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11) 갈 4:12-20 사도 바울과 갈라디아 교회와의 관계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11-20 17:44
Views
424
1. 관계의 어려움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 사역 만2년이 넘어가면서 감사한 제목이 정말 많습니다. 2022년에는 우리 교회에도 소그룹이 편성이 되어 비정상이 아닌 정상으로 돌아가길 소원하는 마음으로 소그룹을 기도하면서 생각하면서 편성하고 있는데 6개의 소그룹을 편성해야 할 정도로 하나님이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정말 감사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감사한 마음이 가득한 사역이지만 그럼에도 제 마음 속에 사역자로 살아가는 것이 여전히 힘들고 어렵고 마음에 괴로운 점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갈릴리 장로교회에서 신앙생활 하시면서 무엇이 제일 어려우신지요?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저는 다른 무엇이 아닌 사람과의 관계, 우리 사랑하는 성도와의 관계가 제일 어렵다고 말씀드릴 것입니다.
Christian Today 기사에 코로나 기간에 정통교회의 목회자 51% 가량이 목회 사역을 그만 둘 심각한 고려를 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기사를 보았습니다. 소명으로 시작한 사역, 십자가를 지고 가려고 시작한 사역일텐데 무엇이 그리 힘들었기에 사역을 그만 둘 심각한 생각을 할까 생각이니 코로나 기간에 가장 힘들고 어려운 사역은 인간관계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과 갈라디아 교회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11절 말씀이 오늘 갈라디아서를 계속 기록하고 사도 바울의 마음입니다.“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최선을 다해서, 생명을 다해서 수고했는데, 그 모든 수고가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생명을 다한 그 수고가 헛되다면 그 수고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면 얼마나 사역자로서 두려운 상황이겠습니까? 사도 바울의 사역자로서의 열심과 수고가 헛될 수 있는 현재의 두려운 상황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2. 갈라디아 교회와 깨어진 관계
첫째는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과 사도 바울의 깨어진 관계가 두렵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12-14절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지역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과거를 회상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과의 첫번째 만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사도 바울도 완벽한 사역자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역자가 어디있습니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다 연약함과 한계 가운데 그럼에도 주님을 사랑하니 헌신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과의 첫번째 만남에서 바울은 사도로서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사도 바울에게는 사역자로서 치명적인 육체의 약함이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의 치명적인 육체의 약함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시험에 들게 할만한 어려운 약함이었습니다. 여러 가설 가운데 말라리아, 간질, 안질이라는 가설이 있습니다. 1차 선교여행의 고단함 가운데 찾아온 단기적인 말라리아 열병으로 지극한 고생도 가능하고, 가끔 발작이 일어나는 간질, 그리고 바울의 눈에 찾아온 심각한 안질의 병일 수 있습니다. 세 가지 모두 사역자로서 치명적인 약점일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8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의 육체의 약함을 위한 간구를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하나님의 은혜로 수 많은 기적을 행한 사도 바울에게도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가 있었습니다. 이것만 없다면 이것만 해결되면 완벽한 사역자일텐데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니 참으로 괴로웠기에 떠나기를 세 번이나 간구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육체의 약함에 시험에 들지도 않았을 뿐더러,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였습니다. 업신여기는 것은 멸시함으로 조롱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육체의 가시, 육체의 약함을 보면 멸시하고 조롱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버리지도 아니하고 이 단어는 심각한 경우에 사용하는 침을 뱉거나 토하는 상황입니다. 사도 바울의 육체의 가시를 보면 침을 뱉거나 토할 정도로 경멸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과거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사도 바울을 하남니의 천사와 같이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영접하였습니다. 사탄의 사자같은 시험거리도 시험거리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나 예수 그리스도처럼 영접하였으니 얼마나 최고의 존경과 사랑으로 대해준 것입니까? 15절 최고의 존경과 사랑을 넘어서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할 수 만 있다면 눈이라도 빼어 줄 사랑은 최고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사도 바울이 열심으로 증거한 십자가 복음으로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은 구원을 받고, 성령을 받고, 아브라함의 언약의 자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엄청난 복을 받아 누렸습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시험하던 바울의 육체의 약함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아름다운 관계가 지금은 어떻게 이렇게 깨어진 것입니까? 바울을 해롭게 하지 않았던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지금은 왜 이렇게 마음을 바꾸어 사도 바울을 의심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비난하고 괴롭게 하는 것입니까?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과의 깨어진 관계로 사도 바울은 정말 두렵습니다. 16절 과거의 아름다운 관계가 다 깨어져 지금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과의 관계는 마치 원수와도 같습니다.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겠느냐?”
3. 이간질하는 거짓 교사들의 열심
둘째, 사도 바울과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이간질하는 거짓 교사들의 열심과 그 열심에 동조하는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이 두렵습니다.
사도 바울과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과의 아름다운 사랑과 존경의 관계를 깨뜨리고 이간질 시킨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입니다.
17절-18절의 그들입니다.“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은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사도 바울과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의 아름다운 관계를 깨드린 그들은 율법을 강조하고 할례를 강조하던 유대주의자들, 거짓 교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갈라디아 교회에 찾아와서 열심을 내어 이간을 시키고, 그 열심으로 갈라디아 교회들도 그들의 거짓 가르침에 열심을 내도록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복음에 대한 열심이 아닌, 거짓 가르침에 대한 열심입니다. 지금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추구하는 열심은 거짓 가르침, 거짓 복음에 대한 열심입니다.
누가 문제인 것입니까? 갈라디아 교회에 수고함으로 열심으로 복음을 전한 사도 바울이 문제인 것입니까? 아니면 거짓 교사들의 열심을 따라서 거짓 복음으로 달음질하고 있는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문제인 것입니까?
19-20절 사도 바울은 다시 결심합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문제 받은 갈라디아 교회이지만, 의혹이 가득한 문제많은 갈라디아 교회이지만, 처음에 사도 바울을 업신여기지도 않았고 버리지도 않았던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처럼, 사도 바울도 업신여기지 않고, 버리지 않고,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고 결심하고 작정합니다. 나의 자녀들아, 아직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녀같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다시 그리스도의 온전한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해산하는 고통과 수고를 다하려고 합니다.
4. 우리의 기도
사역자 사도 바울의 육체의 약함에도 계속 사역의 길을 걸어가기 힘이 드는 환경과 상황에서도 계속 그 힘들고 어려운 사역의 길을 걸어가게 하는 힘은 우리 주님의 은혜와 더불어 성도의 사랑과 존경입니다. 바울은 기억합니다. 업신여기지도 아니하고 버리지도 아니하며 할수만 있었더다면 눈이라도 빼어 줄수 있었던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의 사랑과 존경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아름다운 관계가 다 깨어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희혹을 제기하고, 갈라디아 성도들은 의심하고 비난합니다. 말씀의 사역자들이 힘들고 어렵고 무거운 사역자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힘이 되어 주시고, 비판의 말보다 격려의 말을 해 주십시오. 그래서 계속해서 포기하지 않고 지치지 않는 열정과 사랑으로 사역의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특별히 우리 교회에도 목회자와 성도와의 어려운 인간관계에 서로 시험들지 않고, 서로 비난하지 않고, 사랑과 존경의 아름다운 관계가 깨어지지 않고 지속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사랑합니다. 열정의 사역자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지역의 복음 전파자로 사용하여 주셔서 갈라디아 교회를 세울 수 있는 은혜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사도 바울과 갈라디아 교회의 눈물나게 아름다운 사랑과 존경의 과거의 관계를 회상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지금은 거짓 교사들의 열심으로 서로 깨어진 안타까운 관계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도 괴롭습니다. 좋은 일에 대한 열심이 아닌 진리의 말씀에 대한 열심이 아닌 헛된 일에 거짓된 복음에 열심을 내고 있는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오늘날 우리 시대의 성도들의 모습처럼 보여 안타깝고 마음이 괴롭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 시대 51%의 사역자들이 사역을 그만 둘 생각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우리 이 시대에 사역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주님의 종들과 그 가정과 자녀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그럼에도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며 애쓰고 수고하며 그럼에도 열매없는 사역의 현장에 있는 우리 사역자들 위로하시며 힘 주시며 붙들어주시며 격려하여 주시길 간구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갈릴리 장로교회 성도님들 이 시간 주님 손에 의탁합니다. 거짓 복음에, 헛된 일에 열심내는 성도들의 마음을 돌이켜 주님께 돌아와 진리의 말씀을 사모함으로 하나님 기뻐하시는 예배에, 성도간의 교제에, 훈련에, 사랑의 섬김과 영혼 구원에 무엇보다 열심을 내게 하옵소서. 이 시간 함께 기도하는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한 분 한 분 붙들어 주시고 강건케 하셔서 우리 지역에서 신실한 복음의 일꾼으로 사역하며 헌신된 우리 주님의 동역자가 되어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 사역 만2년이 넘어가면서 감사한 제목이 정말 많습니다. 2022년에는 우리 교회에도 소그룹이 편성이 되어 비정상이 아닌 정상으로 돌아가길 소원하는 마음으로 소그룹을 기도하면서 생각하면서 편성하고 있는데 6개의 소그룹을 편성해야 할 정도로 하나님이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정말 감사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감사한 마음이 가득한 사역이지만 그럼에도 제 마음 속에 사역자로 살아가는 것이 여전히 힘들고 어렵고 마음에 괴로운 점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갈릴리 장로교회에서 신앙생활 하시면서 무엇이 제일 어려우신지요?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저는 다른 무엇이 아닌 사람과의 관계, 우리 사랑하는 성도와의 관계가 제일 어렵다고 말씀드릴 것입니다.
Christian Today 기사에 코로나 기간에 정통교회의 목회자 51% 가량이 목회 사역을 그만 둘 심각한 고려를 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기사를 보았습니다. 소명으로 시작한 사역, 십자가를 지고 가려고 시작한 사역일텐데 무엇이 그리 힘들었기에 사역을 그만 둘 심각한 생각을 할까 생각이니 코로나 기간에 가장 힘들고 어려운 사역은 인간관계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과 갈라디아 교회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11절 말씀이 오늘 갈라디아서를 계속 기록하고 사도 바울의 마음입니다.“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최선을 다해서, 생명을 다해서 수고했는데, 그 모든 수고가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생명을 다한 그 수고가 헛되다면 그 수고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면 얼마나 사역자로서 두려운 상황이겠습니까? 사도 바울의 사역자로서의 열심과 수고가 헛될 수 있는 현재의 두려운 상황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2. 갈라디아 교회와 깨어진 관계
첫째는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과 사도 바울의 깨어진 관계가 두렵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12-14절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지역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과거를 회상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과의 첫번째 만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사도 바울도 완벽한 사역자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역자가 어디있습니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다 연약함과 한계 가운데 그럼에도 주님을 사랑하니 헌신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과의 첫번째 만남에서 바울은 사도로서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사도 바울에게는 사역자로서 치명적인 육체의 약함이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의 치명적인 육체의 약함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시험에 들게 할만한 어려운 약함이었습니다. 여러 가설 가운데 말라리아, 간질, 안질이라는 가설이 있습니다. 1차 선교여행의 고단함 가운데 찾아온 단기적인 말라리아 열병으로 지극한 고생도 가능하고, 가끔 발작이 일어나는 간질, 그리고 바울의 눈에 찾아온 심각한 안질의 병일 수 있습니다. 세 가지 모두 사역자로서 치명적인 약점일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8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의 육체의 약함을 위한 간구를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하나님의 은혜로 수 많은 기적을 행한 사도 바울에게도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가 있었습니다. 이것만 없다면 이것만 해결되면 완벽한 사역자일텐데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니 참으로 괴로웠기에 떠나기를 세 번이나 간구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육체의 약함에 시험에 들지도 않았을 뿐더러,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였습니다. 업신여기는 것은 멸시함으로 조롱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육체의 가시, 육체의 약함을 보면 멸시하고 조롱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버리지도 아니하고 이 단어는 심각한 경우에 사용하는 침을 뱉거나 토하는 상황입니다. 사도 바울의 육체의 가시를 보면 침을 뱉거나 토할 정도로 경멸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과거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사도 바울을 하남니의 천사와 같이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영접하였습니다. 사탄의 사자같은 시험거리도 시험거리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나 예수 그리스도처럼 영접하였으니 얼마나 최고의 존경과 사랑으로 대해준 것입니까? 15절 최고의 존경과 사랑을 넘어서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할 수 만 있다면 눈이라도 빼어 줄 사랑은 최고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사도 바울이 열심으로 증거한 십자가 복음으로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은 구원을 받고, 성령을 받고, 아브라함의 언약의 자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엄청난 복을 받아 누렸습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시험하던 바울의 육체의 약함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아름다운 관계가 지금은 어떻게 이렇게 깨어진 것입니까? 바울을 해롭게 하지 않았던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지금은 왜 이렇게 마음을 바꾸어 사도 바울을 의심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비난하고 괴롭게 하는 것입니까?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과의 깨어진 관계로 사도 바울은 정말 두렵습니다. 16절 과거의 아름다운 관계가 다 깨어져 지금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과의 관계는 마치 원수와도 같습니다.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겠느냐?”
3. 이간질하는 거짓 교사들의 열심
둘째, 사도 바울과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이간질하는 거짓 교사들의 열심과 그 열심에 동조하는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이 두렵습니다.
사도 바울과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과의 아름다운 사랑과 존경의 관계를 깨뜨리고 이간질 시킨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입니다.
17절-18절의 그들입니다.“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은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사도 바울과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의 아름다운 관계를 깨드린 그들은 율법을 강조하고 할례를 강조하던 유대주의자들, 거짓 교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갈라디아 교회에 찾아와서 열심을 내어 이간을 시키고, 그 열심으로 갈라디아 교회들도 그들의 거짓 가르침에 열심을 내도록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복음에 대한 열심이 아닌, 거짓 가르침에 대한 열심입니다. 지금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추구하는 열심은 거짓 가르침, 거짓 복음에 대한 열심입니다.
누가 문제인 것입니까? 갈라디아 교회에 수고함으로 열심으로 복음을 전한 사도 바울이 문제인 것입니까? 아니면 거짓 교사들의 열심을 따라서 거짓 복음으로 달음질하고 있는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문제인 것입니까?
19-20절 사도 바울은 다시 결심합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문제 받은 갈라디아 교회이지만, 의혹이 가득한 문제많은 갈라디아 교회이지만, 처음에 사도 바울을 업신여기지도 않았고 버리지도 않았던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처럼, 사도 바울도 업신여기지 않고, 버리지 않고,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고 결심하고 작정합니다. 나의 자녀들아, 아직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녀같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다시 그리스도의 온전한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해산하는 고통과 수고를 다하려고 합니다.
4. 우리의 기도
사역자 사도 바울의 육체의 약함에도 계속 사역의 길을 걸어가기 힘이 드는 환경과 상황에서도 계속 그 힘들고 어려운 사역의 길을 걸어가게 하는 힘은 우리 주님의 은혜와 더불어 성도의 사랑과 존경입니다. 바울은 기억합니다. 업신여기지도 아니하고 버리지도 아니하며 할수만 있었더다면 눈이라도 빼어 줄수 있었던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의 사랑과 존경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아름다운 관계가 다 깨어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희혹을 제기하고, 갈라디아 성도들은 의심하고 비난합니다. 말씀의 사역자들이 힘들고 어렵고 무거운 사역자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힘이 되어 주시고, 비판의 말보다 격려의 말을 해 주십시오. 그래서 계속해서 포기하지 않고 지치지 않는 열정과 사랑으로 사역의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특별히 우리 교회에도 목회자와 성도와의 어려운 인간관계에 서로 시험들지 않고, 서로 비난하지 않고, 사랑과 존경의 아름다운 관계가 깨어지지 않고 지속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사랑합니다. 열정의 사역자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지역의 복음 전파자로 사용하여 주셔서 갈라디아 교회를 세울 수 있는 은혜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사도 바울과 갈라디아 교회의 눈물나게 아름다운 사랑과 존경의 과거의 관계를 회상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지금은 거짓 교사들의 열심으로 서로 깨어진 안타까운 관계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도 괴롭습니다. 좋은 일에 대한 열심이 아닌 진리의 말씀에 대한 열심이 아닌 헛된 일에 거짓된 복음에 열심을 내고 있는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오늘날 우리 시대의 성도들의 모습처럼 보여 안타깝고 마음이 괴롭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 시대 51%의 사역자들이 사역을 그만 둘 생각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우리 이 시대에 사역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주님의 종들과 그 가정과 자녀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그럼에도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며 애쓰고 수고하며 그럼에도 열매없는 사역의 현장에 있는 우리 사역자들 위로하시며 힘 주시며 붙들어주시며 격려하여 주시길 간구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갈릴리 장로교회 성도님들 이 시간 주님 손에 의탁합니다. 거짓 복음에, 헛된 일에 열심내는 성도들의 마음을 돌이켜 주님께 돌아와 진리의 말씀을 사모함으로 하나님 기뻐하시는 예배에, 성도간의 교제에, 훈련에, 사랑의 섬김과 영혼 구원에 무엇보다 열심을 내게 하옵소서. 이 시간 함께 기도하는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한 분 한 분 붙들어 주시고 강건케 하셔서 우리 지역에서 신실한 복음의 일꾼으로 사역하며 헌신된 우리 주님의 동역자가 되어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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