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교육

마가복음 (32) 막 9장 14-29절 제자의 무능력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2-11-29 20:53
Views
392


1. 갈릴리 장로교회의 2022년 표어와 비젼, 그리고 목회철학

사랑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 2022년 이제 달력이 딱 한장 남았습니다. 올해는 어찌 그리 빠르게 지나가는지요? 올해를 마무리 하기 전에 갈릴리 장로교회 2022년 표어를 기억하길 원합니다. "복음과 사랑으로 지역을 섬기는 교회” 저는 정말 우리 교회가 복음과 사랑의 두 기둥으로 우리 지역을 섬기는 교회가 되길 바라며 사역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의 비전은 무엇일까요? 주보의 뒷 면을 보면 우리 교회의 비전이 있습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며, 제자삼아, 지역을 섬기는 선교적 교회”입니다.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의 비전은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그 한 영혼을 제자 삼습니다. 구원받은 한 영혼이 제자가 되어 지역을 섬기는 선교적 교회를 이루는 것이 우리 교회의 비전입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의 비전이라면 저는 목사로 어떻게 우리 교회의 비전을 이루면서 사역을 해야 하겠습니까? 저에게 목사님, 목사님은 왜 목사로 살고 계십니까? 질문한다면, 저는 제 목회 철학을 신약성경 에베소서 4:11-14절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기에 제가 목사로 사역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함께 읽기 원합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를 목사와 교사로 삼아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나면 그 이유가 있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것이 제가 가르치는 교사와 목사로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여러분을 온전한 성도로 만들어서, 봉사의 일을 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온전한 성도는 더 이상 영적인 어린 아이가 아닙니다.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세상의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온전한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서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성장해가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해 가는 온전한 성도의 특징은 봉사의 일을 합니다. 봉사는 다른 말로 섬김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재능과 은사를 따라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섬기는 사람입니다. 봉사가 없다면, 섬김이 없다면 온전한 성도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떠한 모양이든지 봉사와 섬김의 성도가 되어주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이 지체로 있는 그리스도의 몸인 갈릴리장로교회가 세워집니다. 2022년 코로나로 힘들었다면, 2023년은 어느 자리에 있든지 봉사와 섬김의 자리에서 우리 교회를 든든하게 세워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성도를 다른 표현으로 한다면 제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교회의 비전의 3번째를 보시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 받고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제자들의 교회”가 우리 교회의 큰 비전인 “한 영혼을 구원하며, 제자삼아, 지역을 섬기는 선교적 교회”에서 나오는 세번째 작은 비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비전의 한 배를 타고 이 땅에서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며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가는 비전 공동체이며 운명 공동체입니다.

우리 교회의 비전 공동체, 운동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 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신실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 가능한 비전입니다.

제가 모델로 삼고 있는 제자는 고린도에서 사도 바울이 만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입니다. 언젠가 갈릴리장로교회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저에게 스스로 물어볼 것입니다. 갈릴리 장로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사역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주님의 제자를 훈련시켰는가?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소명과 그 소명의 비전을 잘 이루는 목사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제가 혼자서 사역하는 목사가 아니라, 여러분이 주님의 동역자, 저의 동역자, 주님의 제자가 되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 예수님의 사역의 방향

추수감사주일 지나고 다시 마가복음으로 돌아갑니다. 마가복음을 자세히 살펴보시면 우리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포커스는 하나님의 나라이며,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제자입니다. 이제 갈릴리 지역의 사역을 마무리하시고 유다 지역의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사역 이후에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이 지금까지 부르시고, 함께 하시고, 권능을 주신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마가복음에서 가장 절정을 이루는 말씀은 마가복음 8장 29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질문과 베드로의 답변이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마가복음과 복음서 전체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듣고, 예수님은 비로소 그 신앙고백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며, 동시에 이때로부터 본격적으로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본격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 이전에 예수님의 사역의 촛점은 무리가 아닌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메시야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치유하신 예수님의 3가지 사역의 모습은 이땅에 어떤 메시야로 오셨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가르치시는 선지자,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시며 통치하시는 왕, 치유하시는 제사장의 모습으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러 오신 그리스도 메시야이십니다.

이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이후 예수님의 사역의 방향은 더욱 더 제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갈릴리 지역을 떠나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하신다면 교회의 미래는 이 땅에 남겨진 제자들에게 달려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제자들이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앞으로 마가의 관점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다루는 제자도가 핵심입니다. 길 위에서 예수님이 가리치시는 말씀은 제자도입니다.

누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예수님의 제자의 삶은 무엇입니까? 마가복음 8장 34절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삶이 예수님의 제자의 삶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이제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받을 만한 능력있는 제자로 잘 준비되어 가고있습니까? 이것이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3. 귀신들린 아들과 아버지

오늘 본문 마가복음 9장 14-18절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 천천히 함께 읽습니다.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새님께 데려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이 말씀 이전에 예수님은 오직 3명의 제자들만 데리고 산으로 기도하러 가셔서 영광스럽게 변화되셨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의 영광스럽게 변화된 모습을 눈으로 목격하고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나 예수님의 예루살렘에서의 죽으심에 대한 대화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변화산에서 제자 베드로는 너무 기쁘고, 무섭고,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에, 구약의 엘리야와 모세의 모습에 산에서 초막 셋을 짓고 싶어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삶에서 영광스러운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압도되어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반드시 믿음에는 이 은혜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영광의 변화산 아래의 삶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삶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도무지 우리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그 아들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만 생각해보면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얼마니 힘이 든지 짐작할수 있겠습니까?

요즘 제 마음에 생각나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감독입니다. 손흥민 선수는 얼마나 축구도 월드클래스로 잘하지만 인성도 바른지 다른 선수들을 정말 배려하고 도와주려고 하고 겸손합니다. 그 아들이 얼굴에 골절을 입는 큰 부상을 당했습니다. 월드컵을 앞두고 3주전에 당한 그 부상에서 안면 골절 수술을 받고 아직 다 회복도 안 된 상태에서 기어이 월드컵 1차전에 선발로 나와서 풀타임을 소화했습니다. 우루과이와 첫 경기 후에 인터뷰를 보니, 인터뷰의 마지막 말이 정말 감사했습니다. 손흥민 선수는 “자랑스런 나라의 유니폼을 입고 뛸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영광스럽습니다”라고 마쳤습니다.

손흥민 선수를 키운 무명의 축구 선수 아버지인 손웅정 감독은 서울영광교회에 다니는 우리와 같은 성도입니다. 부상당한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해겠습니까? 부상에서 회복되 안되어 마스크를 끼고 경기에 참여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오늘 귀신들린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 거품을 흘리면서 거꾸려져 간질 증세를 보이는 아들이 점점 말라갑니다. 그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을 수 없어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그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변화산 아래에 세상에 남겨진 제자들의 모습은 여전히 무능력하고 답답한 모습입니다.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제자들의 무능력하고 답답한 모습입니다. 제자들의 무능력의 원인, 문제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문제의 원인을 알아야 회복할 수 있는 길이 보입니다.

4. 믿음의 문제

오늘 본문 마가복음 9장 1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는 일차적으로 제자들이 아닙니다. 제자들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 세대입니다. 불쌍한 아들의 불쌍한 아버지도 믿음이 없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문제도 다른 문제가 아닌 믿음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병행본문 마태복음 17장 19절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님께 묻습니다. “이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절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제자들의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문제는 다른 문제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믿음의 문제입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에서 제자들의 믿음도 너무나 작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의 삶과 사역의 문제가 믿음의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에서의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삶의 문제도 믿음의 문제가 아닙니까? 우리도 제자들처럼,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시대에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이 인정하실만한 그 믿음이 있습니까? 믿음의 문제는 제자들의 모습만이 아닙니다. 왜, 우리의 믿음의 삶에 능력이 없습니까? 믿음이 없기에, 믿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믿음이 없기에 늘 미래가 불안하고, 믿음이 없기에 우리의 삶과 사역의 현장에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전적으로 예수님께 지식, 동의, 그리고 신뢰의 확신을 두고 믿음으로 살아 간다면, 우리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믿음이 부족하기에, 믿음이 너무나 작기에, 귀신들려 고생하던 그 불쌍한 아들을 아버지는 심히 고생하는 자기 아들을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지만, 제자들은 아무런 능력도 행할 수 없었습니다.

마가복음 6장 7절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미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 이미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와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능력을 부여받은 제자인데, 지금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무기력합니다. 믿음이 문제입니다.

믿음이 문제라면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믿음을 구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24절 말씀 우리 같이 읽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간절히 간구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믿음을 구하는 기도 이 시간 우리의 간절한 기도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을 구하십니다. 지금 보다 더 나은 믿음을 구하십시오. 우리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달라고, 우리의 부족한 믿음이 더 큰 믿음으로 능력있는 믿음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성장 할 수 있도록 기도하길 원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능력있는 제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수도 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아무리 척박해보이는 우리 지역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능력으로 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무엇보다 믿음을 구하십시오. 믿음의 성장을 갈망하십시오.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 배우고, 훈련받고, 사역하고 섬기십시오.

5. 기도의 문제

제자들이 왜 그토록 무능했는지, 본문 마가복음 9장 28-29절을 다시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17장 21절을 보면, (없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구절 아래를 보면, 어떤 사본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제자들의 동일한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두 가지 모두입니다. 하나는 믿음의 문제이며, 또 다른 하나는 기도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적은 믿음과 기도는 분명히 연관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의 능력있는 삶은 기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제자들이 귀신도 쫓아내고 능력을 행하였는데, 지금 안되는 이유는 지금 제자들의 기도와 금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믿음과 함께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에게로 가져오는 통로입니다. 기도가 막히면 이 땅에서 능력있는 제자의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어제 토요 오전 기도회에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우리 예수님의 사랑의 경고의 말씀을 나눴습니다. 우리 예수님 보시기에 라오디게아 교회는 뜨거운 믿음이 아니라 미지근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세 가지 중요한 처방을 주십니다. 여전히 라오디게아 교회를 사랑하시는 진리의 예수님의 이 세 가지 중요한 처방을 듣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세 가지 처방 저와 여러분에게도 주시는 주님의 간곡한 말씀 18-20절 말씀 같이 읽습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박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세 가지 처방은 금, 흰 옷, 안약입니다. 지금 라오디게아 교회는 그들이 자랑하는 물질적 풍요의 금이 아니라, 예수님에게서 사야 하는 불로 연단한 금이 필요합니다. 지금 라오디게아 교회는 그들이 자랑하는 양털로 만든 비싼 옷이 아니라 예수님이 입고 계시며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흰 옷이 필요합니다. 지금 라오디게아 교회는 그들이 자랑하는 발달된 의료시설이 아니라 그들의 영적인 눈을 활짝 열어줄 안약이 필요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보면 우리 시대의 교회의 모습같습니다. 교회가 부유하고 물질이 풍부합니다. 그러나 교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불로 연단한 금같은 고난을 통과한 순수한 믿음입니다. 비싸고 좋은 옷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은 성결한 믿음의 삶이 필요하며, 좋은 의료시설과 좋은 약이 아니라 성령의 조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밝혀 보는 영적인 시각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 가지 처방이 라오디게아 교회만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에게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주님은 사랑하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며 징계하십니다. 제발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지금 그들이 자랑하는 모든 자랑은 헛된 것입니다. 무엇이 제일 중요합니까? 믿음과 믿음의 합당한 삶과 믿음과 믿음의 합당한 삶을 위한 영적인 안목은 모두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에서 흘러나옵니다. 우리 주님은 그러기에 지금도 간절히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지금 문을 열면 그에게로 들어가 친밀한 교제를 누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말씀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과 친밀히 교제하십니까? 얼마나 예수님과 영적인 거리가 가까우신지요? 우리의 기도는 얼마나 예수님과 더불어 친밀하신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에서 늘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능력있는 삶의 비밀은 예수님과 친밀하게 누리는 기도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느 순간에 기도의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기도의 능력을 잃어버리면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제자들은 기도의 간절함을 잃어버렸습니다. 기도의 간절함을 잃어버리면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 우리 시대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능력있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믿음의 문제, 기도의 문제, 저와 여러분의 문제입니다. 믿음을 구하십시오. 기도의 삶을 회복하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두 가지 능력있는 제자의 삶의 비결입니다.

6. 우리의 기도

이 시간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제자들의 무능력한 삶의 원인을 살펴보며 우리를 돌아보며 기도하길 원합니다. 지금 이 시간 예배의 자리에 나온 우리 모두는 예외없이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한번 살아가는 예수님의 제자의 삶입니다. 무능력한 모습으로 끝마치지 않고 능력있는 제자의 삶의 모습을 살아가길 위해서 기도합니다. 첫째는, 오늘 귀신 들린 아들의 아버지 간구로 기도하길 원합니다. “할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야,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둘째는, 우리의 연약한 기도 생활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기도의 능력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3년이나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제자들의 참으로 무능력한 삶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믿음이 부족하고, 기도가 부족한 제자들의 모습이 마치 이 시대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통해서 그 원인을 깨달았사오니, 우리에게 믿음의 능력의 회복을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산을 옮길 수 있는 겨자씨 한알 만한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기도와 금식의 능력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 사랑하는 성도들은 우리 주님의 제자입니다. 무능력한 제자들의 교회가 아니라,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님들 능력있는 제자의 삶을 회복하여 이 믿음 없는 세대에 능력있는 충성된 믿음과 기도의 제자로 살아가게 하시며, 우리 교회와 성도들을 통해서 우리 예수님의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하는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 계속 이어지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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