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교육

산상수훈 (28) 마태복음 7장 13-29절 인생의 두 길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08-01 16:23
Views
765


1. 팬인가 제자인가?

코로나로 인해서 1년이 연기된 2020년 토코올림픽이 한참 진행중입니다. 대한민국 남자 축구는 8강전에서 멕시코에서 6-3 참패를 당했는데, 여자 배구는 김연경 선수가 최고의 활약을 하여 일본을 멋진 역전승으로 이겼습니다. 한국은 아무래도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 강한 나라 같습니다. 한국 여자 양궁 단체전은 무려 9회 연속 37년동안 동안 계속 우승을 했습니다. 최고 수훈 선수는 2001년생 올해 20살의 어린 안산(An San)이라는 선수입니다. 편안할 안, 산 산 이름처럼 보는 사람도 극도로 긴장하게 만드는 양궁에서 너무나 침착하게 활을 쏴서 여자 개인전은 올림픽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땄, 여자 단체전, 혼성 단체전 모두 금메달을 따서 올림픽 양궁 역사상 최초의 3관왕이 되었습니다. 경기도의 안산이라는 도시와 이름이 같아서 “안산은 안산에 안산데"라는 농담도 있습니다. 어린 안산 선수의 침착한 모습과 실력을 보고 팬이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절 산상수훈의 말씀을 시작하시면서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산상수훈의 말씀을 마치시고 마태복음 8장 1절을 보면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 수 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수 많은 무리에서 시작해서 수 많은 무리로 끝나는 말씀이 무리 사이에 있는 산상수훈의 말씀입니다. 수 많은 무리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따르는 팬처럼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의 가르침은 무리 같은 팬들을 위한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제자들을 위한 가르침입니다. 누가 이 놀라운 가르침을 따를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 마태복음 7장 13-29절은 산상수훈의 전체 결론의 말씀입니다. 2021년을 시작하는 송구영신 예배부터 매 주일 살펴본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이어진 산상수훈의 마지막 가르침의 말씀입니다. 산상수훈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더 나은 의를 요구하시는 새로운 언약의 말씀이며, 하나님 나라에 속한 제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 나라 윤리의 가르침입니다. 산상수훈의 마지막 말씀은 산상수훈 전체의 결론의 말씀으로 이제까지 산상수훈의 가르치심을 들은 사람들의 결단과 반응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의 결단과 반응은 오직 두 가지 길 외에는 없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헌신하는 하나님 나라 제자의 삶을 살든가? 아니면 이 말씀을 거부하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세상 사람으로 살든가 오직 둘 중의 하나입니다. 중간의 회색지대는 없습니다.

인생의 두 갈래 길이라는 1857년 오스카 구스타브 레일란더의 대표적인 사진 작품이 있습니다. 두 젊은이가 인생의 두 갈래 길을 놓고 서성입니다. 미래의 가치를 위해서 절제하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지금 눈 앞에 놓여있는 인생의 쾌락을 따를 것인가? 그 순간의 선택은 젊은이의 인생의 결과를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두 가지의 인생 길 가운데 어느 길로 걸아갈 것인가의 반응을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3가지의 경고로 말씀하십니다. 첫번째 경고는 좁은 문, 좁은 길과 넓은 문, 넓은 문이고, 두번째 경고는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이며, 마지막 경고는 지혜로운 건축자와 어리석은 건축자입니다.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팬이 아니라 진정한 제자입니까? 넓은 문, 넓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좁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나쁜 열매를 맺는 거짓 선지자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참된 선지자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집을 모래위에 지은 어리석은 건축자가 아닌 지혜로운 건축가가 되어 그 집을 반석위에 짓는 사람들입니다. 산상수훈의 결론의 세 가지 경고의 말씀을 하나씩 하나씩 자세히 살펴봅니다.

2. 좁은 문 좁은 길로 들어가라

첫번째 경고는 좁은 문, 좁은 길과 넓은 문, 넓은 길의 경고의 말씀입니다. 13-14절 말씀입니다.“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고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십니다. 누가복음 13장 23절과 24절의 말씀은 유사한 말씀인데 구원 얻는 자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제자의 길은 그냥 가르침을 듣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따르는 제자의 길은 좁은 문이며, 좁은 길입니다. 좁은 문이며, 좁은 길이기에 찾는 이가 적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좁은 문과 이 좁은 길만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며,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가르침은 지키기에 결코 쉽지 않습니다. 찾는 이가 적습니다. 그 가르침을 들은 사람은 많아도 그 가르침을 지키려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팔복의 여덟번째 복인 마태복음 5장 10-12절 말씀 다시 기억합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를 받았느니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삶에는 고난이 있고 고통도 있고 심지어 박해도 찾아올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오해받고 악한 말도 들어야 할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 14:22).

그러나, 이 좁은 문과 좁은 길만이 확실한 구원의 길이며, 영생의 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좁은 문으로 확실히 들어오셨습니까? 이 좁은 길 위에 정말 서 계십니까? 우리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입니다. 좁은 문과 좁은 길에 들어선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계속 요구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오늘 예수님의 좁은 문, 좁은 길의 말씀은 2000년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고전 중의 하나인 존 번연의 천로역정의 한 장면을 생각나게 합니다. 크리스천이 좁은 문에 도착하여 좁은 문을 들어가는 감동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좁은 문에 도착한 크리스천은 그 좁은 문 위에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라” 는 글귀를 발견하고 두 서너 차례 문을 두드리며 외쳤습니다. “제가 지금 여기로 들어가도 될까요? 비록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쓸모없는 존재이지만, 문 안에 계신 분이 저를 긍휼히 여겨 받아주실 수 있을는지요? 만일 당신께서 저를 긍휼히 여겨주신다면 저는 저 높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께 끊임없이 영원한 찬양을 드리겠나이다” 크리스천은 간절함으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여기 헐벗고 무거운 짐을 진 죄인이 왔습니다. 나는 다가올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 멸망의 도시에서 떠나 영생의 구원을 얻으려고 시온산을 향해 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선생님, 그곳으로 가려면 이 문을 지나가야 한다고 들었는데 제가 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당신께서 허락해 주실는지 알고 싶습니다.”

선의 (Good Will)는 크리스천에게 이렇게 말하며 좁은 문으로 들어오도록 허락합니다. “당신이 여기에 오기 전에 어떤 일을 했건 우리는 결코 상관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요 6:37). 그러나 선한 크리스챤씨, 잠깐 나와 함게 이 쪽으로 가십시다. 내가 당신이 가야 할 길을 가르쳐 드리리다. 저 앞을 보십시오. 저 쪽으로 뻗어있는 좁은 길이 보입니까? 그 길이 이제부터 당신이 가야 할 길입니다. 당신의 조상들과 많은 예언자들, 그리스도와 또 제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길인데, 마치 자로 그어 놓은 것처럼 똑바로 닦여진 길이며 당신이 이제부터 가야 할 길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의 길은 좁은 문을 통과한 좁은 길이며, 그 길의 마지막은 생명, 영생입니다.

3.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

두번째 경고는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의 경고입니다. 15-20절 말씀입니다.“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이 부르시지 않은 자칭 선지자인데, 이들은 결코 좁은 문과 좁은 길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넓은 문과 넓은 길을 제시합니다. 그들이 외치는 복음은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렘 6:14). 그들이 인도하는 삶의 결과는 영생이 아니라 멸망입니다. 그들은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의 경고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분별하라 말씀하십니다.

거짓 선지자와 참된 선지자를 분별하는 기준은 그들의 가르치는 말이 아니라 그들이 삶에서 맺는 열매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나쁜 열매를 맺는 나쁜 나무이며, 참된 선지자는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입니다. 좋은 나무에서는 좋은 열매가 맺힙니다. 마찬가지로 나쁜 나무에서는 나쁜 열매가 맺힙니다. 마태복음 5-7장의 산상수훈의 예수님의 가르침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교회의 선생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외적으로만 따르지 아니하고 마음 중심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가 자세히 살펴보고 분별해야 합니다.

좋은 열매와 나쁜 열매의 기준이 있습니다. “주여, 주여”라고 부르는 입술의 신앙고백만으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정말 주님이라면,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행해야 합니다. 신앙고백 뿐 아니라 선지자 노릇하는 가르침,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 권능을 행하는 기적도 불완전한 기준입니다. 아무리 탁월하게 잘 가르쳐도, 아무리 귀신을 내어좇아도, 아무리 기적을 행해도 좋은 열매가 아닙니다.

좋은 나무의 좋은 열매는 신앙고백과 일치하는 신앙 믿음이 삶에서 나타나는 삶의 열매입니다. 산상수훈을 시작하면서 팔복의 말씀은 외적으로 나타나는 열매가 아닌 모두 내적인 마음의 열매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 애통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사람, 긍휼히 여기는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 화평하게 하는 사람, 의롤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의 마음의 열매는 마음의 열매가 없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외적으로만 나타나는 열매와는 구분이 됩니다.

마음의 열매는 반드시 우리의 삶으로 나타나서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으로,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세상의 빛으로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을 보고, 저 산위에 있는 동네처럼 숨겨지지 못하는 믿음의 탁월함을 발견합니다. 그 탁월한 삶의 모습이 사람들 앞에 비추어지면 그 매력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의 착한 행실을 통해서 하늘 우리 아버지는 영광을 받으십니다.

좋은 열매는 우리 서로 사랑하자라는 말만이 아니라 마음의 사랑이 구체적인 섬김의 행동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예를 들었습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약 2:15-16).

지금은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와 나쁜 열매를 맺는 나쁜 열매를 온전히 구분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지금은 마치 가라지가 알곡과 비슷한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23절의 그 때가 다가옵니다. 그때에 우리 예수님은 분명하게 선언하십니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4. 듣고 행하여 지혜로운 건축가가 되라

세번째 경고는 어리석은 건축가와 지혜로운 건축가입니다. 지혜로운 건축가와 어리석은 건축가의 차이점은 듣는 데 있지 않고 행하는 데 있습니다. 24-28절 말씀입니다. 우리 같이 읽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듣기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설교하는 설교만 듣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산상수훈의 가르침 그대로 행하는 것이 지혜와 어리석음의 차이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행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마치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헤로운 사람입니다. 반석위에 세워진 집은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듣고도 행하지 않습니다. 집을 모래위에 세우는 어리석은 건축가입니다.

산상수훈의 결론의 말씀은 우리의 믿음을 우리의 행함와 더불어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시작은 찾는 이가 적은 좁은 문에 들어가 좁은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의 성장은 좋은 나무에서 맺히는 아름다운 열매로 나타납니까? 우리의 믿음의 결과는 지혜로운 건축가가 세운 무너지지 않은 반석 위에 세운 집입니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시작은 잘 하지만 과정이 없고, 과정도 없으니 결과도 좋지 못합니다. 2021년 참 어려운 한 해를 보내고 있지만, 마지막 까지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시작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이 자리에서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들은 우리 모두를 산상수훈의 좁은 길, 좁은 문으로 초대해 주셨습니다. 이제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우리 평생에 이 산상수훈의 말씀을 한번 들을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평생 이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실천하고 실천하여 우리의 신앙의 삶에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팔복의 복된 상태가 늘 우리의 마음의 상태가 될 수 있도록 늘 자신을 점검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세상을 비추는 빛이며, 소금의 사명이 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의 의가 세상의 어떤 가르침과 종교보다 더 매력적이고 탁월한 의가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의의 수준을 유지합시다. 형제에게 노하지 않고, 욕하지 않고, 음욕을 품지 않고, 맹세하지 않고, 보복하지 않고, 원수까지 사랑합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구제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금식하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구제하고 기도하고 금식합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고, 염려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추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형제를 비판하지 않고 기도에 힘쓰며,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면서 살아갑니다.

5. 우리의 기도

다같이 일어나셔서 복음성가 주님 다시 오실 때같이 우리 믿음을 고백하며 찬송합니다.

이 시간 오늘 우리에게 주신 산상수훈의 결론의 말씀으로 기도하길 원합니다. 첫째는 우리의 믿음의 시작은 찾는 이가 적은 좁은 길, 좁은 문 안에 들어서 있는지 자신을 돌아봅시다. 오직 이 좁은 길과 좁은 문만이 멸망이 아니라 영생으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과 문입니다. 둘째는 우리의 믿음의 성장은 좋은 열매로 나타나 자라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면서 기도합니다. 우리 믿음의 성장에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의 열매가 나타나길 원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나타나길 원합니다. 더 풍성한 믿음의 열매가 나타나도록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믿음의 결과는 그 어떠한 시련과 어려움에도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집이 되어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우리의 믿음이 되도록 기도합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우쳐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우리에게 들려주신 말씀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행함으로 나타나게 하옵소서.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하나도 없게 하옵소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과 좁은 길에 서 있기를 원합니다. 좋은 나무가 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랑과 성령의 열매를 더욱 맺기를 소원합니다.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어 삶의 어떠한 시련과 고난이 찾아와도 오직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참된 제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함께 산상수훈의 말씀을 들은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 복에 복을 더하시어 그 믿음이 행함으로 아름답게 나타나 변화된 삶의 모습으로 가정에, 직장에,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산위의 동네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나타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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