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교육

출애굽기 (4) 2장 11-25절 애굽의 Somebody에서 미디안 광야의 Nobody로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2-02-12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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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로의 궁전의 Somebody 히브리 사람 모세

출애굽기 2장 10-11절 사이에는 40년의 시간의 흐름이 있습니다. 모세는 나일강에서 바로의 딸에게 건짐받아 40년간 바로의 딸의 입양된 아들로 애굽의 궁정에서 세계 최고의 교육을 받습니다. 모세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사도행전 7장 스데반의 설교를 보면, 21-22절 이렇게 말씀합니다. “버려진 후에 바로의 딸이 그를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이 능하더라”

바로의 딸 그냥 바로의 딸이 아닙니다. 막강한 권력의 바로의 딸이었습니다. 그 딸의 아들이 되어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서 말과 하는 일 능한 탁월한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히브리 노예 출신의 모세이지만, 애굽의 궁정에서 세계 최고의 교육을 받아 40년간 자라왔다면 이제 무엇인가를 할 나이가 된 것입니다. 모세를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은밀하게 준비하신 모세를 어떻게 사용하실까요? 모세는 어머니의 아들로 바로의 궁전에서 권력 다툼의 소용돌이 속에서 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출애굽기 2장 11-12절 지난 40년간 하나님께서 준비시키시고, 모세의 어머니가 양육하고, 바로의 딸이 키워준 모세가 한 첫번째 중요한 사건입니다.“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이 말씀을 보면, 지난 40년간 바로의 딸로 애굽의 궁정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온 모세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했는지 알수 있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궁정에서 애굽의 교육을 받았지만, 모세의 정체성은 애굽 사람이 아니라, 히브리 사람입니다. 애굽의 궁정에서 자랐지만, 모세는 애굽 사람이 아니라 히브리 노예를 자기 형제들로 여기면서, 동족 히브리 사람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보다는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자세하게 보는 것입니다. 같은 동족 히브리 사람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마음이 가는 그들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애굽에서 자란 모세가 애굽 사람이 자기 형제가 아니라 히브리 사람을 자기 형제로 여기고 자기 형제가 애굽 사람에게 비참하게 맞는 것을 보고 참을 수 없어서 동족 히브리 사람을 죽도록 때린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서 모래 속에 감추었습니다.

40살의 나이에, 애굽의 궁정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은 모세의 정체성은 애굽 사람이 아니라 히브리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겠습니까? 아이가 태어나서 3세 이전에 두뇌 발달이 거의 완성된다는 교육학 이론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3세 이전의 가정에서의 자녀교육이 정말 중요합니다. 애굽의 궁정에서 본격적인 교육을 받기 전에 모세는 모세의 어머니 요겟벳을 통해서 히브리 교육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7장 스데반의 설교를 보면, 모세가 히브리 노예가 죽도록 맞고 있었을 때 애굽 사람을 죽인 살인 사건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23-25절입니다.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한 사람이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

히브리 사람 모세는 우연히 애굽 사람이 히브리 노예를 때리는 것을 본 것이 아닙니다. 동족 히브리 형제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몸은 바로의 궁전에서 호화로운 삶을 누리지만, 그 마음은 고난 받는 자기 백성에게 있습니다.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마음이 바로 이 마음입니다. 그는 자신의 안일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현재와 미래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고난 받고 있는 동족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고자 합니다. 모세는 히브리 사람입니다. 모세도 히브리 사람입니다. 모세는 히브리 사람을 위하여 잘 준비된 히브리 사람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바로 이 때 히브리 노예의 지도자로 쓰임을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혈기 가득한 지도자 모세는 아직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가 아닙니다. Moody 목사님께서 모세의 생애를 간략하게 잘 이야기 했습니다. Moses sent 40 years thinking he was somebody; 40 years learning he was nobody; and 40 years discovering what God can do with a nobody. 모세는 40년동안 바로의 궁전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면서 그가 무엇인가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했고, 미디안 광야 40년동안 그가 아무 것도 아닌 사람임을 밷웠고, 그리고 마지막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배웠다.

2. 미디안 광야에서 Nobody 모세

Somebody 대단한 사람 모세는 하루 아침에 nobody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살인자 모세를 죽이고자 하는 바로의 낯을 피하여 애굽의 바로의 영향력이 미치는 않는 곳인 애굽을 떠나서 시내반도 북서쪽의 미디안 광야로 도망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애굽의 바로의 딸의 아들 신분에서 바로의 궁전에서 호화로운 삶을 살다가 하루 아침에 거처없이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살인자, 도망자, 나그네 객이 되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미디안 제사장 르우엘의 딸 십보라를 만나 결혼을 하며 장인의 양을 치는 이름없는 목자로 40년간을 철저하게 잊혀진 사람으로 Nobody로 살았습니다.

22절 미디안 광야에서 낳은 첫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지었습니다.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이르되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게르솜의 이름은 나그네입니다. 어느 아버지가 아들의 이름을 나그네라고 지을 수 있을까요? 자신의 신세에 대한 한탄이며 모세가 처한 비참한 상황을 말합니다. 모세의 미디안 광야에서의 40년간의 비참한 삶의 시간이 모세에게 필요했을까요?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정금같은 사람으로 만들어가시기 위해서 최고의 좋은 환경만 사용하지 않으시고, 비참하고 슬프고 절망적인 상황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가정교육과 최고의 교육으로만 만들어지지 않고 스스로 아무 것도 아닌 사람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임을 깨닫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시키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최고의 대학을 최고의 성적으로 마치고, 제 나름대로 사역자로 잘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명감을 갖고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대학원에 입학해서 감사한 마음으로 신학공부를 하면서, 첫 사역지에서 큰 기대감을 갖고 본격적으로 첫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대감이 사역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무너져버렸습니다. 신학훈련으로 배운 말씀으로 사역에 열심을 내고 싶었는데 교회 환경은 삽질과 육체노동이 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왜 그곳에 있어야 하는지 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빨리 그런 환경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담임목사님과 풀타임 부목사님은 강원도 원주로 수양관을 짓는다고 떠나계시고, 교육전도사인 저는 풀타임으로 신학공부하면서 일주일에 평균 5번의 예배와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했습니다. 사역이 너무 괴로워서 하나님께 기도하니, 지금 있는 곳이 모세가 40년간 nobody로 훈련을 받은 미디안 광야라는 생각을 주십니다.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 사역하면서도 아무 것도 아닌 사람으로 낮아짐을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사역지였습니다.

타국에서 나그네로 잊혀진 존재로, 아내 십보라의 눈치를 보면서, 장인 르우엘의 양을 치는 목자로 비참하게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정금같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하시는 시간이 필요하시는 모세에게 그런 비참한 환경을 허락하십니다.

모세는 사람들에게 잊혀진 Nobody였지만 우리 하나님은 모세를 잊지 않으시고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능력을 보여주십니다.

23-25절 비참한 모세와 대조적으로 계속해서 강조되는 우리 하나님이 드디어 나타나십니다. 우리 이 말씀 함께 읽습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애굽에서 미디안의 모세처럼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습니다. 그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소리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언약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세운 언약을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을 돌보시며 기억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부족하고 미약하고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지만,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고통소리를 들으시고, 언약을 잊지 않으시고 돌보시고 기억하십니다. 그러기에 아무 것도 아닌 자를 더 훈련시키시고 준비시키시고 하나님의 때에 가장 아름답게 사용하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이 시간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3. 우리의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절망의 시대, 온 세상이 온통 앞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고통 가운데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는 우리 하나님이 계시기에 절망만 하지 않고 간절히 기도하며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우리 고통 소리를 들어주옵소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약속을 기억하여 주시며, 돌아보시며, 우리를 기억하옵소서.

애굽의 바로의 궁전에서 물에서 건져내신 모세를 최고의 교육으로 훈련시키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동시에 미디안 광야에서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모세를 또한 훈련시키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잘 나가고 인정받고 존경받는 위치에 서게 하심도 감사하며, 세상에서 잊혀진 존재로 인정 받지 못하는 낮고 낮은 자리에 두게 하심도 감사드립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람으로만 정금같이 훈련되게 하옵소서. 쓰임받던 쓰임받지 못하던 아무 것도 아닌 자를 하나님의 때에 사용하시는 그 크신 은혜만 잊지 않게 하시며, 살든지 죽든지 우리의 몸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영광만 나타나게 하옵소서.

이 시간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받아주옵소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로 아버지께 담대히 나아가 기도하게 하옵소서. 우리 삶을 주님 앞에 의탁합니다. 받아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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