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교육

시내산 언약의 율법 (1) 출 21:1-11절 시내산 언약의 노예 규정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11-07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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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율법과 마르키온의 주장

토요일 새벽기도회에 매주 살펴보는 갈라디아서를 보면 율법을 철저하게 부정합니다. 복음을 떠나서 율법으로 돌아가려는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을 혹독하게 꾸짖습니다. 사도 바울이 보기에 율법은 마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와 같기에 더 이상 율법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면 구약의 출애굽기와 출애굽기보다 더 어려운 레위기 같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와 전혀 상관이 없으니 버려야 하는 것입니까? 이런 주장을 했던 이단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의 2세기초 극단적 이단이었던 마르키온의 주장을 보면, 하나님은 두 하나님이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무서운 율법의 하나님이시고,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복음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구약의 시대가 아닌 신약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구약의 무서운 하나님 말씀을 버리고, 신약의 사랑의 복음의 하나님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신약의 복음의 말씀 가운데 특별히 마르시온은 갈라디아서, 로마서 같은 바울 서신과 복음서 가운데 누가복음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나머지 성경은 모두 폐기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이단입니다.

여러분 생각에는 어떠한지요? 신약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십계명의 말씀은 필요한 하나님 말씀이며, 구약의 율법은 오늘날 깊이 묵상하고 연구하고 가르쳐야 할 하나님의 말씀인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의 유기적인 통일성을 부정하면 위험한 생각입니다. 신약의 모든 말씀은 구약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구약의 말씀도 하나님 말씀이며, 신약의 말씀도 하나님 말씀입니다. 구약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약의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약 성경의 모든 말씀은 구약 성경의 빛으로 살펴야 하며, 구약 성경의 모든 말씀도 신약 성경의 빛으로 살펴야 하는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은 두 하나님이 아닌 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구약 성경의 말씀을 해석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가장 어려운 주제는 하나님이 지금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시내산 언약의 말씀입니다. 시내산 언약의 말씀은 분명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인데, 오늘날 우리도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우리가 지난 몇 달 동안 살펴본 십계멍의 말씀 우리가 오늘날도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우리가 이제 앞으로 살펴볼 시내산 언약의 규정의 말씀들도 모두 우리가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2. 율법의 세가지 종류: 도덕법, 의식법, 시민법

구약의 율법,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받은 언약의 율법의 말씀에는 크게 세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십계명 같은 도덕법이 있고, 둘째는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제사와 절기와 관련된 의식법이 있고, 셋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야 하니 그들에게 필요한 공동체 사회를 이를 시민법이 있습니다.

이중에서 두번째 제사와 절기와 관련된 의식법은 우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가 되었기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제사와 절기를 지키면 안되는 것이며, 제사와 절기로 돌아가서도 안됩니다. 제사와 절기 같은 의식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기에 더 이상 우리에게 유효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알아야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를 향한 구원의 사역을 더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사 제도의 구체적인 말씀도 배워야 하며, 절기도 알아야 하며 지금은 사라진 성막과 성전도 자세히 알아야 합니다.

세번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주신 사회의 법인 시민법도 가나안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시민법이기에 오늘날 21세기 다른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더 이상 효력이 없습니다. 그러니 알 필요가 없습니까? 아닙니다. 시민법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하나님의 마음, 특별히 시민법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 나라와 우리 하나님의 성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민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성품을 배워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율법의 첫번째 종류인 십계명 같은 도덕법은 폐하여졌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십계명 같은 도덕법을 대해서 심지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17-19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예수님은 십계명 같은 도덕법을 폐하지 않았습니다. 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그 본질까지 더 깊이 들어가서 더 철저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구약의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버리고 무시하고 소홀히 여기는 태도는 우리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날 여전히 우리에게 주시는 소중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받는 출애굽기 21장 1-11절 노예에 관한 이 말씀은 어떤 성격의 말씀입니까? 출애굽기 19장부터 24장까지는 하나의 커다란 묶음이 되는 시내산 언약의 말씀입니다. 출24장 6-8절 함께 읽습니다.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모세는 짐승의 피를 가지고 반은 제단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합니다. 그리고 언약서의 말씀을 들은 백성들은 우리가 준행하겠습니다 말합니다. 그리고 모세는 다시 피의 절반을 백성에게 뿌리며 이 모든 말씀이 하나님과 너희 사이에 세우신 언약의 피라고 말합니다.

시내산 언약을 결혼 언약에 비유했습니다. 언약서에 담긴 언약의 내용을 순종하면 결혼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며, 언약서에 담긴 언약의 내용에 불순종하면 언약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모세는 피를 제단에도 뿌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뿌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도 언약의 내용을 피를 걸고 준수해야 하며, 이스라엘 백성들도 피를 걸고 목숨을 걸고 언약의 내용을 준수해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읽은 출애굽기 21장 1-11절은 말씀은 도덕법입니까? 제사법입니까? 아니면 시민법입니까? 사회법입니다. 그러면 이 사회법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지만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바로 사회법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지, 그 사회를 만드시고 그 사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드려내시는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를 배우고,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을 배워야합니다.

3. 제일 먼저 나오는 노예규정

첫째, 우리는 시민법에서 노예에 관한 규정을 제일 먼저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노예는 시민법 가운데 제일 먼저 나와야 할 정도로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까? 시내산 언약이 주어진 시대에 모든 나라에서 노예는 짐승같은 존재였습니다.

현재 발견된 인간이 만든 최초의 법은 기원전 21세기 아브라함의 고향이었던 우르에서 제정된 우르-남무 법전이 있지만, 기원전 1750년경에 만들어진 고대 바벨론 제국의 함무라비 법전이 가장 유명합니다. 함무라비 법전에도 노예에 관한 규정이 있습니다. 가정 먼저 나오지 않고 가장 나중에 나옵니다. 노예에 관한 규정이 모두 5개인데 그중의 가장 마지막 규정을 보면, 282조 “노예가 자기의 주인에게 당신은 나의 주인이 아니오라고 말하면, 그의 주인은 그가 자기의 노예임을 확증하고 그의 귀를 자른다” 노예에 관한 인권은 없습니다. 전혀 없습니다. 주인의 권리만 있고 노예는 사람도 아닌 짐승같은 소유물에 불과합니다.

출애굽 당시 가장 문명이 발달했던 이집트의 노예는 어떻습니까? 지금 노예에 관한 규정을 가장 먼저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노예었던 것을 기억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로 어떻게 비참하게 살았는지, 출애굽기 2장 23-25절 말씀을 보면 그들의 고통소리가 나와있습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소리를 들읫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였더라”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지는 삶을 살았습니다.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하루 하루 부르짖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비참한 노예의 삶을 살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노예에 관한 규정을 제일 먼저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는 노예였던 과거 비참하고, 소망없고 절망적이었던 과거를 잊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해서 조금 형편과 상황이 나아지면 금방 과거의 비참한 기억을 다 잊어버립니다. 마치 과거에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받은 은혜도 아침의 이슬방울처럼 금새 다 잊어버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비참한 과거는 언제입니까? 그때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가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형편에서 건져주시면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어주셔서 이 어려움을 지나가게 해주신다면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바르게 살겠습니다 약속했던 비참한 과거가 없습니까?

우리 언약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탄식하며 울며 부르짖는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들으시고, 그들을 돌보셨습니다. 그리고 과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세운 언약을 기억하셔서 애굽의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셔서 지금 여기 시내산까지 세워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을 잊으면 절대로 안됩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을 잊으면 그때부터 불평이 나오고 원망이 나오고 마음에 기쁨과 감사함이 사라지고 마음에서 쓴뿌리처럼 독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지금 노예에 관한 말씀을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과거 노예 상태에서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않으면 노예에 관한 말씀은 도무지 받을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4. 노예에 관한 규정

둘째, 2-4절 노예에 관한 첫번째 규정입니다.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만일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 들었으면 그의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만일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주어 그의 아내가 아들이나 딸을 낳았으면 그의 아내와 그의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 것이로되”

같은 동족인 히브리 사람을 주인이 노예로 거금을 주고 샀습니다. 그런데 6년동안 섬기고 나면 7년째 안식년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자유롭게 나갈 수 있습니다. 만일 단신으로 왔다면 단신으로 나가고, 결혼해서 아내와 함께 노예로 들어왔으면 아내도 나갈 수 있습니다.

노예의 주인의 입장이 되어본다면, 얼마나 주인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노예의 입장을 생각하는 노예의 법입니까? 피치 못하게, 노예로 들어온 사람은 6년만 참으면 7년째는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노예의 입장에서는 너무 좋은 법이며, 주인 입장에서는 너무 억울 할 수 있는 노예에 좋은 법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법은 여러분보시기에도 좋습니까? 좋지 않은 악법입니까? 레위기 25장 40-43절 종으로 산 노예에 관한 규정의 또다른 말씀이 있습니다. “너와 함께 있는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품꾼이나 동거인과 같이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 그때에는 그와 그의 자녀가 함께 네게서 떠나 그의 가족과 그의 조상의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들이니 종으로 팔지 말 것이라 너는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레위기 말씀은 출애굽기보다 더 종들에게 유리한 노예 법입니다. 히브리 형제가 노예가 되면 종으로 부리지 말고 품꾼이나 동거인처럼 대해주어야 하며, 희년의 때가 되면 무상으로 그의 가족과 조상의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노예를 엄하게 부리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종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 노예를 엄하게 부리지 말라 하시는 하나님 말씀은 출애굽기 1장과 동일한 히브리어 동사입니다. 출애굽기 1장 12-14절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로 살아갔을 때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엄하게 일을 시켰습니다. 어려운 노동의 강도로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로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한 일이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은 그렇게 엄하게 시키고 노예이니 마땅히 노예처럼 대합니다.

그러나, 과거 애굽의 노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사람처럼 동족 노예를 그렇게 엄하게 대해서는 안된다고 우리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를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라. 노예의 주인이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는 주인이라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애굽 사람처럼 노예를 엄하게 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경외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아래에서 일하는 일꾼들을 엄하게 대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는 주인인지 아닌지 여러분 밑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물어보면 정말 여러분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엄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관대한 하나님이십니다. 엄한 하나님이 아니라 관대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도 관대한 사람이 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신약성경 에베소서 6장 5-9절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종과 주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 앎이라.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위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종은 상전에게 주인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주께 하듯 행합니다. 상전은 하늘의 상전이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종들에게 위협을 그치고 종을 선대해 주어야 합니다. 주인을 하나님 대하듯이 섬기는 종에는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상이 있습니다. 종을 선대하는 주인에게는 하늘의 주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상이 있을 것입니다.

5. 노예의 자발적인 결단

셋째, 5-6절 상전을 사랑하는 노예의 자발적인 결단이 있습니다. 우리 함께 읽습니다. “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관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

주인이 종을 엄하게 대하지 않고, 얼마나 선대해주면 종이 자발적으로 상전과 처자를 사랑하니,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고 종신토록 상전을 섬기겠다는 자발적인 아름다운 결단이 있습니다. 여기서 종의 결단의 핵심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사랑이 핵심입니다. 처자를 사랑해도 상전을 사랑하지 못하면 결단코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6년만 참으면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고 종신토록 상전을 섬기는 자발적 종으로 살겠노라 고백하며 재판장에게 가서 재판장이 증인으로보는 가운데 송곳으로 귀를 뚫습니다.

종에게 송곳으로 뚤린 귀는 평생가는 문신입니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뚫린 귀는 주인을 사랑하는 종의 사랑의 마음입니다. 무엇이 종의 마음이 이토록 주인을 사랑하게 하는 것입니까? 분명 주인은 그를 노예처럼 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인은 그를 엄하게 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형제처럼 가족처럼 대했을 것입니다. 9절 “만일 그를 자기 아들에게 주기로 하였으면 그를 딸 같이 대우할 것이요” 여종을 사랑하여 자기 아들에게 주기로 하였으면 그를 딸 같이 대우할 것이요.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오늘 짐승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직원들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고 않고 더 얻어내려고 하고, 주인은 어떻게 하면 덜 줄려고 하는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기대하시는 사람을 대하는 우리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주인입니까? 여러분은 어떤 직원입니까? 여러분의 직원 가운데는 자발적으로 여러분과 오래오래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주인을 몹시도 사랑하는 직원이 있는지요?

누가복음 15장 살아있는 아버지의 유산을 챙겨서 먼 곳으로 떠나 다 허비하고 인생의 비참함을 경험하던 돌아온 탕자 돌탕 둘째 아들이 부러워한 사람은 아버지 집에서 일하던 품꾼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17절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아버지의 아들, 돌탕이 아버지의 집에서 일하던 품꾼을 부러워한 이유는 아버지의 인자하심, 아버지의 품꾼들을 대하는 방식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아버지에게로 돌이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니 나를 아버지의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아버지의 품꾼이어도 그것이 더 좋겠다는 결심을 하고 아버지에게 돌아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버지께 돌아온 탕자는 아버지가 얼마나 너그럽고 인자하고 사랑이 많은 주인인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제는 아버지를 사랑함으로 아버지를 경외함으로 아버지 집에서 일하는 품꾼들, 아버지의 노예들, 아버지의 사람들을 아버지처럼 너그럽게 인자하게 사랑으로 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늘 우리 아버지처럼 그렇게 너그럽고 인자하게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우리의 기도

이 시간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하길 원합니다. 노예를 대하기 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저 비참한 노예에서 건짐을 받은 해방된 노예임을 기억하시길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전에 할 수 없는 소망없는 죄의 노예였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입어 건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절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시며 그 은혜로 새로워지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옵소서. 너무 엄하게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노예처럼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사랑으로 진심으로 내 형제처럼 내 자매처럼 내 가족처럼 대하고 있는지 우리의 모습을 돌이키게 하시며, 하늘 아버지의 사랑으로 하늘 아버지를 경외함으로 인자하게 너그럽게 사랑으로 대할 수 있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시며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늘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 시간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어주시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시는 탕자의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우리의 비참함과 우리의 탄식과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언약의 하나님, 이 시간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의 어려움과 비참함과 고통과 괴로움을 하늘 하나님, 사랑과 긍휼하심이 풍성하신 아버지께 간구합니다.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우리의 고통을 살펴주옵소서. 이 시간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받은 우리가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우리가 너무 엄격하게 사람들을 대하고 있는지 않은지 돌아보게 하시며 회개하게 하시며, 하늘 하나님 우리 아버지처럼 이에는 이, 눈에는 눈, 귀에는 귀로 대하지 않게 하시며 원수를 사랑하며 박해라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아들처럼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 처럼 하늘 하나님의 너그럽게 인자하심으로 사람을 대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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