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교육

출애굽기 (6) 출 3장 11-22절 모세의 소명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2-02-26 11:57
Views
537
1. 뉴멕시코의 tumbleweed

뉴멕시코에 온지 얼마 안되어 바람이 부는 날 운전을 하다가 놀랐습니다. 무슨 나무인지 돌인지 구분이 안되는 것들이 도로에 굴러다니는데 피해야 하는지 그냥 가야하는지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익숙한 tumbleweed입니다. 지난 1월에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날 다음날 아침에 집 밖에 나가보니 tumbleweed가 집 주변에 가득했습니다.

쓸모 없이 바람부는 날 돌아다니는 tumbleweed가 마치 지난주 토요일에 살펴본 하나님이 임재하신 떨기나무 같습니다. 광야의 떨기나무 그리 쓸모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광야의 떨기나무 가운데 임재하셔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광야의 떨기나무 애굽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부족한 이스라엘 백성이며, 동시에 미디안 광야에서 지난 40년간 장인의 양을 치던 nobody 모세같은 존재입니다.

모세의 나이 80세,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는 그리 중요한 somebody가 아닙니다. 한때는 somebody라도 지금은 nobody 떨기나무 같은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진행하실 때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부족하여 연약한 사람, 지난 주 토요일 본문 사람을 사용하시기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사람을 부르십니다. 이것이 소명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소명자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소명자에게 필요한 특별한 자질이 있을까요?

그 떨기나무 같은 모세에게 10절 하나님은 말씀하시며 소명하십니다.“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떨기나무 같은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겠다. 그리고 모세를 통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겠다.

하나님의 소명의 말씀에 이어서 모세와 하나님과의 긴 대화가 시작됩니다. 출애굽기 3장 11절부터 4장 17절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과의 대화 가운데 가장 긴 대화입니다. 부족한 종 모세를 소명하셨을 때는 매우 조심스럽게 상세하게 말씀하십니다. 부족한 사역자 모세를 소명하시면서 자신을 계시하신 우리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여러분이 섬기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2. 모세의 첫번째 거절과 하나님의 응답

하나님의 소명의 말씀을 들은 모세는 모두 5번 하나님의 소명에 대해서 질문으로 거절하며 반론을 제기합니다. 모세의 첫번째 거절의 반론이 11절입니다.“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의 말씀에 모세는 거절합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 말씀대로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나는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40년 전에는 무엇인가 해 보려고 했던 모세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40년간 미디안 광야에서 철저하게 낮고 낮아져서 이제는 무엇인가 해보려고 해도 자신감도 없고 의욕도 없고 부족함만 가득한 떨기나무 같은 모세입니다.

이런 부족한 모세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12절 부족한 모세를 설득하시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12절 우리 같이 읽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하나님도 모세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세의 부족함이 아닙니다. 내가 반드시 나와 함께 있으리라. 모세가 어떤 사람인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족한 모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소명하실 때 우리가 얼마나 부족한지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부족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신가? 하나님이 부족한 우리와 함께 있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부족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 임마누엘의 하나님,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주시는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상이 가득한 음란한 도시 고린도에서 사역을 시작하면서 담대한 사도 바울도 두려웠습니다. 고린도에서 사역을 시작하기전에 아테네에서 사역이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며,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을 간구하였지만, 여전히 두려웠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18장 9-10절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사도 바울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누구인지, 모세가 누구인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모세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그리고 모세에게 소명의 증거를 주십니다. 네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섬리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하나님께서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겠고,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증거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3. 모세의 두번째 거절과 하나님의 응답

모세가 아니라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중요하다면, 모세의 두번째 질문은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이십니까? 묻는 질문이 13절 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을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모세는 여전히 자신이 없습니다. 스스로 부족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증거를 주셔도 모세를 애굽으로 보낸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부족합니다. 모세의 두번째 거절의 반응도 일리가 있습니다. 지난 40년간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80 평생에 하나님은 한번도 모세를 만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의 하나님은 부모님에게 말씀으로만 듣던 하나님이었습니다.

지난 400년동안 하나님은 애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애굽의 온갖 종류의 신들과 하나님이 구별되지 않습니다. 애굽의 신들과 다른 하나님이시라면, 어떤 하나님이신지 더 구체적인 하나님의 계시가 필요합니다.

14-15절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님이 누구인지 하나님이 스스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말씀입니다.“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모세처럼 이렇게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계시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하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이름을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I am who I am. 나는 나. 나는 다른 것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스스로 존재하는 분으로 자신을 소개하십니다.

2021년 작년 가을 다니엘서 말씀 사경회에서 류호준 교수님께서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하셨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 히브리어 "에흐웨 아쉐르 에흐웨" 나는 나다. 나는 지존자이다. 나는 너희가 어디에 있든지 나는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I will be there everywhere you are. 너희가 어디에 있든지 애굽이든지, 광야에든지, 가나안 땅에든지 너희가 어디에 있든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나온 하나님의 이름이 신성 4자 tetragrammaton인 YHWH 야훼, 우리 말 여호와로 번역되는 하나님의 존귀한 이름입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 여호와 하나님은 창세기에서는 조상들에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야훼, 여호와, 조상의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원한 이름, 대대로 기억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소명을 주셔서 16-18절 말씀하십니다. “너는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확실히 보았노라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 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지금 부족한 모세를 소명하셔서 애굽으로 가라 말씀하시며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말하라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모세에게는 특별히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 조상의 하나님의 이름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당한 고난을 확실히 보고 너희를 돌보아 애굽에서 인도하여 조상들에게 언약하신 가나안 족속이 사는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하나님의 마스터 플랜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모세가 구하지 않은 가장 어려운 애굽의 왕을 어떻게 치실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출애굽하게 하실지 다 말씀하십니다. 이제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들은 모세는 임마누엘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도 우리 하나님은 여전히 임마누엘 부족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전히 여호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거기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언약하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임마누엘, 여호와, 언약의 하나님을 알려주시고 모세를 부르셨다면, 임마누엘, 여호와, 언약의 하나님을 아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마땅한지요?

우리는 우리 지역에서 하나님이 부르신 소명을 따라 신실하게 살아갑니다. 우리 지역에서 하나님의 존귀한 이름을 부르며, 오늘도 임마누엘 하나님과 동행하며, 여호와 지금 여기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언약에 신실한 하나님 앞에 우리도 신실하게 살아갑니다. 이 시간 그 하나님을 깊이 알고 기도하길 원합니다.

4. 우리의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임마누엘 하나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약속하신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 스스로 계시며 부족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시는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한번 맺은 언약은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의 모든 상황과 환경 가운데 두려워하지 말게 하시며, 아무리 비천하고 연약한 자라도 우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중요하기에 오늘도 부르신 소명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에 가장 합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 시간 기도할 때 우리의 남은 생애를 통해서 우리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며 원하시는 믿음의 삶을 살게 하시며, 우리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지게 하옵소서.

전쟁이 시작된 우크라이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그 땅을 지켜주옵시며, 악한 자의 도모를 그치게 하시며, 그 땅에 살롬의 은혜를 회복시켜 주옵소서. 이 시간 기도할 때 감사하게 하시며, 충만하게 하시며, 평안하게 하시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게 하옵소서. 우리와 동행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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