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15) 갈 6:1-10절 성령 안에서의 새로운 삶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2-01-08 11:06
Views
416
1. 성령 안에서의 삶
지금까지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율법 아래의 삶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를 얻음을 강조했습니다. 믿음으로 의를 얻었으니 그러면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은 이제는 율법이 아니라 성령입니다. 5장 18절 말씀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입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율법 아래의 삶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행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 성령으로 살아가는 삶이 이제는 의롭다 여김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10절에서 사도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령 안에서의 삶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어떤 삶이 성령안에서의 삶입니까?
2. 정죄가 아닌 서로 짐을 지는 삶
첫째, 성령안에서의 삶은 서로 정죄하는 삶이 아니라 서로 짐을 지는 삶입니다.
1-2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 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율법 아래에 있는 율법주의자들은 서로 짐을 지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주의자들인 바리새인의 행동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마 23:3-4). 율법을 강조하는 바리새인들은 자기 자신에게는 짐을 지우지 아니하며, 다른 사람에게는 무거운 짐을 지웁니다. 율법을 강조하는 바리새인들은 그 율법으로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는 데에 관심이 있습니다. 율법을 강조하던 바리새인은 그 율법으로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고 다른 사람들은 멸시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율법의 조항들을 지키지 못했을 때 이들의 관심은 그 율법으로 사람들을 정죄하고 죽이고,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들어내어 자신은 얼마나 의로운지 나타내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 아래 있는 신령한 자의 삶은 율법 아래의 삶과 큰 대조를 보입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신령한 사람들은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는 그리스도의 법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형제나 자매가 범죄한 일이 드러났을 때 정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바로잡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여기서 바로잡는다는 것은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회복하는 것은 온전케 하는 것이며, 이것의 의미는 구멍난 그물을 고치는 것이고, 부러진 뼈를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구멍난 그물을 고치며, 부러진 뼈를 바르게 하는 회복을 목적으로 하되 그 방식은 정죄가 아니라 온유한 사랑입니다.
율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는 것은 참 쉽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는 사람을 고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믿음이 적은 자를 실족시킬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데리고 왔을 때 이들의 관심은 율법에 의하면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는 구약의 명령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겠는가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요 8:11). 이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그리스도인의 방법입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정죄가 아니라 온유한 사랑입니다. 온유한 사랑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회복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믿음의 사람이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도 언제든지 시험을 받을 수 있는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죄를 지을 수 있고, 우리도 실수 할 수 있고, 우리도 넘어지고 철저하게 실패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질병에 걸릴 수 있고, 우리도 큰 사고로 실족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큰 죄에 빠져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성령 안의 그리스도인의 삶은 온유한 사랑으로 서로 회복할 뿐만 아니라 서로 짐을 지는 삶입니다. 2절의 서로 짐을 지는 것과 5절의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는 말씀 사이에 모순이 없습니다. 5절의 짐은 자신만이 질 수 있는, 자신만이 져야 할 가벼운 짐입니다. 2절의 짐은 혼자의 힘으로는 지기 힘든 무거운 짐입니다.
성령 안의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스스로 져야 하는 짐이 있고, 혼자 지기에는 벅찬 짐은 서로 나누어 질 수 있는 사랑에 근거한 삶입니다. 혼자서는 감당이 안되는 삶의 무거운 짐을 만났을 때 믿음의 사람은 이 무거운 짐을 조금씩 나누어 져야 합니다. 큰 짐을 서로 나누면 감당할 수 있습니다. 큰 슬픔을 조금씩 나누면 감당할 수 있는 슬픔이 됩니다. 큰 고통을 함께 나우어 지면 그래도 이길 수 있는 고통이 됩니다.
우리 다음주 토요일 오후 2시는 암투병중에 한국에서 소천하신 우리 교회 임진희 자매님의 이경희 어머님의 장례예배를 우리 교회에서 드립니다. 인간이 이 땅에서 겪는 가장 큰 슬픔은 사랑하는 부모님을 잃어버리는 큰 슬픔입니다. 우리교회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말씀에 순종하여 함께 웃어주고, 함께 울어주는 서로 짐을 나눠지는 성령안에 있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3. 좋은 것을 나누고 좋은 것을 심고 거두는 삶
둘째, 성령 안에서의 삶은 좋은 것을 나누고 심고 거두는 삶입니다.
6-7절입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성령 안에서의 삶은 그 핵심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말씀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성령안에서의 삶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혼자 움켜지는 것이 아니라 나누고 섬기며, 특별히 심는 삶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권면합니다. 사도 바울 자신은 자신의 사역으로 인해서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가르침을 받은 교회들을 향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신령한 일을 행하는 자들의 수고를 기억하고 그들과 좋은 것을 나누라고 늘 강조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라”(살전 5:12-13)고 말씀합니다.
성령 안에서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며,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의 수고를 알아주고 귀하게 여기며, 말씀의 사역자들이 이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잘 협력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우리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입니다.
2022년도를 시작하면서 복음과 사랑으로 지역을 섬기는 교회라는 표어로 올해의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지역에 우리 교회를 두신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지역을 복음으로 사랑으로 섬기기 위함임을 깨닫습니다. 복음과 사랑으로 지역의 소중한 영혼을 섬기는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물질도 사용하고, 시간도 사용하며, 우리 자신도 기꺼이 내어주는 섬김의 삶을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어떻게 섬기는 삶을 살았는지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후 12장 15절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바울은 고린도교회 영혼을 위하여 재물을 사용합니다. 한글개정 성경은 허비라고 번역했습니다. 영혼을 위하여 재물을 허비합니다. 그리고 자신까지 아낌없이 내어줍니다. 그것이 영혼을 사랑하는 진정한 방법입니다. 영혼을 섬기기 위해서 복음과 함께 재물을 허비하고, 자기 자신까지 아낌없이 내어줍니다. 그것이 진정한 섬김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좋은 것을 나누고 심는 삶입니다.
이렇게 영혼을 위하여 수고하고 재물을 사용하고 자신까지 내어주는 사람은 무엇을 얻겠습니까? 갈라디아서 6장 8-9절 약속의 말씀이며 경고의 말씀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8-9)는 약속의 말씀이 큰 위로가 됩니다.
4. 우리의 기도
이 시간 말씀을 맺으면서 우리 자신과 교회를 생각하며 기도하길 원합니다. 첫번째, 그리스도의 삶은 성령 안에서의 삶입니다. 우리 우리 교회 공동체 내에서 범죄한 일이 있을 때는 정죄하는 마음, 판단하는 마음이 아니라 온유한 사랑으로 바로 잡을 수 있는 용기와 무거운 짐을 서로 기꺼이 질 수 있는 사랑이 가득한 우리의 삶과 우리 교회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두번째,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길 원합니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고 하였던 초대 교회 사도들의 본을 받아 교역자들 기도와 말씀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우리 성도들 교역자들 귀히 여기고 사랑으로 나눌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세번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모든 것으로 육체를 위해서 심고 썩은 것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위하여 심고 영생을 거두는 우리와 우리 교회 되게 해달라고 이 시간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어 이제는 내가 살지 아니하고 내 안에서 성령으로 그리스도께서 사시니 감사합니다. 율법 아래 정죄 아래 살지 아니하고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령으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안에 온유한 사랑으로 서로를 대하게 하시고, 혼자 힘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성도들을 위해 기꺼이 서로 짐을 질 수 있는 사랑으로 가득하게 하옵소서. 말씀의 종으로 수고하고 있는 교역자들, 귀한 사역 기쁨으로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더하여 주시고, 성도들에게는 사랑을 받고 하나님께는 인정 받는 자로 드려지게 하옵소서. 성령 안에서의 우리의 삶이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심고 거두는 삶이 아니라 성령을 위하여 심고 영생을 거두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지금까지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율법 아래의 삶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를 얻음을 강조했습니다. 믿음으로 의를 얻었으니 그러면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은 이제는 율법이 아니라 성령입니다. 5장 18절 말씀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입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율법 아래의 삶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행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 성령으로 살아가는 삶이 이제는 의롭다 여김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10절에서 사도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령 안에서의 삶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어떤 삶이 성령안에서의 삶입니까?
2. 정죄가 아닌 서로 짐을 지는 삶
첫째, 성령안에서의 삶은 서로 정죄하는 삶이 아니라 서로 짐을 지는 삶입니다.
1-2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 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율법 아래에 있는 율법주의자들은 서로 짐을 지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주의자들인 바리새인의 행동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마 23:3-4). 율법을 강조하는 바리새인들은 자기 자신에게는 짐을 지우지 아니하며, 다른 사람에게는 무거운 짐을 지웁니다. 율법을 강조하는 바리새인들은 그 율법으로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는 데에 관심이 있습니다. 율법을 강조하던 바리새인은 그 율법으로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고 다른 사람들은 멸시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율법의 조항들을 지키지 못했을 때 이들의 관심은 그 율법으로 사람들을 정죄하고 죽이고,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들어내어 자신은 얼마나 의로운지 나타내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 아래 있는 신령한 자의 삶은 율법 아래의 삶과 큰 대조를 보입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신령한 사람들은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는 그리스도의 법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형제나 자매가 범죄한 일이 드러났을 때 정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바로잡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여기서 바로잡는다는 것은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회복하는 것은 온전케 하는 것이며, 이것의 의미는 구멍난 그물을 고치는 것이고, 부러진 뼈를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구멍난 그물을 고치며, 부러진 뼈를 바르게 하는 회복을 목적으로 하되 그 방식은 정죄가 아니라 온유한 사랑입니다.
율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는 것은 참 쉽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는 사람을 고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믿음이 적은 자를 실족시킬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데리고 왔을 때 이들의 관심은 율법에 의하면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는 구약의 명령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겠는가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요 8:11). 이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그리스도인의 방법입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정죄가 아니라 온유한 사랑입니다. 온유한 사랑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회복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믿음의 사람이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도 언제든지 시험을 받을 수 있는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죄를 지을 수 있고, 우리도 실수 할 수 있고, 우리도 넘어지고 철저하게 실패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질병에 걸릴 수 있고, 우리도 큰 사고로 실족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큰 죄에 빠져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성령 안의 그리스도인의 삶은 온유한 사랑으로 서로 회복할 뿐만 아니라 서로 짐을 지는 삶입니다. 2절의 서로 짐을 지는 것과 5절의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는 말씀 사이에 모순이 없습니다. 5절의 짐은 자신만이 질 수 있는, 자신만이 져야 할 가벼운 짐입니다. 2절의 짐은 혼자의 힘으로는 지기 힘든 무거운 짐입니다.
성령 안의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스스로 져야 하는 짐이 있고, 혼자 지기에는 벅찬 짐은 서로 나누어 질 수 있는 사랑에 근거한 삶입니다. 혼자서는 감당이 안되는 삶의 무거운 짐을 만났을 때 믿음의 사람은 이 무거운 짐을 조금씩 나누어 져야 합니다. 큰 짐을 서로 나누면 감당할 수 있습니다. 큰 슬픔을 조금씩 나누면 감당할 수 있는 슬픔이 됩니다. 큰 고통을 함께 나우어 지면 그래도 이길 수 있는 고통이 됩니다.
우리 다음주 토요일 오후 2시는 암투병중에 한국에서 소천하신 우리 교회 임진희 자매님의 이경희 어머님의 장례예배를 우리 교회에서 드립니다. 인간이 이 땅에서 겪는 가장 큰 슬픔은 사랑하는 부모님을 잃어버리는 큰 슬픔입니다. 우리교회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말씀에 순종하여 함께 웃어주고, 함께 울어주는 서로 짐을 나눠지는 성령안에 있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3. 좋은 것을 나누고 좋은 것을 심고 거두는 삶
둘째, 성령 안에서의 삶은 좋은 것을 나누고 심고 거두는 삶입니다.
6-7절입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성령 안에서의 삶은 그 핵심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말씀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성령안에서의 삶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혼자 움켜지는 것이 아니라 나누고 섬기며, 특별히 심는 삶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권면합니다. 사도 바울 자신은 자신의 사역으로 인해서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가르침을 받은 교회들을 향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신령한 일을 행하는 자들의 수고를 기억하고 그들과 좋은 것을 나누라고 늘 강조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라”(살전 5:12-13)고 말씀합니다.
성령 안에서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며,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의 수고를 알아주고 귀하게 여기며, 말씀의 사역자들이 이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잘 협력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우리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입니다.
2022년도를 시작하면서 복음과 사랑으로 지역을 섬기는 교회라는 표어로 올해의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지역에 우리 교회를 두신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지역을 복음으로 사랑으로 섬기기 위함임을 깨닫습니다. 복음과 사랑으로 지역의 소중한 영혼을 섬기는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물질도 사용하고, 시간도 사용하며, 우리 자신도 기꺼이 내어주는 섬김의 삶을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어떻게 섬기는 삶을 살았는지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후 12장 15절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바울은 고린도교회 영혼을 위하여 재물을 사용합니다. 한글개정 성경은 허비라고 번역했습니다. 영혼을 위하여 재물을 허비합니다. 그리고 자신까지 아낌없이 내어줍니다. 그것이 영혼을 사랑하는 진정한 방법입니다. 영혼을 섬기기 위해서 복음과 함께 재물을 허비하고, 자기 자신까지 아낌없이 내어줍니다. 그것이 진정한 섬김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좋은 것을 나누고 심는 삶입니다.
이렇게 영혼을 위하여 수고하고 재물을 사용하고 자신까지 내어주는 사람은 무엇을 얻겠습니까? 갈라디아서 6장 8-9절 약속의 말씀이며 경고의 말씀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8-9)는 약속의 말씀이 큰 위로가 됩니다.
4. 우리의 기도
이 시간 말씀을 맺으면서 우리 자신과 교회를 생각하며 기도하길 원합니다. 첫번째, 그리스도의 삶은 성령 안에서의 삶입니다. 우리 우리 교회 공동체 내에서 범죄한 일이 있을 때는 정죄하는 마음, 판단하는 마음이 아니라 온유한 사랑으로 바로 잡을 수 있는 용기와 무거운 짐을 서로 기꺼이 질 수 있는 사랑이 가득한 우리의 삶과 우리 교회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두번째,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길 원합니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고 하였던 초대 교회 사도들의 본을 받아 교역자들 기도와 말씀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우리 성도들 교역자들 귀히 여기고 사랑으로 나눌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세번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모든 것으로 육체를 위해서 심고 썩은 것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위하여 심고 영생을 거두는 우리와 우리 교회 되게 해달라고 이 시간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어 이제는 내가 살지 아니하고 내 안에서 성령으로 그리스도께서 사시니 감사합니다. 율법 아래 정죄 아래 살지 아니하고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령으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안에 온유한 사랑으로 서로를 대하게 하시고, 혼자 힘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성도들을 위해 기꺼이 서로 짐을 질 수 있는 사랑으로 가득하게 하옵소서. 말씀의 종으로 수고하고 있는 교역자들, 귀한 사역 기쁨으로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더하여 주시고, 성도들에게는 사랑을 받고 하나님께는 인정 받는 자로 드려지게 하옵소서. 성령 안에서의 우리의 삶이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심고 거두는 삶이 아니라 성령을 위하여 심고 영생을 거두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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