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장 1-11절 부활의 은혜, 수고의 삶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2-04-18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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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hristian Dior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CD 이렇게 생긴 브랜드를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아마도 우리 여성 성도님들은 다 아는 브랜드를 우리 남성 성도님들은 거의 잘 모를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생긴 브랜드 가방의 가격이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4,000불이 넘는 고가의 가방이었습니다.
한국에는 루이비통, 샤넬에 이어서 2020년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이며, 매출액이 6139억원이라고 라고 합니다. 어마어마 합니다. 누가 이렇게 사는 걸까요?
남성에게는 자동차가 주는 의미가 크다고 합니다. 남성의 사회적 신분을 보여주는 것이 자동차라면, 여성의 정체성의 산물이며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여성 핸드백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요즘 시대에는 이런 가방을 안겨주는 남자가 최고의 남자라고 합니다. ^^
Christian Dior 크리스티앙 디오르 지금은 명품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지만,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프랑스의 유명한 노르망디 해변가의 그랑빌이나는 시골마을 출신의 청년이었습니다. 디오르의 아버지는 비료를 생산하는 공장을 운영한 비료 공장, 공장장 아버지의 아들이었습니다. 디오르에게는 항상 거름냄새가 코를 찔러서 사람들은 디오르 냄새가 난다고 놀렸습니다.
냄새로 놀림받는 아들 크리스티앙을 위해서 어머니는 비료 공장주변에 열심히 꽃을 심었습니다. 어린 시절 냄새나는 비료공장 근처에서 살았지만 어머니가 심어놓으신 향기나는 아름다운 꽃을 보고 자란 아들은 아름다운 곡선미를 잘 살려내는 유명한 여성 가방 디자이너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냄새나는 악취를 제거하기 위해서 향수를 개발하여 유명 향수 브랜드도 만들었습니다.
한 때는 놀림받는 냄새나는 악취의 대명사 Christian Dior가 이제는 향기나는 세계적인 가방과 향수 브랜드 Christian Dior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무슨 냄새가 날까요?
냄새하니 잊을수 없는 한국 영화 기생충의 냄새가 생각이 납니다. 배우 송강호 주연의 주인공 운전수 기택과 배우 이선균이 연기한 박사장의 가장 큰 차이는 냄새였습니다. 기택은 냄새나는 반지하에서, 비오는 날 하수구가 역류하던 반지하에서 살면서 지하실 냄새가 몸에 배었고, 대저택에서 사는 박사장은 대저택으로 들어오는 햇볕을 마음껏 누리며 크리스티앙 디오르 같은 고급 향수를 사용하는 문화를 마음껏 누립니다.
2. 혐오스러운 가지에서 사도로
오늘 고린도전서 15장 8-9절 냄새나는 크리스티앙 디오르 같은 고백을 하던 사도 바울의 고백이 있습니다.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사도 바울의 고백을 보면, 자랑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자신을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자신이라고 소개하며, 사도 중에서 가장 작은 자로 고백합니다. 그는 한때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던 용서 받지 못할 죄인이었으며, 그러기에 사도라고 칭함 받는 것을 감당하지 못할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과장의 표현이 아니라 스스로를 생각할 때 이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그는 참으로 부족하고 작은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작고 연약하고 용서받지 못할 바울이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것입니다. 엄청난 사도라는 부르심과 그와는 정 반대의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자신은 극과 극의 대조가 되는 표현입니다.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헬라어 원어를 보면 재미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혐오스러운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멋진 나무가 아닙니다. 혐오스러운 가지는 보면 자르고 싶은 나무입니다. 볼 품이 없습니다. 쓸모도 없습니다. 있는 것 보다는 차라리 없는 것이 더 나은 혐오스러운 가지입니다. 그렇게 혐오스러운 가지 같은 바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어떻게 냄새나고 더럽고 혐오스러운 가지 같은 존재에서 향기나는 명품 브랜드 같은 사도가 된 것입니까? 바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3. 고린도 교회에 전한 사도 바울의 복음
오늘 본문 말씀 고전 15:1-2절 함께 읽습니다. 여기에 바울에게 일어난 비밀이 있습니다.“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지역에 가서 전한 복된 소식 복음이 있습니다. 복음 때문에 바울은 고향 길리기아 다소를 떠나서, 저 멀리 그리스 지역의 수도인 아덴과 고린도까지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복음을 고린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가 같은 자신이 받아 사도로 변한 복된 소식 복음 때문입니다.
그 복음은 고린도교회가 사도 바울을 통해서 받은 것이며, 고린도 교회가 복음 가운데 서 있습니다. 바울이 전한 그 복음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이 엄청난 복음의 핵심, 복음의 내용,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전해준 복음이 3-4절 말씀에 요약이 되어 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예수님의 다시 살아나신 부활이 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믿는 자에게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을 받으셨는지요? 어떻게 받는다 구요?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복음은 무엇이라구요?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것이 복음입니까? 왜, 예수님이 죽으시고 다시 사신 것이 왜 복음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왜 복된 소식, 복음입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은 구약 신명기 21:23절: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이 말씀을 인용한 신약 성경 갈라디아서 3:13절을 봅니다.“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저주의 죽음이었는데 이것이 어떻게 복된 소식이 될 수 있는 것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나를 위한 것입니다. 고전 15:3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를 위한 것인데, 우리의 죄를 위한 것입니다.
롬 6: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 죄의 결과는 사망인데, 우리의 죄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놀라운 약속이 주어집니다.
요 3:14-16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죽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우리가 우리의 죄값으로 받아야 할 하나님의 저주,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진노를 예수님이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주신 것을 믿는 사람들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복된 소식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십자가의 복음을 믿으십니까? 이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사람에게는 감격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주어지는 놀라운 평안함이 있습니다.
4. 십자가 죽으심을 확증하는 그리스도의 부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정말 우리를 위한 것임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돌아가신 시간이 금요일 오후 3시인데, 디트로이트에서 사역을 할때 매년 성 금요일 오후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일곱마디의 말씀인 가상칠언 하나 하나 묵상하며 오후 3시까지 예배를 드립니다. 성 금요일 가상칠언 예배 시간에 참석한 청년들이 너무 귀하고 감사해서, 청년들을 데리고 교회 가까이에 있는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 탕수육, 양장피도 먹고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청년들을 데리고 중국집에 가서 함께 식사한 것이 확실합니까? 믿을 만합니까? 제가 혹시 그냥 먹지도 않고 먹었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무엇을 보고 확실히 알 수 있습니까? 몇몇 신실한 청년들의 증언을 들어봅시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갑니다. 일년이 되었습니다. 기억은 가물가물합니다. 일년 전에 먹었나요? 모르겠는데요.
그런데, 제 손에 아직 분명한 증거가 있습니다. 은행 신용카드 기록을 보니, 신용카드 내역서가 있습니다. Empire Dynasty, 03/30/2018 제 기억은 별로 믿을 것이 못되지만 분명한 기록이 있습니다. 확실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죽으심이 확실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영수증입니다. 죽음은 죄의 형벌인데, 죄 없으신 예수님이 왜 죽으셨는가? 예수님의 죽음은 죄인 된 나를 위하여 대신 죽은 죽음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예수님의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우리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부활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을 확실히 해 주는 영수증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십자가의 죽음만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믿는 사람은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고전 15:12-13절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확실한가? 부활은 확실합니까? 어떻게 압니까? 수많은 증인들이 있습니다. 고전 15:5-8절, 게바(베드로)입니다. 열두 제자, 오백여 형제들, 그후 야고보, 모든 사도, 그리고,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마지막 이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나는 누구입니까? 사도 바울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보면, “내게도”라는 표현이 가슴이 와 닿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누구를 만나주셨다구요? 내게도…내게도의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확실합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내게도, 여러분에게도 부활하신 주님이 보이신 것입니다. 놀라운 은혜입니다.
처음 교회에 와서 아무리 믿으려고 해도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믿으려고 노력해도…의심에 가득차서 도무지 못 믿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죽으시고 나를 위하여 부활하신 것이 믿어진 그날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그날이 다시 태어난 거듭난 날입니다. 지금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세상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왜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무엇을 위해서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구나.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구나. 그 하나님이 내 삶을 지금까지 인도하셔도 지금 믿게 하셨구나…위대한 사도 바울에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9장을 보면, 예수 믿는 자를 그토록 박해하던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놀라운 체험을 합니다. 9:3-5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서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지금까지 그토록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는데, 그런데, 지금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사도 바울 인생의 최대의 전환점은 바로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 사건입니다. 결정적인 사건이며, 기독교 선교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5. 부활의 은혜를 입은 자의 고백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받은 사람의 고백이 여기 있습니다. 10절입니다.“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부활의 주님을 만난 것이 은혜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이 놀라운 은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은혜를 받은 사람은 변한다.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아니하면 공통적인 고백이 있다. 삶이 달라집니다.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주님을 위해서 수고를 하게 된다. 수고는 일하는 것인데, I worked harder than all of them…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억지로 일하지 않는다. 힘들게 일한다. 힘들게 일하는데, 은혜이기에 기쁨으로 감당한다. 수고의 헬라어 단어는 코피아오입니다. 수고는 코피 나도록 하는 것이 수고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힘에 지나도록 수고를 하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이 수고는 어디에서 드러나는가? 바울을 예수님을 믿기 전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인 교회를 핍박했는데, 예수님은 교회의 핍박을 자신과 동일시합니다. 부활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의 수고는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를 통해서 드러나야 합니다. 수고가 없는 신앙생활은 부활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부활을 믿으십니까? 부활의 은혜를 경험했습니까? 그 사람이 부활하신 주님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를 위해서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떠나지 않고, 교회를 세우고, 섬기고, 힘이 지나도록 수고합니다.
우리 가운데 힘들게 수고하는 우리 지체가 있습니까? 그것이 은혜입니다. 힘들게 수고할 수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은혜없이 수고도 없습니다. 수고하지 않는 지체들도 있습니까?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은혜를 전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부활장의 결론의 말씀 같이 읽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6. 우리의 기도
살아계신 아버지 우리 하나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심 감사를 드립니다.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을 믿을 수 있는 은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부활의 증인으로 삼아주심 감사를 드립니다.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혐오스러운 가지 같은 사도 바울에게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내게도 부활의 은혜를 부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의 은혜를 알기에 우리도 더 많이 수고할 수 있는 주님의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더 많이 수고하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게 하시며,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의 증인으로 우리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부활주일만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지 않게 하시며, 우리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힘입어 우리도 부활하는 그 날까지 부활의 증인으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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