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교육

갈라디아서 (13) 갈 5:1-15절 자유와 사랑의 섬김으로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12-11 13:28
Views
488
1. 아래층 아주머니로부터의 자유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속박을 당해서 어려운 경험이 있으십니까? 속박에서 해당되는 자유가 무엇인지 실감나게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칼빈신학교가 있던 소도시 Grand Rapids에서 대도시 Detroit 지역으로 이사하면서, 아파트 2층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아파트 아래층에 사시는 아주머니에게 계속 층간소음으로 컴플레인을 받으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컴플레이을 하는지, 새벽에 교회오기 위해서 샤워를 해도, 저녁 늦게 2층에서 걸어다녀도, 하루는 밤 12시에 경찰도 부릅니다. 경찰이 와서는 너희는 아무 잘 못 없다. 마음껏 자유롭게 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유롭게 살수 없습니다. 밤에는 화장실에도 잘 못 가고, 집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 힘들어서 거실에 있는 쇼파에서 거의 잠을 자고,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 놀지도 못하고, 막내 동률이는 까치발로 생활했습니다.

1년을 생활하다가 도저히 안되어 지하실도 있고, 일층과 이층이 있는 타운하우스로 이사를 갔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가장 좋았던 것은 밤 늦게도 마음껏 화장실 갈 수 있고, 밤에도 샤워할 수 있고, 자러 갈 때도 누구 눈치 안보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자유를 누리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실감을 했습니다.

2. 하나님의 자녀의 정체성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는 갈라디아서 오늘 사도 바울은 할례와 율법의 속박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의 합당한 삶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합당한 삶의 두 가지는 자유와 사랑으로 섬기는 삶입니다.

갈라디아서 후반부의 시작인 5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동안 다룬 3-4장의 핵심을 놓치면 안됩니다.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바울은 갈라디아서 3-4장에 걸쳐 하나님의 자녀의 정체성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했습니다.

첫째, 갈 3:6-7절을 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줄 알지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어 의에 이른 것처럼 할례와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둘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의 의의 복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전달됩니까? 갈 3:13-14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리에게 임하는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 – 값을 주고 사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우리를 속량, 대속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저주의 죽음을 믿는 자들이며, 믿는 자에게 약속의 성령이 임합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성령이 임하여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놀라운 자격이 생깁니다. 갈 4:6-7절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이제,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며, 성령을 받아 하나님을 이제는 마음껏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정체성은 얼마나 놀라운 신분의 변화입니까?

3. 변화된 신분, 변화된 삶

신분이 바뀌면 변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면, 더 이상 종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 성령이 임한 하나님의 자녀는 이제 더 이상 종이 아니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종과 하나님의 자녀의 가장 큰 차이는 자유입니다. 5:1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이 말은 얼마나 바울 당시 로마시대에는 혁명적인 말씀인지요? 바울이 살고 있는 시대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많은 종들이 있었습니다. 로마에만 6천만명의 종이 있어, 로마에는 종과 자유인의 비율이 4:1입니다. 자유인 한 명당 종은 4명인시대 거의 대부분이 종인 시대입니다. 종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주인의 허락이 없이는 결혼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주인이 짝지워주는 대로 결혼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결혼해서 잘 사는데도 주인이 이혼을 하라고 하면 이혼도 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로마 제국 당시 최대의 행운은 종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이며, 최고의 행복은 종의 생활을 하던 자가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인가? 두가지 중요한 자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죄로부터의 자유이며, 둘째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롬 6:17-18절을 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자녀는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 자유하게 된 의의 종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죄의 종입니다. 죄를 안짓고 싶은데, 안 지을 수 없습니다.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죄의 종입니다. 어떻게 죄의 종에서 해방됩니까? 롬 8:2절의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아닌 성령의 법으로 해방된 자유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자유 한 자유민 입니다.

그러기에 갈라디아서 5장 2-4절 말씀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더이상 우리는 율법의 종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서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그 은혜에서 떨어지지 아니하고 율법의 종에서 자유케 되었습니다.

4.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자유와 사랑의 섬김으로

죄로부터의 자유,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케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의 신분이 되었으니, 이제는 신분이 바뀌면 삶이 바뀌어야 합니다. 이제 종이 아니라 자유인으로,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유민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6절과 13절의 결론의 말씀입니다. 갈 5:6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라.” 갈5:13절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으로 부터 자유를 얻었는가? 우리는 죄에서 해방, 율법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입니다. 종의 멍에에서 벗어난 이 자유를 무엇에 사용할 것인가 하는 과제가 우리들에게 주어졌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자유로 인하여 타락과 방종의 길로 가지 않기 위하여 이제부터는 전혀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14절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에서 해방되고 율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얻은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엄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은혜와 자유는 함께 가는 법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 은혜와 자유를 죄를 맘대로 지어도 된다는 면허증처럼 생각합니다. 한번 예수님을 믿으면 더이상 회개도 필요없고, 마음대로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율법주의의 반대 극단인 율법폐기론자가 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어도 구약의 모든 율법을 다 지켜야 된다고 하는 율법주의가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양극단을 다 경계하며 이 두 극단에 빠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공로로 값없이 구원받았다고 해서 육체의 정욕대로 살아도 된다는 죄의 면허증을 얻은 것처럼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되고, 반대로 율법을 다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율법주의로 돌아가서도 또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주의, 율법폐기론, 두 양극단은 다 이단입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고 생명 주시기 위하여 생명을 바친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 자유로 예수님처럼 사랑으로 섬기는 삶을 살아갑니다. 마가복음 10장 42-45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예수님의 뜻은 이제는 그 자유로,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며 섬기는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지옥과 천국에 관한 어느 글이 생각닙니다. 어떤 사람이 지옥과 천국에 가보니 다른 것이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지옥에도 산해진미, 천국에도 산해진미가 있는데, 사람들이 밥상에 둘러 앉아있는데, 팔을 못 구브리고 팔을 접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지옥에서는 전부 배고파죽겠다고하고 천국에는 서로 감사하다, 행복하다,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지옥은 모두 자기입에만 넣으려고 하는데 전혀 먹을 수 없고, 천국은 다들 집어서 상대방에서 넣어주니 모두 풍성하고 감사하고 행복하고 사랑이 넘칩니다.

5. 우리의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 시간 다시금 우리의 정체성으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죄와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해방하기 위해서 십자가 저주의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이제는 율법의 노예가 아닌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유인의 삶을 살라고 주신 은혜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제는 우리를 향하신 그 크신 사랑에 감사하며, 감격하며, 주신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않게 하시며, 자발적으로 스스로 사랑으로 종노릇하는 섬기는 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 섬김이 필요한 부분을 찾게 하시며, 우리 지역에 섬김이 필요한 곳을 찾아 우리 예수님처럼 사랑으로 섬기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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