 부족하니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논쟁의 주제가 무엇입니까? 9장 33-34절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 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야 하시되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하고 쟁론하였음이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합니다.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마가복음에서 길은 중요한 단어이며, 주제를 드러냅니다. 마가복음의 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주실 때 사용하시는 장소입니다.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제자들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을 예수님께 말씀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 주제는 말하기 부끄러운 토론의 주제입니다. 서로 누가 크냐?

왜 이런 주제로 제자들은 서로 토론을 했을까요? 만일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면 새로운 시대, 새로운 나라가 될 터인데 그러면 우리 중에 누가 새로운 시대 새로운 나라에서 가장 큰 자인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예수님의 길은 영광의 길이 아닌 고난의 길입니다. 그 길에서 제자들은 서로 누가 크냐 논쟁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에서는 이런 주제로 토론하면 안됩니다. 이런 주제는 정말 말하기도 부끄러운 주제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쉽게 이런 주제들이 토론됩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우리 교회는 몇 십명, 몇 백명, 몇 천명, 몇 만명이 모이는가? 우리 교회의 교인들의 수준은 어떠한가? 학력은 어떻고, 직업은 어떠하고, 경제 수준은 어떠한가?

제자들이 길에서 서로 토론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 명의 제자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따로 데리시고 변화산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그리고 나머지 9명의 제자들은 변화산 아래에서 귀신들린 아들을 고치지 못하는 무능려한 제자라면 누가 가장 높은 제자입니까?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영적 우월감이 다른 제자들보다 훨씬 높았을 것입니다. 다른 9명의 제자들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시기했을 것입니다. 영적인 우월감은 가장 큰 죄인 교만이며, 시기는 일곱가지 큰 죄 가운데 중심입니다.

서로 비교하고, 서로 시기하고, 서로 경쟁하고, 서로 다투는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런데 주님의 몸된 교회에도 서로 비교하고, 서로 시기하고, 서로 경쟁하고, 서로 다투는 일들이 항상 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높다고 생각하는 직분을 얻지 못하면 시험에 들고 교회를 떠나는 일들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교회의 목사는 하기 싫지만, 교회의 집사, 안수집사, 장로, 권사는 얼마나 되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은지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제자도의 가장 중요한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가 사라진 자리에 자기 영광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자기 영광이 충족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교회를 떠납니다.

우리 주님 보시기에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우리 예수님은 제자들이 길에서 누가 크냐로 논쟁하시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무엇인지, 제자의 삶은 무엇인지, 마가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를 말씀하십니다.

4. 섬기는 제자, 섬기는 리더쉽

35-37절 말씀 우리 같이 읽습니다.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예수님 당시에 첫째가 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종교지도자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정치지도자 왕, 산헤드린 공의회, 귀족의 사두개인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첫째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첫째를 추구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종교적 타이틀, 정치적 타틀을 추구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교회에서 장로가 되고 싶어하고, 안수집사가 되고 싶어하고, 권사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위험합니다. 되고 싶어하는 그 직분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그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고,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진짜 첫째는 섬기는 자가 진짜입니다. 섬기기 위해서, 더 잘 섬기기 위해서, 직분을 얻고자 한다면 그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것이 바른 것입니다.

여기 섬기는 자는 헬라어 디다스코노스입니다. 예수님은 디다스코노스 섬기는 분이셨습니다. 여기서 나온 영어 단어가 Deacon 집사 입니다. 집사는 그러면 뭐하는 분이십니까? 섬기는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또 영어 단어 minister가 나왔습니다. 목사, 사역자는 그러면 뭐 하는 사람입니까? 섬기는 사람입니다. Prime minister 공직자 가운데 최고의 공직자 총리, 장관은 뭐 하는 사람입니까? 섬기는 자입니다.

그러면, 교회의 모든 직분은 다 디다스코노스 입니다. 목사도 섬기는 자, 장로도 섬기는 자, 집사도 섬기는 자, 권사도 섬기늕 자, 성도도 섬는 자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는 섬기는 자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면 누구를 섬겨야 하나요? 어린 아이 하나. 순진하고 순수하기에 어린 아이가 아닙니다. 사회에서 가장 사람 대접 못 받는 사람 취급도 못 받는 존재가 어린 아이이게에 어린 아이를 가운데 세우셨고 안아주셨고,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나를 영접함이요, 나를 영접함이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고 제자들에게 교훈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교회에는 섬기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섬기는 자가 되어서 우리 지역에서 사람 대접 못 받는 사람을 가장 작고 연약한 사람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영접하고 환대하고 대해주는 것이 주님의 교회입니다.

주님의 교회는 차갑지 않고 따뜻합니다. 주님의 섬기는 이들은 차갑지 않고 따뜻합니다. 교회는 이런 사람을 환대하는 영접의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 교제의 공동체입니다.

Calvin Theological Seminary를 졸업하고 CTS 총장님의 섬기는 리기러쉽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CTS 총장님의 CTS 선물을 받았습니다. Called to Serve. CTS 출신 목사들은 모두 CTS called to Serve 우리는 모두 섬기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 주님의 사람들은 모두 CTS 섬기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이름은 이제부터 CTS 섬기는 자가 되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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