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3) 갈 1:10-24절 사도 바울의 터닝포인트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09-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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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새벽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은 왼쪽 아래에 있습니다.
1. 사도 바울의 터닝포인트
기독교인이 된 우리들의 인생에서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거듭남, 회심입니다. 우리는 거듭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납니다.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은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저는 지금도 1989년 2월의 추운 겨울 수원의 광교산 자락에 있는 바울기도원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에 응답해 주신 은혜의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알게 되었고, 인생의 목적이 생기게 되었고, 세상이 다르게 보인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저는 제가 보기에도 저희 가족들과 친구들이 보기에도 이상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갈라디아서 1장 10-24절 사도 바울은 자신의 간증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간증을 보면, 사도 바울 인생의 터닝포인트이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건이 유대교의 한 분파에서 기독교로 나아가는 역사의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된 사건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이토록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는 다른 복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확신하고 전하고 있는 것입니까?
10절부터 12절 말씀은 사도 바울은 그토록 확신하는 복음의 기원을 다시 한번 밝히고 있습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바울은 다시 강조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증거한 복음은 사람의 뜻이 아니요,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라 말합니다. 정 반대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며, 지금까지 그 복음을 받은 이후에 사도 바울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는 삶이 아니라, 오직 자신에게 복음을 주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합니까? 사람들에게서 배운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계시로 주어진 복음이 사도 바울은 변화시켰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도무지 설명이 안되는 일이 사도 바울에게 일어났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2.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과거의 바울
먼저,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 자신의 과거의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13-14절 바울의 과거의 모습입니다.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바울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알게 되었는지 자신의 과거의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바울은 철저한 유대교의 열렬한 신봉자 였습니다. 유대교의 바리새파의 가르침에 어느 누구보다도 지나치게 열심으로 믿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를 조금도 용납할 수 없었던 교회 박해자였습니다.
사도행전 7장을 보면, 스데반이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순교할 때 순교의 현장에서도 그리스도를 전하던 스데반의 죽임당함을 마땅히 여기던 복음의 원수, 교회의 원수였습니다. 사도행전 22장 3-5절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자신의 모습을 다시 소개합니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을 결박하여 옥에 넘겼더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유대교 바리새파 가운데 가장 엄격한 가멜리엘의 문하에서 율법주의자로 자란 바울에게 인생의 최고의 목적은 율법주의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심이었습니다. 그 열심으로 유대교가 보기에는 이단처럼 보이는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하고, 남여를 결박하여 옥에 넘긴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복음의 핍박자, 교회의 원수였습니다.
3. 바울의 터닝포인트: 다메섹 체험
15-16절 유대주의자 바울 생애의 터닝포인트입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바울에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하신 선택의 은혜와 바울을 부르는 부르심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러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사도행전 22장 6-8절 말씀입니다.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바울 생애의 결정적인 터닝포인트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건입니다. 왜 나를 박해하느냐?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바울이 박해한 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였습니다. 바울이 받은 복음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닌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과 계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은혜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신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이것이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받고 부르심을 받은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울 생애의 터닝포인트이며, 동시에 기독교의 터닝포인트입니다.
복음이 유대인을 넘어서, 비로소, 이방인을 위한 복음의 사역이 안디옥교회에서 파송한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차 전도여행, 2차, 3차 전도여행 사도 바울은 온 땅을 다니면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복음 사역이 아니었다면 기독교 복음은 유대인에게만 머물러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지상명령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구약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아브라함 언약 창세기 12장 3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이제 사도 바울의 회심을 통해서 복음의 문이 이방인에게도 활짝 열리게 된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4. 다메섹 체험 이후의 바울의 행적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바울은 자신의 행적을 비교적 자세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바울의 행적을 보면, 자신이 복음을 어느 사람에게 배운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메섹에서 회심 이후에 바울은 16절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합니다. 17-19절 “또 나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고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후 삼년 만에 내가 게바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주의 형제 야보고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1절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회심 이후에 사도 바울의 행적을 보면, 바울은 사람에게서 복음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 혈육과 의논하지 않고,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가지도 않았습니다.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사도 바울이 간 장소는 아라비아입니다. 다메섹에서 아라비아로 갔고, 다시 아라비아에서 다메섹으로 돌아갔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흔히 아라비아하면 아라비안나티트가 있는 중동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회심 가운데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다시 성경을 더 깊이 묵상하기 위해서 아라비아에서 3년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깊이 연구하기 위해서 간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후 1세기 역사를 보면 다메섹과 아리비아라고 불리우는 페트라라는 도시는 북부 아라비아 출신 아레테스 4세가 다스리는 나바티안 왕국에 속한 도시였습니다.
사도행전과 고린도후서의 기록을 보면, 갈라디아서와 연결되는 중요한 장소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32-33절 말씀입니다.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 회심의 장소 다메섹에 아레다 왕의 고위 관료가 사도 바울을 잡기위해서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광주리를 타고 바울이 도망을 쳤습니다.
사도행전 9장 19-25절 말씀을 보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다메섹에서 회심한 즉시 사도 바울은 그가 핍박하던 예수를 구약에 예언된 그 메시야, 그리스도라고 증거합니다. 그리고 나바테안 왕국의 아라비아라는 페트라로 가서 거기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아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오는데 이번에는 아레다 왕의 고관의 핍박을 받아 광주리를 타고 도망을 칩니다.
다메섹에서 회심한 이후 바울의 행적을 보면, 다른 예수님을 통해서 직접 배운 사도들을 만나서 복음을 전수 받을 시간이 없습니다. 회심한 직후 사도 바울은 다메섹에서, 아라비아 페트라에서, 다시 다메섹에서, 그리고 수리아 지역, 바울의 고향 길리기아 지역에서 계속해서 복음을 증거합니다.
5. 우리의 기도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회심하셨습니까? 회심한 이후 그동안 우리가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주님을 만난 우리는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지, 오늘 사도 바울의 회심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를 돌아보며 기도하길 원합니다.
첫째, 회심의 은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찾고자 해서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불러주신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기억합니다. 둘째, 우리의 회심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와 만나주신 그 첫 사랑의 감사와 감격이 우리 안에 사라지지 아니하고,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복음 전도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지역에서 우리를 복음의 사역자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오늘도 사도 바울이 만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우리 시대에 우리에게 맡겨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 은혜의 복음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복음으로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조정하게 하시며, 우리 지역에서 경건하게 숨어지내는 조용한 성도가 아닌, 예수는 그리스도이심을 우리의 입을 열어, 우리의 마음으로 입으로 전하는 복음의 일꾼이 되게 하옵소서.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우리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전파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하나님께 오직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오늘도 성령의 충만함을 부어주셔서 신실한 복음 전파자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써 주시기를 간구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사도 바울의 터닝포인트
기독교인이 된 우리들의 인생에서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거듭남, 회심입니다. 우리는 거듭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납니다.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은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저는 지금도 1989년 2월의 추운 겨울 수원의 광교산 자락에 있는 바울기도원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에 응답해 주신 은혜의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알게 되었고, 인생의 목적이 생기게 되었고, 세상이 다르게 보인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저는 제가 보기에도 저희 가족들과 친구들이 보기에도 이상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갈라디아서 1장 10-24절 사도 바울은 자신의 간증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간증을 보면, 사도 바울 인생의 터닝포인트이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건이 유대교의 한 분파에서 기독교로 나아가는 역사의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된 사건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이토록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는 다른 복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확신하고 전하고 있는 것입니까?
10절부터 12절 말씀은 사도 바울은 그토록 확신하는 복음의 기원을 다시 한번 밝히고 있습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바울은 다시 강조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증거한 복음은 사람의 뜻이 아니요,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라 말합니다. 정 반대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며, 지금까지 그 복음을 받은 이후에 사도 바울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는 삶이 아니라, 오직 자신에게 복음을 주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합니까? 사람들에게서 배운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계시로 주어진 복음이 사도 바울은 변화시켰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도무지 설명이 안되는 일이 사도 바울에게 일어났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2.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과거의 바울
먼저,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 자신의 과거의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13-14절 바울의 과거의 모습입니다.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바울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알게 되었는지 자신의 과거의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바울은 철저한 유대교의 열렬한 신봉자 였습니다. 유대교의 바리새파의 가르침에 어느 누구보다도 지나치게 열심으로 믿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를 조금도 용납할 수 없었던 교회 박해자였습니다.
사도행전 7장을 보면, 스데반이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순교할 때 순교의 현장에서도 그리스도를 전하던 스데반의 죽임당함을 마땅히 여기던 복음의 원수, 교회의 원수였습니다. 사도행전 22장 3-5절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자신의 모습을 다시 소개합니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을 결박하여 옥에 넘겼더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유대교 바리새파 가운데 가장 엄격한 가멜리엘의 문하에서 율법주의자로 자란 바울에게 인생의 최고의 목적은 율법주의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심이었습니다. 그 열심으로 유대교가 보기에는 이단처럼 보이는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하고, 남여를 결박하여 옥에 넘긴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복음의 핍박자, 교회의 원수였습니다.
3. 바울의 터닝포인트: 다메섹 체험
15-16절 유대주의자 바울 생애의 터닝포인트입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바울에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하신 선택의 은혜와 바울을 부르는 부르심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러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사도행전 22장 6-8절 말씀입니다.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바울 생애의 결정적인 터닝포인트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건입니다. 왜 나를 박해하느냐?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바울이 박해한 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였습니다. 바울이 받은 복음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닌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과 계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은혜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신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이것이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받고 부르심을 받은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울 생애의 터닝포인트이며, 동시에 기독교의 터닝포인트입니다.
복음이 유대인을 넘어서, 비로소, 이방인을 위한 복음의 사역이 안디옥교회에서 파송한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차 전도여행, 2차, 3차 전도여행 사도 바울은 온 땅을 다니면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복음 사역이 아니었다면 기독교 복음은 유대인에게만 머물러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지상명령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구약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아브라함 언약 창세기 12장 3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이제 사도 바울의 회심을 통해서 복음의 문이 이방인에게도 활짝 열리게 된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4. 다메섹 체험 이후의 바울의 행적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바울은 자신의 행적을 비교적 자세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바울의 행적을 보면, 자신이 복음을 어느 사람에게 배운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메섹에서 회심 이후에 바울은 16절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합니다. 17-19절 “또 나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고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후 삼년 만에 내가 게바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주의 형제 야보고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1절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회심 이후에 사도 바울의 행적을 보면, 바울은 사람에게서 복음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 혈육과 의논하지 않고,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가지도 않았습니다.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사도 바울이 간 장소는 아라비아입니다. 다메섹에서 아라비아로 갔고, 다시 아라비아에서 다메섹으로 돌아갔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흔히 아라비아하면 아라비안나티트가 있는 중동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회심 가운데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다시 성경을 더 깊이 묵상하기 위해서 아라비아에서 3년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깊이 연구하기 위해서 간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후 1세기 역사를 보면 다메섹과 아리비아라고 불리우는 페트라라는 도시는 북부 아라비아 출신 아레테스 4세가 다스리는 나바티안 왕국에 속한 도시였습니다.
사도행전과 고린도후서의 기록을 보면, 갈라디아서와 연결되는 중요한 장소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32-33절 말씀입니다.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 회심의 장소 다메섹에 아레다 왕의 고위 관료가 사도 바울을 잡기위해서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광주리를 타고 바울이 도망을 쳤습니다.
사도행전 9장 19-25절 말씀을 보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다메섹에서 회심한 즉시 사도 바울은 그가 핍박하던 예수를 구약에 예언된 그 메시야, 그리스도라고 증거합니다. 그리고 나바테안 왕국의 아라비아라는 페트라로 가서 거기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아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오는데 이번에는 아레다 왕의 고관의 핍박을 받아 광주리를 타고 도망을 칩니다.
다메섹에서 회심한 이후 바울의 행적을 보면, 다른 예수님을 통해서 직접 배운 사도들을 만나서 복음을 전수 받을 시간이 없습니다. 회심한 직후 사도 바울은 다메섹에서, 아라비아 페트라에서, 다시 다메섹에서, 그리고 수리아 지역, 바울의 고향 길리기아 지역에서 계속해서 복음을 증거합니다.
5. 우리의 기도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회심하셨습니까? 회심한 이후 그동안 우리가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주님을 만난 우리는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지, 오늘 사도 바울의 회심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를 돌아보며 기도하길 원합니다.
첫째, 회심의 은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찾고자 해서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불러주신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기억합니다. 둘째, 우리의 회심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와 만나주신 그 첫 사랑의 감사와 감격이 우리 안에 사라지지 아니하고,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복음 전도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지역에서 우리를 복음의 사역자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오늘도 사도 바울이 만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우리 시대에 우리에게 맡겨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 은혜의 복음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복음으로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조정하게 하시며, 우리 지역에서 경건하게 숨어지내는 조용한 성도가 아닌, 예수는 그리스도이심을 우리의 입을 열어, 우리의 마음으로 입으로 전하는 복음의 일꾼이 되게 하옵소서.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우리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전파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하나님께 오직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오늘도 성령의 충만함을 부어주셔서 신실한 복음 전파자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써 주시기를 간구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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