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교육

마가복음 (29) 막 8장 22-26절 무엇이 보이느냐 (종교개혁 505주년 주일)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2-10-3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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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교개혁 505주년 기념주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주일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올해는 종교개혁 505주년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 예배당에 95개조의 반박문을 붙인 역사적인 날입니다.

루터는 1517년 11월 1일 만성절이라는 부르는 로마 가톨릭에서 모든 성인을 기리는 축제일 하루 전날 만성절 이브에 95개조의 반박문을 붙여서 지금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시행되고 가르치는 교리적인 문제에 대해서 토론하고 싶었습니다. 바로 그날이 할로윈 날입니다.

할로윈의 할로는 영어의 고어로 성인이라는 뜻이고, 원래 이름은 All Holllows’ Evening 모든 성인 대축일 전야제를 의미했던 종교적인 날이었습니다. 그러니, 종교개혁 기념주일이 있는 10월 31일 마지막 주간에는 오래 전 항상 미국이나 한국이나 전 세계적으로 할로윈 데이가 있어서 온갖 종류의 파티가 있습니다.

어제 뉴스를 보니 한국의 이태원에서 할로윈 데이 파티에 참여하려던 10대와 20대에서 최소 154명이 사망하고, 최소 132명이 경상과 중상의 부상을 당하는 참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인해서 어린 고등학생 304명이 사망한 이후로 최대의 비극적 참사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한국의 청년들 어려서부터 온갖 입시지옥에 시달리며 자라온 아이들입니다. 저의 집 자녀들 같은 어린 청년들이 목숨을 잃었고 심각한 부상을 당한 모습을 보니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요?

더 이상 목숨을 잃는 청년들이 나오지 않도록 기도하며, 목숨을 잃은 청년들, 자녀를 잃은 유족들의 마음을 우리 하나님께서 위로하시며, 이 땅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우리도 마음을 모아서 기도하며, 동시에 이 땅에서 자라나는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환경을 만드는 일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를 원합니다.

2. ACT NOW

올해 종교개혁 505주년에는 한국교회의 이대로 그냥 둘 수 없다. 개혁이 정말 필요한 시점에서 ACT NOW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미국교회에서 바라본 한국교회라는 주제의 짧은 글과 영상을 요청받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한국교회보다 미국에 있는 한인 이민교회의 현실이 더 열악하지만, 이민교회 보다 한국교회 반드시 개혁되어야 하는 것이 개교회주의와 과도한 성직주의입니다.

개교회주의는 오직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만 잘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를 보면 두 종류의 교회가 있습니다. 유명한 스타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대형화된 브랜드교회와 아니면 모두 동네교회입니다. 한국에서 오신 분들에게 한국에서 어느 교회를 다니셨습니까? 질문하면 그냥 동네교회에 다녔다고 말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교회가 대형화되다보니 You are my pastor 당신은 나의 목사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목사들이 사라졌습니다. 대형교회는 기업화되었고, 여기 저기 마치 백화점이 생기듯이 브랜드화되었습니다. 초대형 교회 이름으로 지역마다 교회가 세워졌고 미국에도 브랜드화된 대형교회가 큰 도시마다 있습니다.

브랜드화된 대형교회에는 오직 카리스마적인 목회자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성직주의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대형교회의 목사님들에게는 세상적인 윤리적인 기준으로보아도 정말 용납될 수 없는 문제들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카리스마적으로 설교만 잘 하면 모든 것이 다 용납됩니다. 설교 표절, 논문 표절도 괜찮습니다. 교회만 성장하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목회하던 교회를 그 수많은 목회자들 가운데 오로지 아들, 아니면 사위에게 세습합니다. 그렇게 세습하는 교회가 더 성장한다고 잘못 생각합니다. 그러니 지금은 교회가 세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 운동은 잘못된 성직주의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황에게 모든 권한이 독점되어 있는 성직주의 현실에서 사람이 아무리 죄를 지어도 자손이 면죄부를 사면 죽은 조상의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간다고 실제로 믿고 면죄를 사면서 만족했습니다.

지금이나 중세나 무엇이 문제입니까? 한 사람에게 절대 권력이 주어지면 절대로 부패하고 타락하는 인간의 죄악된 본성이 문제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의 죄악한 본성이 독점적인 권력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저와 여러분들이 영적으로 깨어서 주님의 교회다운 교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떻게 하면 한국교회 더 나은 교회가 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 지금보다 더 나은 교회가 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여러분들의 믿음이 지금보다 더 한 단계 성장하고 진보할 수 있겠습니까?

3. 달마누다에서 벳새다로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다시 장소의 이동이 나옵니다. 마가복음 8장 22절입니다.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우리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데리고 갈릴리 호수 서쪽에 위치한 달마누다 지역에서 다시 배를 타시고 갈릴리 호수 북쪽의 벳새다로 건너가셨습니다.

벳새다로 건너가신 예수님과 제자들 중에서 누가 가장 흥분되고 좋았겠습니까? 벳새다의 이름의 뜻이 있습니다. 벳은 집, 째다는 어부이니 어부의 집입니다. 어부의 집에서 태어난 어부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44절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 베드로와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 그리고 빌립의 고향이 어부의 집 벳새다입니다. 흥분 잘하는 제자 베드로는 고향 벳새다 방문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지난 여름 한국에 방문해서 제가 나고 미국에 올 때까지 자라고 사역한 고향 수원에 머물렀습니다. 수원에 도착한 첫 날 아침부터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수원성곽을 따라서 남문도 보고, 동문도 보고, 수원의 유명한 통닭 골목에서 제일 좋아하는 매향통닭도 먹고 수원에 갈 때마다 방문하는 가보정 갈비 가족들과 식사도 함께 했습니다.

벳새다 사람들은 베드로, 안드레, 빌립의 고향으로 예수님의 제자들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제자들의 고향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방문한 벳새다에서 마가복음 1부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며, 학기로 본다면 중간고사를 바로 앞둔 마지막 시간입니다.

오늘 벳새다에서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주십니까? 저와 여러분에게는 무엇을 가르쳐주십니까?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4. 벳새다 사람들의 간구

첫째, 예수님의 제자들은 고향 벳새다에서 고향 벳새다 사람의 간구를 배워야 합니다.

마가복음 8장 22절 말씀입니다.“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먼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여기 제자들의 고향 벳새다 사람들은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에게 손을 대어서 치유하여 주시기를 구하였습니다. 구하거늘 –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정말 마음으로 소원하여 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간절히 구하는 그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의 고향 벳새다 사람의 간구는 벳새다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이 그에게 손을 대시는 것을 간구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간구하는가? 그것이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줍니다. 일평생 자신과 자녀, 가족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간구의 제목이 온통 가족과 자녀에게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 보십시오. 예수님께 나아와야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오도록 여러분은 무엇을 하시는지요? 우리 지역에 방치되어 있는 수많은 영혼들을 위해서 저와 여러분이 간구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어제 Central Ave에 갔다가 거기서 홈리스분들에게 음식와 옷을 나눠주시는 분들을 보고 아내와 함께 찾아갔습니다. 찬양소리와 함께 반갑게 환영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엄마도 있었습니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으로 홈리스 분들을 섬기고, 홈리스분들에게 필요한 겨울 옷도 준비했습니다. 제가 질문했습니다. 여기에 얼마 만에 방문하시는지요? 영어를 잘 못하는 히스패닉 교회 LA Gran Vision 교회 성도님들이었습니다. 전도지와 함께 홈리스분들을 따듯하게 섬겨주시는 모습을 보고 우리 교회도 우리 지역에서 이런 사역을 감당하는 교회로 성장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기도하고 돌아왔습니다.

고향 벳새다에서 제자들은 고향 사람들의 간구를 배워야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라도 예수님께서 손만 대신다면 고침을 받고 나을 수 있다는 벳새다 사람들의 간절한 간구의 믿음입니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 꼭 만나고 싶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학교 등교길에 하교길에 함께 걸어갔던 김성훈 고등학교 친구였습니다. 미션스쿨에 입학하여 교회를 다녀야했던 저를 교회로 인도하여 준 정말 고마운 친구였습니다. 저를 성가대로 인도해 준 친구이며, 예배가 무엇인지, 기도가 무엇이지, 믿음의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제 생애에 정말 고마운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와 함께 교회에 다니고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만날 수 없는 친구와 30년만에 통화를 했습니다. 처음으로 교회에 인도한 친구가 목사가 되었으니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습니다. 포병부대 육군 대령이 되어서 여전히 씩씩한 목소리로 이제 곧 장군 진급 심사를 받는데 별을 달 수 있도록 저에게 겸손히 기도부탁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예수님께 인도해 준 가장 중요한 분은 누구이신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이 예수님께 인도하여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분은 누구인지요? 오래된 과거의 일로 그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지역에서도 계속해서 우리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분들이 많아지길 간구합니다.

엊그제 금요일 오후 한주간 바쁜 사역에 시간을 내어서 UNM 캠퍼스에 방문을 했습니다. 우리 UNM 학생들 가운데 차가 없어서 장 보는 것이 어려운 학생들 4명을 데리고 코스코에 가서 고기도 사고, 쌀도 사고, 필요한 음식을 살 수 있도록 라이드를 했습니다. 라이드를 마치고 학생들을 데리고 식당에 가서 맛있는 저녁을 사주었습니다. 우리 청년들 먹는 모습이 얼마나 예뻤는지 우리 교회에 나오지 않는 2명의 청년들도 섬길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라이드를 마치고 집에 오니 교회에 다니지 않는 한 청년이 저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습니다. “목사님, 오늘 덕분에 장도 잘 보고 맛있는 저녁도 먹고 너무 좋았습니다! 다음에는 교회로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오늘 저에게 문자를 보낸 전하늘 학생이 이렇게 우리 교회에 나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으로 진심으로 섬기면 복음을 전할 관계도 생기고, 예수님께 인도할 수 있는 기회도 생깁니다. 종교개혁의 모토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 오직 믿음은 우리만 가져서는 안되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으로 다른 영혼들도 우리 예수님께 인도해야 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4. 예수님의 치유 방법: 무엇이 보이느냐?

둘째, 예수님의 제자들은 고향 벳새다에서 우리 예수님의 치유의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벳새다 사람들이 데리고 온 그 맹인을 어떻게 치유하여 주십니까?

23-25절 우리 예수님의 치유의 방법입니다.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여기 우리 예수님의 치유 방법이 복음서에 기록된 모든 치유의 방식보다 가장 독특한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치유의 방법이 독특합니까? 예수님은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눈에 침을 뱉으시고 안수하셨습니다. 그리고 질문하십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을 최대한 배려하시는 예수님의 치유의 방식입니다. 예수님을 손을 잡아 이끌어 주십니다. 그리고 마을 밖으로 손을 잡고 데리고 나가서 그 사람에게만 집중하십니다.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의 눈에 침을 뱉으시고 안수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의 모든 치유의 기적을 보면 단번에 치유하십니다. 단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벳새다 맹인의 치유 기적에만 오직 여기에만 두 단계의 치유가 있습니다.

첫째 무엇이 보이느냐? 이제 맹인을 쳐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맹인은 예수님께 치유함을 받았지만 사람들인지 나무들인지 잘 구별할 수 없습니다. 치유함을 받았지만 온전한 치유는 아직 아닙니다. 예수님은 다시 안수하십니다. 이번에는 주목하여 보더니 온전히 나았습니다. 모든 것이 밝히 보이게 되었습니다.

우리 예수님, 풍랑이는 바다도 잠잠하라 말씀하시며 잠잠케 되고,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오천명도 먹여주시고, 칠병이어의 기적으로 사천명도 먹여주시는 기적의 예수님은 왜 여기서는 무엇이 보이느냐 질문하시며 두 단계로 뱃새다 맹인을 치유하실까요?

사람인지 나무인지 구별할 수 없는 단계와 모든 것을 밝히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모든 것을 밝히 보시는지요?

뱃새다 맹인을 치유하시는 사건의 앞과 뒤를 보면 공통적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앞에 있는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떡 가져오기를 잊어버렸다고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마가복음 8장 17-18절 책망의 말씀입니다.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21절 책망의 말씀이 계속됩니다.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사람들이 보이며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던 맹인의 온전하지 못한 모습은 아직 모든 것을 밝히 보지 못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영적인 상태를 보여줍니다. 제자들은 아직 온전히 바라보지 못합니다. 때로는 믿음이 좋은 것 같아 보이지만, 종종 믿음이 없어 보입니다. 불안한 믿음, 흔들리는 믿음, 흙이 얉은 돌밭 믿음, 가시떨기가 가득한 가시떨기 믿음처럼 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하신지요? 모든 것을 밝히 바라보십니까?

종교개혁 505주년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에게 그의 눈이 활짝 열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헬라어 성경을 처음 접하면서 로마서 1장 17절에 나오는 중요한 의라는 단어를 오해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처음에는 의를 하나님과 관련된 속성으로 이해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의로우신 분으로 이해했기에 여기에 하나님의 의가 나오면 이것을 하나님의 의는 지극히 의로우시다 라고 해석하고 이해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의로우신데, 자신은 너무나 불의합니다. 불의한 상태에서 아무리 회개하고 고해성사를 해도 구원을 위해서 철저하게 몸부림 쳐도 도무지 아무런 가망이 없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구원을 얻을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하나님을 증오하기까지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루터가 1513년에 시편, 1515년 로마서 강의, 1516-17년에 갈라디아서를 강해하면서 이 의라는 개념을 새롭게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루터에게는 굉장한 커다란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루터는 시편 22편을 연구하면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생각하기를 그리스도께서 왜 이러한 절망을 맛보셨을까?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십자가에 대한 이해가 새롭게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변덕스럽거나 심술궂은 분이라는 생각이 사라지고,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시다는 생각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루터는 사도 바울을 필사적으로 붙들고 연구하고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사도 바울도 자신과 똑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다가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으로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마틴 루터는 사도 바울의 서신들을 끌질기게 물고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헬라어 단어를 연구하는 중에 빛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특히 의라는 단어를 분석하면서 그 의라는 것이 하니님의 의로우신 성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할 수 없는 죄인을 의롭게 해 주신다는 그 의라는 단어에 대해서 새로운 개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루터 자신의 말입니다. “바울의 로마서를 이해하려고 몹시 애쓰는 가운데 가장 큰 장애물은 하나님의 의였다. 그것은 내가 이 의라는 말을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분이요 따라서 불의한 사람을 공정하게 처벌하신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의 상황으로 말하면 수도사로서 말하면 털끝만큼도 흠잡을 때 없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여전히 마음이 괴로운 죄인이었기에 도무지 나의 공로를 가지고는 그분의 의를 누구려 뜨릴 수 없었다.

그러기에 나는 의로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었으며, 오히려 증오하고 투덜거렸다. 그러면서도 나는 여전히 바울을 붙잡고 늘어지면서 그의 말에 무슨 뜻이 담겨 있지 않을까 계속 캤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곰곰히 생각하는 어느날 나는 하나님의 의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께서 은혜와 순수한 자비를 발휘하신 나머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에게 죄가 없는 것으로 간주해 주시는 그러한 의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순간 나는 새로운 태어나서 활짝 열린 문을 통해 낙원에 이른 기분이었다. 성경 전체가 새로운 의미를 지녔으며. 전에는 하나님의 의 때문에 내 속은 증오로 가득찼으나, 이제는 그것이 이루말할 수 없이 소중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을 더욱 큰 사랑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바울의 서신은 이 대목에 있어서 나에게 있어서는 하늘로 통하는 하나의 문이었다.”

사랑하는 여러분, 종교개혁의 후예들은 태어나면서도 개신교도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마틴 루터의 하늘로 통하는 문인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발견한 사람들이어야합니다. 사람들이 걸어가지는지 나무들이 걸어가는지 불완전하게 보이는 맹인같은 제자들이 아니라, 활짝 열린 눈으로 모든 것을 제대로 밝히 볼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활짝 열린 믿음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밝히 보는 사람이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입니다. 고향 벳새다에서 제자들이 가장 배워야 하는 것은 다시 안수하여 주시는 우리 예수님, 다시 기회를 주시는 우리 예수님, 다시 믿음의 눈을 뜨라고 우리를 부르시는 예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이사야서 35장 5-6절 “그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는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시는 그 메시야,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시는 예수님이 믿음으로 우리의 의가 되어주십니다. 종교개혁 505주년 우리는 우리의 소경같은 영적인 눈을 뜨게 하시는 우리 예수님의 은혜를 간절히 간구합니다. 활짝 열린 눈으로 모든 것을 밝히 보는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만 활짝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지역 이 광야같은 지역에도 우리들 처럼 활짝 볼 수 있는 제자들이 많아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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