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산 언약의 율법 (3) 출 21:18-27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11-2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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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밀양과 소설 벌레이야기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있는 인상깊은 영화 밀양의 질문이 있습니다. 영화 밀양의 여주인공 전도연 분의 신애는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의 아들이 유괴되어 살해되었습니다. 그 괴롭고 힘든 상황에서 이웃의 전도를 받아 교회를 다니며 하나님을 믿은 뒤에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을 유괴하고 살해한 사람을 용서하고자 면회를 갔습니다. 그런데 그 잔인한 아들의 유괴범, 살인범이 감옥에서 너무나 평안하게 “전 이미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습니다”라고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주인공 신애는 패닉 상태에 빠졌습니다. 피해자인 내가 용서를 안했는데 어떻게 가해자가 하나님께 이미 용서를 받았다고 평안할 수 있는지, 그렇다면 피해를 받은 사람의 그 엄청난 피해는 어디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 영화는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영화 밀양의 이창동 감독은 영화 이전에 1980년 이청준 작가의 단편소설집 <벌레이야기>라는 소설에서 모티브를 얻어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벌레이야기에서 작가 이청준은1980년 광주에서 벌어졌던 참혹한 역사에서 정작 죄를 지은 사람들은 현실에서 최고의 통치자로 군림하고 광주에 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끔찍한 악몽에 시달려야 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죄와 용서라는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싶어했습니다.
한 달 사이에 소설 <벌레이야기>와 영화 <밀양>의 모티브가 된 노태우, 전두환 한국의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전직 대통령 모두 1952년 정규 육군사관학교 1기생으로 둘 도 없는 친구로 1959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결혼할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회를 보았습니다. 1979년 12월 12일 군사 쿠테타를 이어서 나란히 12대 대통령과 13대 대통령이 되어 나라의 최고의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두 전직 대통령은 퇴임후에 군사 쿠테타와 비자금 사건으로 1995년 11월 12월에 나란히 구속되어 역사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역사의 심판을 받은 후에 두 전직 대통령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갔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비자금 조성으로 추징금 2628억원을 모두 완납했으나 전두환 전 대통령은 2205억의 바지금 추징금 가운데 전재산이 29만원밖에 없다는 유명한 말로 966억원의 미납 추징금을 남겨두었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사과를 했으나, 전두환 전 대통령은 끝까지 피해자들에게 단 한 마디의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에게 한 마디 사과도 없이 우리는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만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 하나님의 율법과 복음은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율법과 복음은 피해자의 보상에 관한 문제를 우리에게 어떻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2. 시내산 언약의 피해 보상법
오늘 본문은 시내산 언약의 세 종류의 율법인 도덕법, 의식법, 시민법 가운데 시민법에 해당되는 피해자의 신체적 피해 보상에 관한 율법의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 만이 아니라 21-23장까지 매주일 살펴보는 시내산 언약의 규정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는 언약의 중요한 규정이기에 자세히 살펴보며, 시내산 언약을 넘어서 성경 전체에서 피해자의 피해보상에 관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모두 3가지 경우에 주시는 피해자의 피해 보상의 율법입니다.
첫번째 경우는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생기는 피해 보상의 경우입니다.
18-19절 말씀입니다.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하나가 돌이나 주먹으로 그의 상대방을 쳤으나 그가 죽지 않고 자리에 누웠다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걸으면 그를 친 자가 형벌은 면하되 그간의 손해를 배상하고 그가 완치되게 할 것이니라”사람이 서로 싸웠습니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도 서로 싸울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잘 싸워워야 합니다. 싸움이 말로만 그쳐야 하고 더 심한 경우 폭력으로 살인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문제는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폭력이 발생하는 경우입니다. 서로 싸우다가 돌이나 주먹으로 상대방을 쳤습니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일 고의적으로 상대방을 돌이나 주먹으로 쳐서 상대방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바로 앞에 있는 출애굽기 21장 12-14절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만일 사람이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의 손에 넘긴 것이면 내가 그를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 사람이 그의 이웃을 고의로 죽였으면 너는 그를 내 제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
십계명의 6번째 계명 “살인하지 말라”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살인하지 말아야 하는데, 고의적으로 돌이나 주먹으로 사람을 죽였습니다. 고의적인 살인의 경우 이 문제에 관한 하나님의 정의는 너를 그를 내 제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 제단에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도 이 문제에 관한 하나님의 정의는 하나님의 제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을 쳐서 죽이게 되었는데, 마음의 의도적인 고의가 아니라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사람을 의도적으로 죽이고자 하는 고의성이 없는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인 경우에는 도피성을 두어서 억울한 또 다른 죽음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살인의 경우는 의도적인가 의도적이지 않은가가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이번에는 서로 싸우다가 돌이나 주먹으로 상대방을 쳤는데, 다행이도 상대방이 죽지 않고 자리에 누워있다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이 경우의 하나님의 정의는 사형이 아니라 배상입니다. 사람을 고의적으로 죽이게 되는 경우 받는 사형의 형벌은 면하지만 “그간의 손해를 배상하고 그가 완치하게 할 것이니라.” 그간의 손해는 그동안 일해서 벌 수 있는 소득 뿐 아니라 완치될 때까지 필요한 치료비까지 배상하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는데 아무런 배상이 없이 용서는 없습니다.
영화 밀양의 파렴치한 살인자처럼 그냥 하나님께만 용서 받는 경우는 없습니다. 피해자에게 배상하지 않고 하나님께 용서 받는 것은 하나님의 정의가 아닙니다. 그간의 손해를 배상하고 그가 완치되게 할 것이니라.
3. 임신한 여인의 낙태 보상법
두번째 경우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임신한 여인이 낙태하게 되었습니다.
출애굽기 21장 22절 임신한 여인이 낙태하게 되었을 때 구체적인 경우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임신한 여인을 쳐서 낙태하게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재판장의 판결을 따라 낼 것이라”
서로 싸우다 임신한 여인이 낙태를 했습니다. 낙태 외에는 다른 해가 없으면 남편의 청구대로 벌금을 내는데 반드시 벌금을 냅니다. 남편의 요구가 지나칠 수 있으니 재판장의 판견을 따라서 반드시 벌금을 내야 합니다. 이 경우도 그냥 용서가 아닙니다. 반드시 벌금 배상해야 합니다.
문제는 낙태만이 아니라 서로 싸우다가 임신한 여자가 낙태를 넘어서 다른 상해가 생긴 경우입니다. 23-25절 구약 율법의 윤리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인 동해보복법입니다.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서로 싸우다가 임신한 여인이 낙태를 넘어서 생명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면 동일한 생명으로 갚아야 합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하게 한 것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아야 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동해보복법은 잔인한 복수의 방법입니까?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보복하는 것이 마음에 들겠습니까? 사람의 마음이 악해서 한대를 맞으면 한대를 때리는 것이 아니라 10대, 20대를 때리고 싶은 복수의 마음이 있습니다.
창세기 4장 가인의 후손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사람 라멕이 나옵니다. 23-24절 악한 라멕의 말입니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 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배 이리로다.”
라멕은 성경에서 최초의 일부일처제의 원리를 깨뜨린 죄인입니다. 라멕의 노래를 자세히 보면, 노래의 주제가 사람을 죽이는 살인입니다. 라멕은 조상 가인과 자신을 비교합니다. 라멕은 자신이 사람을 죽인 이유가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사람을 죽였고, 자신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이는 잔인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악한 죄인 가인보다 더 악하여 자신의 살인의 죄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더 포악한 살인을 저질렀음을 자랑하며 노래합니다. 라멕은 자신의 범죄를 공개적으로 노래합니다. 자신의 범죄의 중대함을 알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감추거나 숨기려고도 하지 않고, 당당합니다.
동해보복법으로 보면 라멕은 자신의 상처에 대해서만 보복할 수 있으나, 라멕은 자신의 상처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존귀한 사람을 죽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깁니다. 동해보복법의 장점은 사람의 마음에 더 악한 죄악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막는 최소한의 윤리규정입니다.
동해보복법은 구약 윤리에서 얼마나 중요한 원리인지 하나님은 출애굽기 만이 아니라 레위기에서도 신명기에서도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24장 17-22절 말씀입니다.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짐승을 쳐죽인 자는 짐승으로 짐승을 갚을 것이며, 사람이 만일 그의 이웃에게 상해를 입혔으면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한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짐승을 죽인 자는 그것을 물어 줄 것이요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일지니 거류민에게든지 본토인에게든지 그 법을 동일하게 할 것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
신명기 19장 19-21절 말씀도 동일합니다. “그가 그의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그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그런 악을 너희 중에서 행하지 아니하리라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라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동해보복법은 최대한의 윤리가 아니라 최소한의 윤리규정입니다.
4. 노예의 배상의 규정
세번째 경우 이번에는 사람의 소유물로 여기던 노예에 관한 배상의 규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가던 시대는 노예의 인권이 전혀 없던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하나님은 노예도 귀하게 여기십니다. 율법의 시민법 가운데 첫번째 규정이 노예에 관한 규정일 정도로 노예의 인권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노예의 배상에 관한 말씀을 보면, 지금의 시각으로보면 한계가 있지만 노예의 인권을 중시 여기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21장 20-21절 첫번째 노예의 배상에 관한 규정입니다. “사람이 매로 그 남종이나 여종을 쳐서 당장에 죽으면 반드시 형벌을 받으려니와 그가 하루나 이틀을 연명하면 형벌을 면하리니 그는 상전의 재산임이라”
노예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처럼 취급받던 시대에 주인이 매로 남종이나 여종을 쳐서 당장 죽으면 주인도 반드시 형벌을 받습니다. 고의로 사람을 죽인 경우 받는 형벌인 죽음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노예는 짐승이 아니라 노예도 사람이며, 노예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귀한 인간이기에 노예를 의도적으로 죽인 주인도 사람을 죽은 형벌과 동일한 형벌을 받습니다.
반면에 노예를 죽이려는 의도성이 없습니다. 노예를 교육하려고 매로 종을 쳤는데 당장에 죽지 않고 살아있습니다. 이번에는 사람을 죽일 의도가 아닌 경우이기에 형벌을 면제 받습니다.
26-27절 조금 더 특수한 사례가 나옵니다. “사람이 그 남종의 한 눈이나 여종의 한 눈을 쳐서 상하게 하면 그 눈에 대한 보상으로 그를 놓아 줄 것이며, 그 남종의 이나 여종의 이를 쳐서 빠뜨리면 그 이에 대한 보상으로 그를 놓아 줄지니라”
의도가 아니라 실수로 노예의 눈을 쳐서 상하게 하면, 눈에는 눈이니 주인의 눈이 상하게 하는 방법이 아니라 노예의 눈에 대한 보상으로 그를 노예에서 해방하여 자유케 하는 법입니다. 노예의 이를 쳐서 이가 상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보상으로 그를 놓아주라고 하십니다.
정리해보면,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동해보복법입니다. 생명은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의 원리로 사람을 대합니다. 첫째 원리는 노예든 사람이든 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인 경우는 예외가 없습니다. 반드시 사람을 고의적으로 죽인 형벌은 동일한 사형입니다. 생명은 생명으로 갚습니다. 두번째 원리는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의도성이 없는 상태로 사람을 죽였다면, 사람을 죽인 사람은 도피성으로 피하여 생명을 건질 수가 있습니다. 세번째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의도가 없었는데 사람이 다친 경우는 반드시 손해를 배상해야 합니다. 치료비도 물어주고 일하지 못한 경우는 일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배상도 해야합니다. 네번째 노예의 경우는 특수한 경우이지만 노예도 의도적으로 죽인다면 예외없이 사형이나, 의도적이지 않다면 노예가 당한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 노예를 놓아주어야 합니다.
그 어떠한 경우라도 하나님 앞에서만 용서를 구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으면 동해보복법의 원리에 의해서 그대로 피해도 배상하는 것이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5. 평양 대부흥 시기의 회개의 열매
1907년 조선의 평양에서 영적인 대부흥이 일어났을 때 놀라운 회개 운동이 함께 일어났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함께 기도할 때 그 말씀 그대로 하나님에게만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1907년 1월 15일 조선 선교사 맥큔은 선교본부 아더 브라운 총문에게 이런 선교보고를 했습니다. “어느 선교사를 마음에 미워해 오던 한 장로는 공개적으로 용서를 빌었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고백한 후에는 다른 사람에게 가서 용서를 간청하며 울부짖었습니다. 예배당 안의 모든 사람이 흐느껴 울었습니다…곡산 선교부 조사는 그가 레크를 위해 일할 때 그로부터 우리 돈 2달러에 달하는 총4엔을 취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그 돈을 그레함 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그것을 미국에 있는 래크의 아내에게 보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남편들은 새 아내를 얻기 위해 자신들의 아내를 거의 죽음에 이를 정도로 증오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중 몇 명은 처가에 가서 아내들에게 그 사실을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또 한 사람은 과거 수년 전 자신이 너무도 몹쓸 행동을 하는 강도였음을 고백한 후 경찰에 자수하고 자진해서 구속된 일도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선교사들과 절친한 한 장로는 회개의 영으로 임하신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 앞에 자신의 죄악된 모습들이 투명하게 비추어지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수년 전 빚을 갚고 영수증을 받았으나 빚을 갚는 과정에서 진 빚을 다 청산하지 못하고 속인 일이 있었습니다. 집회에 참석한 이들이 통회하고 자신들의 숨겨진 무서운 죄악들을 그대로 그러내는 것을 목젹하고는 더욱더 그 죄가 생각나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회오리바람처럼 내게 되돌아와, 죄악의 공포로 마치 영생을 잃는 것과 같았습니다. 나는 도저히 피할 수 없어 눈물을 흘리고 뉘우치면서 일어나 나의 부끄러운 죄악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었고, 모든 손실들을 배상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런 후에 평화, 이상하고 향기로운 형언할 수 없는 평화, 결코 전에는 알지 못했던 그러한 느낌이 나의 심령을 사로 잡는 것 같았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 역사하시면 우리의 숨은 죄를 깨우치게 하시며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할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지은 죄는 사람에게 배상하게 하시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6. 예수님의 동해보복법 해석
배상의 문제에 대해서 동해보복법의 원리로 적용하는 것이 옛 언약인 시내산 언약의 구약 윤리라면, 신약 시대 새로운 언약 시대에 우리 예수님은 배상의 문제를 조금 다르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산상수훈에는 중요한 두 개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25-26절 말씀입니다.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고발하는 자가 가해자를 재판관에 넘겨주려고 합니다. 만일 우리가 가해자라면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급히 사화하라 이런 문제는 가능한 한 빨리 해결하라. 하나님께 용서받은 그리스도인도 이런 문제에서 사람들의 용서도 구하고 갚을 것을 갚고 보상 배상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태복음 5장 38-42절 우리 같이 읽습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구약은 우리에게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으라고 동해보복법이 정당한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새로운 언약의 시대에는 가해자의 배상에 관한 문제에서는 동해보복법의 원리가 그대로 국가의 사법체계에는 적용될 수 있지만, 예수님을 믿는 성도가 피해를 입은 경우 피해자의 경우에는 공적인 차원이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하나님의 정의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받은 은혜를 입은 사람답게 은혜의 원리에서 눈에는 눈으로가 아니라 이에는 이로 갚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훨씬 더 관대하게 대해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가해자의 배상이 대상이 아니라, 피해자의 보복의 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입니다. 선한 자가 아니라 아주 악한 자입니다. 악한 자에게 마땅히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주는 동해보복법으로 대하는 것을 뛰어 넘어서 악한 자라 할지라도 우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대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대적의 보복이 아니라 너그러운 관용의 보복을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해를 가한 악한 사람에게 우리 예수님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보복이 아니라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고, 오히려 너그러운 마음의 관용을 베풀라고 명령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너그러운 마음의 관용은 어떻게 베푸는 것입니까? 다시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기를 원합니다.
누군가가 우리의 오른편 뺨을 때립니다. 오른손을 사용하는 사람이 상대방의 뺨을 때리면 오른편 뺨이 아니라 왼편 뺨을 때립니다. 오른손을 사용하는 사람이 상대의 오른편 뺨을 때리는 것은 손바닥이 아니라 손등으로 때리는 엄청 큰 수치심을 주는 우리의 명예에 대한 모독입니다. 우리 명예에 대한 모독의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가르침은 동해보복이 아니라 아니라 오히려 왼편도 돌려 댐으로 자신을 지극히 낮추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법정에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선한 사람이 아니라 악한 사람에게 속옷 만이 아니라 겉옷까지 가지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 당시 문화에서 겉옷은 속옷보다 더 중요합니다. 겉옷은 밤에 잘 때는 덮고자는 담요기능도합니다. 겉옷은 우리가 아끼고 아끼는 가장 좋은 외투를 잘 포장해서 선물로 주는 것입니다.
로마 병사가 민간인을 징집해서 억지로 짐을 가지고 오 리를 가지고 청할 때는 오리가 아니라 기꺼이 십리까지 동행합니다. 로마의 군병들은 억지로 징집해서 짐을 가지고 오리를 가게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악한 자의 오 리를 가지는 부담스러운 요구에 오 리만이 아니라 십리까지 기꺼이 동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악한 자에게 보복하는 방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동해보복법이 아니라 우리에게 무엇인가 구하는 사람에게는 아까워하지 말고, 기꺼이 주며,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고, 자신의 마땅한 권리까지 포기하고, 기꺼이 낮아지고, 관용하고 사랑을 베푸는 것이 악한 사람에게 진짜 멋지게 보복하는 우리 예수님의 방식이며, 하나님 나라에 속한 새로운 언약 백성에게 기대하시는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윤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으로 어떻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가해자로 마땅히 우리는 우리가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 반드시 배상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이며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렇게 회개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피해자로 상처받은 대로 상처주는 인생을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우리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도 바울의 가르침대로 순종하시면서 사시겠습니까? 로마서 12장 17-21절 우리 예수님의 가르침을 적용하는 사도 바울의 방법이며, 저와 여러분 새로운 언약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방법입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7. 우리의 기도
다같이 일어나셔서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함께 찬송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우리가 사람에게 지은 죄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용서를 구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사람에게 원하든 원치 않든 피해를 주었다면 사람에게 배상도 하고 용서도 구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 시간 성령 하나님께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시며, 사람에게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용서에 합당한 배상으로 사람에게도 갚게 하옵소서. 동시에 악한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상처받은 대로 갚지 말게 하시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넘어서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넘치는 은혜로 관용으로 사람을 대하게 하시며 악한 자를 대적하지 않고, 왼편도 돌려대며, 겉옷까지 가지게 하며 십리까지도 동행하며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의 믿음의 삶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모든 사람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게 하옵소서.
이제는 악한 죄인 중의 괴수인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보혈을 흘려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넘치는 은혜와 선하신 하나님 악이 아니라 선으로 사람을 대하라 하시는 우리 하늘 하나님 아버지의 그 크신 사랑과 우리 죄를 생각하게 하시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하시며 사람에게 관대하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임재와 충만하심과 감동 감화하심이,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와 사랑하는 성도들, 우리 가정과 사랑하는 자녀들, 위에, 우리 알버커키 뉴멕시코 온 땅위에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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