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교육

요한계시록 (4) 계 2장 8-11절 환난과 충성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2-07-04 12:04
Views
434


1. 애리조나 나바호 인다언 선교탐방

야아떼, 하고네! 나바호 인디언 언어로 야아떼는 만날 때 하는 인사이고, 하고네는 헤어질 때 하는 인사말입니다. 야아떼는 저 높은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참 좋다는 말입니다.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좋으니 나도 좋고 너도 좋고 우리 모두 좋다는 참 좋은 인사말입니다. 하고네는 헤어질 때 지금은 잠시 가지만 다시 온다. 그러니 다시 꼭 보자는 의미의 헤어질 때 하는 인사말입니다.

야아떼 온 우주를 만드신 참 좋으신 하나님 안에 모든 것이 좋은 것이며, 하고네 지금은 헤어지지만 우리 다시 주님 안에서 영원한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 이런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참 좋은 인사말입니다. 우리 야아떼, 하고네 이렇게 나바호 네이티브 인디언을 보면 인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애리조나주에서 가장 높은 우리 앨버커키보다 더 높은 해발 7000피트 고지에 위치한 Flagstaff에 나바호 인디언 선교탐방을 하나님의 은혜와 여러분의 기도 가운데 잘 다녀왔습니다.

우리 뉴멕시코주와 애리조나주 사이에 걸쳐 있는 나바호 네이션에는 대한민국의 약 2/3의 땅 규모인 1600만 에이커에 현재 약 30만명의 나바호 인디언들이 살고 있습니다. 미국에 등록된 565부족의 인디언 가운데 가장 많은 가장 넓은 인디언 보호구역에 살고 있습니다. 나바호는 디네라는 인디언 언어로 들판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이 광활한 뉴멕시코 땅에 살기 700년전엔 1300년경부터 우리 지역에서 옥수수와 콩을 심고, 양과 얌소도 키운 뉴멕시코주와 애리조나주는 나바호 인디언의 땅이었습니다.

선교탐방을 하면서 나바호 인디언들이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과 전쟁을 할 때 Code Talker 암호병으로 큰 활약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625 한국전쟁에 참전한 800여명의 나바호 인디언들이 있었다는 소식도 처음 듣게 되었습니다. 22사단으로 복무한 나바호 인디언들이 중공군이 압록강을 침입했을 때 최전선에서 용감하게 전사했다는 가슴아픈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참전용사 가운데 한 분 나바호 인디언 노인을 만났습니다. 13살 어린 나이에 한국에 와서 7년동안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한국전쟁에 참여한 800명의 나바호 인디언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낯선 나바호 인디언의 땅에서 살고 있지만, 그 오래전 목숨을 걸고 한국전쟁에 참여한 800명 가운데 현재는 약 130여명이 생존해 있습니다. 2020년 5월 마스크도 없이 코로나가 한창일 때 한국 정부에서 나바호 인디언 참전용사를 지원하기 위해서 마스크 만장을 보낼 정도로 우리는 나바호 인디언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직장이 없는 실업률 56%, 극빈자 가정 43%, 나바호 보호구역의 집들은 전기도 없고 물도 없이 살아가는 아주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이번 선교탐방에서 우리 지역에서 나바호 인디언 선교를 하는 이덕재 선교사님처럼 플래그스태프에서 나바호 인디언 선교를 하시는 두 분의 귀한 선교사님 가정을 뵙고 왔습니다. 이남종 선교사님, 지난번 우리 교회를 방문하신 차성진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3년전 교통사고로 몸이 불편하신 상황에서도 열심히 선교하시는 이남종 선교사님, 북애리조나 대학교에서 낮에는 청소하시면서 캠퍼스 청년들을 섬기시며, 나바호 인디언 사역을 하시는 차성진 선교사님을 만나서 대화하면서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서머나 교회를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주일 에베소 교회를 주신 말씀을 통해서 우리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향해서 11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이 시간도 우리 교회에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우리 예수님의 말씀을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듣기를 원합니다. 계시록 2장 8-11절 서머나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꼭 들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 처음과 마지막,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

8절 말씀 같이 읽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서머나 교회에게 말씀하시는 서머나 교회의 주인이신 우리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 예수님은 사도 요한을 통해서 사랑하는 에베소 교회에 이어서 서머나 교회에 편지하라고 하십니다. 편지를 보내시는 분은 사도 요한이 아니라 우리 주님 부활하신 예수님, 서머나 교회의 주인이신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소개하시기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할까요? 에베소 교회에서는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거니시는 교회의 주인으로 말씀하셨다면, 서머나 교회에는 예수님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예수님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주님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몰약이라는 값비싼 향료 이름 서머나 지역은 처음이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로마의 황제입니다. 가장 충성스러운 로마 제국의 도시가 서머나였습니다. 고대의 가장 유명한 시인 호머의 고향이며, 로마의 작가 키케로는 서머나를 “가장 충성스런 도시이며 가장 중요한 동맹”으로 서머나를 평가했습니다. 로마의 두번째 황제 티베리우스 때에 서머나는 다른 도시들을 제치고 티베리우스 황제를 위한 신전 건설의 특권을 얻었습니다. 그러니 서머나 지역의 처음이요 마지막은 로마 제국의 황제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처음과 마지막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예수님이 여러분의 처음과 마지막 가장 중요한 분이신지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우리 예수님,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하여 못 박혀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분이신지요?

서머나 지역은 한때 죽었습니다. 기원전 600년경 서머나 도시 전체가 리디아인에 의해서 철저하게 파괴되었다가, 기원전 290년경 뤼시마쿠스에 의해서 다시 살아나 재건된 도시였습니다. 이 재건된 도시가 로마 제국의 황제 숭배의 중심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재건을 넘어서 “해 아래 있는 모든 도시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불리울 정도로 아시아의 면류관, 아시아의 꽃이라 불리우는 최고의 휴양지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터키의 에베소에서 1시간 운전해서 북쪽으로 가면 이즈미르라는 인구 300만명의 관광도시로 경제적으로 부유한 도시가 서머나 입니다.

서머나 도시 전체가 로마 황제숭배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곳에서 로마 황제가 처음이요 나중이요 가장 중요한 신으로 생각하던 도시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도시 서머나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과 나중이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주님으로 인정하는 서머나 교회가 생겼습니다.

에베소에서 불과 한 시간 거리의 북쪽의 서머나에도 사도 바울이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행 19:10). 서머나 도시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십자가와 부활의 우리 주님의 복음이 선포되었습니다. 그 화려하고 아름답고 부요한 도시 서머나에 황제가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성도들의 모임 서머나에도 주님의 교회가 생겼습니다.

3. 환난, 궁핍, 비방을 아시는 주님

서머나 교회의 주인이신 우리 예수님이 9절 서머나 교회를 친히 아시며 말씀하십니다. 9절 말씀 같이 읽습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9절을 보면, 우리 예수님이 반복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알거니와 알거니와 우리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와 서머나 성도들을 아셨습니다. 무엇을 아셨을까요?

세 가지 환난, 궁핍, 비방 우리 주님은 서머나 교회의 환난과 궁핍과 비방을 알고 계셨습니다. 아름답고 부요한 도시 화려한 도시 로마의 황제 숭배의 중심도시에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은 왜 환난과 궁핍과 비방 가운데 있을까요?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이 게으르고, 무능력하고, 부족하기에 당하는 환난과 궁핍과 비방이 아닙니다.

황제 숭배의 도시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은 환난을 당하며, 궁핍을 경험하며, 비방을 당하고 있습니다. 가이사가 주님입니다 고백하면 상업 협동조합 길드에 가입해서 풍요로운 도시의 경제적인 부요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환난이 아니라 풍부를 누리고, 궁핍이 아니라 부요함을 누리고, 비방이 아니라 칭찬과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은 인생의 부요함이 삶의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할 수 없는 우리 예수님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합니다.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을 더욱 힘들게 하여서 환난과 궁핍과 비방을 더하는 사람들이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칭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언약의 자손이요,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함을 받은 유대인들이 서머나 지역에서 환난과 궁핍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들을 비방합니다. 그러기에 부요함과 풍부의 도시 서머나에서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은 어렵게 어렵게 하루 하루 믿음으로 견디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아십니다. 왜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이 환난과 궁핍을 당하는지, 왜 유대인들의 비방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이것이 서머나 교회에 주시는 우리 주님의 위로입니다.

우리 주님의 눈에 보시기에 서머나 교회는 환난과 궁핍과 비방 가운데 있지만 실상은 부요한 자라 말씀하십니다. 지금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을 비방하는 자칭 유대인들 우리 주님이 보시기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회당이 아니라 사탄이 주인되어 사탄을 섬기는 사탄의 회당입니다.

환난과 궁핍과 비난 가운데 하루 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서머나 교회에 우리 주님은 책망이 없고 칭친만 하십니다.

나바호 인디언 선교탐방을 하면서 우리 부활의 주님의 위로가 필요하신 인디언 사역자와 선교사님들의 환난과 궁핍을 보았습니다. 나바호 네이션에서 제일 먼저 방문한 Leupp 침례교회의 Jimmy McCabe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많은 나바호 인디언들이 사망했고, 아직도 나바호 지역의 모든 상점에서는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하며, 큰 가게도 6명 이상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직도 코로나가 심해서 벌써 2년 이상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이 거의 없습니다. 남루한 옷과 오래된 자동차를 보니 나바호 인디언을 섬기시는 목사님이 얼마나 궁핍 가운데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 선교탐방팀원을 안내한 이 남자는 하나님의 종이다 이남종 선교사님 3년전 교통사고를 당해서 신경에 이상이 생겨서 온 몸을 떨면서 선교탐방을 안내했습니다. 플래그스태프의 작은 사무실을 얻어서 Christian Bible Academy에서 현지 나바호 인디언 지도자 10여명의 신학교육을 감당하시면서, 아이들을 위한 한글교육과 컴퓨터 교육을 하면서 그 불편한 몸을 가지고 열심으로 사역하십니다.

우리 교회를 방문했던 차정진 선교사님과 차정희 선교사님, 우리 정창교 형제와 이유리 자매가 있었던 북 애리조나 대학에서 캠퍼스 사역을 하시고 인디언 사역을 하시면서 북 애리조나 대학에서 청소를 하시면서 자비량으로 사역을 하십니다. 차정희 선교사님 왼손 팔이 부러진 이후에 불편한 손을 가지고 유학생들 열심으로 주일마다 점심식사로 섬기주시면서 사역하고 계셨습니다.

어렵고 힘들게, 환난과 궁핍 가운데에서도 우리 주님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나바호 인디언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우리 예수님이 보시기에 영적으로 부요한 선교사님들, 사역자들, 그리고 성도들이 계시기에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있습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 가운데 가장 경제적으로 부요한 라오디게아 교회는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책망하시고 한탄하셨습니다. 그러나, 환난과 궁핍과 비방 가운데 있던 서머나 교회는 내가 알거니와 내가 알거니와 그들의 영적인 부요함을 인정해주시고 칭찬해 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도 우리 주님 보시기에 영적으로 부요한 성도이겠습니까? 세상에서 부요하지만 우리 주님 보시기에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 멀고 벌거벗은 것 처럼 영적으로 아무 것도 없는 정말 가난한 성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가난하고 궁핍하고 환난 가운데 있지만 부요한 믿음의 성도가 있습니다. 그 차이점이 무엇으로 나타납니까?

세상에서 부요하지만 영적으로 가난한 성도는 도무지 섬기는 삶을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이기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 가족만 생각합니다. 어느 성도님이 우리 교회에서 가장 영적으로 부요할까요? 돈이 많아서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우리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예수님의 마음으로 부족하고 연약한 성도를 보면 진심으로 섬겨주고 싶기에 그렇게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칼빈신학교 유학을 와서 유학 2년차에 한인학생회 총무로 섬길 기회가 있었습니다. 박사과정 진학하려고 모두 피하는 자리입니다. 신학공부한다고 어렵고 힘든 한인교회는 출석하지 않고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고 책임도 없는 미국교회에 출석합니다. 예수님을 닮아서 공동체를 섬기는 삶을 마땅히 살아야 하는 섬김의 자세와 삶을 가르쳐야 하는 목사들의 삶에 섬김이 없습니다. 자신만 생각하고 섬기려고하지 않는 목사들의 공동체는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는지요? 이런 목사들이 유학을 마치고 한국교회의 지도자가 되고 신학교 교수가 되고 한 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가 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이렇게 이기적인 목사가 신학교 교수가 되면 그 밑에서 배우는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고, 주님의 교회의 영적인 지도자가 되면 그 교회 공동체는 얼마나 잘못될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괜찮으신지요? 지금 그렇게 살아도 우리 주님의 책망이 없겠는지요? 제눈에도 잘보이는데 우리의 마음의 숨은 동기까지 아시는 우리 예수님의 눈에는 얼마나 잘 보일까요?

4.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죽도록 충성하라

서머나 교회를 아시고 인정하신 우리 예수님께서 서머나 교회를 위하여 10-11절에서 말씀하십니다. 10-11절 말씀 같이 읽습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히리라”

서머나 교회의 환난과 궁핍과 비방을 아시는 우리 예수님께서 그동안 고생 많았으니 이제는 형통하고 평안하고 안식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지금의 환난과 궁핍과 비방을 넘어서 앞으로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마귀는 장차 서머나 교회의 성도 가운데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할 것이라고 앞으로도 고난과 시험이 올 것을 말씀하십니다. 장차 받을 고난과 시험 그러나 그리 길지 않습니다.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문자적으로 10일이 아니라 그리 길지 않은 시간입니다. 어려운 중에도 서머나 교회는 이 고난과 환난을 시간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서머나 교회가 지금까지의 어려움도 잘 인내하며 승리한 것처럼 앞으로 남은 고난과 환난 가운데에서도 승리할 것을 아십니다. 그러기에 다시금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고난과 환란 속에서도 넘어지지 아니하고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약속하십니다.

이 땅에서 태어나 한번 죽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정해져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땅에서 부요하건 가난하건 모두 죽습니다. 첫번째 사망이 문제가 아니라 두번째 사망이 문제입니다. 계시록 20장 14-15절 둘째 사망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둘째 사망은 이 땅에서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고 인정하지 아니하면 살아가는 사람들이 받을 최후의 최종 심판입니다. 악한 자와 불신자가 처할 영원한 죽음입니다.

지금은 환난과 궁핍과 비방 가운데 있지만, 앞으로도 여전히 고난과 시험과 환난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도룩 충성하는 자에게, 고난과 시험과 환난을 이기는 자에게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 약속이 있습니다.

고난과 환난 가운데 있지만 죽도로 충성하라는 권면을 따른 서머나 교회의 영적인 지도자, 사도 요한이 쓴 요한계시록의 편지를 받은 사도 요한의 제자 폴리갑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폴리갑은 로마의 황제 숭배로 박해를 당할 때 화형으로 순교를 당합니다. 그가 순교당할 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예수를 욕하고 황제의 신상에 절하면, 당장에 풀어주겠다” 폴리갑의 고백입니다. “내가 86년동안 섬겨온 주님은 언제나 나를 인자로 대하셨습니다. 내가 어찌 그분을 모독할 수 있겠습니까? 잠시 있다가 꺼질 이 불보다 장차 심판을 위해 예배된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의 불을 두려워하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교회의 주인이신 우리 예수님께서 보시는 것은 충성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는 것은 끝까지 충성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관을 받을 때까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며 첫째 사망 이후 우리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우리 주님, 십자가 부활의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영광 가운데 거할 우리 주님의 충성스러운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5. 우리의 기도

이 시간 함께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이 있습니까? 세상의 부귀, 세상의 명예, 세상의 행복 우리 주 예수님과 바꿀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예수님 때문에 우리 주님 때문에 당하는 환난과 궁핍과 비방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우리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과 시험과 환난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탄은 지금도 우리를 시험하고 박해하고 자칭 유대인을 통해서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이 시간 기도합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 없네. 우리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그 날까지 끝까지 죽도록 충성하는 신실한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적당히 타협하며 살지 않게 하시며 첫째 사망의 그 순간까지 충성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다 같이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사랑하는 서머나 교회의 환난과 궁핍을 아시며, 사탄의 회당 유대인들의 비방을 아시는 우리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깁니다. 우리 주님을 위해서 어떤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지, 어떤 환난과 궁핍과 비방을 받았는지, 이시간 돌아보게 하시며, 우리 주님때문에 당한 것이 전혀 없다면 이 시간 돌이켜 회개하며, 우리의 남은 생애 고난과 시험과 환난이 찾아와도 끝까지 죽도록 우리 주님께 충성하게 하옵소서. 약속하신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며, 생명의 관을 주시는 그 날까지 충성하고 또 충성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Total Reply 2

  • 2022-07-04 18:11
    아멘 큰 도전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 2022-07-06 22:05
      목사님, 격려의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