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12) 출 20장 17절 탐내지 말라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10-24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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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
오늘은 벌써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 열번째 계명입니다. 다시 한번 천천히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읽습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동일한 십계명의 열번째 계명은 신명기 5장 21절도 있습니다.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출애굽기의 열번째 계명은 우리가 탐내지 말아야 할 것이 순서대로 집으로 시작하여 가장 소중한 아내, 남종, 여종, 소, 나귀, 소유인데, 신명기는 가장 소중한 아내가 제일 먼저입니다. 집, 밭, 남종, 여종, 소, 나귀, 모든 소유를 말씀합니다. 여기서 가장 포괄적인 단어는 집과 모든 소유입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것은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라는 것과 동일합니다. 네 이웃의 집과 모든 소유에는 이웃의 아내도 있고, 밭도 있고, 남종과 여종도 있고, 소와 나귀도 있습니다.
십계명의 열번째 계명을 마지막으로 살펴보면서 우리 다시 한번 십계명 전체를 우리 마음에 새기길 원합니다. 일상이 안경살 간도크다. 일, 유일하신 하나님이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상,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안,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십니다. 경, 부모를 공경하라. 살, 살인하지 말라. 간, 간음하지 말라. 도, 도둑질하지 말라. 크, 크짓말, 거짓 증거하지 말라. 다, 탐내지 말라.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계속 이어가는 방법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명령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을 순종하시면서 살아가시는지요? 이 질문을 이렇게 바꾸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십계명의 열번째 계명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않으면서 살아가시는지요?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이 다른 계명과 다른 것은 탐내지 말라는 것은 우리의 행동 이전에 우리의 마음의 문제를 말합니다.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는 것은 제7계명은 간음하지 말라였습니다.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는 것은 이미 제8계명의 도둑질하지 말라였습니다. 제5계명 부모를 공경하라 부모의 권위를 탐내지 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6계명 살인하지 말라. 네 이웃의 생명을 탐하지 말라. 그러면 제9계명은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것은 네 이웃의 명예를 탐하지 말라.
그런 면에서 볼 때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은 가장 포괄적인 계명이며, 우리의 행동 이전에 우리의 가장 중요한 우리의 마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2. 탐낼 것과 탐내지 말 것
탐내지 말라는 단어의 의미가 있습니다. 히브리어 하마드는 강렬하게 원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것을 강렬하게 원할 수도 있고, 나쁜 것을 강렬하게 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가 모든 것이 탐심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로 탐해야 하는 것이 있고, 우리가 정말로 탐해서는 안되는 것도 있습니다.
시편 19편 9-10절 다윗이 정말 탐하는 것이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 보다 더 달도다” 여기서 사모하다라는 단어가 탐심과 같은 히브리어 단어입니다. 다윗이 탐할 정도로 사모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 여호와의 법인 하나님 말씀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하나님 말씀을 탐할 정도로 사모한다면 제가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가을 말씀 사경회가 내일부터 금요일까지 다니엘서 전체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황금같은 기회입니다. 수요일마다 함께 나누는 데살로니가 그 말씀 얼마나 귀한 하나님 말씀입니까? 토요새벽기도회 마다 나누는 갈라디아서 얼마나 탁월한 복음의 말씀인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말씀을 사모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어느 정도로? 하마드 탐할 정도로 사모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금보다 더 순금보다 더,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 인생에서 꿀보다 더 단 말씀을 경험하는 것이 최고로 우리가 탐해야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절대로 탐해서는 안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창세기 3장 5-6절 하나님이 행위언약으로 금하신 것이 있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그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여자가 몹시도 탐한 것은 먹임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그 나무는 하나님이 절대로 금하신 행위언약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였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유혹이 찾아왔습니다. 마음속에서 강렬히 원하는 탐욕이 들어옵니다.
창세기 2장 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기쁨의 에덴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를 다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을 수 없습니다. 왕이신 하나님이 정하신 넘어설 수 없는 언약입니다. 이것을 넘어서는 것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탐하는 것은 더 이상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창조주 하나님과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의 경계를 넘어서, 하나님을 내 인생의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불순종의 죄의 시작, 마귀의 거짓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거짓이 하와의 마음에 강렬하게 원하는 탐심이 들어왔습니다. 강렬하게 원하는 탐심이 들어오면 반드시 죄를 범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언약의 자녀와 언약의 땅입니다. 하늘의 별 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언약의 자손을 주겠노라 약속하시며, 동시에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노라 땅과 자손을 언약하신 하나님께서 드디어 언약의 말씀을 실행하여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약속의 땅, 언약의 땅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단 한 가지의 명령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호수아 6장 16-18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기생 라합과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모두 살려 주라 이는 우리가 보낸 사자들을 그가 숨겨 주었음이니라)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가나안 땅의 첫 성,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을 언약의 선물로 주십니다. 그 첫 성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라고 신신당부 하십니다. 너희가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손대지 말라고 여호수아를 통하여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때 이 명백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한 사람이 나옵니다. 아간입니다. 아간으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보다 훨씬 작은 아이 성에서 참패를 당합니다. 왜 패배했을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 7장 11-12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에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원수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그들도 온전히 바친 것이 됨이라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온전히 바쳐진 물건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의 공동체 가운데 누군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어기고, 그 물건들을 가져가고,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고 거짓으로 속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이 원인입니다. 누구입니까? 아간입니다. 아간의 탐심이었습니다. 여호수아 7장 20절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그 무게가 오십 세겔되는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가졌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하더라”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 얼마나 아름다운 외투인지 아간의 눈에 강렬하게 원하는 탐심이 찾아왔습니다. 은 이백 세겔, 세겔은 11.4 g이니 200세겔이면 200*11.4g=2280g이고 오늘날 돈으로 대락 환산하면 5600만원, 5만달러 정도 하는 거액입니다. 오십 세겔하는 금 한덩어는 금 570g은 은의 15배정도의 가치가 있으니, 1400만원*15배이면 2억1천만원, 20만불 정도의 가치가 있습니다. 금 20만불, 은 5만불, 아름다운 시날산 외투 한번 그냥 눈 한번만 감으면 얻을 수 있는 마음에 강렬하게 탐욕으로 다가오는 엄청난 액수입니다. 탐심에 눈이 멀먼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3. 탐내지 말아야 하는 이유: 우상숭배이기에
사랑하는 여러분,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인 탐심 무엇이 문제입니까?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탐내지 말라고 하십니까? 우리 믿음의 인생에서 반드시 탐해야 하는 것이 있지만, 또한 반드시 탐해서는 안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탐하지 말라고 하시는 그 이유가 중요합니다. 왜 탐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 우리는 부모 공경의 이유가 우리 부모님은 하나님을 대리하여 우리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해주시고 하나님을 대리하여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키워주시는 하나님의 대리인이기에 부모님을 공경합니다. 살인하지 말라. 우리는 살인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이기에, 의와 진리와 거룩과 지식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이기에 살인하지 말라야 합니다. 간음하지 말라.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기에 결혼은 언약의 관계이며, 간음은 언약의 관계를 파괴하고 깨뜨리는 죄이기에 우리는 간음할 수 없습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은혜의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은 우리는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우리도 남을 대접하는 황금율로 사람을 대합니다.
거짓증거하지 말라. 왜나하면 우리 하나님은 거짓말 하실 수 없는 진실하신 하나님 이시기에 우리도 거짓의 아비 마귀가 아니라 진실의 하나님을 따라 거짓 증거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왜 탐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그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탐하지 말라는 것이 다른 계명과 차이나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5절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같은 죄악이 탐심인데 탐심이 더 심각한 것이 이것이 하나님 자리에 있는 우상숭배니라.
에베소서 5장 3-5절 말씀도 동일합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라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을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탐욕, 탐심이 무서운 것은 이것은 우상숭배라고 말합니다. 다른 죄악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탐심은 하나님의 자리에 내가 강렬하게 원하는 탐심이 자리 잡고 있기에 우상숭배이며, 탐하는 자는 우상숭배자이기에 하나님은 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탐하는 우상숭배자에게는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 구절 더 살펴봅니다. 누가복음 12장 15절 입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하나님이 있어야 할 자리에 탐심이 있으면 끊임없이 조금 더 조금 더 소유를 탐하다가 멸망하게 됩니다. 이토록 심각한 탐심이 무서운 죄인데도 문제는 사람들은 탐심을 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 대신에 탐심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 심각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대학시절 청년부 모임에서 함께 읽은 책이 있습니다. 우리가 젊어서부터 주의해야 하는 세 가지가 있다고 경고한 리챠드 포스터의 <돈, 섹스, 권력>이라는 책입니다. 이 세 가지는 세상 사람만 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도 동일하게 탐하는 세 가지이고, 이것을 철저하게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경고의 책이었습니다. 젊어서 읽은 그 책을 비추어 오늘날 크리스천의 삶을 보니 여전히 이 세가지가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탐심입니다.
시카고 윌로우크릭 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미국 복음주의 교회의 스타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분이 쓴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 Who you are when no one’s looking> 다른 사람의 시선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 우리에게 질문하는 베스트셀러 였습니다. 존경받는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1975년 시카고 외곽에 윌로우크릭 교회를 개척하여 미국에서 가장 큰 교회 성장했습니다. 올해 46년된 교회가 세상의 이목을 끄는 이유가 빌 하이벨스 목사님께서 14년간 교인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발각이 되어 교회를 조기에 사임한 2018년 성추문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의 평화주의 교단 메노나이트의 세계적인 신학자 존 하워드 요더는 미국 최고의 기독교 윤리학자이며 신학자였습니다. 그의 책 <예수의 정치학>은 미국 신학 역사상 가장 영향력있는 신학책중의 하나였습니다. 1997년 12월 30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에 뉴욕 타임즈는 요더의 성추문 논란을 전하면서 “나쁜 사람이 좋은 신학자가 될 수 있을까? (Can a bad person be a good theologian?)”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돈, 섹스, 권력을 추구하는 탐심은 지금도 최고의 목회자, 최고의 신학자, 최고의 성도에게도 언제든지 마음에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리를 잡고 있는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4.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네 이웃의 집과 소유를 탐내지 말수 있습니까?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 113문 질문과 답변은 제10계명의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13질문: 제10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것은 무엇입니까?
113답: “하나님의 계명 어느 하나에라도 어긋나는 지극히 작은 욕망이나 생각을 조금도 마음에 품지 않는 것이고, 언제든지 우리 마음을 다하여 모든 죄를 미워하고, 모든 의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 113문은 십계명의 열번째 계명이 정확하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이 계명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진술합니다. 첫째, 10계명에서 하나님께서 금지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 어느 하나에라도 어긋나는 지극히 작은 욕망이나 생각을 조금도 마음에 품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 10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언제든지 우리 마음을 다하여 모든 죄를 미워하고, 모든 의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5. 탐내지 않는 것이 가능한가?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이 주신 10번째 계명의 말씀대로 금하시고 원하시는대로 탐하지 않는 신실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가능할까요? 탐하지 않는 삶이 정말 가능할까요?
우리가 십계명의 10번째 계명에서 발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삶에 탐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우리의 절망과 한계입니다. 십계명의 외형적인 명령이 아니라 그 깊은 본질적인 의미를 깨달은 사도 바울의 고백이 로마서 7장에 있습니다. 7-10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율법의 의미를 깨달은 탐내지 말라는 계명의 의미를 깨달은 사도 바울의 처절한 고백입니다.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십계명의 본질적인 의미를 깨닫기 전에는 사도 바울은 얼마든지 십계명의 말씀을 지키는 의로운 사람인줄 착각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10번째 계명은 우리의 행동 강령이 아니라 마음의 탐심을 다룹니다. 탐하고 싶지 않은데 탐하지 말라는 계명을 들으면 내 속에 탐하는 탐심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내 속에 온갖 종류의 탐심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율법이 폭로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율법을 제대로 깨달으면 우리가 정말 하나님이 금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 안에는 존재하지 않고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았습니다. 문제는 선하신 십계명이 문제가 아니라, 죄로 가득한 내가 문제입니다. 로마서 7장 18-24절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탐심으로 가득한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우리를 건져냅니까? 25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기독교 역사에서 십계명의 본질, 율법의 본질, 마지막 10번째 계명의 본질을 깨달은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탐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우리 안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 계명으로 우리가 할 수 없는 죄인임을 발견합니다. 우리가 의지하고 붙들 분은 계명을 행하는 나의 능력이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6. 탐심 대신에 감사와 자족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하나님은 우리가 이 계명에서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탐하는 대신에 반드시 추구해야 하는 두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감사와 둘째는 자족입니다.
첫째는 감사입니다. 전도서 5장 18-19절 말씀 우리 함께 읽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이 우리 연약한 인생에 주시는 선물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먹고 마실 수 있는 은혜의 선물이며, 우리가 수고하는 중에서 얻는 낙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수고한 수고에 주신 재물과 부요도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전혀 없는 은혜의 선물이기게 우리는 탐하지 않고 감사합니다.
둘째, 탐하는 대신에 감사와 함께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자족입니다. 빌 4장 11-13절 말씀 다같이 읽습니다.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사도 바울의 고백은 평안하고 안락하고 감사함이 넘치는 환경에서의 고백이 아닙니다. 로마의 감옥에서 궁핍하고, 비천하고, 배고픈 환경에서의 고백입니다. 바울은 그럼에도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고백합니다. 자족은 조금 더 조금 더 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족은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며 만족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자족의 이유가 있습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바라보니 만족하고 감사한 것입니다.
7. 우리의 기도
이 시간 다 같이 일어나서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함께 찬송하며 기도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 네 이웃의 집을 탐하지 말라 그 말씀으로 기도하길 원합니다. 탐하지 않을 능력이 우리 안에는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죄악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웃의 집을 탐하고, 이웃의 소유를 탐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십계명의 탐하지 말라는 계명이 없었으면 탐하고 살아가면서도 탐하며 살고 있는지 발견하지 못하는 죄인입니다. 이 시간 우리의 탐심의 죄악을 고백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깨끗하게 씻어주옵소서. 이제는 탐심으로 살아가는 가련한 인생이 아닌 감사하게 하시며, 자족하게 하옵소서 이 시간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시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따라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인 네 이웃의 집을 탐하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하시는 그 말씀을 우리의 마음으로 받습니다. 탐내지 말라 하시는 그 진리의 말씀, 계명의 말씀이 우리의 탐심으로 가득한 마음 속에서 온갖 종류의 탐심을 만들어내는 우리 속에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원함은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이 없는 할수 없는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우리를 건져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이제는 우리의 남은 생애 탐심으로 살지 않게 하시며, 죄는 미워하고 의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날마다 때마다 우리 마음과 입술에서 감사합니다 고백하게 하시며,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참으로 자족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소망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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