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교육

마가복음 (28) 막 8장 11-21절 시대의 표적과 누룩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2-10-24 14:58
Views
263


1. 건망증과 치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아침식사 잘 하고 오셨는지요? 무엇을 드셨습니까? 지난 주일 설교 제목은 무엇인지요?

한 중년의 신사가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말했습니다. “기사양반, 서울역으로 갑시다” 그러자, 택시 기사가 “예, 서울역으로 모시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가다가 택시를 탄 손님이 어디를 가고 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택시 기사에게 말했습니다. “기사 양반, 내가 어디로 가는지 기억이 안나는데, 내가 어디로 간다고 했지요?” 질문을 하니 택시 기사가 깜짝 놀라서 하는 말이 “아니, 언제 타셨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손에 열죄를 가지고 있는데 열쇠를 열심히 찾아다니신 적은 없으십니까? 안경을 쓰고 있는데, 안경이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해서 당혹스러우신 적은 없으신지요? 집에 가스 불을 분명히 꺼 놓고 왔는데 혹시 가스 불이 켜지지 않았는지 불안한 적은 없으신지요?

나이가 들면 젊은 시절의 명석한 기억력이 점점 감소되어가면서 나이듦이 때로는 서글퍼집니다. 얼굴은 아는데 사람이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혹 실수 할까봐 불안해서 인사도 제대로 못합니다. 그러니 오해도 받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기억력이 감소하지만,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야 할 치매 초기 증상이 있습니다. 건망증인지 치매인지 구별할 수 있는 5가지 차이점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 열쇠나 안경을 어디에 두었는지를 잊어버리는 건망증을 넘어서 냉장고 같이 완전히 생소한 장소에 열쇠나 안경을 둔다면 치매의 초기 증상이라고 합니다.

둘째, 오늘 계획한 일이 있었는데, 나중에 다시 기억이 난다면 괜찮은데, 반복적으로 자신의 계획을 묻거나 혼자 해낼 수 있던 일을 대신해달라고 부탁하는 일이 반복되는 경우라면 치매 초기 증세라고 합니다.

셋째, 택시를 탄 손님과 택시 기사처럼 내가 어디에 있는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면 치매 초기 증세입니다.

넷째,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넘어서 다른 사람의 이름을 잘못 부르는 경우 치매 초기 증세라고 합니다.

다섯째, 평소에 익숙하게 사용하던 텔레비전이나 전화기 사용법이 헷갈리기 시작했다면, 병원에서 검진을 받으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우리 예수님을 믿는 굳은 믿음 가운데 살아가시데 잊어야 할 것이 있지만, 잊지 말아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무엇을 잊어야 하고,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합니까? 우리가 잊어야 할 것은 나에게 상처 준 사람, 상처 준 일 일평생 기억하고 서운했던 사소한 일 말하고 또 말하는 것은 이제 잊어야 합니다. 망각의 강으로 흘려 보내야 합니다.

반면에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합니까? 하나님께 받은 은혜, 그 은혜는 망각의 강이 아니라, 돌에 새기며 감사하고 찬양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예수님은 이제 이방의 지역들의 사역을 마무리 하시고, 다시 이동을 하십니다. 어디로 이동을 하십니까? 지난 주일 본문 말씀 마가복음 8장 13절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다시 배를 타시고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병행본문 마태복음 15장 39절을 보면, 마가단 지경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제는 이방인들이 사는 지역이 아닌 유대인들이 사는 지역입니다. 학자들은 마가단 지역을 갈릴리 바다 서쪽의 예수님의 사역의 본거지 가버나움과 가버나움 아래 쪽의 디베랴 사이에 있는 마가단으로 보고 있습니다.

달마누다 지방, 마가단 지역에서 다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논쟁을 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논쟁에서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우리 에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은 이 논쟁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2. 하늘로부터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

첫째, 제자들은 시대의 표적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시대의 표적은 무엇입니까? 바리새인들은 표적을 구합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 8장 11-13절 바리새인들은 표적을 구합니다.“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나아와서 겸손하게 간절하게 배울 자세가 없습니다. 그들의 태도를 보십시오. 어떤 태도입니까? 예수님을 힐난하고 시험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힐난하는 것은 시비를 거는 것입니다. 표준새번역을 보면 “바리새파 사람들이 나아와서는 예수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시험하느라고 그에게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징을 요구하였다”

힐난, 시비, 시험 이들은 예수님께 겸손하게 배울 자세나 태도가 전혀 없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에게 배울 마음의 자세가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교회의 현장에는 이런 분들이 안 계실까요?

디트로이트에서 부목사로 10여년 동안을 사역하면서 제자훈련 담당사역이 청년 사역과 더불어서 저에게 주어진 가장 큰 사역이었습니다. 기독교 역사부터 시작해서, 구약의 파노라마, 신약의 파노라마, 영적 성장을 위한 첫 걸음, 제자훈련, 사역훈련, 퍼스펙티브스 선교훈련, 교회의 모든 제자훈련 사역을 담당했습니다.

제자훈련 사역을 감당하면서 지금도 가장 기억나는 한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얼마나 열심이 있는지 거의 모든 제자훈련 시간에 참석을 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겸손하게 배우려는 태도가 없습니다. 다른 분들은 강의가 마치고 함께 기도하고 은혜를 받고 돌아가시는데 이 분은 강의 후에 꼭 시비하시기 위해서 일부러 어려운 질문을 들고 오십니다. 질문의 태도를 보면 정말 몰라서 질문하시는지 아니면 시험하시기 위해서 질문하시는 그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도 그 사람의 질문을 보면 정말 배우려고 하시는지 오히려 가르치려고 하시는지, 깨닫기 위해서 참여하시는지, 힐난하고 시험하기 위해서 참석하시는 아는데 우리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아시는 예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은 힐난과 시험의 태도로 나아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의 모습에 마음속으로 깊은 탄식을 하십니다. 그리고 표적을 구하는 악한 그들에게 표적을 주지 아나하신다고 말씀하시고 떠나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에게 표적을 주시지 않으셨을까요? 지금까지 예수님은 수 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오병이어로 5000천명의 유대인들을 먹여주셨고, 칠병이어로 4000명의 이방인들도 먹여주셨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었습니다. 병든 자들을 고쳐주셨고, 귀신들린 자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의 표적은 모두 예수님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가져오시는 메시야이심을 보여주시는 표적입니다.

마태복음 16장 동일 사건에서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대신에 말씀하신 중요한 표적이 있습니다. 2-4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하늘을 보고 날씨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시대의 표적입니다.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기적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신 시대의 표적이었습니다. 먹여주시고, 치유하여 주시고, 쫓아내신 사역이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어떤 메시야이신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능력으로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표적입니다.

그런데, 그런 표적을 보고도 믿지 못하고, 힐난하고 시험하는 바리새인들에게는 어떠한 표적을 보여주어도 그들은 그 표적으로 다시 힐난하고 시험하고자 꼬투리를 잡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까지 마가복음 말씀을 들으시면서 어떤 표적이 여러분의 마음에 남으십니까? 예수님은 요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대의 표적인 요나의 표적을 말씀하십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메시야로 오신 가장 중요한 표적은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요나의 표적입니다.

제자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표적도 시대의 표적인 요나의 표적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9-40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 속에 있었던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이스라엘의 적인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회개하라 외치길 원하셨던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다시스로 향하는 배에서 폭풍을 만나 바다에 던져졌던 선지자 요나가 물고기 뱃 속에서 사흘동안 있었던 표적 그대로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주시고 사흘동안 땅에서 무덤에 계시다가 요나가 사흘만에 물고기 배에서 나오듯이 사흘만에 부활하실 예수님이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표적이며, 메시야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 보여주실 표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나의 표적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이것을 마음을 열고 믿는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4절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요나의 표적은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의 표적이며, 가장 중요한 메시야 표적이며,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것을 놓치면 다 놓치는 것입니다. 이것을 붙들면 가장 중요한 것을 붙드는 것입니다. 다른 표적보다 요나의 표적이 가장 중요한 표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요나의 표적,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표적이심을 믿습니까?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삶의 동기이며 이유입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서서히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을 가르쳐주시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는 감추어오신 예수님의 메시야의 모습과 능력을 제자들은 서서히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3. 바리새인의 누룩

시대의 표적인 요나의 표적과 함께 예수님은 제자들이 조금 더 나아가시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다시 배를 타고 선상 제자훈련의 말씀을 다시 주십니다. 제자들이 가장 중요한 요나의 표적과 함께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14-15절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 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우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힐난과 시험으로 예수님께 나아온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통해서 그들의 악한 모습을 통해서 깨우치기를 기대하시며 주의를 주십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갈라디아서 5장 9절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바리새인들의 누룩, 헤롯의 누룩에서 누룩은 무엇을 말합니까? 누룩은 악한 영향력입니다. 누룩은 죄의 악한 영향력을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의 악한 영향력, 헤롯의 악한 영향력이 제자들의 삶에 침투하고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선하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좋은 영향력을 받습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악한 영향력을 받습니다.

제자들의 주의해야 하는 악한 바리새들의 악한 영향력이 있고, 헤롯의 악한 영향력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6절에서는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는 헤롯 대신에 사두개인이 등장합니다. 그러다면, 바리새인들의 누룩, 해롯의 누룩, 사두개인의 누룩은 각각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바리새인들의 누룩은 종교적 형식주의입니다. 종교적 형식주의는 다른 말로 외식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것이 외식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종교적 형식은 철저하게 지키는 데 문제는 그들의 마음이 문제입니다. 바리새인들과 항상 함께 가는 서기관들의 문제도 동일합니다.

제자들이 피해야하는 것도 종교적 형식주의, 외식입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저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히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의 누룩은 외식입니다. 겉이 아니라 속 마음이 문제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합니다.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 이들은 아주 사소해 보이는 작은 식물을 추수해도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들은 경건의 외형으로 보면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신앙인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율법의 외형보다 더 중요한 것인 세 가지 정의, 긍휼, 믿음입니다.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다른 말로 사랑입니다. 십일조 무시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이지만, 십일조 정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헌금을 드릴 때마다 부르는 찬송 나 주님을 사랑합니다. 나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 마음이 빠지면 헌금도 십일조도 우리의 형식적 예배도 경건도 모두 소용이 없습니다. 형식은 중요하지만 형식에만 빠지면 회칠한 무덤과도 같습니다. 무덤의 외부는 멋지게 아름답게 장식을 했는데, 무덤 안은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모습이 형식을 넘어서 본질인 사랑 마음을 추구해야 우리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형식주의보다 큰 문제는 마음도 없고, 형식도 없는 것이 최악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땅히 행해야 하는 형식도 없으니 더욱 더 큰 문제입니다.

신앙의 공동체의 위기는 형식주의에 빠진 최고로 경건해보이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형식주의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도 예수님의 제자들도 거짓 메시야로 보입니다. 자신이 유일한 잣대입니다. 그러니 눈 먼 소경이며 회칠한 무덤입니다.

4. 헤롯의 누룩

두번째, 헤롯의 누룩은 무엇입니까? 헤롯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사두개인입니다. 그러니 헤롯의 누룩과 사두개인의 누룩은 함께 갑니다. 헤롯과 사두개인의 누룩은 세속주의, 물질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헤롯은 로마 제국에서 인정을 받아 유대와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는 가장 큰 정치 세력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제사장 가문으로 유대의 최고 법정 기구인 산헤드린 공의회를 장악하고 있던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정치 세력과 종교 지도자가 만났는데 그들은 오직 이 땅의 삶만을 추구합니다. 사두개인들은 바리새인들과는 달리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사도행전 23장 8절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들은 다 있다고 함이라”

이들은 종교적 형식주의에 빠진 바리새인들보다 더 세속적인 가치, 물질적인 가치를 추구합니다. 헤롯 가문이 어떻게 해서든지 로마 제국에 잘 보여서 이 땅에서 정치 권력을 계속 추구하며, 사두개인들은 로마 제국에 잘 보여서 이 땅에서 종교 권력을 계속 추구하며 그들의 한 줌 안되는 기득권을 자녀 대대 손손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추구합니다.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는 없습니다. 오직 이 땅에서 누리고 부하고 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러니 정치의 힘으로 종교의 힘으로 돈과 권력을 추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이 이 땅에서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으로 돈과 권세의 힘을 추구한다면 그 길은 우리 예수님의 길이 아니며, 예수님의 제자들의 길도 아닌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도 아닌 그냥 세상에 속한 세상 나라 사람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정말 사랑하는 제자들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종교적 형식주의가 아니라 참된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들을 섬기는 제자가 되길 기대하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이 헤롯과 사두개인들의 정치적 권력과 종교적 권력으로 이 땅의 삶만을 추구하는 세상 나라 백성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이 땅에서 시작되는 영원한 삶을 추구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길 기대하십니다.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작은 이 땅이지만, 완성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새찬송가 9장 하늘에 가득 찬 영광의 하나님, 그 찬송의 4절 가사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게 하옵소서.” (Letting our lives to eternity be join’d to Yours!)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 여러분은 깨우치셨는지요? 제자들은 깨우쳤을까요? 가장 중요한 시대의 표적인 요나의 표적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표적,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의 누룩과 헤롯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제자들은 깨우쳤을까요?

17-21절 너무나도 안타까운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인하여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쳔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깨우치길 원합니다. 영적인 눈을 활짝 떠서 십자가와 부활의 길을 걸어가며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시는 예수님의 참된 제자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5. 우리의 간구

이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요나의 표적으로 우리에게 친히 찾아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크신 은혜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삶으로 초대하시는 우리 하늘 아버지의 그 크신 사랑하심과 오늘도 우리 지역에서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동행하심과 충만하심이 갈릴리 장로교회 믿음의 공동체 위에, 사랑하는 가정과 자녀들 위에,사업과 직장과 가정의 삶의 현장 위에, 우리 알버커키 뉴멕시코 온 땅위에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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