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1) 막 3:7-19절 큰 무리와 12제자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2-04-11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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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가 일평생에 만나는 사람과 관계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일평생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셨을까요? 그중에서 지금도 아주 가깝게 지내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만일 우리가 정말 어려움에 처해있는데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다면 기꺼이 찾아와 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 될까요?
사회학자들이 연구한 결과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사람은 일평생 약 17,500명의 사람과 의미있는 만남을 한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약 3,500명은 비교적 가까이 알고 지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또 그중에서 약 250명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알고 지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약 14명이 정말 친하게 지내는 관계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서 17,500명중에서 약 3,500명, 3,500명에서 250명이 정말 중요한 사람이고, 250명 중에서 14명이 어떤 사람인가가 우리가 가진 보석같이 중요한 인간관계의 가장 중요한 사람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공생애 3년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셨을까요? 약 17,500명이라고 생각해보면 정말 큰 무리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을 때를 생각해보면 남자 장정만 5000명의 사람을 먹여주셨으니, 약 2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닌 엄청나게 큰 무리였습니다.
그 수 많은 사람들 가운데, 3,500명 정도의 사람이 예수님을 통해서 기적적인 치유를 경험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을 위해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가르치심을 받아들이면서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한 제자들은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3500명의 숫자도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이고, 한 주간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 이제 부활주일이 다가오는데, 예수님은 성 금요일 로마의 빌라도 총독에게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사람들의 숫자가 고린도전서 15장 부활장에 보면 나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6절 말씀입니다.“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오백여 형제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생생한 증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님의 부활을 모르며 믿지 않는 사람들과 동일하게 살 수 있습니까?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신신 당부하신 말씀이 사도행전 1장 4절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그 말씀 그대로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린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사도행전 1장 14-15절 말씀 우리 같이 읽습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모인 무리의 수가 약 120명이나 되더라”
중요한 숫자가 나옵니다. 120명이나 되더라. 그러나 제게는 120명 밖에 되지 않더라고 읽힙니다. 예수님을 만나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을 경험한 수 많은 큰 무리들 2만여명의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의 인격을 경험하고, 예수님의 치유를 경험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수천명의 사람들 중에서, 심지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500여명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의 11제자와 그리고 11명의 제자들을 합친 사람들이 겨우 120명의 사람들 오직 이 사람들만이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라면,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을까요? 아니면 여러분은 제자는 아니고 예수님을 따라다닌 큰 무리에 속하는 사람들인지요? 예수님을 따라 다닌 큰 무리와 예수님의 제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2. 예수님을 따라다닌 큰 무리들
오늘 본문 말씀 마가복음 3장 7-8절을 보면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나오고, 또한 큰 무리가 나옵니다.
바로 앞에 있는 마가복음 3장 6절 말씀을 보면,“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예수님의 안식일에 행하신 치유와 안식일에 관한 가르침 때문에 유대의 바리새인들은 헤롯당과 모의를 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유대의 거대한 종교세력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는 헤롯 안디바의 정치세력이 만나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작정을 하니 피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모든 종교세력과 정치세력이 로마제국과 결탁을 한다면 예수님의 죽음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토록 위험한 시기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을 피해서 갈릴리 바다로 물러가셨습니다. 그러나, 어디에선가 큰 무리들이 예수님께 다가와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8절을 보니 큰 무리들이 나아온 중요한 장소들이 나옵니다. 유대와 예루살렘은 남쪽의 유대 산지지역이고, 이두매는 더 남쪽 지역 헤롯대왕의 고향 지역입니다. 요단강 건너편은 요단 강 서쪽에서 동쪽으로 건너야 되는 곳입니다. 베레아로 알려져있습니다. 그리고 두로와 시돈은 지중해 해변가 저 북쪽의 이방 지역입니다. 이 지역들을 보면 유대인들이 사는 장소 만이 아니라, 이방인 지역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정말 수 많은 무리들이 동서남북 모두에서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이들은 왜 예수님께 나아왔을까요?
마가복음 3장 10절 말씀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요한복음 6장 26절 또 다른 수많은 무리들도 있습니다.“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예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병을 고쳐주십니다. 병든 사람의 간절한 소망은 육신의 치유함에 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면 떡을 주시고 배부르게 하시니 배고픈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은 먹고 배부름에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정치세력, 종교세력도 이렇게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필요인 육신의 질병과 육신의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런 예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 아니라 정말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땅의 나라의 왕이시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요한복음 5장 15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 큰 무리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육신의 병을 고침받고, 예수님을 통해서 육신의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 받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들 큰 무리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큰 무리들은 그 현장에서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어쫓는 현장도 목격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사역하시는 현장은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큰 무리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그러면, 누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아니면 그냥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무리입니까? 무리와 제자 어떤 차이가 있습니가?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3장 13-15절 예수님의 제자됨의 세 가지 중요한 자격이 있습니다.“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일러라”
3.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이 있는가?
첫째, 예수님의 12 제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부르시고 세우신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산에서 부르시고 세우신 제자들은 왜 하필 12명일까요? 그리고 왜 산일까요?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산으로 이동하셔서 12명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세우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 산에서 제자들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의 가르침인 산상수훈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산에서 12명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세우시는 장면은 구약의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12지파를 세우시는 모습과 아주 유사합니다. 출애굽기 19장 5-6절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12지파를 부르시고 시내산 언약을 체결하려는 목적은 이스라엘을 모든 민족 중에서 하나님의 보물같은 소유물이 되어 이스라엘 12지파를 온 세상을 향한 제사장 나라로 삼기 위하여 그들을 특별히 구별된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시내산 언약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체성은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입니다.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의 사명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산에서 12제자를 부르시고 임명하시는 목적도 동일합니다. 구약의 제사장 나라 처럼, 예수님은 12제자를 통해서 온 세상을 위한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는 거룩한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종말의 시대에 이스라엘 12지파의 백성을 다시 회복시켜서 온 세상의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회복시키신다는 예언의 말씀이 구약 이사야 49장 5-6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 야곱을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이시니 이스라엘이 그에게로 모이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와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 되어 구약의 12지파 유명무실해진 그들을 다시 일으키시어 잃어버린 제사장 나라 사명을 다시 감당할 수 있는 이방의 빛으로 삼아 땅 끝까지 온 세상을 구원할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서 12명의 제자들을 산으로 부르시고 임명하십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가르쳐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우리 예수님의 비전입니까? 우리 예수님은 혼자 이방의 빛이 아닙니다. 혼자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가져오시지 않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하고 모자란 제자들을 세워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시며 이들을 통해서 이방의 빛이 되게 하셔서 온 세상을 구원하실 큰 하나님 나라의 비젼을 품고 계십니다.
큰 무리와 12 제자의 가장 큰 차이점은 큰 무리들은 오직 자신들의 필요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 다닙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필요가 충족이 되면 언제든지 예수님을 떠날 수 있는 무리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필요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사역 때문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리에게는 이 중요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있는지요? 예수님을 믿고 건강해지고, 부해지고, 자녀들도 잘 되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라다니면 우리도 모르게 무리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서 우리를 제자로 부르신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을 품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4.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하나된 제자들
둘째, 예수님의 제자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다양하면서도 동시에 한 없이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세울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는 소중한 제자들입니다.
마가복음 3장 16-19절 예수님의 새로운 이스라엘,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제자들의 12명의 명단입니다. 이들은 어떠한 사람이기에 이토록 중요한 하나님 나라 사역에 제자로 부르심을 받고 세움을 받은 자들입니까?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 더라”
12명의 예수님의 제자들의 명단을 보니 저는 한숨이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를 중요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이어갈 자랑스러운 제자들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12명의 제자 가운데 특별히 앞에 있는 세 명의 제자, 갈릴리 바닷가에서 어부였던 제자들에게는 새로운 이름이 추가된 제자들이 있습니다. 시몬에는 베드로란 별명이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반석, 바위, 돌이라는 뜻입니다. 세대베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들이라는 별명을 주셨습니다. 성격이 과격하고 급하고 말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쉬운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을 특별히 사랑하셨습니다. 특별한 사역의 현장에는 세 명의 제자들만 데리고 가신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정치적인 성향이 정 반대인 두 명의 제자가 보입니다. 마태와 가나나인 시몬입니다. 마태는 세리 레위이며, 갈릴리 가버나움의 세리였습니다. 세리는 로마 제국와 긴밀한 관계 속에서 일을 해야 하기에 정치적 성향은 친 로마파였습니다. 그런데, 가나나인 시몬의 가나나인은 출신 이름이 아니라 열심당원이라는 아람어입니다. 열심당원은 반 로마파의 사람들입니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니 기독교인 가운데 열혈 국민의 힘 윤석열 당선자 지지자들이 있고, 반면에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 당선이 안되어 몹시 절망에 빠진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정치적 견해가 가장 중요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극좌 열심당원 시몬과 극우 세리출신 마태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서로 다른 정치적인 견해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장 우선적인 가치로 두는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며, 동시에 정치적으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질 수도 있는 세상 나라에 속한 두 나라 국민입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방해하는 사람들은 오직 하나의 정치적 견해를 진리로 생각하고, 다른 정치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적으로 대하는 서로 양 극단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의 교회에서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원수가 아닙니다. 적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같은 백성이며, 하나님 나라의 동일한 제자들입니다.
우리는 정치적 견해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제자들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세리 마태도 제자로 부르셨고, 가나나인 시몬도 예수님의 소중한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우리와 생각이 달라도, 가치관이 달라도, 정치적인 견해가 달라고, 교육과 직업과 가정의 배경이 달라도, 나와는 다르니 배척하고 관계를 끊고 얼굴 붉히는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세우기 위해서 서로 협력하고 부족해도 귀하게 여겨주고, 사랑하라 하시니 마음을 다해 사랑하며 동역을 합니다.
5.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제자들에게 기대하시는 사역
셋째, 무리와 제자 어떻게 다릅니까? 무리에게는 기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기대하시는 사역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세우신 제자들을 통해서 기대하시는 사역이 있습니다.
14-15절 우리 같이 읽습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정치적인 견해보다 훨씬 더 중요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 있습니다.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 쫓는 권능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세 자기 사역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주시는 가르침의 현장에 함께 있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자리에도 함께 있고, 예수님이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하시는 사역의 자리에도 함께 있는 것입니다.
함께 있게 하시고,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가지게 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습 가운데 우리 예수님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추구하는 목회를 하면서 저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유능하고, 실력있고, 능력있는 성도가 아닙니다. 누구일까요? 부족한 저와 함께 있어주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배의 자리에 함께 있어주고, 기도의 자리에 함께 있어주고, 말씀을 전하는 자리에 함께 있어 주는 우리 성도님이 저에게는 가장 소중한 분이십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디트로이트에서 청년부 사역을 할 때 가장 기억이 남는 2명의 제자와 2명의 동역자가 생각 났습니다. 이진규 청년부 회장, 허을혜 청년부 부회장입니다. 김홍산 간사님, 이은경 간사님입니다. 우리 이진규 형제 여러모로 부족한 청년이었습니다. 허을혜 자매 예수님을 믿은지 얼마 안되는 하나님 말씀을 잘 모르는 청년이었습니다. 김홍산 이은경 간사님 부부 간사님으로 정말 열심히 함께 사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두 청년에게 두 분의 간사님에게 가장 고마운 것은 청년부 사역하는 동안 부족한 늘 저와 함께 해 주었습니다. 두 청년과 두 간사님과 함께 예배 드렸고, 제자훈련을 함께 했고, 캠퍼스를 다니면서 전도했고, 여름에는 미시간 청년 연합 사역을 함께 했습니다. 제자들과 동역자와 미시간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꿈꿨고 행복하게 사역을 했습니다.
사역을 하면서 제 마음에 늘 아쉬움이 남는 분들도 계십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있어야 하는 자리에 늘 안 계신 분들입니다. 함께 기도하고 싶은데 기도의 자리에 안 계십니다. 함께 하나님 말씀을 나누고 싶은데 뭐가 그리 바쁘신지 그 자리에 안 계십니다. 함께 사역하고 싶은데 돌아보면 사역의 자리에도 안 계십니다. 언제나 있어야 할 자리에 안 계신 분들이 제 마음에 늘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12명의 제자 가운데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한 사람의 제자를 충원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자격 요건이 무엇일까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1장 21-22절 말씀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그것이 가장 중요한 제자의 요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우리 지역 광야같은 우리 알버커키 뉴멕시코에서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꿈을 꾸셨던 하나님 나라 비전을 품고 사역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무리가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 사역하고 싶습니다. 부족하지만 연약하지만, 함께 예배하며 함께 기도하며 함께 사역할 수 있는 우리 주님이 사랑하시는 제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 사역을 감당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이 곳에 보내신 이유는 적당히 교회 성장하고 편안하고 안락하게 목회하라고 보내신 것이 아니라, 있으나 마나 큰 무리 같은 성도들을 데리고 사역하라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품고 사역할 수 있는 제자를 불러 세우고, 제자와 더불어 함께 사역하라고 보내셨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무리입니까? 아니면 제자입니까? 부족하지만 연약하지만 무리가 아니라 우리 주님의 제자로 쓰임받는 복된 여러분의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6. 우리의 기도
이 시간 다같이 합심하여 기도하길 원합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큰 무리들, 자신들의 병고침과 육신의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고 했던 무리로 살지 않게 하시며, 우리 예수님이 부르시고 세우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부족하지만 성격이 모나고 나와 다른 사람 잘 용납할 수 없는 연약한 사람이지만 주님의 제자로 쓰임받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주님의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광야같은 이곳에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품고 살아가는 주님의 제자로 쓰임받게 하옵소서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연약하고 부족하고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 가운데, 이 시간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우리의 필요를 따라 예수님을 찾았던 큰 무리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이 시간 돌아보며 회개합니다. 자신의 필요를 따라서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언제든지 예수님을 떠날 준비된 무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우리 예수님을 따라 끝까지 예수님과 함께 있는 우리 주님의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연약하지만 부족하지만 이곳에서 함께 하나님의 나라의 꿈을 품고 예배하며, 기도하며, 사역하며, 섬기며, 전도하는 주님의 제자로 써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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