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 계 1장 9-20절 갈릴리 장로교회의 우리 주님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2-06-19 18:52
Views
606
1.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버지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 아버지는 누구인가요? 내 아빠, 내 아버지, 우리 아버지입니다. 오늘 아버지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가정의 모든 자녀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아버지께 감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4년전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그 선하신 음성과 그 선하신 얼굴이 생각나고 살아계시면 아버지 정말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싶은 오늘은 아버지 주일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평생을 일그러진 얼굴로 숨어 살다시피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아들과 딸, 남매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심한 화상으로 자식들을 제대로 돌 볼 수가 없어 고아원에 맡겨 놓고 아무도 없는 시골 외딴 집에서 홀로 살았습니다. 한편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 자식들은 아버지를 일평생 원망하면서 자랐습니다.
어느날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너무 보고 싶은 아버지가 나타났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은 너무 심하게 화상을 입어서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손가락이 불에 탔습니다. 아들과 딸은 “저 사람이 나를 낳아 준 아버지란 말인가?” 충격을 받았고 차라리 고아라고 생각한 시절이 더 좋았다면 아버지를 외면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들과 딸은 성장하여 결혼을 이루고 가정을 이루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자식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혼자서 외롭게 살다가 홀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몇 년 뒤에 자식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동안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해서 아버지의 죽음에 별 다른 슬픔이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정리하기 위해서 처음으로 시골 외딴 집에 찾아간 자녀들에게 아버지의 차가운 시체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을 노인 한 분이 문상을 와서 아버지는 평소에 버릇처럼 뜨거운 화장은 싫다고 뒷산에 묻히기를 원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자녀들은 아버지를 산에 묻으면 명절 때마다 찾아오는 것이 쉽지 않아서 화장을 했습니다.
아버지를 화장하고 돌아온 자녀들은 아버지의 짐을 정리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평소에 덮었던 이불이랑 옷가지들을 모두 불에 태웠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들을 태우다가 비망록이라고 쓴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일기장도 불에 태우기 전에 한 장 한 장 일기장을 읽다가 그만 눈물을 흘렸습니다. 일기장 속에는 아버지의 얼굴이 심한 화상을 입은 사연이 쓰여져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을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자신들이었습니다.
일기장에는 죽은 아내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마지막으로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보, 내가 당신을 여보라고 부를 자격이 있는 놈인지 조차 모르겠소. 그 날 당신을 업고 나오지 못한 날 용서하구려. 울부짖은 어린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당신을 업고 나올 수 없었소. 이제 당신 곁으로 가려고 하니 나를 너무 나무라지 말아 주오. 아버지로서 해 준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아이들은 모두 잘 자라서 결혼도 하고 가정도 이루었소.
보고싶고 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 일평생 너희에게 아버지로서 해 준 것이 아무 것도 없이 이렇게 짐만 되고 가는구나. 염치불구하지만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내가 죽거들랑 절대로 화장은 하지 말아다오. 나는 뜨거운 불이 정말 싫단다. 지난 30년간 매일 밤마다 불에 타는 악몽에 시달리면서 30년을 넘게 살았단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버지는 부족하지만 우리 아버지, 내 아버지입니다.
2. 세상에서 제일 좋은 교회
그러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요? 세상에서 제일 안 좋은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디트로이트에서 사역을 할때 유승원 담임 목사님께서 강조하신 세상에서 제일 좋은 교회는 우리 교회이며, 세상에서 제일 안 좋은 교회는 이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내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내 교회가 아닙니다. 내가 속한 교회, 내가 속할 수 있는 교회 우리 교회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교회입니다.
여러분들은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를 생각할 때 감사한 것이 무엇인지요?
2022년 7월 10일 우리 교회의 카운실을 구성하는 최준오 집사님 이한나 집사님의 임직예배를 앞두고 있습니다. 지난 주중에는 두 분과 온라인 줌으로 만나서 교회에 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교회에 관한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에서 감사한 것이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두 분은 우리 교회 소그룹인 커피브레이크 인도자 모임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인도자 모임에서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배우는 것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주일학교를 섬기시면서 우리 아이들이 말씀안에서 성장하는 모습도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아직은 여러가지로 부족한 모습이지만 우리 교회가 성장의 과정에 있어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갈릴리 장로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사역하면서 저도 많이 부족하지만 우리 교회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교회가 아니라 우리 교회의 주인이신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주님의 교회다운 교회로 자라나길 기도하면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가 지금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넘어서 조금 더 우리 주님이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교회다운 교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어떻게 하면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가 교회의 주인이신 우리 예수님의 뜻을 이어가는 참된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3. 요한계시록 서론과 첫번째 환상
지난 시간 요한계시록을 시작하면서 서론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요한계시록 말씀을 받을 당시 이 땅의 교회는 절망 가운데 있었지만 교회의 주인이신 우리 예수님은 절망이 아니라 위로를 부어주셨습니다. 절망의 시대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창 오실 성부 하나님,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이신 성령 하나님, 충성된 증인으로 부활하시어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우리 성자 예수님이 계십니다. 성부, 성령, 성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역사를 완성하시는 그 날까지 이 땅의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제사장의 사명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서론을 마치고,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첫번째 가장 중요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첫번째 환상의 주제는 교회의 주인이신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교회가 교회 다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첫번째 예수 그리스도의 환상을 통해서 첫째, 사도 요한은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음성만 들은 것이 아니라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만일 우리도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의 모습을 환상 가운데 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첫째, 사도 요한은 교회를 위한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9절부터 12절 사도 요한이 들은 교회의 주인이신 우리 예수님의 음성입니다. 요한은 어떤 음성을 들었습니까? 9-12절 말씀 다같이 천천히 같이 읽습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사도 요한은 밧모 섬에서 오늘 같은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이 되어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어디에서 언제 어떻게 주의 음성을 들었습니까? 밧모 섬에서,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되어 주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적용시켜 볼까요? 우리는 어디에서 언제 어떻게 주의 음성을 듣습니까? 여기 알버커키 갈릴리 장로교회에서, 주의 날에, 우리도 성령에 감동이 되어 주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의 소망입니다. 절망으로 가득찬 이 세상에서 그럼에도 여기 모인 우리는 주의 날에 모여서 성령에 감동이 되어 주의 음성을 듣습니다.
요한은 왜 밧모라 하는 섬에 있습니까?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습니다. 밧모 섬은 휴가를 보내는 섬이 아닙니다. 저 멀리 소아시아의 가장 큰 도시 에베소에서 신실하게 에베소 교회를 섬기던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다가 로마의 도미티안 황제 때에 일어난 기독교 박해로 말미암아 로마 관원에게 붙잡혔습니다.
로마 관원들에 의해서 밧모라고 하는 작은 섬에 유배되었습니다. 90세가 넘은 그의 나이 인생의 가장 마지막 시기에 그는 밧모 섬에서 우물도 없는 섬에서, 나무 한 그루가 없어 겨울에는 몹시 추운 곳에서, 유배된 죄수들에게 맡겨진 돌을 캐는 채석장에서 중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인생 말년에 그가 젊은 시절 요한의 어머니가 구한 예수님의 나라가 임하실 때에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몹시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몸은 고난을 당하지만 사도 요한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주의 날에 주일에 그는 성령에 감동되어 있습니다. 고난의 시기에도 주의 날에 성령으로 감동되어 고난의 시기에 주의 음성을 듣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날 주일에 무슨 음성을 듣는지요?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의 소망은 여기에 있습니다. 주의 날에 주의 음성을 듣는 성령으로 감동된 성도가 있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고난의 시기에 사도 요한은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밧모 섬에도 주님은 이제는 귀도 잘 들리지 않고 앞도 잘 보이지 않는 노 사도 요한에게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으로 확실하게 주님의 음성을 들려주시니다.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우리 예수님은 사도 요한에게 음성으로 확실하게 들려주십니다.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소 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일곱은 완전수 입니다. 소 아시아의 일곱 교회만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교회가 들어야 하는 우리 주님의 음성이며, 보아야 하는 우리 주님의 환상입니다.
4. 교회의 주인이신 우리 주님의 환상
둘째, 사도 요한은 우리 주님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사도 요한은 어떤 환상을 보았습니까?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알아보기 위해서 몸을 돌이키니 일곱 금 촛대가 보였습니다. 여기도 일곱입니다. 일곱 교회, 일곱 금 촛대 모두 완전수 일곱입니다. 사도 요한은 큰 음성을 듣고 일곱 금 촛대를 보았습니다.
13-16절 가장 중요한 환상은 교회의 주인이신 우리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우리 같이 읽습니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우리는 예수님 생각하면 십자가에 못 박힌 모습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본 예수님의 환상은 십자가에 못 박하시어 죽으신 모습이 아닙니다. 부활과 승천을 거쳐서 너무나 영광스러운 모습입니다. 우리 교회의 주인이신 우리 예수님의 모습이며,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의 주인이신 우리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사도 요한이 본 일곱 금 촛대 그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계십니다. 일곱 금 촛대와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인자 같은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일곱 금 촛대는 무엇일까요? 그 촛대 사이에 다니신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20절 말씀에 답이 있습니다.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일곱 금 촛대는 일곱 교회입니다. 그 일곱 촛대 사이에 인자 같으신 우리 예수님이 다니십니다. 예수님의 오른 손에는 일곱 교회의 사자인 일곱 별이 있습니다. 일곱 금 촛대인 일곱 교회를 부지런히 살펴시는 우리 예수님이시며, 일곱 교회의 사자인 일곱 별을 오른손에 붙들고 계시는 우리 교회의 주인이신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젊은 시절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잠을 자고, 하나님 나라 복음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베푸시는 기적의 현장에도 함께 있었고, 십자가 못 박히는 순간, 승천하신 순간에도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갇혀서 고난 가운데 있었을 때 사도 요한이 그토록 보고 싶었던 우리 예수님의 환상을 다시 보았습니다. 이 땅에 있는 부족하고 연약한 일곱 교회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교회의 사자를 붙들고 계시고, 교회에 부지런히 다니시는 우리 교회의 주인 예수님이십니다.
사도 요한이 환상 가운데 본 우리 예수님은 어떤 모습을 하고 계십니까? 요한계시록의 환상은 구약의 다니엘서와 에스겔서와 중복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사도 요한이 본 환상과 아주 비슷한 환상을 다니엘도 보았습니다.
다니엘 7장 9절 말씀과 다니엘 10장 5-6절 말씀입니다.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더라 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다니엘이 본 환상과 요한이 본 환상 가운데 유사하고 중복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예수님이 입고 있는 옷의 모습이 나옵니다. 13절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입고 있는 옷은 예수님의 신분을 보여줍니다. 발에 끌리는 옷은 누가 입습니까? 구약의 제사장이 입습니다. 가슴에 금 띠를 띠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왕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옷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우리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제사장이며 왕이시다. 우리 인간의 연약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제사장이시며, 동시에 만왕의 왕으로 세상 모든 임금들의 머리로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십니다. 왕이시며, 제사장이신 우리 예수님이 일곱 금 촛대 교회 사이에 다니십니다.
둘째, 옷에 이어서 이번에는 머리 털이 희기가 흰 양털같고, 흰 눈 같습니다. 검은 머리가 아니라 흰 양털 같은 흰 머리는 지혜와 순결의 상징이며, 영원 전부터 존재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예수님의 눈은 불꽃같습니다. 불꽃 같은 눈으로 우리의 마음도 아시고, 우리의 숨은 동기까지 모든 것을 아시고 감찰하시는 우리 예수님은 전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넷째, 예수님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같습니다. 뜨거운 풀무불에 단련한 주석은 강력합니다. 강력한 발로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우리 예수님은 심판주 하나님이십니다.
다섯째, 예수님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 같습니다. 많은 물 소리 같은 음성을 말할 수 있는 분은 단 한 분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에스겔 43장 2절 “하나님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 같고” 많은 물 소리는 크고 권위가 있습니다.
여섯번째, 예수님의 오른 손에는 일곱 별이 있습니다. 일곱 별은 무엇인지요? 다시 20절 말씀 입니다.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일곱 별의 교회의 사자를 오른 손에 붙들고 계시는 우리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일곱번째, 예수님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옵니다. 입에서 아주 날카로운 칼이 나오는 것은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서 사람의 마음을 말씀 앞에 드러내십니다. 그러면 사람의 마음의 위선과 죄악이 드러나서 숨길 수없는 심판의 권세입니다.
여덟번째, 예수님의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전쟁에서 승리한 전사의 얼굴은 밝고 힘이 있습니다. 해처럼 밝고 빛나는 영광스러운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다시 정리해보면, 우리 교회의 주인이신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친히 어린양이 되어 죽으신 연약하고 비참한 예수님 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 교회를 다스리시는 우리 예수님은 제사장이시며, 왕이시며, 순결과 영원하신 분이시며,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감찰하시는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이시며, 막강한 힘과 권세로 발로 입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그 얼굴이 빛나고 영광스러운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은 일곱 별인 일곱 교회, 이 땅의 모든 교회의 사자를 붙들고 계십니다. 그분이 우리 교회의 주인이십니다.
5, 사도 요한의 반응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만일 사도 요한처럼 지금 교회의 우리 주인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 눈으로 본다면 어떠하겠습니까?
사도 요한은 젊은 시절 예수님을 직접 보고, 변화산에서 영광스럽게 변화되신 모습도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절).
젊은 시절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할 당시에 본 예수님과 지금 인생의 마지막에 밧모섬에서 고난 당할 때 다시 환상 가운데 본 우리 예수님의 모습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눈으로 지금 사도 요한이 보고 있는 우리 예수님을 본다면 우리도 17-19절 같은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우리 함께 읽습니다.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이 땅에 있는 교회가 서로 싸우고 갈등하는 이유는 교회의 주인이신 우리 예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 앞에서 마음대로 교만한 목소리를 높입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우리 예수님 앞에서의 우리의 마땅한 자세는 절대 교만이 아니라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지극히 겸손하고 낮고 낮은 모습과 자세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 앞에 지극히 경외하며, 지극히 겸손한 모습입니까?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경건한 마음으로 두려워합니다. 교회의 주인은 연약한 목사가 아닙니다. 연약한 성도가 아닙니다. 우리 주님,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 앞에 지극히 겸손한 성도 만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하며 낮고 더 낮은 자세로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섬기며, 사역하며, 교회 다운 교회를 이루어갑니다.
그런 성도에게 우리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님이 그 열쇠를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겸손히 섬기는 교회와 성도에게 그 열쇠를 맡겨주십니다.
마태복음 16장 19절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렇게 우리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교회가 진짜 교회, 진짜 성도입니다.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의 건강함은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고 지극히 낮은 모습으로 섬기는 성도 한 분 한 분에게 달려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알버커키 뉴멕시코에서 주의 날에 성령에 크게 감동되어 우리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 앞에 지극히 겸손히 섬기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 우리 교회가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 앞에 교회 다운 교회, 예수님이 주인된 교회를 이루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6. 우리의 기도
이 시간 들은 말씀, 부른 찬양으로 하나님 앞에 우리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삶에 고난이 찾아오고 절망스러운 상황에 놓여있다할지라도 주의 날, 주일에 성령에 감동되어 우리 예수님의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지금도 우리 교회에 다니시며 여기에 임재하시며 오른손으로 교회를 붙들고 계시는 우리 제사장이며 왕이신 우리 예수님, 거룩하시고 순결하시며 영원하신 우리 예수님,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예수님, 심판하시는 예수님,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의지하며 신뢰하며 우리 삶을 의탁하게 하옵소서. 처음과 마지막이 되신 우리 예수님 앞에 교만하지 않고 지극히 겸손하게 섬기며 교회와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망과 음부의 천국의 열쇠 잘 사용하는 우리와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 시간 우리의 귀를 열어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우리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이 시간 우리의 영적인 소경이 아니라 영적인 눈을 떠서 지금도 교회를 사랑하시며 교회를 다스리시는 우리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믿음의 눈으로 보게 하옵소서. 이 시간 예수님 앞에서 참으로 높아진 우리, 교만한 우리를 회개하오니 그 분앞에 사도 요한처럼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게 하옵소서. 지극히 겸손한 모습으로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향한 비판과 비난을 거두게 하시며, 겸손히 섬기며 사랑하며 교회를 통한 우리 예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게 하옵소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 교회에 맡겨두신 천국의 열쇠를 사용하게 하시며,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 곳에 활짝 열 수 있는 우리 주님의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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