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교육

마가복음 (9) 막 2:18-22절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2-03-28 00:44
Views
774


1.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어제 오전부터 우리 주일학교 아이들과 선생님들, 부모님들과 함께 남쪽에 있는 Rinconada Canyon Trail에서 하이킹을 하고 공원에서 맛있는 김밥 점심을 먹고 아이들과 함께 축구도 하고 농구도 했습니다. 코로나 이후로 처음으로 야외에서 아이들과 뛰어놀면서 너무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덕분에 얼굴이 이렇게 빨갛게 탔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 어느 누군가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오후는 안식일이니 그리고 특별히 사순절 기간이니 금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여러분은 그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시카고 지역에서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동창회 모임이 열렸습니다. 맛있는 점심 식사를 하면서 졸업 후에 각자의 변화된 생활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동창생 가운데 가장 안정적인 사업에 몸담고 있던 네이단이 질문을 합니다. “변화가 일어날 때 우리가 얼마나 그것을 거부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옆에 있던 친구 축구팀 주장이었던 카를로스가 대답을 합니다.“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 자체를 거부하는게 아닐까?” 옆에 있던 마이클이 다시 이야기 합니다. “나 역시 변화가 두려웠어. 우리 회가에 큰 변화가 몰아닥쳤을 때 어찌해야 할지 모두지 알 수 없더군. 나는 전에 하던 방식대로 일을 처리했지. 그러다 회사를 거의 잃을 뻔한 지경에 이르기도 했어.”

마이클이 그런 과정에서 어떻게 회사의 문을 닫지 않게되었는지 이야기합니다. “아마 내가 이 짧고 재미있는 우화를 듣지 않았다면 우리 회사는 문을 닫고 말았을 거야.” 동창들이 모두 그 짧고 재미있는 우화를 궁금해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도 그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으신지요? 그 책 제목이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입니다. 의사였던 스펜서 존슨이 1998년 미국에서 출간한 이 짧은 책이 전세계에서 3000만부 이상이 팔렸고, 한국에서는 2000년에 번역되어 250만부 이상이 팔린 초 베스트셀레입니다.

이 책을 보면 모두 4명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두 마리의 생쥐와 두 마리의 꼬마 사람입니다. 스니프와 스커리는 생쥐이고, 햄과 허는 꼬마 사람입니다. 그들은 미로 안에 숨겨진 치즈를 찾기위해서 열심히 뛰어다녀서 드디어 가장 좋은 치즈를 발견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 어느날 치즈 창고를 보니 치즈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매일 치즈 창고의 치즈 재고량을 확인하였던 두 생쥐는 조금씩 조금씩 치즈의 재고량이 줄어들고 있다는 변화를 확인하고, 창고에 치즈가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신속하게 새로운 치즈 창고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햄과 허는 눈앞에 벌어진 현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질문합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지금까지 누려왔던 치즈가 없어졌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두 마리의 생쥐 스니프와 스커리는 별로 고민하지 않고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고 치즈를 찾기 위해서 바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헴과 허는 계속 헛기침만 하면서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분석만 하고 있습니다. 사라진 치즈에 미래를 두려워하고, 분노하고 있다가 둘 중의 한 꼬마인 허는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치즈를 찾기 위해서 모험을 결심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토록 찾고 싶었던 새로운 치즈를 찾게 되었습니다.

허는 자신이 새로운 치즈를 찾게된 과정에서 깨닫게 된 교훈을 발견하고 이렇게 기록합니다.
첫째, 자신의 주변을 간단하고 융통성 있게 유지하며 신속하게 행동하라.
둘째, 사태를 지나치게 분석하지 말고 두려움으로 자신을 혼동시키지 말라.
셋째, 적은 변화에 주위를 기울여서 큰 변화가 올 때 잘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마이클의 치즈 이야기를 듣고 나서 고등학교 동창생들을 토론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변화를 거부하던 햄의 모습이 자신들의 모습이었고, 그래서 자신들의 삶에 다가오던 변화에 대처하지 못했던 실패 이야기를 서로 나눕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 여러분의 치즈를 옮겼을까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은 너무나 변했습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책을 읽으면서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과 우리 부모님 세대의 어르신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2. 이해할 수 없는 MZ 세대

1980년 초반부터 1994년경에 태어난 세대를 가리키는 신조어가 있습니다. 이들은 Y 세대 혹은 M 세대라고 합니다. Y 세대는 1955년에서 1964년 사이에 태어난 한국 전쟁이후의 세대인 베이붐 세대의 자녀 세대입니다. 베이붐 세대가 전쟁이 끝난후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풍요롭고 안정된 시기을 보낸 세대인데 베이붐 세대의 자녀 세대들은 바로 이전 세대인 X 세대와 전혀 다르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저 같은 X 세대는 1965년부터 1970년 후반에 태어난 세대입니다. 베이비 붐 세대 다음 세대 X 세대는 베이붐 세대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기에 붙인 세대 이름입니다. 구속이나 관념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는 특성을 보이는 세대입니다.

그런데, 베이이 붐 세대가 낳은 자녀 세대인 Y 세대는 동시에 별명이 M 세대입니다. 밀레니엄 세대 혹은 모바일 세대로 어릴 때부터 개인용 컴퓨터,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환경이 익숙한 디지털 환경에서 자란 세대입니다.

그리고 X 세대가 낳은 자녀들은 1995년 이후에서 태어난 Y 세대 다음 세대로 Z 세대라고 합니다. Z 세대의 아이들은 태어날때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자라 인터넷과 IT에 아주 친숙하고, TV나 컴퓨터 보다는 스마트폰에 익숙하여 영화, 음악, 스포츠 모든 것을 스마트폰으로 다할 수 있는 세대이며, 24시간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한 세대로 자라납니다.

베이비 붐 세대가 낳은 M 세대와 X 세대가 낳은 Z 세대를 합쳐서 MZ 세대라고 불립니다. X 세대 이전에는 공동체인 우리가 중요했다면, MZ 세대는 공동체 보다는 자기 자신이 더 중요한 세대입니다. MZ 세대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에는 아낌없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세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들이 이해가 되시는지요? 자녀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도 어느덧 꼰대가 되어갑니다. 꼰대 어른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Latte is horse – 나때는 말이야. 나때는 말이야 없어서 못 먹었어. 나때는 말이야.

우리 자녀들이 20-30대인 세대는 처음에는 삼포세대로 불리우다가 N포 세대로 불리웁니다. 3가지를 포기합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합니다. 그러다가, 집 포기, 경력 포기, 인간관계 포기, 장래 희망 포기, 다 포기하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베이비 붐 세대의 부모님들은 자녀 세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3.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새로운 시대의 등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꼰대처럼 보입니다. 라떼는 말이야. 누가 내 치즈를 옮겼어? 변화의 새로운 시대가 몹시 불편하여 예수님께 따지듯이 질문합니다.

18절 말씀의 질문입니다.“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이 질문에 제게는 누가 내 치즈를 옮겼어?라는 질문으로 들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라떼는 말이야 바리새인들이 제기한 금식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나라 잔치가 열린 새로운 시대에 오랜 경건의 전통인 금식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행해야 하는 것입니까?

먼저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금식의 모습을 살펴보길 원합니다.

세례 요한과 요한의 제자들은 금식을 했습니다. 바리새인들도 금식을 했습니다. 성경에 있는 이들의 금식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이 이들이 금식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 6절 말씀 유대 광야의 세례 요한의 모습입니다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마태복음 11장 18-19절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세례 요한의 모습을 보면 먹는 것이 이상합니다. 세례 요한의 삶은 마치 이 땅에 임박한 종말이 곧 다가오는 것을 준비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먹고 마시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이며 인생의 즐거움을 거부하고 오직 종말의 하나님의 나라가 이땅에 임하기만을 바라보는 금욕주의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말합니다. 요한은 귀신이 들렸다고 말합니다. 세례 요한과 요한의 제자들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말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예수님의 모습을 어떻게 이해를 했습니까? 세례 요한과는 정 반대의 모습으로 이해했습니다. 예수님은 먹고 마시기를 탐하는 먹보이며 술꾼이고,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서 다니는 사람으로 이해합니다. 이들은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비판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을 가장 많이 비난한 사람들은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바리새인들은 부정적으로 그려지지만 한때 이들은 유대 종교를 개혁하려 했던 당시 백성들에게 존경받던 순수한 신앙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은 분리된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바벨론 포로 시기에 나라가 망한 원인이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의 말씀을 지키지 않아서라고 생각했기에 철저한 율법의 연구와 준수로 유대교를 개혁하려고 했던 가장 커다란 그룹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1-12절 바리새인의 기도를 보면 이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이렇게 말씀합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바리새인의 삶에는 토색 – 다른 사람을 것을 훔치지 않습니다. 불의 – 악한 일을 하지 않습니다. 간음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이레에 두번씩 금식을 하며 소득의 십일조를 드립니다. 바리새인들의 얼마나 금식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일주일에 월요일과 목요일 이틀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얼마나 큰 열심입니까? 얼마나 믿음 안에서 살려고 노력하는 금식입니까?

우리 예수님은 세례 요한과 제자들처럼, 바리새인처럼 금식을 하셨을까요? 제자들에게 금식에 관한 말씀을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금식을 하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그 유명한 40일 금식을 하셨습니다 (마 4:2).

그리고 제자들에게 금식에 관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16-18절 산상수훈의 가르침은 제자들에게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의 윤리를 말합니다.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금식이 문제가 아니라 금식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문제입니다. 금식을 하면서도 방향이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 항하여 있지 않고 금식의 방향이 사람들을 향하여 있습니다. 금식을 하면서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고 금시하는 티를 내고 금식을 경건의 자랑으로, 금식으로 자기의 의를 쌓는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4.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금식과 기뻐하시는 금식

이사야 58장 은밀중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금식, 하나님이 진정으로 기뻐하는 금식의 모습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금식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금식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금식의 모습은 이사야 58장 3-5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너희 역군들을 압제하는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굶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하나님께 목소리를 상달되게 하기 위해서 금식을 하며 괴롭게 하는데 문제는 금식하는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금식하면서 오락을 행하고, 금식하면서 일하는 일꾼들에게는 가혹하게 노동을 시키고, 금식을 하면서 논쟁하고 다투고 악한 주먹으로 사람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싸움을 벌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금식입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예배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금식하며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고발합니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매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이사야 1장 15-17절).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예배와 기도와 금식이 있지만,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과 기도와 예배가 있습니다. 이사야서 58장 6-9절 말씀입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꺽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있다 하리라”

하나님은 금식만 보시지 않습니다. 금식하는 사람들의 삶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기도와 예배만 보지 않으시고 기도하는 자의 삶, 예배드리는 자의 삶을 보십니다. 자신은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집중하여 기도하지만, 금식하는 자의 삶은 주린 자에게 왜 너도 금식하지 않는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린 자에게는 양식을 나눠주는 삶입니다. 유리하는 빈민은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입히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의 금식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이었을까요? 우리의 예배와 기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와 기도일까요?

5. 예수님의 혼인 잔치와 금식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의 금식으로 예수님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질문한 사람들의 질문에 우리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2장 19-20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지금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시기는 마치 혼인 잔치가 벌어지는 시기이며, 혼인 잔치의 중심인 신랑과 함께 있는 잔치에는 금식이 아니라 축하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잔치의 시기입니다.

예수님 당시 결혼 잔치는 일주일동안 열립니다. 신랑의 친구들과 손님들이 결혼 잔치에 참여합니다. 금식이 아닙니다. 잔치입니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일주일에 금식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혼인잔치와 혼인잔치를 베푸시는 임금으로 비유를 했습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마 22:2-3).

지금이 금식할 때인지, 지금이 잔치할 때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가져오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함께 하는 제자들은 지금인 금식할 때인지, 잔치할 때인지 분명합니다. 지금은 금식할 때가 아니라, 지금은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여 기뻐하고 감사하고 행복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잔치의 은혜를 충만하게 풍성하게 누려야 합니다. 이때 금식하는 것은 하나님의 잔치를 방해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잔치를 모독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잔치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잔치가 아니라 진정으로 금식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신랑을 빼앗기는 그 날입니다. 그날에는 마땅히 잔치가 아니라 금식을 합니다. 신랑을 빼앗기는 그 날은 언제입니까? 혼인 집 신랑을 빼앗기는 그 날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잡히시고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처형당하시는 고난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골고닥 언덕으로 오르시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보혈을 흘리시는 그 날입니다. 그날은 온 땅에 흑암이 임하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이 고통중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던 그 날입니다. 그 날에 다 이루었다 말씀하시며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그 날입니다. 그 날은 잔치가 아니라 금식의 그 날입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아직 새로운 시대,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한 것을 전혀 모르는 변화에 눈이 멀고 귀가 막힌 사람들입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는가? 언제 그러한 변화가 왔는지 도무지 시대를 분별할 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생각이 낡은 옷과 같고 행동이 낡은 가죽 부대 같습니다. 낡고 낡아서 탄력성을 잃어버리고 사고과 행동의 유연성을 잃어버린 죽은 전통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마가복음 2장 21-22절 말씀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우리 같이 읽습니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새로운 생베 조각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가져오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새로운 포도주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가져오신 하나님 나라 잔치의 복음입니다. 낡은 옷과 낡은 가죽부대는 바리새인들이 붙들고 있는 변화를 거부하는 죽은 전통입니다.

낡은 옷으로는 낡은 가죽부대로는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담을 수 없습니다. 낡은 옷과 낡은 가죽부대로는 우리 세대, 우리 다음 세대의 자녀들을 이해할 수 없고,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으로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지요? 우리는 죽은 전통이 아니라 살아있는 하나님 나라 복음의 가치를 추구합니다. 우리는 죽은 전통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시며 우리와 동행하시는 우리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추구합니다. 우리는 죽은 전통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세대의 사람들, 우리 다음 세대 우리 자녀 세대 MZ 세대에게 하나님의 나라 복음으로 구원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물려주어야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만 생각하지 않고 우리 시대의 문화와 우리 시대의 변화에 걸맞는 하나님 나라 복음의 신실한 증인, 우리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갑니다.

6. 우리의 기도

이 시간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 우리도 모르게 우리가 붙들고 있는 낡은 옷과 낡은 가죽부대 같은 죽은 전통이 무엇인지 깨우치고 기꺼이 버리게 하옵소서. 낡은 옷과 낡은 가죽부대가 아니라 새로운 생베조각, 새로운 포도주 같은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가져오신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붙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혼인집 신랑으로 이땅에 하나님 나라 잔치로 죄인들을 부르시고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자녀 삼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시는 하나님 나라 사역에 기쁨과 감사함으로 참여하는 하나님 나라 일꾼되게 하여 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세상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능력있게 임했음에도 전혀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던 아둔하고 어리석고 미려한 바리새인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지 이 시간 우리의 삶을 돌아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변화에 관심이 없고 낡고 낡은 옷과 낡은 포도주를 최고로 알며 살았던 죽은 전통만 붙들고 살았던 바리새인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지 이 시간 돌아봅니다. 우리의 소중한 생애,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복된 믿음으로 우리 지역에서 하나님 나라 복음과 사랑으로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게 하시며,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 잔치를 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시며, 하나님 나라 잔치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신실한 복음의 종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을 드립니다. 우리의 시간을 드립니다. 우리의 물질을 드립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금식과 기도와 예배가 되지 않게 하시며,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금식, 기도와 우리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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