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교육

마가복음 (7) 막 2장 1-12절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한 이유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2-03-14 18:52
Views
510


1. 갈릴리 가버나움까지의 지리적 여정

3월 첫째주 말씀사경회에서 성막을 공부하면서, 성막의 이동 장소를 살펴보는 지리적인 배경도 공부했습니다. 지난 주간에 개강한 역사, 지리, 신학으로 이해하는 구약의 파노라마도 역사와 신학도 살펴보지만 구약의 지리적 배경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의 성경이 다른 종교 경전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지리적인 배경과 장소입니다. 불교의 경전, 이슬람, 유교, 힌두교는 지리적 배경이 없거나 아주 제한적이지만,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곳곳에 역사적 배경과 지리적인 장소를 자세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평면으로 이해하지 않고,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지리적인 위치는 반드시 확인하면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마가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가복음을 읽고, 커피브레이크 소그룹에서 나누고, 주일 설교 말씀을 들어도 말씀의 교훈과 함께 지리적인 위치도 반드시 확인하면서 말씀을 읽고 들으면 성경이 입체적으로 보입니다.

마가복음 1장부터 오늘 마가복음 2장 말씀까지 그동안 예수님이 다니신 중요한 장소들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 좋겠습니다. 마가복음 1장 4-5절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죄사함의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때 어느 지역의 사람들이 세례요한에게 나아왔습니까?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입니다. 유대는 어디에 있고, 예루살렘은 어디에 있습니까? 유대는 이스라엘의 남쪽의 큰 지역이고, 유대 지역의 핵심 도시는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입니다.

마가복음 1장 9절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예수님의 고향, 예수님이 태어나신 장소는 갈릴리 지역의 나사렛이 아닙니다. 어디입니까? 유대 지역의 떡집이라고 불리는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입니다. 그런데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시고 헤롯 대왕의 위협으로 이집트에 가서 거하시다가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 요셉과 마리아가 원래 살던 갈릴리 지역의 나사렛으로 가셔서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을 보냈기에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 출신, 나사렛 사람으로 불리웠습니다.

갈릴리는 남쪽의 유대 지역에서 쭉 올라와서 북쪽에 있는 커다란 지역입니다. 남쪽의 유대 지역에 비해서 이방인들이 많이 살기에 이방의 갈릴리라고 불리우는 곳입니다. 이 갈릴리 지역의 나사렛에서 예수님은 요단 강으로 가셔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갈릴리 지역의 커다한 호수인 갈릴리 바다, 게넷사렛 호수, 긴네렛 호수라는 커다란 호수인 갈릴리 호수가 있고, 그 갈릴리 호수에서 남쪽의 소금 바다라고 불리우는 염해, 혹은 사해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요단강이 있습니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예수님은 유대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신 후에 마귀의 시험을 받으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공생애의 중요한 시작 어디에서 하신 것입니까? 마가복음 1장 14절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시작은 남쪽의 유대 지역이 아닌 북쪽의 갈릴리 였습니다. 갈릴리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 갈릴리 지역의 핵심은 갈릴리 호수가 있는 가버나움이라는 동네입니다. 마가복음 1장 21절 중요한 도시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갈릴리 지역의 가버나움이 예수님의 사역의 가장 중요한 중심지였습니다.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의 제자 어부인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가버나움 회당에서 권세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가버나움 회당에서 귀신 들린 사람에게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갈릴리 가버나움에 있는 베드로의 집으로 들어가셔서 베드로의 열병 걸린 장모를 고쳐주셨고, 가버나움에서 각종 병이 든 사람을 일일이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피해서 가버나움에서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시고, 제자들을 데리고 가버나움을 떠나서 온 갈릴리 지역을 다니시면서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보면 마가복음 2장 1-2절 다시 가버나움입니다.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우리 예수님은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가장 오래 머무르시면서, 가버나움을 하나님 나라 복음의 센터로 세우시며, 여기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하나님 나라의 세 가지 중요한 사역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든 자를 치유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가버나움을 향하여서 마태복음 11장 23-24절 가버나움은 창세기에서 하나님께 불로 심판 당한 도시인 소돔보다 못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시면서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치유하신 하나님의 나라의 사역의 중심도시, 가버나움은 교만합니다. 그러니 심판을 받기에 합당합니다. 갈릴리 가버나움 문제가 무엇입니까? 가장 큰 문제는 그들에게 믿음이 없습니다. 다른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믿음이 있으신지요? 그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하나님 나라 왕이신 우리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 백성인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그 믿음은 어떤 성격의 믿음인지요?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으로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요?

2. 중풍병자와 네 친구의 믿음

우리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게 보시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떤 환경에서도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혼자의 믿음도 좋지만, 나의 믿음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께 나아가는 믿음입니다.

3-5절 말씀 우리 같이 읽습니다.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가버나움에 한 중풍병자가 있었습니다. 전신마비의 중풍병자 그는 스스로 일어날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그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그도 나병환자처럼 비참한 사람입니다.

한국에서 부목사로 사역을 할 때 갑자기 찾아온 중풍병으로 전신이 마비된 남자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회사도 다닐 수가 없었고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어버렸습니다. 남편의 지극한 사랑을 받던 여 집사님은 하루 아침에 공주처럼 살다가 하루 종일 중풍병에 걸린 남편을 돌보는 시녀가 되었다고 눈물로 한탄을 하였습니다. 하루 아침에 집안의 가장이 중풍병으로 아무 것도 못하게 되었으니 남편과 아내, 그리고 두 아들들은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그토록 힘들어 어려운 순간에 집사님은 중풍병에 걸린 필사적으로 하나님께 나아왔습니다.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며, 기도의 자리를 사모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며 하나님께 나아왔습니다. 집에서 교회까지 한 시간이 걸리는 그 먼 곳에서 얼마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사모하면서 나아왔는지요.

그때 마침 제가 집사님께서 계시는 교구를 맡아서 함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집사님을 긍휼히 여기던 교구장 권사님께서 저에게 제안하셔서 매주 일주일에 한번씩 집사님 집을 찾아가서 함께 예배드리며 기도회를 했습니다. 집으로 찾아가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회를 할 때마다 저에게도 집사님에게도 얼마나 크신 은혜를 주시는지 가장 열심으로 가장 뜨겁게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어려운 시기를 함께 보냈습니다.

그 시기에 운전을 배운 지 얼마 안된 시기여서 자동 변속이 안되는 수동 기어로 된 Grace 교회 밴을 가지고 가파른 언덕을 지나서 함께 기도하시는 권사님, 집사님들을 데리고 식은 땀을 흘리면서 그 집에가면 하나님께서 충만한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1년정도 집사님 댁을 방문한 것 같았습니다.

미국으로 유학올 때 가장 아쉽고 서운했던 것이 이제는 더 이상 집사님 가정을 방문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작년에 집사님과 연락이 되어서 20년전의 일을 감사함으로 회고했습니다. 그동안 남편 집사님 많이 회복이 되어서 필리핀에서 함께 선교사역도 감당하시다가 2021년 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함께 옆에서 기도해 줄 수 있는 기도의 동역자가 계신지요? 우리 믿음 생활은 혼자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우리에게 우리 교회 공동체를 주신 것은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섬기고 함께 기도하기 위함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한 마음으로 기도해주던 소중한 동역자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허락하신 복된 선물입니다.

인생의 어려운 순간에 중풍병자는 혼자가 아닙니다. 그에게는 네 사람의 소중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네 사람의 친구는 마비되어 있는 중풍병자 친구를 그냥 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중풍병으로 고생하던 친구를 찾아 갔습니다. 한 마음이 되어서 기꺼이 친구를 메워 예수님께 데리고 갔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을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포기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네 친구들은 얼마나 절실했는지 그냥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의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뜯어내고 구멍을 뚫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를 예수님께 달아내립니다.

5절 말씀 우리 예수님은 중풍병자의 네 친구의 행동을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믿음은 분명 중풍병자의네 친구의 믿음입니다. 그런데 네 친구의 믿음만이 아닙니다. 중풍병자도 이토록 어려운 상황에 절망적인 상황에 예수님께 나아가고 싶어합니다. 그러니 네 친구들의 믿음과 중풍병자의 믿음입니다.

삶의 어려운 순간에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혼자만 나아가지 않고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믿음의 동역자 없이, 혼자 성경읽고 혼자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지요? 교회는 부족하고 연약해도 함께 기도하고 함께 말씀 붙들고, 함께 삶을 나누는 우리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3. 중풍병보다 더 중요한 죄 사함

간절한 믿음으로 나아온 중풍병자에게 우리 예수님이 그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말씀하십니다. 지금 중풍병자에게 중풍병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5절 말씀 다시 읽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중풍병자와 네 친구의 믿음은 우리 예수님께 나아가면, 우리 예수님은 얼마든지 중풍병도 고쳐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도 고쳐주신다는 믿음 참 좋은 믿음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지금 중풍병에서 낫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죄의 문제입니다. 인생의 가장 큰 문제는 병이 아니라 죄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도 우리 인생의 고난과 고생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지독하게 자기 중심적인 Sin이 문제이며, Sin에서 나오는 sins 죄들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으로 믿음을 선물로 주실 때 반드시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는 것이 죄의 문제입니다. 죄가 근본이고 죄가 뿌리입니다. 모든 인간의 문제는 죄에서 나옵니다. 중풍병에서 낫은 사람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건강한 몸으로 다시 죄를 짓습니다.

대학생 시절 가장 존경하던 목회자이며 설교자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 그분의 책을 하나 하나 찾아서 다 읽고 정리하면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교회의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십니다. 얼마나 성경을 탁월하게 설교를 하셨는지 글자로 읽는 설교문이어도 머리에 마음에 감동으로 남았습니다.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설교문을 읽으면 마음이 뜨거워져서 밤 하늘을 바라보며 그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목사님처럼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고 전할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장래가 촉망되었던 영국 최고의 왕립의사 호더경의 수석 assistant 의사였습니다. 의사로 일하면 일 할수록 환자로 찾아오는 사람들의 문제는 병이 아니라 병의 근원이 되는 죄가 문제임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의사로 병을 고쳐주면 사람들은 더 큰 죄를 짓고 더 큰 병을 얻어서 다시 병원으로 찾아옵니다. 그러니, 의사로 일하는 것보다 사람의 가장 근본적인 죄이 문제를 해결하는 몸을 고치는 의사가 아니라 사람의 영혼을 고쳐주는 영혼의 의사가 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영혼의 의사 우리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중풍병의 치유보다 먼저 죄사함을 선언하십니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죄 사함의 은혜를 경험하셨습니까?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 그 은혜를 깊이 경험하셨습니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믿음의 사람의 유일한 공통점은 죄 사함 받은 벅찬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은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물의 사람이 되고, 심령이 가난한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장래가 촉망되던 의사의 삶을 포기하고 영혼의 의사가 되기로 결정한 가장 중요한 원인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나로 하여금 내가 죄인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내가 죄와 허물로 죽은 사람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의 노예이며 마귀의 노예이며 육신의 노예였음을 하나님이 알게 하셨습니다. 내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함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으며 영원한 형벌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음을 하나님이 깨닫게 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로 하여금 내 모든 문제와 모든 아픔의 진정한 원인은 하나님을 미워하고 죄를 사랑하는 악하고 타락한 본성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것은 저 뿐 아니라 여러분 모두에게 적용되는 사실입니다. 제 문제는 내가 악한 일들을 했다는 데 있을 뿐 아니라 내 자시늬 존재에서부터 잘못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것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요!!! 자신의 죄를 깨달아 우리 예수님을 통해서 죄 사함의 은혜, 용서함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하늘이 열린 사람입니다. 가장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4. 서기관의 악한 생각과 죄 사함의 은혜

죄사함의 은혜가 선포될 때 바로 그때는 복음의 원수 마귀도 역사합니다. 6-7절 말씀 예수님의 죄 사함의 선포가 몹시 불편한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는가?”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의 은혜가 임할 때 옆에 있던 하나님 말씀을 잘 알고 있던 서기관들의 마음에는 그 은혜의 현장에 있으면서 은혜가 아니라 시험에 들었던 마음의 생각이 있습니다. 신성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분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는가?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 한분 외에는 이 땅에서는 능히 죄를 사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서기관들이 생각하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사해주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레위기 23장 27절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희는 성회를 열고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이날에는 어떤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속죄일인 유대월력 7월 10일에 오직 대제사장만이 성막의 지성소에 들어가서 가장 거룩한 속죄소에 피를 뿌려야 하나님이 죄를 사해주시는 것이 가능한데, 지금 중풍병자의 죄를 사해주시는 분은 누구이라는 것입니까?

오직 하나님 한분만 죄를 사해주시는 지금 중풍병자의 죄를 사해주시는 분은 누구라는 것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신성모독입니다.

8-10절 서기관들의 마음의 악한 생각을 아셨던 우리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죄 사함을 선언하는 문제와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말 둘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쉬운 가요? 사람들이 보기에는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기적이 더 어렵습니다.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보이지 않는 죄 사함보다 눈에 보이는 기적이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죄는 오직 하나님만이 사해주십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시편 103편 1-5절).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하나님과 동등되신 하나님이 이 땅에 성육신하여 예수님으로 오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며, 우리의 연약한 병을 고쳐주시는 분이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우리 믿음의 대상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는 이 땅에 오신 대제사장이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스스로 속죄의 피를 흘리시는 어린양이 되어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위한 대속의 피를 흘리시고 다 이루었다 말씀하시는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이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 우리 인생의 고난의 문제 오직 예수님께 가지고 와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믿음으로 사고하고 믿음으로 행동합니다.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고 함께 삶을 나누고 함께 말씀을 나누면 믿음의 더 강력한 믿음의 공동체가 되어집니다. 우리 예수님은 지금도 마음에 악한 생각으로 가득찬 불신의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지금도 믿음의 사람을 찾으시고,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고, 믿음의 사람을 들어 영광받으십니다.

우리 알버커키 뉴멕시코,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에는 불신의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으로 충만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오늘 중풍병자에게 우리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 11-12절 말씀 함께 읽습니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우리 예수님께 죄 사함을 받은 중풍병자 더이상 소망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입니다. 중풍병자가에게 명령하십니다.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예수님의 명령의 말씀에 중풍병자는 일어납니다. 누워있던 매트를 가지고 모든 사람앞에서 당당히 걸어서 나아갑니다. 이제 누워있다가 일어나 나간 그 중풍병자, 죄 사함 받고 중풍병에서 치유함을 받고, 모든 사람앞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중풍병자, 남은 생애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일평생 예수님을 드러내고 증거하고 간증하고 온전한 몸과 마음과 생각으로 하나님 앞에 영광돌리며 살아갔을 것입니다.

우리 지역에서 우리의 삶이 예수님을 통해서 받은 죄사함의 은혜, 치유와 회복의 은혜, 절망에서 받은 소망의 은혜로 충만해서 복음과 사랑으로 우리 지역의 영혼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5. 우리의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감사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주님의 크신 은혜를 찬송합니다. 소망없는 중풍병자, 절망 가운데 중풍병자도 예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믿음 주시어, 중풍병자의 네 친구 같은 정금같은 믿음을 우리에게도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인생의 모든 문제를 가지고, 우리 삶의 절망을 가지고 이 시간 온전히 주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우리 은혜와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받아주시고, 치유하시며, 회복의 은혜를 더하여주옵소서. 이시간 우리에게 아직 믿음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옵소서. 전심으로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에게 값없이 베풀어주시는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문제 죄사함의 은혜, 죄 용서함의 은혜를 이 시간 간구하오니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주옵소서. 이제는 몸과 마음이 온전히 회복되어 주저 앉은 우리의 삶이 아니라 일어나서 당당히 우리 지역에서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불신의 삶이 아닌 믿음의 삶으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탁월한지 우리 지역에서 드러나게 하시며 우리의 믿음의 삶을 통해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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