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6) 출애굽기 20장 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09-12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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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두 가지 이유: 창조주 하나님, 구원주 하나님
십계명의 네번째 계명은 1계명부터 4계명까지 하나님에 관한 계명의 마지막 계명입니다. 오늘 출애굽기 20장 8-11절 말씀을 다시 자세히 읽기를 원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쎄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 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당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동일한 4계명의 말씀을 다루는 신명기 5장 12-15절을 보면 출애굽기와는 다른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엿새 동안은 힘쎄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동일한 4번째 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출애굽기의 말씀과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게 하라는 신명기 말씀은 어떠한 중요한 차아기 있습니까? 가장 중요한 차이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지켜야 하는 그 이유입니다.
출애굽기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 이유가 11절에 있습니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으니라” 우리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힘써 일하시어 창조하셨습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드신 창조는 창조주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엿새 동안의 창조의 일을 마치신 하나님은 마지막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이것이 지금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안식은 창조 후에 창조를 돌아보신 우리 하나님처럼 우리도 엿새동안은 힘써서 일을 한 후에 우리의 창조의 일을 돌아보기 위한 목적으로 주어진 안식입니다.
그런데, 신명기로 가면 우리가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출애굽기의 안식일의 목적이 창조라면, 신명기의 안식일의 목적은 창조가 아니라 이번에는 구원입니다. 신명기 5장 15절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이번에는 창조가 아니라 구원입니다. 하나님에서 애굽에서 종이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강하신 손으로 펼쳐주신 팔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주셔서, 구원하여 주셨기에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이시라면, 그렇다면 우리는 마땅히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의 하나님이시라면 그렇다면 이번에도 마땅히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중요한 두 가지 이유입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안식일을 지킬 수 없고,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으로 고백하지 못하면 절대로 안식일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구원주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 앞에서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2. 안식일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두 가지 중요한 이유를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떻게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까?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첫째, 9절 말씀입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엿새동안은 힘써서 네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중요한 전제입니다. 힘써 일하지 않으면 안식일이 의미가 없습니다.
회사에서 한 주간 어떻게 일하셨습니까? 연구소에서 한 주간 어떻게 연구하셨습니까? 사업터에서 한 주간 얼마나 열심히 일하셨습니까? 가정에서 한 주간 얼마나 열심히 일하셨는지요? 우리 학생들은 한 주간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셨는지요?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안식일의 계명은 이 땅에서 허비하고 낭비하는 게으른 삶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엿새동안 창조하시면서 열심으로 일하셨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인 소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농부로 농사를 짓는 것은 창조의 하나님을 대리하여 농사를 지어서 사람들을 먹여살립니다. 농부가 지은 밀을 가지고 빵을 만드는 제빵사는 하나님을 대리하여 빵을 만들어 사람들을 섬깁니다. 직장에서 감당하는 일은 죽지 못해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드러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소명입니다. 성도들의 영의 양식을 위해서 하나님 말씀을 준비하는 일이나, 가정에서 정성껏 가족을 위해서 음식을 준비하고 만드는 일은 우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사용하시는 우리의 소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엿새동안 우리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창조의 일을 감당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항상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가 보면, 우리도 모르게 탐욕이 찾아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맡겨주신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우리도 모르게 우리가 일의 노예가 되어집니다. 그럴때 반드시 들어야 하는 창조의 하나님, 우리 구원의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이 있습니다.
10절 우리 같이 읽습니다.“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열심으로 창조하신 창조의 일을 마무리 하신 우리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은 일곱째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심이다. 왜 일곱째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실까요?
우리는 이 땅을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의 대리인으로 살아가지만 우리가 우리 인생의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일곱째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 인생의 주인은 열심히 창조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아니라, 우리에게는 창조주 하나님이 계심을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의 계명은 우리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인생의 주인은 누구이십니까? 열심히 일에 빠져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인생의 주인인줄로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열심히 일을 해서 번 돈과 재물이 모두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며, 일을 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신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잃어버립니다. 그러기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향하여 STOP 사인을 주시면 반드시 멈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3장 12절 말씀“너는 엿새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그 날음 잠시 멈춰서서 숨 가쁘게 살던 삶을 잠시 내려놓고 숨을 돌리는 그 안식의 날입니다.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인생의 주인이 내가 되면 사업이 번창할 때 안식 할 수가 없습니다. 인생의 주인이 내가 되면 직장에서 승진할 기회가 있을 때 결코 안식할 수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탐욕이 내 삶을 지배합니다.
3. 언약 백성에게 선물로 주신 안식일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의 안식일 계명을 주시기 전에 출애굽기 16장에서 시내산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광야에서 만나를 먹여주시면서 하나님은 안식의 계명을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16장 21-25절 말씀입니다. “여섯째 날에는 각 사람이 갑절의 식물 곧 하나에 두 오멜씩 거둔지라 회중의 모든 지도자가 와서 모세에게 알리매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엿새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일곱째 날은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없으리라 하였으나 일곱째 날에 백성 중 어떤 사람들이 걷러 나갔다가 엊지 못하니라.
십계명의 네번째 안식일 계명을 주시기 전에 이미 안식일을 계명과 율법으로 주셨습니다. 엿새 동안은 매일 만나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섯째 날에는 두배의 만나를 주어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백성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일곱째 날에도 거두러 나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것이 탐욕이고 욕심입니다. 여섯째 날에 두 배를 주셨는데, 그러면 일곱째 날에도 무엇인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일곱째 날에 만나를 거두러 나간 사람 어떻게 되었습니까? 책망을 받았지만 구체적인 징계는 없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상황의 말씀이 이번에는 민수기 15장 32절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류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그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 앞으로 끌어왔으나 어떻게 처치할는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한고로 가두었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영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 온 회중이 곧 그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를 쳐 죽여서 여호와께서 모세엑 명령하신 대로 하니라”
일곱째 날 안식하지 않고 만나를 거두러 나간 사람이나, 안식일에 나무하러 나간 사람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둘 다 탐욕스런 행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전자는 그냥 넘어가는데 후자는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전자와 후자 사이에 아주 중요한 것이 바로 출애굽기 19-24장의 시내산 언약입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공식적으로 언약의 관계에 들어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언약 체결 전의 행동과 언약 체결 이후의 행동은 다르게 평가를 받습니다. 결혼 언약을 체결하기 전에 남자는 어떤 여자를 만날 수 있지만 결혼 언약을 체결하고 나서는 단 한 여자만 사랑합니다.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하기 전에는 징계가 없지만, 시내산에서 피로 목숨을 걸고 언약을 체결하고 나면 언약 파기에는 언약의 저주가 있습니다. 그러면 언약을 체결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안식일의 계명은 온 열방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었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외에 일주일에 한번 쉴 수 있는 안식일의 문화를 가진 사람들은 고대근동 지역에 단 한 민족도 없었습니다. 안식일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고 제약을 가해서 힘들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수고와 노동과 삶의 피곤함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었습니다. 이 복된 은혜의 선물은 오직 언약의 관계에 들어선 사람들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언약의 관계에 들어서는 언약 백성들의 안식의 삶은 반드시 주변에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그래서 언약 백성에 속한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심지어 네 가축이나 네 문만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모두 하나님의 은혜의 안식의 선물을 언약 백성도 받아 누리고, 언약 백성에게 속한 모든 가족들, 짐승들, 머무는 객들도 받아 누립니다. 이 얼마나 복된 은혜의 선물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러니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구원주 하나님을 인정하는 언약백성의 삶에는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의 안식의 선물이 있습니다.
4. 안식일 계명의 변질
그런데 이제 안식일의 계명에 새로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안식일이 문제가 아니라 안식일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항상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안식일 계명을 극단으로 몰고 갑니다. 어떻게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합당한 것인가? 여기에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은 온갖 종류의 안식일 규정을 덧붙여서 안식일 계명이 이상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안식일 계명을 해석하면서 온갖 종류의 금지 조항을 덧붙입니다. 그래서 미쉬나라는 새로운 가르침을 만들고, 탈무드라는 또 다른 새로운 가르침을 만들었습니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금지 규정에 미쉬나를 보면 이런 규정이 있습니다.
“오른손으로든 왼손으로든 간에, 같은 글자든 다른 글자든 간에 다른 잉크로든 어느 언어로든 간에, 두 글자를 쓰는 자는 유죄다” (미쉬나,안식일 12.3).
“이방인이 등불을 켰다면 이스라엘 사람이 그 빛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을 위해 등불을 켜서는 안된다. 이방인이 자신의 소들에게 먹이려고 여물통에 채워다면 이스라엘 사람은 그의 뒤를 이어 자신의 소들도 그 물을 마시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방인이 이스라엘 사람을 위하여 이렇게 했다면,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 (미쉬나, 안식일 16.8).
이것이 무슨 안식일 규정입니까? 이상한 안식일 규정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안식일에 온갖 종류의 금지 규정을 만들어 놓고 그 금지된 규정으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평가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의 예수님 시대에 가장 많은 논쟁이 안식일 논쟁이었습니다. 신약의 바리새인들은 구약의 율법을 더 철저하게 준수하기 위한 선한 의도로 만들어 놓은 안식일 계명이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고 안식일 준수를 무거운 짐이 되게 하였고 사람들을 시험에 빠뜨리는 올무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5. 새 언약의 안식일
우리 예수님께서 오셔서 제자들과 맺은 새로운 언약의 시대에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은 옛 언약이 되었습니다. 새 언약의 시대에 안식일은 옛 언약 시대의 안식일과는 또 다른 중요한 차이가 생겼습니다.
골로새서 2장 16-17절 중요한 말씀 같이 읽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구약의 이스라엘들이 생명처럼 여겼던 먹고 마시는 정결규례, 절기 – 유월절, 무교절, 초막절, 오순절, 나팔절, 대속죄일, 장막절 그 중요한 절기들, 그리고 안식일도 장래 일의 그림자이며, 그 그림자가 가리키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약 시대에 유대인들은 먹을 수 없는 먹어서는 안되는 돼지 고기를 우리는 잘 먹습니다. 구약 시대에 엄청나게 중요한 절기가 9월에 집중되어 있음에도 우리는 2021년 9월 7일 지난 화요일이 로쉬 하샤나 – 나팔절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이번 주 목요일 9월 16일은 대속죄일 – 욤 키푸르임에도 우리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습니다. 9월 21일부터 27일까지 있는 장막절 절기를 우리는 모르고 넘어갑니다. 음식규례와 절기 처럼 안식일도 모두 장래 일의 그림자입니다. 몸은 실체인데 실체이신 그리스도가 오시면 그림자는 사라집니다.
새로운 언약의 시대에 안식일도 구약의 안식일처럼 그대로 지켜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안식일에 나무하러 가다가 발견된 사람 우리 시대에는 돌로 쳐 죽이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언약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까?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 제103번째 질문과 답변 읽습니다.
제103문 제4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봉사와 그 봉사를 위한 교육이 유지되기를 원하시며, 특히 안식의 날인 주일에 내가 하나님의 교회에 부지런히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성례에 참여하며 주님을 공적으로 부르고 가난한 자들에게 기독교적 자비를 행하기 원하십니다.
둘째, 나의 일생 동안 악한 일들을 그만두고 주께서 그의 성령으로 내 안에서 일하시게 하며, 그럼으로써 영원한 안식이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되기를 원하십니다.
구약의 옛 언약에서 신약의 새 언약 시대에 안식일에는 중대한 몇 가지 변화가 생겼습니다.
첫째, 구약의 안식일이 새로운 주일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안식일은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입니다. 그런데, 바로 금요일 해질때에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 죽으시고 금요일 토요일 주일이 되어 주일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0장 7절 말씀입니다.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하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그 주간의 첫날은 안식일 후 첫날인 우리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일입니다. 안식일은 점차 그림자로 사라지고 그림자가 가리키는 실체인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서 떡을 떼려 모인 주일모임이 점차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태양신을 섬기기 위해서 일요일에 모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 주일에 모이게 된 것입니다. 주일에 모여서 무엇을 합니까? 그리스도의 몸인 성찬의 떡을 떼는 교제와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고 듣는 말씀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말씀인 성찬과 귀로 듣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로마 제국의 핍박으로 밧모섬에 유배된 사도 요한은 계시록 1장 10절을 보면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주의 날에 성령으로 감동된 사도 요한은 주님의 나팔소리 같은 음성을 듣고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남겼습니다.
둘째, 구체적으로 주일에 모여서 무엇을 했습니까? 구약의 안식일처럼 그냥 쉰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0장 24-25절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구약의 안식일의 그림자가 사라지니, 새로운 주일에 새로운 주님의 날에 내가 인생의 주인으로 내 마음대로 보내는 주일이 아니라 그 날은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복된 날이 되어,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같은 주일이 아니라, 그 날이 가까움을 볼 수록 더욱 모이는 교회의 본질적인 5가지 사명을 이루는 날이 되었습니다. 예배, 교제, 훈련, 사역과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는 복된 날이 나의 날이 아닌 주의 날, 주님의 주일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안식의 의미입니다. 우리 인생의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이 날은 주님의 주일은 예배하며, 교제하며, 훈련받으며, 사역하며, 영혼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는 주님의 일을 힘쓰는 복된 안식의 주일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한 주 단위로 엿새동안 열심히 일하고, 주일은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고백하면서, 예배하고, 교제하고, 훈련받고, 사역하며, 전도하다가 히브리서 4장 1절, 9-11절 말씀 우리 함께 읽습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안식일의 그림자는 사라지고, 이 땅에서의 우리의 열심으로 다하는 소명의 일과 주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는 안식을 위한 삶을 살다가, 이제는 이 땅에서의 우리의 모든 일을 다 내려놓고 우리 주님이 부르시는 마지막 안식할 때, 영웡한 안식으로 들어갑니다. 우리의 안식의 주일은 마지막 남은 그의 안식에 들어갈 복된 약속을 바라보며, 우리 가운데 이미 이 땅의 삶을 내려놓고 안식에 들어간 믿음의 조상들처럼 안식에 들어가서 자기의 일을 내려놓은 사람들처럼 우리도 저 안식에 들어갈 날을 기대하며 소망하며 열심으로 일하며, 동시에 STOP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주님이심을 고백하며 마지막 안식을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어제는 911이 일어난지 꼭 20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2977명이 사망하고, 부상자는 25000명 이상의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테러였습니다. 4편의 비행기가 납치되어 2편은 세계무역센터에 충돌을 했고, 1편은 펜타곤으로, 마지막 1편인 UA 93은 미국 국회의사당이나 백악관으로 향하다가 펜실베니아주 생크스빌 인근 스토닉크릭에 추락을 했습니다. 마지막 비행기에서 끝까지 알케이다에게 저항한 타드 비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카고의 명문 기독교대학 휘튼 대학을 졸업한 신실한 기독교인 타드 비머는 테러범들에게 납치된 비행기에서 몇 사람들과 함께 끝까지 저항하여 조종실로 뛰어들어 비행기를 추격해서 목표물인 국회의사당과 백악관의 충돌을 막은 영웅이었습니다. 마지막 행동 전에 타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여 주기도문의 기도를 올려드리며, 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 말씀을 암송하고 Are you ready? OK. Let’s Roll 자 나가자 그 말씀과 함께 믿음의 용기를 보였습니다. 911 이후 타드 비머의 아내 리사 비머는 래리 킹 프로그램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당신의 남편이 마지막에 기도했다는 소실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리사는 이렇게 답변합니다. “조금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기도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 땅에서의 삶이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기 위한 준비의 인생인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타드와 저는 완벽한 사람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최선을 다해 살아왔습니다. 타드는 최후까지 그렇게 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 우리 믿음의 삶은 영원한 안식을 준비하기 위한 믿음의 삶입니다. Are you ready? 준비되셨습니까?
6. 우리의 기도
오늘 우리에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말씀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습니다. 엿새동안 힘써 우리의 소명의 현장에서 힘써 일하게 하옵소서. 그러나, 우리 창조의 하나님이 구원의 하나님이 멈추라 하시니 내려놓고 멈추어 쉬게 하시며, 주님을 인정하게 하옵소서. 복된 주의 날 믿음으로 예배하며, 교제하며, 훈련받으며, 사역하며, 전도하다가 이 땅에서 영원한 안식을 준비하는 용기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게 하옵소서. 이 시간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습니다. 우리의 모든 시간과 생명과 삶의 주인이 우리가 아니라 내가 아니라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욕심과 탐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구별되이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 땅에서 우리의 소명의 현장에서 힘써 일하다가 창조를 돌아보신 우리 하늘 아버지처럼, 안식일에 힘써 사람을 구원하신 우리 예수님처럼 힘써 일하다가, 초대교회의 성도들 처럼 주님의 날 예배하며, 교제하며, 훈련받으며, 사역하며, 전도하는 복된 안식의 삶을 누리다가, 영원한 안식에서 우리 주님과 함께 할 그 영원한 안식을 준비하게 하옵소서. 부르시는 그 날까지 우리의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믿음의 용사들이 되게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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