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8) 출 20:13절 살인하지 말라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09-2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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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넷플릭스 세계 1위 오징어 게임
사랑하는 여러분, 오징어 게임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지금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 넷플렉스 1위 드라마가 한국의 오징어 게임입니다. 저의 어린시절 동네에서 놀던 오징어 가이상이라고 불리우는 놀이와 관련된 추억의 놀이인줄 알았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드라마이길레 세계 1위일까 궁금했습니다. 궁금해서 내용을 찾아보니 456명이 참가하는 게임에 1인당 1억원씩 총 456억원의 우승상금이 있습니다. 게임에서 탈락한 참가자는 그 자리에서 죽는 잔인한 게임입니다. 우리는 돈을 위해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너무나 쉬운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십계명의 6번째 계명은 말합니다. “살인하지 말라”십계명의 5계명부터 마지막 열번째 계명은 이웃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담긴 말씀입니다. 그중에서 십계명의 여섯번째 계명은 아주 짧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You shall not murder.) 아주 짧으니 우리 모두는 다른 계명은 몰라도 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 정도는 지켜면서 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평생 한번도 살인한 적이 없는지요?
불교에서는 살인하지 말라가 아니라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이 있습니다. 불살생계라는 불교의 기본 계율가운데 가장 중요한 으뜸이 되는 계율입니다. 지난 시간에 다룬 유교윤리가 효제충신: 위로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고, 임금에게 충성하고, 친구 사이에 신뢰있게 지내는 윤리라면, 불교 윤리는 살인을 넘어서 아예 살생하지 말라고 합니다.
살인과 살생 어느 것이 더 쉽겠습니까? 불교애서는 살생할 수 없으니 고기도 먹을 수 없습니다. 파리도 죽일 수 없고, 바퀴벌레도 죽일 수가 없습니다. 불교에서 불살상계라는 규율이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모든 생명은 살고자 하는데, 힘이 강하다고 모든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이유이며, 또한 불교에서 중요한 것은 윤회인데, 지금은 파리처럼 보이지만 파리처럼 보이는 미물도 나의 전생일 수 있고, 내 부모님이나 아내나 자식이 될 수도 있기에 살생해서는 안됩니다.
불교의 불살상계하니 아프리카 성자라고 불리우는 알버트 슈바이쳐 박사가 생각납니다. 슈바이처 그는 의사였고, 오르간 연주자였고, 당대에는 <역사적 예수 탐구>라는 유명한 책을 쓸 정도의 탁월한 신약학자였습니다. 한편 아프리카 선교사로 평생을 일하면서 아프리카의 성자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슈바이쳐의 사상 가운데 생명 경외 사상이 있습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니 경외해야하기에, 죽일 수 없습니다. 더운 여름에도 에어컨이 없는 아프리카에서 선교사역을 할 때도 문을 열지 않고 꽁꽁 닫고 일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혹시 파리라도 들어와서 일을 방해하면 안되기에, 파리도 하나님의 존귀한 피조물이기에 죽일 수가 없습니다.
2. 살인하지 말라 계명의 의미
십계명의 6번째 계명은 살생하지 말라가 아니라 살인하지 말라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가장 짧은 계명이지만, 가장 넓게 적용할 수 있는 넓은 의미를 담고 있는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구체적인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번째 살펴볼 말씀은 구약성경 민수기 35장 20-25절 말씀입니다. 두 가지 살인이 있습니다. “만일 미워하는 까닭에 밀쳐 죽이거나 기회를 엿보아 무엇을 던져 죽이거나 악의를 가지고 손으로 쳐 죽이면 그 친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니 이는 살인하였음이라 피를 보복하는 자는 살인자를 만나면 죽일 것이니라. 악의가 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치거나, 기회를 엿봄이 없이 무엇을 던지거나 보지 못하고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던져서 죽였을 때에 이는 악의도 없고 해하려 한 것도 아닌즉 회중이 친 자와 피를 보복하는 자 간에 이 규례대로 판결하여 피를 보복하는 자의 손에서 살인자를 건져 내어 그가 피하였던 도피성으로 돌려보낼 것이요 그는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거기 거주할 것이니라”
이 말씀 바로 앞 구절을 보면, 철 연장, 돌, 나무 연장으로 사람을 죽이는 고의적인 살인인 경우가 있습니다. 미워해서 밀쳐 죽이거나, 기회를 엿보다가 고의적으로 무엇을 던져서 죽이거나, 악의를 가지고 손으로 쳐 죽이는 고의적인 살인입니다. 반면에, 고의적이지 않고 우발적인 살인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우발적으로 살인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도피성이 있습니다. 결과적 살인이지만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의도적인가 의도적이지 않는가입니다. 사람을 의도적으로 살인한 경우 구약성경은 살인은 살인으로 처형을 받았습니다.
3. 왜 살인하지 말라야 하는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기에
불교의 전생의 윤회가 아니라면, 슈바이처의 생명 경외가 아니라면, 우리 그리스도인는 왜 살인하지 말아야 합니까? 범죄한 아담과 하와 이후에 첫 아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살인했습니다. 가인의 후손인 라멕은 작은 상처로 말미암아 사람을 죽인 살인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에서 가장 먼저 살인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를 말씀하신 것은 창세기 9장 6절에서였습니다. 중요한 말씀 우리 같이 읽습니다.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해야 하는 이유가, 우리 부모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대리인이라면, 살인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람을 살인하지 말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사람을 보면, 사람을 지으신 우리 하나님의 형상이 보입니다.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어도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사람 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습니다. 아무리 지능이 있어 보이는 개나 고양이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창 1장 26-28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명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셨을 때는 그냥 만들지 아니하시고 서로 상의를 하셨습니다. 다른 피조물을 만들 때는 그냥 있으라고 하신 하나님이, 인간은 그냥 있어라 그렇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서로 상의 하셨습니다. 우리의 형상, 우리의 모양이라는 표현을 보면, 하나님은 혼자가 아닙니다. 서로 상의할 대상이 있습니다. 신약 성경의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의 창조는 너무 중요하시기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서로 의논을 하십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그냥 세상에 우연히 던져진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신중하게 서로 상의하셔서 만드신 존귀한 존재입니다. 존귀한 존재이기에 이 땅에 우연히 태어난 사람은 단 사람도 없습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있습니다. 그렇게 삼위 하나님이 상의하셔서 존귀하게 만들어진 인간 창조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인간은 오직 인간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image)이라는 뜻은 무엇입니까? 창세기 1장 26절에는 형상과 모양이라는 단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모양은 무엇입니까?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닮았고, 하나님을 대변한다는 뜻입니다. 형상(첼렘), 모양(데무트)의 히브리어는 서로 다른 의미가 아니라 때로는 형상으로 때로는 모양으로 교차적으로 쓰일 수 있는 단어입니다. 형상과 모양은 어느 물체와 동일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나타내는 것과 아주 비슷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닮고 하나님을 대표하는 하나님 닮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모양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형상과 모양의 의미는 성경을 찾아보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창 5:3절 “아담이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여기서는 모양이 먼저 나오고 형상이 나중에 나옵니다. 아담의 아들 셋은 아담과 똑같지는 않았지만, 아담을 닮았습니다. 자녀는 아버지, 어머니를 닮습니다. 아담의 아들 셋은 아버지 아담의 형상을 닮았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에 인간은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이기에, 인간에는 동물들과 차이 나는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 형상의 의미를 신약성경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십니다.
에베소서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골 3:9-10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을 닮아서 외모가 아니라 의와 진리와 거룩을 추구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에 인간은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존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의와 진리와 거룩, 지식 같은 하나님의 성품을 말합니다. 인간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 받아 하나님을 닮은 존귀한 존재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을 죽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존중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이 마땅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을 살인하지 말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4. 어떻게 살인하지 말 것인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이기에 살인하지 말아야 한다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인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까? 6계명은 살인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아야 하는 부정의 금지도 있지만, 동시에 살인하지 말고 사랑하고 존귀히 여기는 적극적인 긍정의 의미도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 105 질문과 답변입니다. 제가 질문을 읽으면 함께 답변을 읽습니다.
105 문: 제6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105 답: 내가 이웃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그들을 미워하거나, 해치거나, 죽이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나의 생각이나 말이나 몸짓으로 무엇보다도 행동으로 그리해서는 안되고, 다른 사람을 시켜서 해도 안 되며, 오히려 모든 복수심을 버려야 합니다.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헤쳐서도 안되고 부주의하게 위험에 빠뜨려서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살인을 막기 위해서 국가는 또한 칼을 가지고 있습니다.
106 문: 그런데, 이 계명은 살인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까?
106 답: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인을 금함으로써 살인의 뿌리가 되는 시기, 증오, 분노, 복수심 등을 미워하시며, 이 모든 것을 살인으로 여기신다고 가르치십니다.
107 문: 앞에서 말한 방식으로 우리 이웃을 죽이지 않으면 그것으로 이 계명을 다 지킨 것입니까?
107 답: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기와 증오와 분노를 정죄하심으로써 우리가 우리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여, 인내와 화평과 온유와 자비와 친절을 보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해악으로부터 보호하며, 심지어 원수에게도 선을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5. 국가에 맡겨주신 공적인 칼
첫째,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사람을 죽이는 살인을 막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합법적으로 선출된 국가에 맡겨주신 공적인 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살인을 막기 위해서는 국가는 또한 칼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마서 13장 3-4절 말씀입니다.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우리에게 부모님을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주신 하나님은 동시에 우리에게 국가도 모든 권세자들을 세우신 분도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부모님의 권위를 부인하는 시대에, 우리도 정치적인 견해가 다르다고 너무나 쉽게 하나님이 세우신 국가와 권세를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자들을 세우신 목적이 있습니다. 선한 일에는 국가는 하나님을 대리하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선을 베풀며, 우리가 이 땅에서 범하는 살인 같은 악한 일에는 칼을 가지고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대리인이 되어 하나님의 진노로 보응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 세력이어도 우리는 우리에게 권세를 주신 하나님을 위하여 순종합니다.
벧전 2:13-14절 말씀 우리 같이 읽습니다.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공공의 선을 해치는 살인 같은 죄를 벌하기 위하여 국가도 세우시고, 왕도 세우시고, 총독도 세우시고, 권세를 세우셨습니다. 생후 16개월된 어린 정인이를 입양해서 학대하고, 장기파열시키고,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양모에게 무기징역과 양부에게 징역 5년의 형벌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국가에게 있습니다.
6.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
둘째, 살인의 진정한 의미는 사람을 죽이는 살인의 행동만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입니다. 살인하지 말라의 의미는 단지 사람만 죽이는 살인이 아닙니다. 이웃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도 살인이며,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해치는 것도 살인입니다. 나의 생각이나 말이나 몸짓으로, 다른 누군가를
시켜서 하는 행동이 살인이며, 누군가를 미워하는 복수심을 갖는 것도 살인입니다.
살인의 의미를 이렇게 확장시키신 분이 계십니다.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봄에 살펴본 산상수훈 마태복음 5장 21-22절에서 우리 예수님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이렇게 해석하십니다. “옛 사람에 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에게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 5:21-22).
옛 사람에게 말한바 이 말씀이 출애굽기 12장 13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살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형제에게 노하는 것이 살인이며, 형제에게 모욕을 주고, 미련한 놈이라고 욕하는 것이 살인이라고 하십니다. 살인은 우리의 마음속에 생기는 분노에서 시작됩니다. 마음의 분노에서 시작된 살인은 우리의 입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형제에게 라가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고,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는 욕설이 입에서 나옵니다.
라가는 빈 깡통이라는 말이며, 미련한 놈이라는 말은 멍청이, 제 정신이 아닌 놈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입에서 분노의 마음에서 나오는 비난과 비판과 욕이 우리 예수님 보시기에는 살인입니다. 빈 깡통, 미련한 놈이라는 살인은 얼마나 심각한 죄인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산헤드린 공의회에 끌려갈 문제이며, 심지어 지옥불에 들어갈 살인의 죄입니다.
지금 드리고 있는 예배가 중요합니까? 아니면 누군가 분노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과 입에서 나오는 살인이 더 중요합니까? 23-24절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지금 예배가 더 중요하지 않습니다. 형제에게 원망을 들을 말한 마음과 생각과 입에서 나온 살인이 있다면, 그것을 지금 당장 해결하는 것이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마음으로 생각으로 말로 몸짓과 행동으로 우리 이웃을 죽이고, 미워하고, 명예를 훼손하는 모든 행위가 살인이라면, 지금 이 시간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더 시급한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살인의 문제, 우리 이웃에게 향하는 살인만이 아닙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우리 스스로에게도 적용됩니다. 우리 자신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인데, 스스로 자신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미워하고, 스스로를 너무나 무가치하게 여기고, 그래서 과도하게 탐식하고, 약물을 남용하고, 자해하고 자살하는 것도 살인입니다.
살인하지 말라에 해당되는 살인이 오늘날 우리 시대에는 얼마나 많은지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도 살인입니다. 엄마의 뱃속에 있는 인간의 최초의 상태인 태아를 죽이는 낙태도 살인이며, 인간의 생명의 마지막 상태의 사람을 죽이는 안락사도 살인입니다.
7. 살인하지 말고 사랑하라
셋째, 살인하지 말라 부정적인 명령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성경은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에는 긍정적인 요소도 있음을 강조합니다. 마음의 분노와 욕이 아니라 반대로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이 살인하지 말라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사람을 죽이는 살인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랑이 있습니다. 이웃에 대하여 온유하고, 화평하고, 자비하고, 친절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살인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을 마땅히 사랑해야 하는 대상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살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고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우리 예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사랑은 악한 자를 대적하지 않으며, 누구든지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가지게 하며, 억지로 오리를 가고자 하는 자에게 기꺼이 십리까지 동행하고, 구하는 자에게 주며,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않는 것이 살인하지 말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죄를 지은 자를 용서하며, 더 나아가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살인하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마땅히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하는 살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살인이 아니라 사랑하며 사는 것이 여섯번째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번 추석에 받은 여러 인사말 가운데 제 마음에 남는 사랑의 시가 있습니다. 이해인 님의 달빛기도라는 시입니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추석 인사 보냅니다.
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둥근달이 되는 한가위,
우리가 서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내 좀 더 환해지기를,
모난 마음과 편견을 버리고 좀더 둥글어지기를 두손모아 기도하려니,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
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 두고 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우리 마음에 분노와 욕설의 살인이 아닌, 모난 마음과 편견을 버리고, 둥근 달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바라며, 우리 마음이 좀 더 둥글어지기를 바라며, 다 같이 일어나서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함께 찬송하며 기도합니다.
8. 우리의 기도
이 시간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 살인하지 말라 그 말씀으로 함께 기도합니다. 서로를 향한 미움과 시기와 분노가 가득한 우리 시대에 하나님은 살인하지 말라 하십니다. 미워하고, 증오하고, 한번 맺은 원수는 풀지 않는 일상화된 살인의 시대에 우리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길 원합니다. 살인하지 않게 하옵소서. 오히려 온유와 자비와 겸손과 친절함으로 사랑하게 하옵소서. 모든 증오의 악순환을 끊어버리는 우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악인과 선인에게 해를 비추시며, 의인과 불의한 자에게도 비를 내려주시는 우리 자비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하늘 아버지의 온전하심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길 간구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도 온전한 자가 되어 이 땅에서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다해 전심으로 사랑하게 하시며, 우리의 모든 인간관계 속에서 살인하지 말며, 악을 악으로 갚지 말게 하시며,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화목하며, 선으로 악을 이기게 하옵소서. 왼편도 돌려대며, 겉옷까지도 주며, 십리까지 동행하고, 주며, 거절하지 않으며, 원수를 사랑하며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넉넉한 용서와 관용과 사랑을 부어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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