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교육

마가복음 (23) 막 7장 1-23절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2-09-25 20:19
Views
349


1. Never In Doubt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운동을 가장 좋아하십니까? 우리 중에도 축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어린 시절 제 별명 중의 하나는 마라도나였습니다. 저도 우리 백규식 장로님 처럼 얼마나 축구를 좋아했는지, 저는 태권도 사범도 하면서 운동선수가 될 줄 알았습니다.

벌써 20년이 지났지만 저는 아직도 2002년 FIFA 한일 월드컵이 기억이 납니다. 온 성도님들이 교회 예배당에 모여서 붉은 옷을 입고 오! 필승 코리아,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열심히 응원을 했습니다.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조별 경기에서 2승 1무로 1위를 차지하면서 16강에 진출을 했습니다.

16강전에서 축구 강호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안정환 선수가 전반전에서 패널티킥 실패하고, 마지막 연장전에서 그림같은 헤딩슛으로 이탈리아를 이기고 8강을 갔고, 8강전에서는 스페인을 승부차기로 이기고 극적으로 4강까지 갔습니다. 그 때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두 달도 안되어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이 11월 20일부터 열립니다. 한국은 포르투칼, 우루과이, 가나와 조별 경기를 치룹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가장 기대가 되는 선수는 공격에서는 손흥민 선수이고, 수비에서는 김민재 선수입니다. 손흥민 선수는 영국 Premier리그에서 작년도 공동 득점왕이었고, 김민재 선수는 올해 이탈리아 세리아 리그의 명문 나폴리로 이적해서 정말 잘 주고 있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 Red Mesa 노회를 마치고 손흥민 선수의 해트트릭 경기 영상을 보았습니다. 작년에 득적왕을 차지한 탁월한 골잡이 손흥민 선수가 올해 8경기째 한골도 넣지 못하며 마음 고생을 많이 하다가, 그날은 선발로도 뛰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후반전 14분에 후보 선수로 들어가서 기가막힌 오른발 감아차기로 첫 골을 넣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첫 골을 넣고 평소처럼 하던 골 세러머니가 아니라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으면, 그 자리에서 그냥 서 있었습니다. 토트넘 선수들이 모두 다가가서 축하해주는 장면에서 저도 울컥했습니다. 축구 실력 만이 아니라 평소에 인성과 태도가 정말 좋은 손흥민 선수는 팀에서도 팀원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그리고 13분 동안 모두 세 골의 기가막힌 골을 넣었습니다. 토트넘 역사상 후보 선수가 헤트트릭을 기록한 첫번째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 날 경기가 끝나고, 토트넘의 동료 영국의 축구 영웅 헤리 케인 선수는 인타스그램에서 NEVER In Doubt 너를 의심한 적이 없어 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케인 만이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이 Never in Doubt 너를 의심한 것이 없어 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삶에서 의심해야 할 것이 있지만, 동시에 Never in doubt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과 예수님의 가르침 우리는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워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가? 중요한 말씀의 교훈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의 논쟁의 상황에서 말씀하여 주십니다.

2. 의심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을 일거숙 일투족 감시하며 의심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누구입니까?

1-2절 말씀입니다.“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예수님과 제자들을 바라보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의 눈은 그냥 보는 눈이 아닙니다.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가지고 저 멀리 남쪽 유대의 예루살렘에서 북쪽 갈릴리 지역까지 찾아왔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북쪽의 갈릴리 지역에 계십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은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루살렘에서 그 먼 거리의 갈릴리까지 찾아옵니다. 거리로치면 약 115 마일이 넘는 먼 거리입니다. 오늘날 자동차가 발달되어 3시간 정도 걸리지만 그 당시에는 걸어서 가야 하니 최소한 34시간, 열심히 걸으면 4-5일은 걸리는 먼 거리입니다. 그 먼 거리를 와서 이들의 하는 말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예수님께 의심의 눈으로 질문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은 누구입니까?

마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을 따른 수 많은 무리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 가운데 예수님의 제자들을 택해서 함께 생활하시며 함께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워가십니다. 무리들과 제자들과 달리, 신약 성경을 보면, 구약 성경에 나오지 않는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그룹들이 종종 나옵니다. 신약과 구약의 사이 신구약 중간기 시대에는 여러 정치 세력들과 종교세력들이 등장했습니다.

제일 먼저 헬라 제국이 이스라엘을 통치할 때 생긴 산헤드린 공의회와 민간 기관으로 서기관들이 있습니다. 산헤드린 공의회는 유대인의 최고의 법정 기관으로 70명의 종교 지도자들과 1명의 대제사장으로 구성되어 유대인의 종교적인 문제와 민사 문제에 대한 최고의 권한을 가졌습니다.

두번째 그룹은 서기관들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해석하고 그것을 가르치고 기록하는 성경의 제자들이라는 전문적인 율법의 사람들입니다. 서기관들이 주로 바리새인들에게 율법과 그 해석을 전수하였기에 서기관들이 바리새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세번째 그룹은 이스라엘이 잠시 헬라로부터 독립 되었을 때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이 생겼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유한 귀족 그룹으로 기적이나 부활 등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단체입니다. 사두개인들은 대제사장과 성전을 독점하고 있기에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서기관들과 유사하게 스스로를 율법의 감시자로 여겼고, 엄격하게 율법을 해석하여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준수하고 다른 모든 사람들도 바리새인들이 만든 율법의 해석 전통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율법을 강조하기에 예수님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을 존경했습니다.

다섯번째 그룹은 로마 정부 시대에 생긴 그룹으로 세리와 열심당이 있습니다. 세리 마태와 같이 죄인의 대명사로 로마 정부에 협력하는 일반 백성들에게는 배신자이며 부정직한 사람들이기에 백성들의 경멸을 받았습니다.

여섯번째 열심당은 로마 정부에 대해서 세금 내는 것을 반대하고 무력으로 로마 정부에 반역을 도모하던 무리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에는 세리 마태도 있고, 열심당원인 시몬도 있습니다.

이 여섯 그룹 가운데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적대적으로 가장 반대하는 두 그룹이 바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은 율법과 그 율법의 전통적인 해석에 정말 열심인 그룹들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이들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문제를 말씀하십니다.

3. 바른 지식이 없는 열심

첫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문제는 지식이 없는 열심 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의 열심은 정말 특별한 열심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갈릴리까지 그 먼 거리를 기꺼이 찾아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열심을 보면, 예수님을 알기 전의 바리새인중의 바리새인이었던 사도 바울의 열심이 생각납니다. 빌 3:5-6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열심 가득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열심을 누가 책망할 수 있습니까? 자동차가 엔진이 너무 좋은 자동차인데, 운전의 방향을 결정하는 운전대가 고장이 났습니다. 그 운전대로 열심을 가지고 운전하면 운전할 수록 정말 위험합니다. 엔진이 더 좋으면 좋을 수록 더 위험 합니 다. 열심은 가득한데 그 열심이 하나님의 진리에 근거한 열심이 아니면 그 열심만큼 더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세리들의 그 열심이 무엇으로 나타납니까? 3-4절을 봅니다.“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 그릇을 씻음이러라”

음식을 먹을 때 물에 손을 씻고 그룻을 닦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냈습니다. 구약 성경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는 새로운 전통입니다.

출애굽기 30장 18-20절의 성막에서 섬기는 제사장의 정결 예식이 있습니다.“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으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와 같은 구약의 정결 규례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를 더 구체적으로 광범위하게 정밀하게 발전시켰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손을 씻고 그릇을 닦으며 어떻게 하면 율법을 더 잘 지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복잡한 규칙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러한 규칙은 예수님 당시는 장로들의 유전으로 구전되어 왔고, AD 2세기에는 문서화 되어 미쉬나 (Mishnah)가 되고, 미쉬나를 해설한 것이 게마라 (Gemara)가 되고, 미쉬나와 게마라가 합쳐서 우리가 잘 아는 탈무드 (Talmud)가 만들어집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의심의 눈으로 질문합니다. 5절 입니다.“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열심으로 붙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 오직 성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한 장로들의 전통이었습니다.

열심 가득한 사도 바울은 열심 가득한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롬 10:1-3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열심 참 좋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올바른 지식을 따른 열심이 아닙니다. 그들의 열심은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열심이 아니라 자기의 의를 세우려는 열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잘못된 전통에 열심을 내면 낼수록 문제는 점점 커져갑니다. 그 잘못된 전통을 붙들고 엄청난 열심을 내고, 스스로를 의롭다 여기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의심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이들에게 무엇이 빠졌습니까? 율법의 더 중요한 본질, 가장 중요한 본질인 사랑이 빠져있습니다.

레위기 말씀사경회에서 김경열 교수님이 강조하신 율법의 껍데기 수박 껍데기를 붙들고, 율법의 더 중요한 알맹이 달고 맛있는 수박은 놓치고 있습니다.

4. 마음이 없는 외식

둘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열심과 함께 외식이 문제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장로들의 전통에 열심을 내는 일에 우리 예수님은 그들의 모습에서 외식을 발견합니다. 마가복음 7장 6-9절입니다.“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믿음 생활을 열심히 오래하다 보면 우리도 쉽게 이 함정에 빠집니다. 외식의 함정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열심으로 손과 그릇을 씻지만 손과 그릇을 씻는 그 열심으로 자기의 마음을 씻지는 않습니다. 마음 속은 더러운 죄악이 가득한데 손과 그릇만 깨끗하게 씻는 것으로 스스로 만족하며 율법을 외형적으로 지켰으니 스스로를 죄인이 아닌 자기의 의가 가득한 의인이 되어집니다.

구약 율법의 본질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그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면,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시편 51:17) 깨우칩니다.

하나님 앞에서 상한 마음, 회개하고 통회하는 마음은 다 사라지고 장로들의 유전으로 자신을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고 장로들의 잘못된 전통에 조금이라도 어긋난 사람들은 다 정죄합니다. 이것이 마음과 겉이 다른 외식입니다.

외식은 연극배우가 쓰는 가면입니다. 외식의 가면을 쓰면 자신을 숨기고 자신의 깊은 속 마음을 숨기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만 판단을 합니다. 외식의 더 큰 문제는 사람 앞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도 외식하면서도 스스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의로운 사람으로 여기면서 여기에 부족한 사람들을 정죄하며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을 져 버립니다.

이들의 외식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계명인 장로들의 유전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더 잘 지킬 수 있을까? 열심으로 시작된 출애굽기와 레위기의 거룩과 속함, 정함과 부정의 정결 규례를 확대 해석한 장로들의 전통과 유전이 나중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동등한 권위를 갖고, 더 나아가서는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저 버린 대표적인 경우가 고르반 (Corban, 선물) 제도입니다. 고르반은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는 일종의 변개할 수 없는 헌신의 서약입니다. 귀한 헌신의 마음인 고르반이 인간의 타락한 마음으로 악용되어집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모를 공경할 충분한 재산이 있음에도 고르반이라고 선언하면 그 구실로 삼아 부모에게는 아무 것도 드리지 않는 악한 제도로 악용되어집니다. 사람이 만든 고르반 제도가 제5계명의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페합니다.

11-13절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예수님 보시기에 이것이 마음을 중시하지 않는 외식 중의 외식입니다. 사람의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으로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폐합니다. 이것이 외식입니다.

5.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셋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사람을 더럽게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무엇이 사람을 더럽게 하며, 무엇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합니까?

예수님은 먼저 무리들에게 말씀하시며 교훈하십니다. 그리고 나중에 제자들에게 더 상세하게 말씀하시면서 교훈하십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14-16절 말씀입니다.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고”

우리 예수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는 무리가 듣고, 깨닫기를 바라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이 좋은 땅에 뿌려진 사람입니다.

사람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합니다. 반대로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약 레위기의 정결과 부정결의 구분은 이제 폐지되었습니다. 레위기에서 정결하지 못한 짐승으로 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을 할 수 있는 짐승만 정결한 짐승이이서 소, 양, 염소는 먹을 수 있었지만, 굽이 갈라졌지만 되새김질 하지 못하는 돼지는 부정결해서 먹을 수 없었던 정결과 부정결의 음식 규례가 폐지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먹는 문제가 사람을 더럽히지 못한다고 가르쳐주십니다. 진짜 문제는 먹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 속에서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마음 속에서 나오는 우리를 더렵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님께 다가와서 묻습니다. 21-23절 무엇이 사람의 마음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렵힙니까? 같이 읽습니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사람의 마음 속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이 사람을 더럽힙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서 나오는 12가지의 악한 생각이 우리를 더렵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정직하게 우리 자신을 돌아보길 원합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 12가지 중에서 우리에 해당되는 것이 몇 가지 정도나 되겠습니까?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수,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와 우매함 모두 우리 마음에서 나와서 우리를 더럽게 하는 죄입니다.

사람을 더럽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먹는 음식이 아닙니다. 씻지 않고 먹는 손이 아닙니다. 부정한 것을 접촉하는 우리의 손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 가득한 악한 생각인 육신의 생각입니다. 육신의 생각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면 육신의 더러운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갑니다.

마음의 악한 생각, 육신의 생각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성령으로 가득하면 우리 마음에서 맺히는 열매는 악한 생각, 육신의 생각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마음에 어떤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까? 우리 마음에 죄의 악한 생각들이 가득한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무엇이 우리를 더럽히는지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내 마음에 죄와 악함이 있습니다.

6. 우리의 기도

이 시간 간절히 기도합니다. 첫째는 우리의 열심이 올바른 진리를 따른 열심이길 간절히 간구합시다. 열심이 있는 성도이되 그 열심이 겸손히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는 진리에 근거한 열심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열심이 섬기되 항상 우리의 마음을 돌아봅시다. 열심히 섬기다보면 자기의 의가 가득해서 부족한 형제와 자매를 보면 판단하고 정죄하는 못된 죄악된 본성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은 항상 남을 정죄하는 마음이 아니라 상한 심령,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나아갑니다. 세째는 인간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지 아니하며 항상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우리와 우리 가정, 우리 교회를 다스리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더럽게 하는 우리 마음의 악한 생각에서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열심과 외식을 보면서 이 시간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에 비추기를 원합니다. 먼저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며 우리의 마음에 가득한 죄악을 회개하며 통회하며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옵소서. 열심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되 우리 주변의 부족하고 연약한 자를 보면 정죄하고 판단하는 마음이 아닌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마음으로 대하게 하시옵고, 오늘도 인간의 규례와 전통을 따라 사는 자가 아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만을 따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말씀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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