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교육

갈라디아서 (9) 갈 3:15-29절 율법의 목적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10-30 11:08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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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내산 언약의 율법의 목적

갈라디아서 3장에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의 어리석음을 두번이나 책망하였습니다. 3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3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어리석은 갈라디아 성도들의 어리석음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잘못 이해하고 해석한 것입니다. 율법이 무엇인가? 주일마다 살펴보는 십계명의 율법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것이라고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경우를 보아도 아브라함은 율법을 알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하였지만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다시 창 15:6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의로 여기시는 칭의의 근거는 율법이 아니라 오직 믿음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 언약의 핵심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5-18절 두 개의 중요한 언약을 비교합니다. 아브라함 언약과 시내산 모세 언약입니다.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사람 사이의 약속도 정하고 나면 함부러 폐하거나 더할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먼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그 언약이 430년후에 생긴 다른 시내산 언약, 모세 언약이 그 이전의 아브라함의 언약을 폐하거나 더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하신 언약은 정확히 그 자손이 1차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지만, 바울은 그 자손이 복수가 아니라 단수로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아브라함 언약의 궁극적인 성취는 새 언약의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계속해서 성경의 중요한 세가지 언약이 만납니다. 제일 먼저 아브라함 언약, 그리고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시내산 언약, 모세 언약입니다. 시내산에서 모세를 중보자로 해서 하나님은 중요한 율법을 주십니다. 그리고 신약의 새언약에서 예수님은 아브라함 언약을 성취합니다.

그런데 한 주간 말씀사경회에서 그제 목요일 저녁 시간에 잠시 류호준 교수님도 말씀하신 모세 언약은 독특합니다. 바로 율법때문에 독특합니다. 모세언약의 율법은 그 율법을 순종하면 언약에 근거해서 복을 주시고, 율법을 불순종하면 언약에 근거해서 저주가 임합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새로운 언약을 체결한 신약 시대의 갈라디아서 성도들은 아브라함 언약, 모세 언약의 율법, 새 언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지금 갈라디아 성도들은 끊임없이 율법의 행위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언약처럼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라면 도대체 430년후에 모세언약을 통해서 주신 율법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그 율법과 새언약의 예수 그리스도는 무슨 관계인 것입니까

오늘 함께 읽은 갈라디아서 3장 15-29절의 말씀은 율법의 위치와 목적을 설명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시고 나서 율법은 430년후에 생긴 것이며, 이 나중에 생긴 율법은 아브라함에게 먼저 주신 언약을 폐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 율법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인도하는 초등교사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위치는 아브라함 언약 이후에, 그리고 에수 그리스도 이전에 주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 언약 이후에, 그리고 새언약의 그리스도 이전에 주어진 율법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2. 율법의 첫번째 목적: 범법함으로 더하여짐

19절을 보겠습니다.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율법이 주어진 목적을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율법의 목적은 사람을 구원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의 죄를 드러내고 폭로시켜 인간이 얼마나 할 수 없는 죄인인지 밝히드러냅니다. 율법을 종종 고성능 거울에 비유합니다. 거울은 사람들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지는 않고 오히려 부족한 모습을 폭로시킵니다.

사도 바울은 한때 스스로를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빌 3:6b)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율법의 외형적인 준수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의 본질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율법을 깨달으니 죄는 살아나고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자신은 죽었도다고 고백합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로마서 7장 7-9절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 탐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하나님의 율법은 인간에게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주어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통하여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죄성을 폭로하여 죄를 더 밝히 드러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주신 목적은 율법을 지켜서 살며 의를 얻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 갈 3장 21-22절 말씀처럼 율법은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니라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동일한 말씀이 롬 3:19-20절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율법은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인간의 무능함과 죄악을 드러내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4)고 탄식하게 합니다. 이것이 율법의 첫번째 목적입니다. 율법으로 탄식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여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3. 율법의 두번째 목적: 초등교사 역할

여기에 율법의 두번째 목적이 있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 역할을 합니다. 23-24절입니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율법을 통해서 우리 안의 죄를 깨닫는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죄를 깨닫게 하는 율법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 죄에서 우리를 건져줄 구원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율법의 기능을 당시 로마와 그리스 문화에서 잘 알려진 초등교사로 설명합니다. 초등교사를 우리 아이들 학교 선생님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이 초등교사는 잘 교육을 받은 노예입니다. 이 노예가 아이들을 집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집으로 데려다 주는 역할을 하며 낮에는 부모를 대신해서 아이들에게 교육도 시킵니다. 아이들이 조금 더 크게 되어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 학교도 갈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초등교사는 더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율법이 하는 일은 이 초등교사의 역할입니다. 아브라함의 약속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에는 더 이상 초등교사의 역할을 하는 율법의 기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계속해서 초등교사 역할 아래에 있는 율법에 거하려고 하다면 이는 참으로 잘못 된 것입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율법을 지킴으로 된 것이 아니라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어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율법을 지키는 행위에 있지 않고 오직 믿음에 있습니다. 믿음의 성도들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제는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않은 장성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아브라함 언약의 영적인 자손이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모든 복을 받을 약속의 후손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된 연합된 관계에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은 거룩하고 의로운 백성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차별도 없습니다. 유대인과 헬라인의 차이가 없고, 종과 자유인의 차이가 없고,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없습니다. 오직 믿음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요,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

4. 우리의 기도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이 분명합니다. 율법의 거울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죄를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이 시간 간절히 기도합시다. 우리는 스스로 얼마나 죄인입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자는 세리 처럼 이렇게 기도합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눅 18:13). 이시간 또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믿음 가운데 굳건하게 서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신분이 죄인에서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은 의인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나님의 상속자이며 약속으로 얻을 유업도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눈을 떠서 이 복음의 약속 안에 있는 믿음의 복을 누리며 풍성하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무런 자격 없는 죄인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부르시니 얼마나 감사한자요!!! 오직 주의 넘치는 은혜에 감사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율법으로는 할 수 없는 죄인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죄인의 괴수에게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혀 의인으로 삼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에 소망 없던 자들에게 영생의 확신을 주시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로 누릴 약속의 유업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땅의 삶과 눈에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며,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며 하루 하루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이 시간 기도할 때 성령충만함으로 우리가 들은 그 복음의 귀한 말씀 더욱 잘 깨달아 확신하게 하시며, 감사하게 하시며, 복음 가운데 굳건하게 서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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