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1) 갈 1장 1-17절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09-04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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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
1. 나의 사랑 갈라디아서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종교개혁자를 들라 하면 마틴 루터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그가 1517년 독일의 비텐베르그 성당의 정문에 95개조의 반박문을 붙인 사건이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시작을 보면 바울 서신 중에서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이해가 결정적인 출발점이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는가? 젊은 루터의 고민의 고민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 보았으나, 좌절과 실패였습니다. 그러다가, 바울의 서신인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를 연구하는데, 한 가지 분명히 깨달은 진리가 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지는 이신칭의, 이신득의 그리스도의 의의 (justification by faith alone)의 복음을 깨닫자 마음에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마음속에 거부할 수 없는 확신이 생겼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된다 복음의 확신이 생겼습니다. 이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를 통해서 깨달은 복음의 확신을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나의 서신이다. 나는 사실상 이 갈라디아서와 결혼을 했다. 갈라디아서는 나의 아내 캐서린이다.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이 AD. 49년경에 쓴 사도 바울의 첫번째 서신입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면, 사도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1차 전도여행 중에 남부 갈라디아 지역인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를 방문해서 복음을 전합니다. 루스드라에서는 나면서 걷지 못하던 자가 걷기도 하는 많은 이적과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지만, 갈라디아 지역에서 동시에 유대인들에게 돌로 맞는 심각한 박해도 있었습니다.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의 갈라디아 지역의 복음 사역을 돌아볼 때 잊을 수는 복음의 역사, 은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복음은 바울을 변화시켰고 갈라디아 지역을 변화시켰고, 복음은 저같은 죄인도 변화시켰고, 복음은 여러분도 변화시켰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을 어떻게 믿게 되었습니까? 복음이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켰습니까? 1991년 대학교 1학년 교회에서는 3박 4일 수련회가 있었는데, 아침, 점심, 저녁을 먹으면서 오직 갈라디아서 한절 한절 말씀을 묵상하고 나누는 갈라디아서 복음수련회가 열렸습니다. 그 한절 한절의 말씀이 얼마나 저에게 은혜가 되고, 하나님 말씀, 복음의 능력이 확신으로 다가왔는지, 지금도 마음에는 갈라디아서 말씀의 감격이 오늘 말씀을 준비하는데 마음에 남아았습니다. 복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아무리 강팍한 사람이어도 변화시키며, 역사상 가장 강팍했던 사도 바울의 마음을 변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복음, 그리스도의 복음은 아무리 들어도 복된 소식입니다. 아무리 들어도 지겹지 않은 좋은 소식입니다. 갈라디아서 짧은 6장의 서신이지만 복음이 무엇인지, 복음이 어떻게 갈라디아 지역을 변화시켰는지, 바울을 변화시킨 복음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수 있습니다.
2. 핍박자에서 사도로 변화된 바울
오늘 우리가 살펴 볼 것은 복음으로 변화된 바울의 모습입니다. 바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1절 말씀은 사도 바울은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바울은 자신이 어떻게 사도가 되었는지 그 이유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이것이 사도 바울이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이런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되었노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가 되기 전에 바울은 어떠한 사람이었습니까? 13-14절을 봅니다.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바울의 과거를 보면 도무지 예수님과는 상관없는 철저한 유대주의자였습니다. 그냥 유대주의자가 아니라 지나치게 열심이 있던 유대교의 가장 열심이었던 바리새파 전통의 열혈 유대주의자이다. 바울의 과거를 생각하면, 복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오히려 복음의 가장 큰 박해자였습니다. 도무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의 과거의 모습을 디모데전서 1:12절은 조금더 상세하게 묘사합니다. 딤전 1:12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복음을 믿는 사람들을, 복음과 연관된 모든 것을 비방, 박해, 폭행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바울이 변했습니다.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바로 바울이 박해하던 그 복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더 깊이 들어가면 이유가 있다.
3. 부르심과 택하심의 은혜
한때는 핍박자였던 바울이 복음의 사도가 된 것이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오늘 말씀을 보면, 두 가지가 일어났습니다. 첫째는 부르심이고, 둘째는 택하심이다. 15절 입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바울을 부르시고, 그리고 택정하신 분이 계시다. 사람이 복음으로 변하는 것은 그냥 변하는 것이 아니다. 변하도록 부르시는 분이 계시다. 누구이신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부르신다는 것을 소명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calling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복음으로 우리를 부르시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응답해야 합니다.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은 이 부르심에 응답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마치 죽은 물고기와도 같습니다. 죽은 물고기는 아무리 불러도 반응이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미끼를 달아도 반응이 없습니다.
소명에 반응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신비한 마음의 변화를 거듭남, 중생이라고 합니다. 엡 2:1절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허물과 죄로 죽을 수 밖에가 아니라 죽었던 너희이다. 죽은 물고기이다. 에베소서 2장 4-5절 BUT “긍휼이 풍성하신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적인 생명을 주셔서 부르심에 응답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은 이 하나님의 부르심 이전에 아주 중요한 택하심이 있습니다. 바울의 고백을 다시 보자. 갈 1:15절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부르심이 이전에 택정하심이 먼저입니다. 시점을 잘 생각해 보면, 바울은 여기서 언제 택하심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냐면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셨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이 복음의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심이 있었고, 복음으로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택정하시고 부르시는 은혜를 주셨습니까? 저는 아무리 부족하고 연역하지만, 하나님의 택정하심과 부르심의 은혜를 말씀을 통해서 확신합니다. 여러분도 확신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죄인은 우리를 선택하시고, 부르십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갈 1: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은혜로 부르신 것입니다. 은혜의 원인은 나에게 있지 아니하고 전적으로 그 은혜의 기원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복음으로 바울을 변화시킨 것은 하나님의 선택하심과 부르심이고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복음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망각하면 절대로 안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의 원인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은혜이고, 우리가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자가 된 것도 은혜입니다. 은혜를 망각하면 그때부터 교만이 우리에게 들어와 사람을 병들게 하고 사람을 시험에 빠지게 하고 사람을 비교하게 만듭니다.
4. 우리의 기도
오늘 바울을 변화시킨 그 택하심과 부르심의 복음을 기억하며 기도하길 원합니다. 이 시간 복음으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우리도 깊이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은혜를 아는 자는 교만할 수 없습니다. 복음의 은혜를 아는 자는 겸손하게 열정으로 신실하게 살아갑니다. 이 시간 복음의 풍성함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두번째, 우리를 변화시킨 이 복음이 우리 안에 풍성하게 역사할 뿐만 아니라 갈라디아 지역을 변화시키고, 온 세상을 변화시킨 것 처럼, 우리에게, 우리 교회에도 복음의 능력있는 역사가 풍성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길 원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자격 없는 죄인을 복음으로 부르시고, 택하여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로 삼아주신 그 크신 은혜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이 복음의 역사가 우리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전적인 아버지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복음으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게 하시며, 이 복음의 역사가 우리안에 더 풍성하게 일어나게 하시며, 우리 교회에 지금 보다 더 풍성하게 일어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는 복음의 본질을 추구하는 교회가 되어서 우리 가운데 복음으로 한 영혼 한 영혼 주님께 돌아오는 구원의 은혜가 더욱 풍성하게 나타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종교개혁자를 들라 하면 마틴 루터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그가 1517년 독일의 비텐베르그 성당의 정문에 95개조의 반박문을 붙인 사건이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시작을 보면 바울 서신 중에서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이해가 결정적인 출발점이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는가? 젊은 루터의 고민의 고민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 보았으나, 좌절과 실패였습니다. 그러다가, 바울의 서신인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를 연구하는데, 한 가지 분명히 깨달은 진리가 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지는 이신칭의, 이신득의 그리스도의 의의 (justification by faith alone)의 복음을 깨닫자 마음에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마음속에 거부할 수 없는 확신이 생겼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된다 복음의 확신이 생겼습니다. 이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를 통해서 깨달은 복음의 확신을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나의 서신이다. 나는 사실상 이 갈라디아서와 결혼을 했다. 갈라디아서는 나의 아내 캐서린이다.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이 AD. 49년경에 쓴 사도 바울의 첫번째 서신입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면, 사도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1차 전도여행 중에 남부 갈라디아 지역인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를 방문해서 복음을 전합니다. 루스드라에서는 나면서 걷지 못하던 자가 걷기도 하는 많은 이적과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지만, 갈라디아 지역에서 동시에 유대인들에게 돌로 맞는 심각한 박해도 있었습니다.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의 갈라디아 지역의 복음 사역을 돌아볼 때 잊을 수는 복음의 역사, 은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복음은 바울을 변화시켰고 갈라디아 지역을 변화시켰고, 복음은 저같은 죄인도 변화시켰고, 복음은 여러분도 변화시켰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을 어떻게 믿게 되었습니까? 복음이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켰습니까? 1991년 대학교 1학년 교회에서는 3박 4일 수련회가 있었는데, 아침, 점심, 저녁을 먹으면서 오직 갈라디아서 한절 한절 말씀을 묵상하고 나누는 갈라디아서 복음수련회가 열렸습니다. 그 한절 한절의 말씀이 얼마나 저에게 은혜가 되고, 하나님 말씀, 복음의 능력이 확신으로 다가왔는지, 지금도 마음에는 갈라디아서 말씀의 감격이 오늘 말씀을 준비하는데 마음에 남아았습니다. 복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아무리 강팍한 사람이어도 변화시키며, 역사상 가장 강팍했던 사도 바울의 마음을 변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복음, 그리스도의 복음은 아무리 들어도 복된 소식입니다. 아무리 들어도 지겹지 않은 좋은 소식입니다. 갈라디아서 짧은 6장의 서신이지만 복음이 무엇인지, 복음이 어떻게 갈라디아 지역을 변화시켰는지, 바울을 변화시킨 복음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수 있습니다.
2. 핍박자에서 사도로 변화된 바울
오늘 우리가 살펴 볼 것은 복음으로 변화된 바울의 모습입니다. 바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1절 말씀은 사도 바울은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바울은 자신이 어떻게 사도가 되었는지 그 이유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이것이 사도 바울이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이런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되었노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가 되기 전에 바울은 어떠한 사람이었습니까? 13-14절을 봅니다.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바울의 과거를 보면 도무지 예수님과는 상관없는 철저한 유대주의자였습니다. 그냥 유대주의자가 아니라 지나치게 열심이 있던 유대교의 가장 열심이었던 바리새파 전통의 열혈 유대주의자이다. 바울의 과거를 생각하면, 복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오히려 복음의 가장 큰 박해자였습니다. 도무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의 과거의 모습을 디모데전서 1:12절은 조금더 상세하게 묘사합니다. 딤전 1:12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복음을 믿는 사람들을, 복음과 연관된 모든 것을 비방, 박해, 폭행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바울이 변했습니다.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바로 바울이 박해하던 그 복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더 깊이 들어가면 이유가 있다.
3. 부르심과 택하심의 은혜
한때는 핍박자였던 바울이 복음의 사도가 된 것이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오늘 말씀을 보면, 두 가지가 일어났습니다. 첫째는 부르심이고, 둘째는 택하심이다. 15절 입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바울을 부르시고, 그리고 택정하신 분이 계시다. 사람이 복음으로 변하는 것은 그냥 변하는 것이 아니다. 변하도록 부르시는 분이 계시다. 누구이신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부르신다는 것을 소명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calling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복음으로 우리를 부르시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응답해야 합니다.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은 이 부르심에 응답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마치 죽은 물고기와도 같습니다. 죽은 물고기는 아무리 불러도 반응이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미끼를 달아도 반응이 없습니다.
소명에 반응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신비한 마음의 변화를 거듭남, 중생이라고 합니다. 엡 2:1절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허물과 죄로 죽을 수 밖에가 아니라 죽었던 너희이다. 죽은 물고기이다. 에베소서 2장 4-5절 BUT “긍휼이 풍성하신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적인 생명을 주셔서 부르심에 응답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은 이 하나님의 부르심 이전에 아주 중요한 택하심이 있습니다. 바울의 고백을 다시 보자. 갈 1:15절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부르심이 이전에 택정하심이 먼저입니다. 시점을 잘 생각해 보면, 바울은 여기서 언제 택하심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냐면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셨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이 복음의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심이 있었고, 복음으로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택정하시고 부르시는 은혜를 주셨습니까? 저는 아무리 부족하고 연역하지만, 하나님의 택정하심과 부르심의 은혜를 말씀을 통해서 확신합니다. 여러분도 확신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죄인은 우리를 선택하시고, 부르십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갈 1: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은혜로 부르신 것입니다. 은혜의 원인은 나에게 있지 아니하고 전적으로 그 은혜의 기원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복음으로 바울을 변화시킨 것은 하나님의 선택하심과 부르심이고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복음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망각하면 절대로 안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의 원인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은혜이고, 우리가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자가 된 것도 은혜입니다. 은혜를 망각하면 그때부터 교만이 우리에게 들어와 사람을 병들게 하고 사람을 시험에 빠지게 하고 사람을 비교하게 만듭니다.
4. 우리의 기도
오늘 바울을 변화시킨 그 택하심과 부르심의 복음을 기억하며 기도하길 원합니다. 이 시간 복음으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우리도 깊이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은혜를 아는 자는 교만할 수 없습니다. 복음의 은혜를 아는 자는 겸손하게 열정으로 신실하게 살아갑니다. 이 시간 복음의 풍성함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두번째, 우리를 변화시킨 이 복음이 우리 안에 풍성하게 역사할 뿐만 아니라 갈라디아 지역을 변화시키고, 온 세상을 변화시킨 것 처럼, 우리에게, 우리 교회에도 복음의 능력있는 역사가 풍성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길 원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자격 없는 죄인을 복음으로 부르시고, 택하여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로 삼아주신 그 크신 은혜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이 복음의 역사가 우리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전적인 아버지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복음으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게 하시며, 이 복음의 역사가 우리안에 더 풍성하게 일어나게 하시며, 우리 교회에 지금 보다 더 풍성하게 일어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는 복음의 본질을 추구하는 교회가 되어서 우리 가운데 복음으로 한 영혼 한 영혼 주님께 돌아오는 구원의 은혜가 더욱 풍성하게 나타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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