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교육

출애굽기 (13) 출 7:14-25절 바로의 마음의 완악함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2-04-23 10:24
Views
397
1. 바로의 마음의 완악함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게 보시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겠습니까? 정답은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중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우리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잠언 4장 23절 말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것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네 마음, 우리의 마음입니다. 여기에서 생명의 근원이 난다고 말씀하시기에, 우리의 마음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을 보면, 애굽의 왕 바로의 마음을 나타내는 말씀이 14절과 22절에 나와있습니다.“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는도다”“애굽 요술사들도 자기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그리고 지난주 본문의 마지막 말씀인 13절에도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라고 말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가장 중요하게 보시는 것이 바로의 마음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바로의 마음은 완강하고, 완왁합니다. 완강이나 완악이나 같은 의미로 쓰이지만, 히브리어 성경 본문을 찾아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14절의 완강이라는 말은 카베드이고, 13절과 22절의 완악이라는 말은 하자크입니다. 출애굽기 전체를 보면 바로의 마음의 완강과 완악을 나타내는 단어가 모두 19번이 나옵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마음의 완악은 하자크로 13번, 카베드는 6번, 카샤는 2번 나옵니다. 카베드는 무겁다. 하자크는 강팍하다. 카샤는 딱딱하다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바로의 마음은 무겁고, 강팍하며, 딱딱합니다.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주체는 누구이실까요? 바로인가요? 아니면 하나님이십니까? 출애굽기의 말씀을 다시 자세히 읽어보면 그것도 차이가 있습니다. 7장 13절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14절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22절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모두 바로의 마음의 완악함의 주체는 바로입니다. 바로의 마음이 완악한 것입니다. 바로는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마음이 완악합니다.

2. 바로의 길가 마음

마음이 완악한 상태와 가장 잘 어울리는 우리의 마음의 상태가 있습니다. 바로 교만입니다. 마음이 완악하면 마음이 교만합니다. 마음이 완악하여 교만하면 아무리 하나님이 역사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마치 마음이 딱딱한 돌같아서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마음에 들리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마음의 완악함과 마음의 교만함은 우리의 마음의 상태 가운데 얼마나 위험한 것입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을 지키십니까? 마음을 살피십니까? 여러분의 마음 상태는 어떠하신지요?

우리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3장에서 하나님의 나라 비유를 밭에 뿌려진 씨앗에 비유하셨는데, 그때 나오는 첫번째 밭의 상태가 길가입니다. 길가는 단단합니다. 단단한 길가 같은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씨앗이 뿌려져도 인간의 마음은 단단한 길가 같아서 그 말씀의 씨앗이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새가 와서 먹어버립니다. 마음이 길가같이 단단한 상태가 가장 위험한 우리의 마음의 상태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말씀이 뿌려져서 열매를 맺는 마음은 좋은 땅과 같습니다. 그 좋은 땅은 길가 마음과 정 반대인 착하고 좋은 마음입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의 마음이 좋은 땅입니다.

그런데, 7장 3-4절을 다시 읽어보면 이번에는 다릅니다.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내 표징과 내 이적을 애굽 땅에서 많이 행할 것이나,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인간의 마음의 주체는 인간이면서 동시에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보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완악한지, 우리의 마음이 착하고 좋은지 보십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의 완악함을 내 버려두십니다. 완악한 마음은 더 완악하게 하시며, 착하고 좋은 마음은 더욱 성령의 은혜를 부어주셔서 더 착하고 더 좋은 마음의 상태가 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마음이 완악한지, 우리의 마음이 착하고 좋은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오늘 바로의 마음의 완악함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마음의 완악한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3. 마음의 완악함에서 거절하는 하나님의 말씀

14절 말씀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기에 그가 보이는 첫번째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거절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는도다”

여기 마음의 완강함이 카베드입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마음이 무거워서 움직이지 않고 무감각합니다. 마음이 무거운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말씀을 거절합니다.

사무엘상 15장의 사울의 마음이 바로의 마음의 완악함이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를 사울 왕에게 보내어 왕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사울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기를 거절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아니하며, 자신의 마음대로 행동합니다. 그의 마음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지금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기에 순종이 아니라 거절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거절하는 거역은 하나님 보시기에 점치는 죄와 같고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습니다.

마음이 완악한 바로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 모세와 아론을 보내어 말씀하십니다. 15-16절 말씀입니다. “아침에 너는 바로에게로 가라 보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 너는 나일 강 가에 서서 그를 맞으며 그 뱀 되었던 지팡이를 손에 잡고 그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왕에게 보내어 이르시되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 하였으나 이제까지 네가 듣지 아니하도다” 하나님은 바로에게 내 백성으로 보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바로는 듣지 않고 거절합니다.

4. 애굽에 내린 첫번째 재앙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마음이 완악한 바로의 거절에 하나님은 이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주십니다. 완악한 그 마음에 하나님은 열가지 재앙 가운데 첫번째 재앙인 애굽의 나일 강을 피로 변하는 기적을 베푸십니다. 17-18절 첫번째 재앙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니 네가 이로 말미암아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볼지어다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나일 강을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 악취가 나리니 애굽 사람들이 그 강 물 마시기를 싫어하리라 하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기적을 통해서 애굽이 섬기던 무능력한 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떠한 하나님을 알려주시고, 바로의 완악한 마음에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십니다.

왜 열 가지 재앙 가운데 애굽의 나일 강을 피로 변하게 하시는 재앙이 첫번째 재앙이겠습니까? 열 가지 재앙은 모두 애굽 사람들이 섬기던 우상 신과 연관이 있습니다.

애굽의 나일 강은 애굽 사람의 섬기던 세 신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피는 나일 강의 영으로, 나일 강이 범람하여 농경지가 비옥해지면 애굽 사람들은 나일 강의 영인 하피 신에게 제물을 바쳤습니다. 나일 강은 오시리스라는 신의 핏줄로 여겨 졌기에 나일 강의 범람은 오시리스 신의 현현으로 이해되었습니다. 크눔은 나일 강의 수호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그런 애굽 사람들이 신으로 섬기던 나일 강이 핏물로 변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아닌 거짓 신인 우상을 숭배하던 애굽 사람들에게 우상이 아니라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십니다. 애굽 사람들이 신처럼 여기는 나일 강이 이제는 피로 변하여 나일 강의 고기들이 죽고, 신 같은 나일 강이 악취가 나며, 이제 그 물을 마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러면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고, 이제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하는데 바로의 마음은 계속해서 완악합니다. 그의 마음은 무겁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하신지요? 무거우신지요? 강팍하신지요? 딱딱하신지요? 아니면 하나님
말씀을 듣기를 사모하시고,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순종하시기를 즐겨하시는지요?

이 시간 하나님 앞에서 듣고 배우는 하나님 말씀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며 기도하길 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완악하지는 않은지, 우리 마음이 완악해서 하나님 말씀을 듣기를 싫어하고 거절하고 순종하지 않은 마음의 완악함을 깨뜨려 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의 완악한 마음이 기경되어서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새 언약의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하나님이 주시는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우리 일평생 우리의 마음이 길가와 같이 단단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으며 무겁고 굳은 마음이 아니라 부드러운 마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에 가벼운 마음, 착하고 좋은 마음이 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5. 우리의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을 아버지 앞에 돌아보며 기도하길 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바로의 마음처럼 사울의 마음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마음이 완악한 마음의 상태에 있다면 이 시간 전심으로 회개하며 상한 마음으로 아버지 앞으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마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은 상한 심령이며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시니 이 시간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이 돌처럼 바위처럼 단단한 마음을 깨뜨려주시고 지극히 겸손하고 착하고 좋은 마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부드럽고 겸손한 마음이 되게 하시며 사람을 향하여도 마음이 완악하지 아니하며 우리 예수님 처럼 온유와 겸손의 마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 사랑하는 성도들의 마음을 오늘도 지켜주옵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부드러운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 시간 기도할 때 우리와 함께 하시며 성령의 역사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깊이 기도하며 교제할 수 있는 복된 시간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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