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풀뿌리 운동과 정체성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10-19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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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 (신 32:7).
1. 주동완 교수 소개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학사, 한국학대학원 한국사회전공 석사, City Univ. of New York 사회학 박사과정, 외대 글로벌 문화콘테츠학과 전공 박사졸업 현) 코리안 리처치센터 원장, 외대 지식콘텐츠 부교수, 퀸즈대 재외 한인사회 연구소 연구원, 뉴욕신학교 전임교수입니다. 뉴욕에서 코리안 리처츠센테 원장으로 있습니다. 재외 동포를 위한 자료 수집, 활용 연구하는 개인 연구소입니다.
2. 풀뿌리 민주주의란? Grassroots Democracy
오늘 강의 주제는 풀뿌리 운동과 정체성입니다. 풀뿌리 운동과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제목입니다.
풀뿌리 운동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생각하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해석합니다. 국민 개개인에게
골고루 영향을 미치는 대중적인 민주주의 A popular democracy that affects all citizens equally 인데,
이 용어는 1912년 미국 공화당에서 분리된 진보당이 내건 이념 중 하나이며, 1935년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사용하면서 일반화되었다.
3. 풀뿌리 민주주의 구조는?
간접 민주주의 indirect democracy , 엘리트주의 Elitism VS 참여 민주주의, 평범한 시민
풀뿌리 운동은 직접 참여하자, 그리고 평범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자는 것이 기본이다.
4. 미국에서 이민자의 숫자 Number of naturalized immigrant voters
2000 12 million
2020 23 million 으로 93% 증가, 미국 전체 인구의 9.8%이다.
Immigrant voters by state: 4 states (CAL, New York, Texas, Florida) – 56% 의 이민 투표자이다.
미국이 더 이상 백인위주의 미국이 아니고, 미국은 변화되고 있다.
5. 민족별 이민 투표자
한국 0.7 million
멕시칸 3.5 (16%)
필리핀 1.4
아시안 인디언 1.2
중국 1.0
베트남 1.0
쿠바 0.8
한국은 0.7백만 2020년 센서스에 거의 2백만명이 집계되는데 실제로는 2.5 million으로 본다.
6. 한미 연합회
투표권으로 직접 정치에 참여하자. LA 한인 단체이다. 뉴욕은 시민 참여단체가 중심 역할을 한다. 한미연합회의 시작은 한 Korean American Grassroots Conference로 워싱턴에 가서 의원들에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금은 조직이 커져서 매년 100-150명의 20-30대 청년, 인턴 고등학생들이 배움을 위해서 참여한다.
7. 풀뿌리 민주주의의 방법은?
지방자치제도: 타운홀 미팅 Town Hall Meeting의 방법으로 주민들이 모여서 미팅을 하고 대표자를 불러 이야기를 듣고 요구사항을 듣는다. 이런 방식을 통해서 진행한다. 직접 가지는 않지만 직접 참여하는 방법이다. 타운홀 미팅으로 가장 유명한 뉴욕 위의 뉴햄프셔의 런던 레이 라는 타운으로 200년 정도가 되었다. 우리 한인회에서 미팅을 하면 지역의 정치인은 참여할 수 있는가?
8. 타운홀 미팅에 참여하는 주민의 의제는?
도로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
마을을 어떻게 하면 아릅답게 꾸밀까?
주차장은 어디에 마련할까?
우체통은 어디에 설치하지?
마을의 각 가정 집 벽은 무슨 색으로 칠할까? 등등
특정 안건에 대한 주민 토의, 정책 표결, 예산 결정, 결산 검증
타운의회에 영향력 행사
작은 지역 문제 – 주민들 스스로 해결 – 민주주의 경험, 민주정치 훈련
9. 풀뿌리 민주주의의 궁극의 목적?
유권자 등록 - 커뮤니티 파워 – 대변인 (정치가) 배출: 한인을 대표할 정치가를 뽑자. 2세를 뽑아 의회에 보내어 우리를 위해서 일해줄 사람을 만들자.
뉴욕의 플러싱을 보면 뉴욕 동부지역에서 가장 먼저 코리안 타운이 1960년대 중반에 생겨 1970년에 커졌다. 플러싱은 한인들, 중국인들이 많이 살았는데 지금은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살다보니 중국인들에게 빼앗겼다. 중국인들이 더 많이 늘어나 한국인은 플러싱에서 벗어나 근처의 다른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숫자도 늘었지만, 중요한 점은 중국인 정치가가 나왔다. 중국인 정치인이 중국 타운을 완전히 바꾸었다. 낡은 창고 지역, 공장 지대에서 상업지역으로 바꾸었다. 거기 중국 사람들은 부동산 오르고, 한국 사람들은 렌트비 내고 장사한다. 정치가 한 사람 배출로 달라졌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궁극적 목적은 유권자 등록으로 커뮤니티 파워로 우리의 정치인을 뽑자.
10. 뉴멕시코주 한인들의 풀뿌리 운동의 목표: 한인 정치가의 배출은?
그러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20년, 10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으면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언젠가, 어떻게 보면 금방 될 수도 있다. 자라나는 2세가 생각만 잘 갖고 있으면 할 수 이다. 2세의 생각을 누구 지도하는가? 커뮤니티가 해야 한다.
11. 뉴멕시코 현황
위키피티아를 보면, 뉴멕시코가 미국 전체에서 5번째의 큰 주도이다. 남한의 3배보다 더 크다. 뉴욕 주는 남한의 1.5배이다. 여기는 3개가 넘는 뉴욕의 두 배이다. 인구는 210만명이다. 뉴욕시만 8백만, 뉴욕 메트로폴리탄과 주변의 일일생활권 인구는 1200만명이다. 뉴욕시 인구의 1/4이다. 뉴욕은 점점 안 좋아진다. 뉴멕시코주는 히스패닉의 인구비율 49.1% 이 가장 높은 주이다. 백인 82%, 흑인 2.2% 아메리칸 인디안 10.9%, 아시안 1.8% (2019년) (위키피디아 자료에 의하면, 2020년 기준으로는 백인 73.9% (히스패닉과 라티노 제외 백인 만 36.8%), 히스패닉 49.3%, 네이티브 인디언 9.5%, 흑인 2.3%, 아시안 1.7% 기타)
LA에서는 동포사회 보는 뉴멕시코는 주 총 인구 210만명에서 약 4,800명 한인들이 엘버커키시를 중심으로 거주한다. 반 정도라면 2000여명이 살지 않을까? 어떻게 지도자를 배출할 것인가? 다들 퍼져 사니 힘들다. 앨버커키시에는 뉴멕시코 한인회가 1987년 창립되어 활동중이다.
12. 풀뿌리 민주주의의 주의점은?
희망은 있는가? 한 가지 방법은 자금 fund , 리더쉽 leadership , 네크워크 network 이다. LA나 뉴욕 단체들은 네트워크를 만들어 준다. 뉴멕시코 상원의원이 우리가 오라고 하면 오겠는가? 개인이 하면 힘들지만, 네트워크 단체가 있으면 온다. 정치가들은 표가 있으면 어디든지 간다. 표가 없으면 안간다. 계산이 빠르다.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공통관심이다. Common! 주민들이 모였는데 생각이 다르면 힘을 얻지 못한다. 공통의 관심사를 어떻게 갖는가? 풀뿌리 아이덴터티 문제이다. 우리가 누구인가? 여기 모인 분들은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살아온 방식이 다르지만 우리가 조사한 것은 우리들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아이덴터티에서 공통의 관심이 나온다.
13. 풀뿌리 아이덴터티
풀뿌리 운동은 풀뿌리 아이덴터티 확립이 필요하다. 세 가지 아이덴터티중에서 첫째, 우리는 한국인이다. 둘째, 우리는 미국인이다. 한국에 가면 느낀다. 반은 미국 사람이 되었다. 셋째, 우리는 Korean American이다. (여기에 더해서 우리는 크리스천이다!!!) 여기 한국학교에서 커리큘럼을 보면 한국 문화, 한국 역사, 한국 말을 가리킨다. 중요하다. 플러스 코리언 아메리칸 정체성을 심어주어야 한다. 뉴욕에서 한국학교 심사를 하는데, 역사 교육 잘하는 학교에서 3000불을 주는데 가서 보면 한국 역사를 배운다. Korean American 신경은 거의 쓰지 않는다. 뉴욕 뉴저지 180개 한국학교에서 Korean American 역사를 가리키는 학교는 3학교가 있다.
14. 우리 아이들 누가 가르치는가?
Who? Korean Community,
What? Korean American History를 가리킨다. 학생들이 히스토리를 알면 나는 누구인가?
사진을 보자, 미국 사절단 사진이다. 미국과 조선이 1882년 수교를 맺을 때, 조선을 개방하며 미국과 제일 먼저 수교를 맺었다. (위키피디아 조미수호통상조약 내용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B%AF%B8_%EC%88%98%ED%98%B8_%ED%86%B5%EC%83%81_%EC%A1%B0%EC%95%BD)
한국은 미국과 잘해야 한다. 한국에서 미국을 거부하는 반미운동도 있는데 역사를 잘 몰라서 그렇다. 미국과 잘 지내야 국익에도 이익이 된다. 1883년 한국에서 사절단을 미국으로 보냈다.
그때의 사절단이다. 미국 사절단으로 온 보빙사는 조선 사람들은 갓 쓰고 미국에 왔다. 청나라 사람이 오랑탕인데, 통역으로 쫓아왔다. 조선 사람 가운데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통역이 별로여서 호레이스 알렌 공사가 일본에 있는 친구 공사에게 이야기해서 조선 사절단이 가는데 통역으로 구한 사람이 퍼시벌 오웰이다. 조선 말을 모른다. 비서 일본 사람이 있는데, 조선 사람이 일본 말을 하니, 일본말과 영어로 통역을 진행했다. 이때 모두 11명이 갔는데, 보빔사의 정사와 부사 가운데 정사는 민영익으로 명성와후인 민비의 조카이다. 부사는 홍영식인데 영의정의 아들이다. 거의 22-25세의 젊은이들이 미국에 1883년에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대륙황단으로 왔다.
(최초의 미국 사절단인 보빙사https://ko.wikipedia.org/wiki/%EB%B3%B4%EB%B9%99%EC%82%AC와 보빙사의 신임장 https://ko.wikisource.org/wiki/%EB%B3%B4%EB%B9%99%EC%82%AC_%EC%8B%A0%EC%9E%84%EC%9E%A5)
15. 1904년 1월 13일 재미 한인의 날
갤릭호 배이다. 1903년 12월 22일 한국에서 출발하여 하와이에 1904년 1월 13일 하와이에 도착한 재미 한인의 날이다.
(갤릭호와 한인 이주의 역사 https://blog.daum.net/gmania65/596)
(재미국 한인의 역사 https://theme.archives.go.kr/next/immigration/endoftheJoseonDynasty.do)
뉴멕시코주 한인회는 이런 역사로 시작하여 스스로 우리가 우리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를 모르면 어떻게 우리를 이야기 하겠는가? 우리가 누구인지 분명히 이야기 해야 한다. 뉴멕시코 상원의원, 하원의원, 시장과 주지사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그래서 아이덴터티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역사를 알아야 한다. Korean American History를 알아야 한다,
16. 뉴욕 메트로 지역 한인사회와 역사
뉴욕의 지도이다. 맨하튼이 분홍색이다. 맨하튼만 뉴욕이 아니라, 뉴욕시와 뉴욕주에 해당되는 긴 물고기 모양의 long islands 섬이다. 메트로 뉴욕은 5개의 시에 1200만명이 산다. 롱 아일랜드의 크기는 제주도의 2배이다. 거기에 플러싱 코리언타운이 있고, 맨하튼 코리안 타운, 콜럼비아 대학도 근처에 유학생들이 있다. 바다 건너 허드슨 강과 건너편에 뉴저지에 코리안 타운이 형성되어 있다. 롱 아일랜드에 이민 역사가 있다. 오이스터 베이 – 굴포항이 있다. 맨하튼에서 차로 1시간이면 걸린다. 100년전에는 마차로 하루 종일 걸렸다. 1900년대 초에는 맨하튼에서 마차나 배를 타고 가면 항구에서 오이스터 베이라는 항구가 있다.
17. 1905년 8월 3일 그날 - 오이스터 베이(굴포항)
뉴욕 인근에 오이스터 베이 (굴포항)이 있다. 맨하튼에서 차로 1시간이면 걸린다. 100년전에는 마차로 하루 종일 걸렸다. 1900년대 초에는 맨하튼에서 마차나 배를 타고 가면 항구에서 오이스터 베이라는 항구가 있다. 지도에는 1,2,3,4번이 있다. 1905년 8월 3일 (목)에 무슨 일이 있었다. 여기에 두 사람이 배에서 내린다. 맨하튼에서 두 조선 청년 이승만, 윤병구 목사이다. 30살, 25살이다. 윤병구 미주 최초의 한인 목사이다. 두 사람이 굴포항에 왜 내렸을까? 1번 굴포항에 내려서, 2번 호텔 옥타곤 팔각형 모양의 호텔에서 들어간다. 지금은 이렇게 되었다.
(Oyster Hotel History : Nassau House (Octagon Hotel), 67 West Main Street)
지금도 팔각형 호텔이다. 2년전 어느 모기지 회사에서 사서 리노베이션했다. 그들은 왜 내렸을까? 그 당시 시대적 배경은 1904년 1905년 러일전쟁이 일어났는데, 일본과 러시아와 싸울 때, 전 세계 사람들은 러시아가 이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일본이 이겼다. 우리에게는 일본이 이긴 것이 좋지 않았다. 최악이었다. 러일 전쟁 이후에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놓였다. 러일전쟁 후에 한국은 더욱 위험했다. 큰 일이 났다. 러일 전쟁이후에 평화 조약을 맺어서 뉴욕 위에 포츠머스에서 러시아 대표, 일본 대표가 평화조약을 1905년 8월에 맺는다는 소식이 6월에 미국신문에 발표되었다.
(1905년 9월 5일 서명 미일 포츠머스 회담 내용 https://ko.wikipedia.org/wiki/%ED%8F%AC%EC%B8%A0%EB%A8%B8%EC%8A%A4_%EC%A1%B0%EC%95%BD)
그때 조선 사람들은 갤릭호를 타고 하와이에 온 사람들이 7,200명이라는 한인노동자가 하와이 사탕수수를 캐고 있었는데, 그들이 풀뿌리였다. 자신들이 조선에 와서 힘들고, 일본에게 넘어가는데 공통의 관심사가 생겨 나라를 구하고자 했다. 러일 전쟁의 조약에 미국 시오도 루즈벨트가 중재했는데, 하와이 조선 사람들이 생각한 것이 대표를 포츠머스에 보내자고 했다. 포츠머스 러일 평화조약을 맺을 때 조선이 관련되어 아관파천이 일어나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갔는데, 러시아와 일본이 평화조약을 맺으니 참가해서 조선의 독립을 호소해보자고 했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조선 역사를 알고, 공통의 관심사로 돈을 모아서 하와이의 윤병구 목사를 파견했다. 그 당시 일하던 노동자들의 임금이 하루 1시간 1불, 여자는 75센트 모아서 윤병구 목사를 파견했다. 이것이 풀뿌리이다. 윤병구가 하와이에서 배타고 왔고, 워싱턴의 이승만을 만나서 뉴욕에 왔다. 8월 3일이다. 굴포항에 왔다.
왜 워싱턴이 아니라 뉴욕에 왔는가? 그당시 루즈벨트 여름 별장이 오이스터 베이에 있었고 거기서 일을 보았다. 이들의 논리는 1882년 5월 22일 총 14개 조항으로 된 조미수호통상조약으로 1조 “사후로 대조선국 군주와 대아미리가합중국 (大亞美理駕合衆國) 백리새천덕(伯理璽天德, President) 및 그 인민은 각각 영원히 화평우호를 지키되 만약 타국이 불공경모(不公輕侮)하는 일이 있게 되면 일차 조지(照知)를 거친 뒤에 필수상조(相助)하여 잘 조처함으로써 그 우의를 표시한다” .
옥타곤 호텔에서 이승만 박사가 마을에서 정장을 빌려서 차려입었다. 사진관에서 옷을 빌리지 않았을까? 그 당시 사진이다. 길을 따라서 간 4번가에 루즈벨트 대통령 별장이 있다. 마차를 타고 가서 오이스터 베이 시내에서 1905년 모습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살던 사가모어 힐에서 존경받는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가 미국 최조의 국립 공원을 처음 만들었다. 그는 사냥을 좋아해서 동물을 박제해서 걸어 놓았다. 26대 대통령이다. 사가모어 힐의 별장 모습이다. 지금의 모습이다. 국립사적지가 되어 관광지가 되었다.
약속 없이 찾아가 대통령 비서를 만나니 8월 4일 만나기로 해서 루즈벨트 대통령께 드리는 하와이 한인들의 청원서이다. 조선을 도와달라. 1조에 근거해서 도와달라는 청원서를 들고 가서 이승만과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만남이다. “그때 갑자기 대통령이 응접실로 들어왔다. 당황한 두 사람은 청원서만 내밀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짧은 접견동안 방문 목적을 설명하고 간 자개로 된 접시 한 점을 선물로 증정했다.” (루즈벨트 대통령과의 만남 기록 https://blog.daum.net/donaldyu/6472 루즈벨트 사가모어 힐과 윤병구 밀사와의 만남 http://www.okja.org/miju_dong/137624)
루즈벨트는 “나를 찾아주니 기쁘오. 나도 당신 나라를 위해 무슨 일이든 기꺼이 하겠소. 그러나 이 문서는 공식 채널을 통하기 전에는 처리하기가 어렵소. 당신 네 공사를 시켜 국무성에 제출하시오”
18. 1905년 7월 29일 동경에서 열린 미일 가쓰라 테프츠 조약
1905년 8월 5일 이승만, 윤병구가 시어도어 루즈벨트를 만나기 며칠 전에 7월 29일 동경에서 미국의 육군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는 “일본은 필리핀을 침범하지 않고 미국은 한국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밀약을 이미 했다. 이미 일주일 전에 한국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으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된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1906년 루즈벨트는 러시아와 일본의 조약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우리는 식민지가 되었다. 포츠머스를 가보면, 지금 건물은 없어졌고 큰 은행 건물이 들어섰고, 은행 옆에 동판에 1905년 러시아와 일본의 평화협정이 새겨졌다. 루즈벨트의 묘소가 근처가 있다. 미국 대통령은 국립묘지가 아니라 묻힌다.
(가쓰라 – 테프트 밀약 https://ko.wikipedia.org/wiki/%EA%B0%80%EC%93%B0%EB%9D%BC-%ED%83%9C%ED%94%84%ED%8A%B8_%EB%B0%80%EC%95%BD
(포츠머스 조약 https://ko.wikipedia.org/wiki/%ED%8F%AC%EC%B8%A0%EB%A8%B8%EC%8A%A4_%EC%A1%B0%EC%95%BD)
19. 내리교회와 역사의식
하와이 조선 동포들이 무엇을 알았을까? 사탕수수 농장에 갔던 노동자들의 겔릭호로 102명이 갔는데 그중에 반이 기독교 신자였다. 인천에서 동인천 언덕에 빨간 교회가 보이는데 내리교회이다. 그 교회의 신자들이었다. 50여명, 일반 50여명으로 102명이 첫 이민자였다. 신분으로 양반, 상민이 없어졌지만 의식에는 있다. 그렇게 뛰어나게 공부한 것도 아니고 외국자도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노동하다가 나라가 어렵다고 하니 십시일반으로 한번 시도를 해 본 것이다.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러한 역사를 알아야 한다. 이민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기가막힌 이민의 역사가 많다. 그것을 알아야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 자녀들을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 그런 자녀들이 제대로 생각을 알아야 우리 부모님들이 어떻게 고생하고, 어떻게 교육을 시켰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서 자녀들을 깨워야 한다. 그러면 금방 할 수 있다.
20. 주동완 교수님의 코리안 리서치 센터 소개 (주동완 교수님 소개 http://rc3.kr/index.php/%EC%BD%94%EB%A6%AC%EC%95%88%EB%A6%AC%EC%84%9C%EC%B9%98%EC%84%BC%ED%84%B0_%EC%A3%BC%EB%8F%99%EC%99%84)
제가 하는 일은 코리안 리서츠 센터에서 재미동포들의 이민 역사의 자료를 수집하고 공부하고 연구해서 우리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코리아타운 위키백과 문화지도 제작하고 있다. 홈페이지는 rc3.kr 이다. 플러싱의 코리안타운 문화지도를 제작했고, 우리에게 의미있는 장소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서 위키백과로 만들어 문화지도로 만들어 서로 연결시킨다. QR 코드로 들어가서 자세하게 설명한다. 맨하튼에는 이민 역사에서 중요한 장소이고, 위키백과와 연결되어 있다.
21. 마지막 정리
우리 풀뿌리 운동은 풀뿌리 민주주의에서 정체성과 단체활동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코리안, 아메리칸, 코리안 아메리칸이 우리의 정체성이다. 자녀들을 제대로 가르치면 우리를 제대로 대변해 줄 것이다. 자녀들이 우리를 어떻게 대변할까? 정치가 만들면 다른 소리 한다. 어머니 아버지 틀렸어요. 1992년 1.19 폭동에서 우리들은 당했는데 자녀들은 미국 현실을 모른다고 한다. 영어 잘한다고 미국에서 박사되고 변호사 된다고 우리를 대변해주겠는가? 우리의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정체성이 중요하다. 마감한다. 오늘 말하고자 하는 것은 풀뿌리 운동하는 사람들과 다른데 그분들의 이야기와 다를지 모르지만, 대부분 정치를 이야기하면서 유권자 등록, 커뮤니티 파워, 대변인 이야기를 하는데 지금 뉴멕시코 현황에서 우리는 풀뿌리 운동을 먼저 해서 자녀들에게 먼저 해주어야 한다.
22. 뉴멕시코 한인회의 과제
오늘 오면서 뉴멕시코 한인수준이 높다는 것을 알았다. 2012년 한인총람을 만들었다. 한인 역사 설명, 여러 한인 주소록을 이미 만들었다. 그것이 중요하다. 10년이 되었는데, 다시 만들면 좋겠다. 그것을 만들 때는 자녀들과 함께 만들어라. 2세들에게 알게 하라. 우리 어르신들끼리 만들지 말고 자녀들과 함께 만들어라. 오늘 학생들 연주하는 것, 어려서의 경험이 중요하다. 제가 바라기는 이런 위키백과는 제가 나중에 뉴멕시코 것도 한국학교 교장선생님과 함께 다녔다. 김광철 교수님 안내로 좋은 구경을 많이 했다. 혼자 만들기 힘들지만 공부한 자료로 만들고 싶다. 이경화 장로님 자료와 연결시켜서 만들고 싶다. 자녀들에게 올바른 정체성 교육을 해야 한다. 한인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미국의 단체들의 갈등하고, 교회도 갈등하지만, 싸우면서 건설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인회를 중심으로 한인회관이 있는 한인회가 준비되었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머지 않아서 10년내에 어려분 대변할 수 있는 정치 지도자를 만들면 좋겠다.
23. 미주 한인교회의 과제
뉴욕 플러싱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단체 가운데 한인회 기관과 함께 단체 활동에 대한 것이 이미 충분히 교회를 통해서 연습이 되어있다. 우스운 이야기는 맨하튼 32가 코리안 타운인데 한국인 3명이 걸어가면 회장님 하면 2명이 돌아본다. 한 사람은 왜? 나는 목사다. 그만큼 한인사회가 단체, 교회 1000개이다. 그래서 문제도 많지만 사소한 큰 역사의 흐름에서 사소한 것이고 중요한 것은 단체와 교회의 역할을 보면 그것이 이민사이다. 뉴욕에는 한 가지 아쉬운 것이 한인교회가 폐쇄적인 것이 강하다. 교회의 문이 열려야 하는데 커뮤니티에 오픈을 해야 한다. 주변의 이웃들도 들어오게 해야 하는데 예배 후에는 절간처럼 조용하다. 뉴욕의 교회는 활동을 안 하고 주중에는 대부분 문을 닫는다. 그것은 커뮤니티를 근거로 해야 한다. 우리가 속해 있는 미국 사회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고립된다. 굉장히 중요하다. 뉴욕의 교회도 중요하다. 이런 운동은 한인회가 제일 적당한 기구이다.
1. 주동완 교수 소개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학사, 한국학대학원 한국사회전공 석사, City Univ. of New York 사회학 박사과정, 외대 글로벌 문화콘테츠학과 전공 박사졸업 현) 코리안 리처치센터 원장, 외대 지식콘텐츠 부교수, 퀸즈대 재외 한인사회 연구소 연구원, 뉴욕신학교 전임교수입니다. 뉴욕에서 코리안 리처츠센테 원장으로 있습니다. 재외 동포를 위한 자료 수집, 활용 연구하는 개인 연구소입니다.
2. 풀뿌리 민주주의란? Grassroots Democracy
오늘 강의 주제는 풀뿌리 운동과 정체성입니다. 풀뿌리 운동과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제목입니다.
풀뿌리 운동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생각하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해석합니다. 국민 개개인에게
골고루 영향을 미치는 대중적인 민주주의 A popular democracy that affects all citizens equally 인데,
이 용어는 1912년 미국 공화당에서 분리된 진보당이 내건 이념 중 하나이며, 1935년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사용하면서 일반화되었다.
3. 풀뿌리 민주주의 구조는?
간접 민주주의 indirect democracy , 엘리트주의 Elitism VS 참여 민주주의, 평범한 시민
풀뿌리 운동은 직접 참여하자, 그리고 평범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자는 것이 기본이다.
4. 미국에서 이민자의 숫자 Number of naturalized immigrant voters
2000 12 million
2020 23 million 으로 93% 증가, 미국 전체 인구의 9.8%이다.
Immigrant voters by state: 4 states (CAL, New York, Texas, Florida) – 56% 의 이민 투표자이다.
미국이 더 이상 백인위주의 미국이 아니고, 미국은 변화되고 있다.
5. 민족별 이민 투표자
한국 0.7 million
멕시칸 3.5 (16%)
필리핀 1.4
아시안 인디언 1.2
중국 1.0
베트남 1.0
쿠바 0.8
한국은 0.7백만 2020년 센서스에 거의 2백만명이 집계되는데 실제로는 2.5 million으로 본다.
6. 한미 연합회
투표권으로 직접 정치에 참여하자. LA 한인 단체이다. 뉴욕은 시민 참여단체가 중심 역할을 한다. 한미연합회의 시작은 한 Korean American Grassroots Conference로 워싱턴에 가서 의원들에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금은 조직이 커져서 매년 100-150명의 20-30대 청년, 인턴 고등학생들이 배움을 위해서 참여한다.
7. 풀뿌리 민주주의의 방법은?
지방자치제도: 타운홀 미팅 Town Hall Meeting의 방법으로 주민들이 모여서 미팅을 하고 대표자를 불러 이야기를 듣고 요구사항을 듣는다. 이런 방식을 통해서 진행한다. 직접 가지는 않지만 직접 참여하는 방법이다. 타운홀 미팅으로 가장 유명한 뉴욕 위의 뉴햄프셔의 런던 레이 라는 타운으로 200년 정도가 되었다. 우리 한인회에서 미팅을 하면 지역의 정치인은 참여할 수 있는가?
8. 타운홀 미팅에 참여하는 주민의 의제는?
도로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
마을을 어떻게 하면 아릅답게 꾸밀까?
주차장은 어디에 마련할까?
우체통은 어디에 설치하지?
마을의 각 가정 집 벽은 무슨 색으로 칠할까? 등등
특정 안건에 대한 주민 토의, 정책 표결, 예산 결정, 결산 검증
타운의회에 영향력 행사
작은 지역 문제 – 주민들 스스로 해결 – 민주주의 경험, 민주정치 훈련
9. 풀뿌리 민주주의의 궁극의 목적?
유권자 등록 - 커뮤니티 파워 – 대변인 (정치가) 배출: 한인을 대표할 정치가를 뽑자. 2세를 뽑아 의회에 보내어 우리를 위해서 일해줄 사람을 만들자.
뉴욕의 플러싱을 보면 뉴욕 동부지역에서 가장 먼저 코리안 타운이 1960년대 중반에 생겨 1970년에 커졌다. 플러싱은 한인들, 중국인들이 많이 살았는데 지금은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살다보니 중국인들에게 빼앗겼다. 중국인들이 더 많이 늘어나 한국인은 플러싱에서 벗어나 근처의 다른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숫자도 늘었지만, 중요한 점은 중국인 정치가가 나왔다. 중국인 정치인이 중국 타운을 완전히 바꾸었다. 낡은 창고 지역, 공장 지대에서 상업지역으로 바꾸었다. 거기 중국 사람들은 부동산 오르고, 한국 사람들은 렌트비 내고 장사한다. 정치가 한 사람 배출로 달라졌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궁극적 목적은 유권자 등록으로 커뮤니티 파워로 우리의 정치인을 뽑자.
10. 뉴멕시코주 한인들의 풀뿌리 운동의 목표: 한인 정치가의 배출은?
그러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20년, 10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으면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언젠가, 어떻게 보면 금방 될 수도 있다. 자라나는 2세가 생각만 잘 갖고 있으면 할 수 이다. 2세의 생각을 누구 지도하는가? 커뮤니티가 해야 한다.
11. 뉴멕시코 현황
위키피티아를 보면, 뉴멕시코가 미국 전체에서 5번째의 큰 주도이다. 남한의 3배보다 더 크다. 뉴욕 주는 남한의 1.5배이다. 여기는 3개가 넘는 뉴욕의 두 배이다. 인구는 210만명이다. 뉴욕시만 8백만, 뉴욕 메트로폴리탄과 주변의 일일생활권 인구는 1200만명이다. 뉴욕시 인구의 1/4이다. 뉴욕은 점점 안 좋아진다. 뉴멕시코주는 히스패닉의 인구비율 49.1% 이 가장 높은 주이다. 백인 82%, 흑인 2.2% 아메리칸 인디안 10.9%, 아시안 1.8% (2019년) (위키피디아 자료에 의하면, 2020년 기준으로는 백인 73.9% (히스패닉과 라티노 제외 백인 만 36.8%), 히스패닉 49.3%, 네이티브 인디언 9.5%, 흑인 2.3%, 아시안 1.7% 기타)
LA에서는 동포사회 보는 뉴멕시코는 주 총 인구 210만명에서 약 4,800명 한인들이 엘버커키시를 중심으로 거주한다. 반 정도라면 2000여명이 살지 않을까? 어떻게 지도자를 배출할 것인가? 다들 퍼져 사니 힘들다. 앨버커키시에는 뉴멕시코 한인회가 1987년 창립되어 활동중이다.
12. 풀뿌리 민주주의의 주의점은?
희망은 있는가? 한 가지 방법은 자금 fund , 리더쉽 leadership , 네크워크 network 이다. LA나 뉴욕 단체들은 네트워크를 만들어 준다. 뉴멕시코 상원의원이 우리가 오라고 하면 오겠는가? 개인이 하면 힘들지만, 네트워크 단체가 있으면 온다. 정치가들은 표가 있으면 어디든지 간다. 표가 없으면 안간다. 계산이 빠르다.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공통관심이다. Common! 주민들이 모였는데 생각이 다르면 힘을 얻지 못한다. 공통의 관심사를 어떻게 갖는가? 풀뿌리 아이덴터티 문제이다. 우리가 누구인가? 여기 모인 분들은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살아온 방식이 다르지만 우리가 조사한 것은 우리들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아이덴터티에서 공통의 관심이 나온다.
13. 풀뿌리 아이덴터티
풀뿌리 운동은 풀뿌리 아이덴터티 확립이 필요하다. 세 가지 아이덴터티중에서 첫째, 우리는 한국인이다. 둘째, 우리는 미국인이다. 한국에 가면 느낀다. 반은 미국 사람이 되었다. 셋째, 우리는 Korean American이다. (여기에 더해서 우리는 크리스천이다!!!) 여기 한국학교에서 커리큘럼을 보면 한국 문화, 한국 역사, 한국 말을 가리킨다. 중요하다. 플러스 코리언 아메리칸 정체성을 심어주어야 한다. 뉴욕에서 한국학교 심사를 하는데, 역사 교육 잘하는 학교에서 3000불을 주는데 가서 보면 한국 역사를 배운다. Korean American 신경은 거의 쓰지 않는다. 뉴욕 뉴저지 180개 한국학교에서 Korean American 역사를 가리키는 학교는 3학교가 있다.
14. 우리 아이들 누가 가르치는가?
Who? Korean Community,
What? Korean American History를 가리킨다. 학생들이 히스토리를 알면 나는 누구인가?
사진을 보자, 미국 사절단 사진이다. 미국과 조선이 1882년 수교를 맺을 때, 조선을 개방하며 미국과 제일 먼저 수교를 맺었다. (위키피디아 조미수호통상조약 내용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B%AF%B8_%EC%88%98%ED%98%B8_%ED%86%B5%EC%83%81_%EC%A1%B0%EC%95%BD)
한국은 미국과 잘해야 한다. 한국에서 미국을 거부하는 반미운동도 있는데 역사를 잘 몰라서 그렇다. 미국과 잘 지내야 국익에도 이익이 된다. 1883년 한국에서 사절단을 미국으로 보냈다.
그때의 사절단이다. 미국 사절단으로 온 보빙사는 조선 사람들은 갓 쓰고 미국에 왔다. 청나라 사람이 오랑탕인데, 통역으로 쫓아왔다. 조선 사람 가운데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통역이 별로여서 호레이스 알렌 공사가 일본에 있는 친구 공사에게 이야기해서 조선 사절단이 가는데 통역으로 구한 사람이 퍼시벌 오웰이다. 조선 말을 모른다. 비서 일본 사람이 있는데, 조선 사람이 일본 말을 하니, 일본말과 영어로 통역을 진행했다. 이때 모두 11명이 갔는데, 보빔사의 정사와 부사 가운데 정사는 민영익으로 명성와후인 민비의 조카이다. 부사는 홍영식인데 영의정의 아들이다. 거의 22-25세의 젊은이들이 미국에 1883년에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대륙황단으로 왔다.
(최초의 미국 사절단인 보빙사https://ko.wikipedia.org/wiki/%EB%B3%B4%EB%B9%99%EC%82%AC와 보빙사의 신임장 https://ko.wikisource.org/wiki/%EB%B3%B4%EB%B9%99%EC%82%AC_%EC%8B%A0%EC%9E%84%EC%9E%A5)
15. 1904년 1월 13일 재미 한인의 날
갤릭호 배이다. 1903년 12월 22일 한국에서 출발하여 하와이에 1904년 1월 13일 하와이에 도착한 재미 한인의 날이다.
(갤릭호와 한인 이주의 역사 https://blog.daum.net/gmania65/596)
(재미국 한인의 역사 https://theme.archives.go.kr/next/immigration/endoftheJoseonDynasty.do)
뉴멕시코주 한인회는 이런 역사로 시작하여 스스로 우리가 우리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를 모르면 어떻게 우리를 이야기 하겠는가? 우리가 누구인지 분명히 이야기 해야 한다. 뉴멕시코 상원의원, 하원의원, 시장과 주지사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그래서 아이덴터티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역사를 알아야 한다. Korean American History를 알아야 한다,
16. 뉴욕 메트로 지역 한인사회와 역사
뉴욕의 지도이다. 맨하튼이 분홍색이다. 맨하튼만 뉴욕이 아니라, 뉴욕시와 뉴욕주에 해당되는 긴 물고기 모양의 long islands 섬이다. 메트로 뉴욕은 5개의 시에 1200만명이 산다. 롱 아일랜드의 크기는 제주도의 2배이다. 거기에 플러싱 코리언타운이 있고, 맨하튼 코리안 타운, 콜럼비아 대학도 근처에 유학생들이 있다. 바다 건너 허드슨 강과 건너편에 뉴저지에 코리안 타운이 형성되어 있다. 롱 아일랜드에 이민 역사가 있다. 오이스터 베이 – 굴포항이 있다. 맨하튼에서 차로 1시간이면 걸린다. 100년전에는 마차로 하루 종일 걸렸다. 1900년대 초에는 맨하튼에서 마차나 배를 타고 가면 항구에서 오이스터 베이라는 항구가 있다.
17. 1905년 8월 3일 그날 - 오이스터 베이(굴포항)
뉴욕 인근에 오이스터 베이 (굴포항)이 있다. 맨하튼에서 차로 1시간이면 걸린다. 100년전에는 마차로 하루 종일 걸렸다. 1900년대 초에는 맨하튼에서 마차나 배를 타고 가면 항구에서 오이스터 베이라는 항구가 있다. 지도에는 1,2,3,4번이 있다. 1905년 8월 3일 (목)에 무슨 일이 있었다. 여기에 두 사람이 배에서 내린다. 맨하튼에서 두 조선 청년 이승만, 윤병구 목사이다. 30살, 25살이다. 윤병구 미주 최초의 한인 목사이다. 두 사람이 굴포항에 왜 내렸을까? 1번 굴포항에 내려서, 2번 호텔 옥타곤 팔각형 모양의 호텔에서 들어간다. 지금은 이렇게 되었다.
(Oyster Hotel History : Nassau House (Octagon Hotel), 67 West Main Street)
지금도 팔각형 호텔이다. 2년전 어느 모기지 회사에서 사서 리노베이션했다. 그들은 왜 내렸을까? 그 당시 시대적 배경은 1904년 1905년 러일전쟁이 일어났는데, 일본과 러시아와 싸울 때, 전 세계 사람들은 러시아가 이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일본이 이겼다. 우리에게는 일본이 이긴 것이 좋지 않았다. 최악이었다. 러일 전쟁 이후에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놓였다. 러일전쟁 후에 한국은 더욱 위험했다. 큰 일이 났다. 러일 전쟁이후에 평화 조약을 맺어서 뉴욕 위에 포츠머스에서 러시아 대표, 일본 대표가 평화조약을 1905년 8월에 맺는다는 소식이 6월에 미국신문에 발표되었다.
(1905년 9월 5일 서명 미일 포츠머스 회담 내용 https://ko.wikipedia.org/wiki/%ED%8F%AC%EC%B8%A0%EB%A8%B8%EC%8A%A4_%EC%A1%B0%EC%95%BD)
그때 조선 사람들은 갤릭호를 타고 하와이에 온 사람들이 7,200명이라는 한인노동자가 하와이 사탕수수를 캐고 있었는데, 그들이 풀뿌리였다. 자신들이 조선에 와서 힘들고, 일본에게 넘어가는데 공통의 관심사가 생겨 나라를 구하고자 했다. 러일 전쟁의 조약에 미국 시오도 루즈벨트가 중재했는데, 하와이 조선 사람들이 생각한 것이 대표를 포츠머스에 보내자고 했다. 포츠머스 러일 평화조약을 맺을 때 조선이 관련되어 아관파천이 일어나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갔는데, 러시아와 일본이 평화조약을 맺으니 참가해서 조선의 독립을 호소해보자고 했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조선 역사를 알고, 공통의 관심사로 돈을 모아서 하와이의 윤병구 목사를 파견했다. 그 당시 일하던 노동자들의 임금이 하루 1시간 1불, 여자는 75센트 모아서 윤병구 목사를 파견했다. 이것이 풀뿌리이다. 윤병구가 하와이에서 배타고 왔고, 워싱턴의 이승만을 만나서 뉴욕에 왔다. 8월 3일이다. 굴포항에 왔다.
왜 워싱턴이 아니라 뉴욕에 왔는가? 그당시 루즈벨트 여름 별장이 오이스터 베이에 있었고 거기서 일을 보았다. 이들의 논리는 1882년 5월 22일 총 14개 조항으로 된 조미수호통상조약으로 1조 “사후로 대조선국 군주와 대아미리가합중국 (大亞美理駕合衆國) 백리새천덕(伯理璽天德, President) 및 그 인민은 각각 영원히 화평우호를 지키되 만약 타국이 불공경모(不公輕侮)하는 일이 있게 되면 일차 조지(照知)를 거친 뒤에 필수상조(相助)하여 잘 조처함으로써 그 우의를 표시한다” .
옥타곤 호텔에서 이승만 박사가 마을에서 정장을 빌려서 차려입었다. 사진관에서 옷을 빌리지 않았을까? 그 당시 사진이다. 길을 따라서 간 4번가에 루즈벨트 대통령 별장이 있다. 마차를 타고 가서 오이스터 베이 시내에서 1905년 모습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살던 사가모어 힐에서 존경받는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가 미국 최조의 국립 공원을 처음 만들었다. 그는 사냥을 좋아해서 동물을 박제해서 걸어 놓았다. 26대 대통령이다. 사가모어 힐의 별장 모습이다. 지금의 모습이다. 국립사적지가 되어 관광지가 되었다.
약속 없이 찾아가 대통령 비서를 만나니 8월 4일 만나기로 해서 루즈벨트 대통령께 드리는 하와이 한인들의 청원서이다. 조선을 도와달라. 1조에 근거해서 도와달라는 청원서를 들고 가서 이승만과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만남이다. “그때 갑자기 대통령이 응접실로 들어왔다. 당황한 두 사람은 청원서만 내밀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짧은 접견동안 방문 목적을 설명하고 간 자개로 된 접시 한 점을 선물로 증정했다.” (루즈벨트 대통령과의 만남 기록 https://blog.daum.net/donaldyu/6472 루즈벨트 사가모어 힐과 윤병구 밀사와의 만남 http://www.okja.org/miju_dong/137624)
루즈벨트는 “나를 찾아주니 기쁘오. 나도 당신 나라를 위해 무슨 일이든 기꺼이 하겠소. 그러나 이 문서는 공식 채널을 통하기 전에는 처리하기가 어렵소. 당신 네 공사를 시켜 국무성에 제출하시오”
18. 1905년 7월 29일 동경에서 열린 미일 가쓰라 테프츠 조약
1905년 8월 5일 이승만, 윤병구가 시어도어 루즈벨트를 만나기 며칠 전에 7월 29일 동경에서 미국의 육군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는 “일본은 필리핀을 침범하지 않고 미국은 한국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밀약을 이미 했다. 이미 일주일 전에 한국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으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된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1906년 루즈벨트는 러시아와 일본의 조약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우리는 식민지가 되었다. 포츠머스를 가보면, 지금 건물은 없어졌고 큰 은행 건물이 들어섰고, 은행 옆에 동판에 1905년 러시아와 일본의 평화협정이 새겨졌다. 루즈벨트의 묘소가 근처가 있다. 미국 대통령은 국립묘지가 아니라 묻힌다.
(가쓰라 – 테프트 밀약 https://ko.wikipedia.org/wiki/%EA%B0%80%EC%93%B0%EB%9D%BC-%ED%83%9C%ED%94%84%ED%8A%B8_%EB%B0%80%EC%95%BD
(포츠머스 조약 https://ko.wikipedia.org/wiki/%ED%8F%AC%EC%B8%A0%EB%A8%B8%EC%8A%A4_%EC%A1%B0%EC%95%BD)
19. 내리교회와 역사의식
하와이 조선 동포들이 무엇을 알았을까? 사탕수수 농장에 갔던 노동자들의 겔릭호로 102명이 갔는데 그중에 반이 기독교 신자였다. 인천에서 동인천 언덕에 빨간 교회가 보이는데 내리교회이다. 그 교회의 신자들이었다. 50여명, 일반 50여명으로 102명이 첫 이민자였다. 신분으로 양반, 상민이 없어졌지만 의식에는 있다. 그렇게 뛰어나게 공부한 것도 아니고 외국자도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노동하다가 나라가 어렵다고 하니 십시일반으로 한번 시도를 해 본 것이다.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러한 역사를 알아야 한다. 이민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기가막힌 이민의 역사가 많다. 그것을 알아야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 자녀들을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 그런 자녀들이 제대로 생각을 알아야 우리 부모님들이 어떻게 고생하고, 어떻게 교육을 시켰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서 자녀들을 깨워야 한다. 그러면 금방 할 수 있다.
20. 주동완 교수님의 코리안 리서치 센터 소개 (주동완 교수님 소개 http://rc3.kr/index.php/%EC%BD%94%EB%A6%AC%EC%95%88%EB%A6%AC%EC%84%9C%EC%B9%98%EC%84%BC%ED%84%B0_%EC%A3%BC%EB%8F%99%EC%99%84)
제가 하는 일은 코리안 리서츠 센터에서 재미동포들의 이민 역사의 자료를 수집하고 공부하고 연구해서 우리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코리아타운 위키백과 문화지도 제작하고 있다. 홈페이지는 rc3.kr 이다. 플러싱의 코리안타운 문화지도를 제작했고, 우리에게 의미있는 장소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서 위키백과로 만들어 문화지도로 만들어 서로 연결시킨다. QR 코드로 들어가서 자세하게 설명한다. 맨하튼에는 이민 역사에서 중요한 장소이고, 위키백과와 연결되어 있다.
21. 마지막 정리
우리 풀뿌리 운동은 풀뿌리 민주주의에서 정체성과 단체활동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코리안, 아메리칸, 코리안 아메리칸이 우리의 정체성이다. 자녀들을 제대로 가르치면 우리를 제대로 대변해 줄 것이다. 자녀들이 우리를 어떻게 대변할까? 정치가 만들면 다른 소리 한다. 어머니 아버지 틀렸어요. 1992년 1.19 폭동에서 우리들은 당했는데 자녀들은 미국 현실을 모른다고 한다. 영어 잘한다고 미국에서 박사되고 변호사 된다고 우리를 대변해주겠는가? 우리의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정체성이 중요하다. 마감한다. 오늘 말하고자 하는 것은 풀뿌리 운동하는 사람들과 다른데 그분들의 이야기와 다를지 모르지만, 대부분 정치를 이야기하면서 유권자 등록, 커뮤니티 파워, 대변인 이야기를 하는데 지금 뉴멕시코 현황에서 우리는 풀뿌리 운동을 먼저 해서 자녀들에게 먼저 해주어야 한다.
22. 뉴멕시코 한인회의 과제
오늘 오면서 뉴멕시코 한인수준이 높다는 것을 알았다. 2012년 한인총람을 만들었다. 한인 역사 설명, 여러 한인 주소록을 이미 만들었다. 그것이 중요하다. 10년이 되었는데, 다시 만들면 좋겠다. 그것을 만들 때는 자녀들과 함께 만들어라. 2세들에게 알게 하라. 우리 어르신들끼리 만들지 말고 자녀들과 함께 만들어라. 오늘 학생들 연주하는 것, 어려서의 경험이 중요하다. 제가 바라기는 이런 위키백과는 제가 나중에 뉴멕시코 것도 한국학교 교장선생님과 함께 다녔다. 김광철 교수님 안내로 좋은 구경을 많이 했다. 혼자 만들기 힘들지만 공부한 자료로 만들고 싶다. 이경화 장로님 자료와 연결시켜서 만들고 싶다. 자녀들에게 올바른 정체성 교육을 해야 한다. 한인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미국의 단체들의 갈등하고, 교회도 갈등하지만, 싸우면서 건설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인회를 중심으로 한인회관이 있는 한인회가 준비되었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머지 않아서 10년내에 어려분 대변할 수 있는 정치 지도자를 만들면 좋겠다.
23. 미주 한인교회의 과제
뉴욕 플러싱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단체 가운데 한인회 기관과 함께 단체 활동에 대한 것이 이미 충분히 교회를 통해서 연습이 되어있다. 우스운 이야기는 맨하튼 32가 코리안 타운인데 한국인 3명이 걸어가면 회장님 하면 2명이 돌아본다. 한 사람은 왜? 나는 목사다. 그만큼 한인사회가 단체, 교회 1000개이다. 그래서 문제도 많지만 사소한 큰 역사의 흐름에서 사소한 것이고 중요한 것은 단체와 교회의 역할을 보면 그것이 이민사이다. 뉴욕에는 한 가지 아쉬운 것이 한인교회가 폐쇄적인 것이 강하다. 교회의 문이 열려야 하는데 커뮤니티에 오픈을 해야 한다. 주변의 이웃들도 들어오게 해야 하는데 예배 후에는 절간처럼 조용하다. 뉴욕의 교회는 활동을 안 하고 주중에는 대부분 문을 닫는다. 그것은 커뮤니티를 근거로 해야 한다. 우리가 속해 있는 미국 사회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고립된다. 굉장히 중요하다. 뉴욕의 교회도 중요하다. 이런 운동은 한인회가 제일 적당한 기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