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교육

십계명 (13) 출애굽기 20장 18-26절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예배 (종교개혁주일)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10-3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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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교개혁 504주년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날 종교개혁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수도사이며 하나님 말씀을 지극히 사모했던 마틴 루터가 독일의 비텐베르크 성당의 정문에 95개조항의 반박문을 붙인 종교개혁 504주년 되는 주일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5가지 종교개혁의 원리가 있습니다.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오직 은혜 (Sola Gratia), 오직 믿음 (Sola Fide), 오직 그리스도 (Solus Christus),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Soli Deo Gloria). 5가지 종교개혁의 원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오직 성경 (Sola Scriptura)입니다.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우리는 지난 한 주간 하나님 말씀에 탐심(하마드)을 품는 하나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말씀사경회를 가졌습니다. 구약의 다니엘서 구약성경에서 가장 어려운 본문 중의 하나입니다. 류호준 교수님을 통해서 받은 다니엘서 그 말씀 하나 하나 정리하고 있는데, 우리 성도님들과는 이번 주 목요일 오후 8시에 함께 복습하는 시간도 갖길 원합니다. 다니엘서를 읽다보면 너무나 인상적인 구절들이 많이 나오지만 다니엘서 9장 1-3절 말씀이 제 눈에는 가장 인상적으로 들어옵니다.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 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다니엘이 섬겼던 바벨론 제국이 망하고 새로운 제국 메대 족속의 다리오 왕이 통치하는 원년입니다. 다니엘이 살던 시대는 평안한 시대가 아니라 엄청난 국제정치의 소용돌이 가운데 복잡하게 살던 시대입니다. 이 때 다니엘의 나이는 거의 80세 중반의 나이입니다. 그 고령의 나이에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다니엘의 손과 다니엘의 마음은 책에 있습니다.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년 만에 그치리라.

종교개혁의 정신은 바로 이것입니다. 오직 성경!!! 시대가 바뀌고, 사람들은 달라지고, 나라가 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들어서고, 정치가 혼돈스럽고, 코로나 상황이 지속되어도, 그 나이가 80세 중반이어도 오직 성경, 오직 하나님 말씀에 붙들려 살아가는 삶이 종교개혁의 가장 중요한 오직 성경의 정신입니다.

다니엘은 12장의 다니엘서도 보다 훨씬 더 길고 더 어려운 52장의 예레미야 말씀을 읽으며 그 말씀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깨달으며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회개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경과 오직 기도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읽은 성경구절이 예레미야 25장 12-13절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 내가 그 땅을 향하여 선언한 바 곧 예레미야가 모든 민족을 향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라”

다니엘은 오직 성경 그도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의 왕 느브갓네살을 불러다가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셨던 그 땅을 놀램과 비웃음거리 영원한 폐허가 되게 하시며, 아브라함의 언약의 자손들이 70년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그리고 70년이 끝나면 바벨론의 왕을 벌하여 영원한 폐허가 되게 하신다는 예레미야를 통한 예언의 말씀을 예레미야서 책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회개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정신입니다.

산타페의 유명한 치마요(Chiyamo) 성당을 방문했습니다. 가을 단풍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세 명의 조각상이 인상적이었습니다. Three Cultures Monument가운데 인디언은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고 있고, 그 왼쪽의 가톨릭교도는 회개 기도 하고, 있고, 그 오른쪽의 장교도도는 성경을 붙들고 있습니다. 나바호 인디언이 살던 뉴멕시코 땅에 카톨릭이 들어왔고, 장로교회의 선교운동이 이 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마침 그 자리에서 만난 이병천 신부님의 설명을 들으니, 가톨릭교도는 뉴멕시코에 들어와서 죄를 많이 지어 회개 기도하고 있다고 말씀하시고, 장로교도는 성경을 펴고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신다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성경을 펴서 하나님 말씀을 듣는 사람이 종교개혁의 후예들이며,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종교개혁의 역사를 자세히 보면, 종교개혁은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의 잘못된 구습만 지적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게 되어진다는 이신칭의의 구원론의 재발견을 통해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참으로 부패한 죄인이기에 죄인들이 모인 주님의 교회는 개혁된 교회여도 한번 종교개혁을 통해서 새로워진 교회이지만, 더 이상 개혁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개혁된 교회는 날마다 개혁되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 입니다. 다른 교회, 다른 사람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가 하나님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개혁되어야 합니까? 저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 날마다 개혁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모습 가운데 가장 개혁이 되어야 할 모습은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의 모습 가운데 가장 개혁될 부분은 바로 예배입니다. 십계명 전후의 문맥을 보면 모두 예배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십계명의 마지막 열번째 계명까지 주신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에 관한 중요한 말씀을 주십니다. 십계명을 마무리 하시면 하나님은 예배에 관한 세가지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계십니다. 첫째는 임재, 둘째는 말씀, 셋째는 방식입니다.

2.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예배

첫째,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의 임재이다. 18-21절 말씀 우리 같이 읽습니다.“뭇 백성이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백성은 멀리 서 있고 모세는 하나님이 계신 흑암으로 가까이 가니라”

시내산에서 모든 백성들이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보았습니다. 모두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의 모습입니다. 지금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의 큰 두려움 가운데 있습니다. 20절 모세는 말합니다.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지금 시내산에 하나님이 임재하십니다. 시내산은 하나님의 임재앞에 거룩한 예배를 드리는 거룩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의 임하심, 임재입니다.

출애굽기 19장 9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들이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 함이니라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아뢰었으므로”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임재하십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모든 예배의 가장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예배는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목적이 있습니다.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경외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무섭고 두렵고 떨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로 조금 더 가까이 조금 더 가까이 나아갑니다.

지금 시내산에서 임재하시는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모세이며, 다음에는 제사장들이며, 가장 멀리 백성들이 있습니다. 누가 가장 복된 사람입니까? 하나님 임재 가장 가까이 나아가는 모세가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모세가 120살에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모세의 생애 가운데 가장 부러운 것은 하나님과 모세 사이의 거리입니다. 신명기 34장 10절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모세 생애의 최고의 평가는 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하나님이 모세를 face to face 아시던 사이였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거리가 지금 우리의 신앙의 가장 중요한 본질을 보여줍니다. 시편 73편 27-28절 우리 믿음의 삶에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거리가 얼마나 가까운가가 복과 저주의 기준입니다.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그러나 내게는) 하나님을 가끼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임재를 싫어하며 하나님을 죽은 하나님으로 여기며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가 복이 있지 않고 망하는 자리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다가 영영 하나님을 떠나는 자리는 멸망의 자리입니다.

몸만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5장 7-9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하나님을 공경하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자인데 입술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몸도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있고, 몸 만이 아니라 마음도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있습니다.

종교개혁의 시작, 마틴 루터의 하나님 임재의 두려움이었습니다. 1505년 7월 2일 폭우가 쏟아지고 번개가 치던 날 루터는 독일의 명문 에르푸르트 대학원에서 법률공부를 시작하며 법률가로 장래가 보장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 날 친구 알렉시우스와 함께 길을 걷다가 천둥번개 속에서 친구가 벼락을 맞아 죽었습니다. 독일의 슈토테른하임에 가면 루터 인생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쓰여진 루터 기념비가 있습니다. 그날 루터는 법률가로서의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고 어거스틴 수도회의 수도사가 되기로 서원을 했습니다.

루터의 돌 기념비의 글귀가 있습니다. 구별된 땅, 종교개혁으로의 전환점, 하늘로부터의 번개 속에 이곳에 있던 젊은 루터를 향한 길이 제시되어 있었다. 루터의 기념비 반대편에는 1505년 7월 2일, 튀링겐 지역에 빛이 비추다. 성 안나여 나를 도우소서 그러면 제가 수도사가 되겠습니다. 루터의 아버지 한스 광부의 수호천사 성 안나를 부르며 하나님 앞에 서원한 슈토테른하임에서의 서원이 루터 생애의 전환점이며, 종교개혁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3. 하나님 말씀으로 예배

둘째,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두려운 임재 가운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십계명을 시작하면서 출애굽기 20장 1절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지금 시내산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함으로 듣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의 원리, 오직 성경은 오직 성경으로 살아계셔서 지금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19-20절 하나님의 임재의 두려움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한 것이 있습니다.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자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을 통해서 직접 듣는 것이 아니라 중보자 모세를 통해서 듣기를 원했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모세의 말은 모세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종교개혁의 새로운 전통은 그 이전까지 예배의 핵심이 의식이던 것을 말씀으로 바꾸었습니다.

우리교회를 방문했던 Rafaya와 Jonathan의 엄마 레베카의 남편 Mr. Malley가 우리교회를 방문하여 예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한국어 예배와 설교어서 한 마디도 못 알아들었을 텐데 예배 후에 하는 말이 충격이었습니다. 성당에 다니는데 성당 미사가 라틴어로 해서 하나도 못 알아듣는 것이 익숙하다고 괜찮다는 말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의 예배는 못 알아듣는 라틴어 미사를 알아들을 수 있는 자기 나라의 언어로 바꾸었습니다.

루터는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숨어지내면서 목숨을 걸고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 성경으로 번역했습니다. 영국의 위클리프는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을 해서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위클리프가 죽은 지 31년이 지나서 1415년 콘스탄츠 종교회의는 위클리프를 이단으로 판결하고 그의 저작을 불태두고 그의 무덤을 파헤칠 것을 결정했습니다. 그의 죄목은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라틴어가 아닌 자기나라 말로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은 겨우 500년밖에
안된 종교개혁의 전통입니다. 우리가 들고 있는 성경, 예배 시간마다 듣는 한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주신 말씀도 하나님 말씀입니다. 신명기 18장 15절 모세는 예언의 말씀을 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어야 하는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하나님께서 너를 위하여 세우신다 예언한 그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누구입니까? 마태복음 17장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셔서 영광스럽게 변형되셨습니다. 마태복음 17장 3-5절 말씀입니다.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모세가 예언한 나와 같은 선지자 그의 말을 들어야 할 분 바로 우리 주님 예수님이십니다. 하늘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들으며,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 말씀을 들으며,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예수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모세도 없고 예수님도 이 땅에 없는 시대에 우리는 누구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까? 우리는 누구든지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 말씀을 읽을 수 있는 만인 제사장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직분이 있습니다. 신약성경 에베소서 4장 11절 우리 예수님께서 신약의 교회를 세우시기 위한 직분자들을 세우셨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4가지 직분이 있습니다.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그리고 목사와 교사입니다. 목사와 교사는 목사 즉 교사라는 의미입니다. 목사의 역할은 곧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로서의 목사의 역할을 다시 회복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십니다. 12-14절 여기에 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의 사명이 있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갈릴리 장로교회에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이 아니라면 저는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성도를 온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을 어떻게 온전하게 할까요? 하나님의 사람을 준비시켜서 봉사의 일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을 어린 아이 상태로 두지 아니하고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 까지 이르게 합니다. 어린 아이는 속임수와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과 풍조에 밀려 요동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쳐 훈련하여 영적으로 성장하게 하며, 성장한 성도로 하여금 봉사의 일을 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라고 제가 목사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좋던 싫던 목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성장하고 봉사를 하는 주님의 사람으로 자라갑니다.

4. 하나님이 명하신 예배의 방식

셋째, 예배의 핵심은 예배의 방식이다. 이제 마지막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의 방식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임재,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 세번째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의 방식이 크게 3가지로 나와있습니다.

23-26절 같이 읽습니다.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고,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너는 층계로 내 제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

첫째, 우리는 우리의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은이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않습니다. 이것은 십계명의 제2계명이었습니다. 출애굽기 20장 4절 말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우리는 하나님을 은이나 금같은 신상을 만들어 예배하지 않습니다. 은이나 금으로 만든 신상은 하나님이 아닌 거짓 하나님 우상입니다.

둘째, 우리는 번제와 화목제로 예배를 합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5대 제사 가운데 번제는 히브리어 올라 온전히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제사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서 온전히 올려드리는 예배입니다. 번제의 목적은 예배자가 하나님께 감사로 올려드리는 아낌없이 남김없이 다 드리는 온전한 헌신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목사의 설교를 비평하는 예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번제의 예배입니다. 반면에 화목제는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번제와 달리 화목제는 영어로 peace/fellowship offering으로, 소나 양의 핵심 부위인 내장의 기름, 두 콩팥, 간엽만 불태어 드리고 나머지는 모두 사람들이 나누어서 먹는 제사입니다. 하나님과의 peace 만이 아니라 믿음의 공동체의 사람들 사이의 peace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인 번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수평적인 관계인 사람 사이의 화목도 매우 중요합니다. 화목제를 잘 드리면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의 관계가 좋아집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 마태복음 5장 23-24절에서 성도간의 화목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번제도 중요하지만 화목도 너무 중요합니다. 믿음의 공동체에서 화목이 안되는데 번제만 드려서는 안됩니다. 번제와 동시에 화목제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받은 믿음의 사람들이 번제와 화목제로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하는 모든 곳에서 친히 임재하시어 복을 주신다고 약속합니다.

셋째, 우리는 다듬지 않은 돌로 만든 제단에서, 층계가 없는 제단에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제단의 규정은 두가지입니다. 다듬지 않은 돌과 층계가 없는 제단입니다. 25-26절 말씀입니다.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너는 층계로 내 제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아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라는 것을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화려한 방법이 아니라 단순하면서도 우리의 마음이 담긴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층계없는 제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방신전처럼 화려한 계단이 있는 제단을 원하지 않으시고, 하체가 보이지 않는 단정한 제사를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말씀을 주시기 전에 살아계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친히 찾아와 임재하시며 말
씀하십니다. 십계명의 말씀은 하나님이 직접 주시며, 십계명의 말씀을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배자로 부르십니다. 오늘도 우리는 십계명의 말씀을 받으며 그 말씀 우리의 예배자에게는 주시는 말씀으로 받습니다.

5.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이 시간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함께 찬송하며 기도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예배의 말씀을 받아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간절히 사모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한 예배 가운데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옵소서. 우리의 마음의 귀를 활짝 열어주시고 그 말씀 밝히 듣게 하옵소서. 설교자를 통해서 주시는 그 말씀으로 우리를 깨우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그 말씀으로 하나님을 대면하여 만나는 예배자, 무엇보다 눈에 보이는 우상으로 예배하는 예배자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며 기뻐하며 감사함이 충만한 예배자가 되게 하시며, 위로는 하나님, 옆으로는 우리 예배 공동체의 성도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예배자가 되게 하시며, 화려하지 않아도 단순하지만 우리의 중심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살아계셔서 지금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종교개혁주일 다시금 우리의 예배를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 지금도 우리에게 맡겨주신 그 말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예배합니다. 지금도 우리의 예배 가운데 말씀하시는 그 말씀 사람의 말로 받지 않게 하시며 지금 여기에서 순종을 명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게 하옵소서.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사람의 간사한 유혹과 속임수에 빠지는 영적인 어린아이의 상태에 머물지 말게 하시며,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된 온전하며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는 성숙한 말씀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번제와 화목제의 예배가 되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며, 우리 믿음의 공동체 갈릴리 교회 성도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랑 가득한 예배자가 되게 하시며, 우리의 겉모습보다 우리의 전심으로 드려지는 예배자로 일평생 예배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Total Reply 1

  • 2021-11-07 11:55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