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7) 갈 3장 1-9절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10-16 10:24
Views
511
토요 새벽기도회 설교 음성파일은 왼쪽 아래에 있습니다.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오늘 본문의 시작은 사도 바울의 책망으로 시작됩니다. 1절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사도 바울은 매우 답답합니다. 사도 바울이 목숨을 걸고 증거한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떠나서 다른 복음을 쫒고 있는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이 매우 답답합니다. 그래서 깊은 한숨을 쉬며 한탄하고 있습니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오!로 시작합니다. 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그리고 1-5절까지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긴 질문들을 던지고 있습니다. 모두 8가지의 질문입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의 8가지 질문을 한번 마음에 새기며 마음으로 답변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질문을 천천히 읽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목 박하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2.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못 박하심
오늘 질문에서 사도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생생한 이미지로 표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하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지금 갈라디아 성도들을 꾀려고 하는 사람들은 할례와 율법준수를 강조하면서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은 할례와 율법준수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목 박히신 대속의 죽음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앞 구절 갈라디아서 2장 21절 말씀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리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은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나 같은 죄인을 의롭다 하시기 위한 대속의 죽으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같은 죄인을 의롭다 칭하시는 칭의의 근거는 우리의 행위도, 우리의 할례 받음도 우리의 율법 준수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죽으심이 유일한 근거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근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지금 갈라디아 성도들이 굳건하게 붙들어야 하는 복음과 칭의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떠나려고 하는 갈라디아 성도들이 사도 바울은 얼마나 답답한지 지금 너희 눈 앞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것이 밝이 보이지 않느냐 강조하고 있습니다.
2. 듣고 믿어 성령을 받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 만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강조하는 두번째는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질문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을 믿는 자에게는 성령이 임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을 믿은 성도는 이미 성령을 받은 자입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이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 성령을 받은 것인지,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을 듣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받은 것인지 지금 사도 바울은 질문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령을 받았습니까? 성령을 받았으면 그 증거는 무엇입니까?
성령 받음의 증거로 방언이나 예언같은 하나님의 은사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령 받음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성령의 은사가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 받음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예수를 주시라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이 성령 받음을 다른 말로 한다면 성령 세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3절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성도는 성령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주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유대인이나 이방인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모두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서 그리스도의 한 몸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믿으면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 받음은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서 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을 듣고 믿어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으로 시작하고,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을 듣고 믿어 성령을 받은 것으로 시작한 갈라디아 성도들이 여기에서 떠나서 다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입니까?
4.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칭의와 할례
이제 사도 바울은 할례를 강조하는 유대인들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6절 말씀 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은 칭의의 원리는 할례를 받고, 율법을 받기 훨씬 이전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어졌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6절 말씀은 창세기 15장 6절 말씀의 인용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그의 믿음을 의로 여겨주셨습니다. 이신칭의의 원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서 발견됩니다.
창세기 15장 6절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은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 언약의 표징으로 창세기 17장 9-11절 처음으로 할례의 명령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믿음이 먼저입니까? 할례가 먼저입니까? 믿음이 먼저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주셨습니다. 할례의 표가 아니라 믿음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보여주는 증표입니다. 아브라함 언약의 증표였던 할례는 신약으로 오면 새언약의 증표인 세례로 변경됩니다. 그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브라함 언약에서 할례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두 가지 땅과 자손을 받드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 약속을 이루시겠다고 아브라함이 잊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스스로 저주를 받으셔서 짐승을 잡고 짐승의 흘린 피 사이로 하나님께서 친히 지나가셨습니다. 자기저주의 맹세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저주의 명세의 약속을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잊지 않도록 할례를 받게하셨습니다. 할례의 진정한 의미를 성취하신 분이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할례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신 아브라함 언약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이후로 할례는 그 의미를 상실하고, 할례 대신에 새로운 언약의 증표인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의미의 세례를 받습니다.
오늘 본문의 결론 아브라함의 믿음과 동일한 믿음의 사람을 향한 사도 바울의 결론의 말씀은 7-9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아브라함의 복은 할례가 아니라 믿음의 사람에게 임합니다. 아브라함과 동일한 믿음의 사람이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을 받은 사람도 믿음의 사람입니다.
5. 우리의 기도
이 시간 오늘 주신 말씀으로 기도하길 원합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을 믿어 약속의 성령을 받은 믿음과 성령의 사람은 우리가 받은 복음에 굳건하게 서서 다른 복음의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우리를 우리를 위한 저주와 대속의 죽으심 우리 같은 죄인을 의롭다하시는 복음의 근거에 우리가 확실히 알게 하시며 믿게 하옵소서. 둘째,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어 약속의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우리는 성령의 사람이며, 성령이 거하시는 성령의 전이 되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우리가 구할 것은 성령의 충만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어 약속의 성령을 받은 우리는 이미 아브라함의 믿음의 복을 받은 아브라함의 영적인 후손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복을 받았다면, 아브라함 후손은 우리의 사명은 땅의 모든 족속이 우리를 통해서 복음의 복을 받는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의 복이 우리의 삶을 통하여 우리의 복음 증거를 통하여 흘려보내는 복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먼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어 의롭다 하시는 칭의의 은혜를 우리도 받아 누리게 하심에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립니다. 때가차매, 아브라함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우리의 구원과 칭의의 근거가 되어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우리 삶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과 약속의 성령의 은혜를 받았사오니 이 복된 믿음의 복음에 확신하게 하시며, 감사하게 하시며, 어떠한 다른 복음이 우리를 흔들지 않게 하시며, 이 복된 복음 가운데 굳건하게 서서 우리를 통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이 우리 지역에 세상에 온전히 선포되게 하옵소서.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 미약한 교회이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 충만, 성령 충만한 교회가 이 시대에 쓰임받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삶을 신실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의탁합니다. 함께 하시며, 힘 주시며, 성령의 충만하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오늘 본문의 시작은 사도 바울의 책망으로 시작됩니다. 1절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사도 바울은 매우 답답합니다. 사도 바울이 목숨을 걸고 증거한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떠나서 다른 복음을 쫒고 있는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이 매우 답답합니다. 그래서 깊은 한숨을 쉬며 한탄하고 있습니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오!로 시작합니다. 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그리고 1-5절까지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긴 질문들을 던지고 있습니다. 모두 8가지의 질문입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의 8가지 질문을 한번 마음에 새기며 마음으로 답변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질문을 천천히 읽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목 박하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2.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못 박하심
오늘 질문에서 사도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생생한 이미지로 표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하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지금 갈라디아 성도들을 꾀려고 하는 사람들은 할례와 율법준수를 강조하면서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은 할례와 율법준수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목 박히신 대속의 죽음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앞 구절 갈라디아서 2장 21절 말씀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리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은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나 같은 죄인을 의롭다 하시기 위한 대속의 죽으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같은 죄인을 의롭다 칭하시는 칭의의 근거는 우리의 행위도, 우리의 할례 받음도 우리의 율법 준수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죽으심이 유일한 근거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근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지금 갈라디아 성도들이 굳건하게 붙들어야 하는 복음과 칭의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떠나려고 하는 갈라디아 성도들이 사도 바울은 얼마나 답답한지 지금 너희 눈 앞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것이 밝이 보이지 않느냐 강조하고 있습니다.
2. 듣고 믿어 성령을 받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 만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강조하는 두번째는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질문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을 믿는 자에게는 성령이 임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을 믿은 성도는 이미 성령을 받은 자입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이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 성령을 받은 것인지,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을 듣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받은 것인지 지금 사도 바울은 질문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령을 받았습니까? 성령을 받았으면 그 증거는 무엇입니까?
성령 받음의 증거로 방언이나 예언같은 하나님의 은사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령 받음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성령의 은사가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 받음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예수를 주시라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이 성령 받음을 다른 말로 한다면 성령 세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3절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성도는 성령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주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유대인이나 이방인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모두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서 그리스도의 한 몸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믿으면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 받음은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서 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을 듣고 믿어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으로 시작하고,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을 듣고 믿어 성령을 받은 것으로 시작한 갈라디아 성도들이 여기에서 떠나서 다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입니까?
4.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칭의와 할례
이제 사도 바울은 할례를 강조하는 유대인들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6절 말씀 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은 칭의의 원리는 할례를 받고, 율법을 받기 훨씬 이전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어졌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6절 말씀은 창세기 15장 6절 말씀의 인용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그의 믿음을 의로 여겨주셨습니다. 이신칭의의 원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서 발견됩니다.
창세기 15장 6절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은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 언약의 표징으로 창세기 17장 9-11절 처음으로 할례의 명령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믿음이 먼저입니까? 할례가 먼저입니까? 믿음이 먼저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주셨습니다. 할례의 표가 아니라 믿음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보여주는 증표입니다. 아브라함 언약의 증표였던 할례는 신약으로 오면 새언약의 증표인 세례로 변경됩니다. 그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브라함 언약에서 할례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두 가지 땅과 자손을 받드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 약속을 이루시겠다고 아브라함이 잊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스스로 저주를 받으셔서 짐승을 잡고 짐승의 흘린 피 사이로 하나님께서 친히 지나가셨습니다. 자기저주의 맹세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저주의 명세의 약속을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잊지 않도록 할례를 받게하셨습니다. 할례의 진정한 의미를 성취하신 분이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할례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신 아브라함 언약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이후로 할례는 그 의미를 상실하고, 할례 대신에 새로운 언약의 증표인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의미의 세례를 받습니다.
오늘 본문의 결론 아브라함의 믿음과 동일한 믿음의 사람을 향한 사도 바울의 결론의 말씀은 7-9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아브라함의 복은 할례가 아니라 믿음의 사람에게 임합니다. 아브라함과 동일한 믿음의 사람이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을 받은 사람도 믿음의 사람입니다.
5. 우리의 기도
이 시간 오늘 주신 말씀으로 기도하길 원합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을 믿어 약속의 성령을 받은 믿음과 성령의 사람은 우리가 받은 복음에 굳건하게 서서 다른 복음의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우리를 우리를 위한 저주와 대속의 죽으심 우리 같은 죄인을 의롭다하시는 복음의 근거에 우리가 확실히 알게 하시며 믿게 하옵소서. 둘째,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어 약속의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우리는 성령의 사람이며, 성령이 거하시는 성령의 전이 되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우리가 구할 것은 성령의 충만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어 약속의 성령을 받은 우리는 이미 아브라함의 믿음의 복을 받은 아브라함의 영적인 후손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복을 받았다면, 아브라함 후손은 우리의 사명은 땅의 모든 족속이 우리를 통해서 복음의 복을 받는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의 복이 우리의 삶을 통하여 우리의 복음 증거를 통하여 흘려보내는 복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먼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어 의롭다 하시는 칭의의 은혜를 우리도 받아 누리게 하심에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립니다. 때가차매, 아브라함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우리의 구원과 칭의의 근거가 되어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우리 삶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과 약속의 성령의 은혜를 받았사오니 이 복된 믿음의 복음에 확신하게 하시며, 감사하게 하시며, 어떠한 다른 복음이 우리를 흔들지 않게 하시며, 이 복된 복음 가운데 굳건하게 서서 우리를 통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이 우리 지역에 세상에 온전히 선포되게 하옵소서.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 미약한 교회이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 충만, 성령 충만한 교회가 이 시대에 쓰임받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삶을 신실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의탁합니다. 함께 하시며, 힘 주시며, 성령의 충만하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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