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26) 마 7:1-6, 12절 황금율부터 시작하기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07-1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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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교회와 개신교 신뢰도 조사
한 주간 이사를 잘 마쳤습니다. 아파트에서 창고에서 그 많은 이사짐을 나르는데 Matthew Trujillo 아저씨와 큰 아들 Julian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이사했습니다. 저희 집의 그 많은 짐들을 본인 짐 처럼 소중하게 날라주셨습니다. 뉴멕시코에서만 3번 크고 작은 이사를 했는데 모두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 곳에서 이런 소중한 분을 만난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하나님의 큰 은혜로 생각이 들었는지 저도 Matthew 아저씨 처럼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1년 1월 29일 코로나 19 바이러스 시대에 한국 교회와 개신교는 얼마나 믿을 수 있습니까? 신뢰도 조사를 했습니다. 코로나 19가 발생한지 1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개신교 여론조사기관인 목회데이터 연구소의 조사 결과 매우 혹은 약간 신뢰한다가 21%, 별로 혹은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가 76%였습니다. 2020년 1월 1년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실시한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조사에서는 한국 기독교와 교회에 대한 매우 혹은 약간의 신뢰 응답 비율이 32%였던 것과 비교해 크게 하락했습니다. 특히 비기독교인 대상으로 한국 개신교의 신뢰도 조사는 겨우 9%였습니다. 91%의 비기독교인은 한국 개신교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조금 오래된 기록이지만 같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습니까? 질문하니 40% 이상은 같은 교인도 신뢰할 수없다는 조사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거짓말을 자주하고, 성품의 변화가 없고, 사람답게 존경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입니다. 범죄학을 연구하는 김용진 박사님은 한국의 감옥에 들어가있는 종교인을 살펴보니, 감옥 밖으 그리스도인이나 감옥 안의 그리스도인이나 동일하게 20%였습니다. 감옥 밖의 그리스도인이나 감옥 안의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차이가 없다면 우리가 믿는 믿음과 믿음의 행동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 백성이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지 못한 세상 사람들이나 살아가는 삶의 가치와 행동이 조금도 차이가 없다면 도대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하나님 나라 윤리를 말씀하시는 우리 예수님의 가르침은 정녕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까? 산상수훈의 우리 예수님의 말씀 하나 하나,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비추는 산 위의 동네같은 삶이 어떠한 삶인지,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과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세상의 빛 같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이 어떠한지, 어두운 방안을 밝히는 등경 위의 등불 같은 믿음의 삶이 어떠한 삶인지 자세하게, 그 원리를 계속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나눈 마태복음 6장의 결론은 그리스도인은 티테디우스: 결코 염려없는 삶을 살아가면서 3가지 F: Father, Faith, First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신뢰하며,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소명으로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삶이 염려없이 먼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삶입니까? 오늘 함께 읽은 산상수훈 마태복음 7장 1-6절, 12절을 보면 4가지 삶의 구체적인 행동지침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 백성인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2. 첫째, 가장 기본적인 삶의 원리는 12절의 황금율입니다.
12절 말씀 마음에 새기면서 함께 읽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지니라”누가복음 6장 31절 병행본문의 황금율 말씀입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 황금율의 가르침을 곰곰히 생각해 보십시오. 황금율은 우리가 추구하는 기독교 신앙의 삶의 가장 높은 최고지점일까요? 아니면 최소한의 삶의 지침일까요? 황금율과 관련해서 여러분의 삶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필 주크만의 <종교없는 세상>이라는 인상적인 책을 읽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없이도 도덕적으로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 없이도 좋은 사회를 만들고, 하나님 없이도 자녀 교육 잘 할 수 있고, 공동체도 만들수 있고, 인생의 고난과 고통도 선한 연대를 통해서 잘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죽음의 문제도 하나 밖에 없는 생명도 두려울 것이 전혀 없다고 주장합니다. 철저한 무신론자이지만, 오히려 이 땅에 있는 그리스도인보다 더 잘 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책을 읽어보니 어느 지점에서는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주크만은 덴마크,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하나님이 없는 사회인데 불구하고 범죄율이나 부패지수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나라, 나아가 세상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들임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을 예를 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회인데 사회지표를 보면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들입니다. 정치가와 공무원의 청렴도는 덴마크는 2위, 스웨덴은 3위입니다. 환경보호를 위해서 가장 힘쓰는 나라가 스웨덴이고, 덴마크는 3위입니다.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삶의 질에서 스웨덴은 5위, 덴마크는 9위입니다.
덴마크, 스웨덴보다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미국은 심각한 양극화와 범죄율이 정말 높은 불평등한 나라, 불공평한 나라입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미국은 스웨덴, 덴마크보다 복지는 훨씬 뒤떨어져있습니다. 4500만명의 인구가 의료보험이 없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지역이 바이블벨트에 위치한 중남부 주들인데, 교육 수준이나 범죄율이 하나님을 가장 덜 믿는 서부와 동북부 주들보다 훨씬 더 낙후되어 있습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우리의 믿음이 정말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됩니까? 문제를 제기합니다.
주크만의 도전은 예수님이 지금 말씀하고 있는 산상수훈의 황금율도 사실 예수님 이전에 기원전 6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 황금율과 유사한 가르침이 있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행하지 말라”기원전 500년전의 중국의 공자는 논어에서 말하기를 “네가 바라지 않는 것은 남에게 하지 말라” “친구에게 요구할 것이 있으면 먼저 친구를 대할 때 그 요구를 적용해 보라”비슷한 시기의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는“타인들에게서 발견한 허물을 스스로 행하지 않을 때 가장 착하고 바르게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주크만의 주장이 아니어도 우리 주변의 이웃을 보면 우리 보다 훨씬 더 바르게, 법 없이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분들 보다 하나님 나라 백성인 우리가 더 나은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황금율은 우리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최고 수준의 삶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며, 시작점입니다. 우리는 황금율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여기서 남은 우리 주변의 모든 이웃입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지니라.
예수님은 마태복음 22장 39-40절 황금율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남을 대접하는 것이 율법과 선지자의 말씀이요,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는 것이 율법과 선지자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의 가르침이 황금율으로 불리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로마의 24대 황제 알렉산더 세베루스 (Alexander Severus) 는 14세에 로마의 황제가 되어 어머니를 통해서 배운 이 소중한 가르침을 금으로 써서 궁궐의 거실과 집무실 벽에 붙여놓고, 그 말씀의 가르침을 금처럼 여겨면서 마음에 새겼습니다. 황제로 판단을 내릴 때 그 말씀을 금처럼 기억하며, 재판을 할 때도 그 말씀을 금처럼 여겼습니다. 이 말씀이 소중한 금같은 긍정적인 행동의 황금율이라면, 금보다 못한 은같은 가르침은 부정적인 가르침입니다.“네가 하기 싫은 것, 남에게 시키지 말라”고대 이집트의 가르침, 공자의 가르침, 탈레스의 가르침은 황금율이 아닌 은율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황금율에서 시작합니다. 우리의 모든 관계에서 사람을 대할 때 황금율을 금처럼 여기며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3. 둘째는, 모든 사람을 대하는 문제보다 조금 더 좁은 범위인 우리의 하나님 나라 백성인 믿음의 형제와 자매를 대하는 방법입니다.
7장 1-2절 말씀입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7장 1-2절의 비판하지 말라. 헤아리지 말라는 말씀은 믿음의 공동체의 형제와 자매를 대하는 방법입니다. 여기서 비판은 분별력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가혹한 방법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검사의 눈으로 사람을 기소하기 위해서 없는 죄도 만들어 내서라도 죄인으로 만들려는 가혹한 판단이 비판과 헤아림입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메세지 성경을 보면 이렇게 해석합니다. “사람들의 흠을 들추어내거나, 실패를 꼬집거나, 잘못을 비난하지 마라 너희도 똑같은 대우를 받고 싶지 않거든 말이다. 비판하는 마음은 부메랑이 되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믿음의 공동체에서 어떤 형제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쉽게 비판하고 헤아립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비판과 헤아림을 어떻게 여기겠습니까?
로마서 14장 1-4절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음의 공동체에서 사도 바울은 적용하며 말씀하고 있습니다.“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10절 말씀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믿음이 연약한 자도 하나님이 받으신 소중한 형제입니다. 믿음이 강한 자도 하나님이 받으신 소중한 형제 자매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형제 자매는 하나님이 받으신 우리의 종이 아닌 하나님이 주인이며 하나님의 하인입니다.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하나님은 묻고 계십니다.
비판하고 헤아일 수 있는 권리 우리에게 있지 않고 오직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공동체의 형제 자매를 비판하고 헤아린다면 우리는 하나님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심판주이신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비판하고 헤아리는 바로 그대로 우리를 판단하십니다. 그러니 얼마나 우리의 쉬운 비판과 헤아림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을 향한다면 얼마나 두려운 비판과 헤아림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서로 비난하고 서로 헤아리는 냉혹한 믿음의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의 허물은 덮어주고 서로의 약점은 인내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너그러움으로 관대함으로 대하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4. 셋째, 믿음의 형제와 자매를 향하여 관대하게 대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 자신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 요셉은 목수였고, 목수의 아들이셨던 우리 예수님도 목수로 일하시면서 목수가 사용할 수 있는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7장 3-5절 말씀입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Speck of saw dust)는 보지 못하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Plank)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목수는 티와 들보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티는 아주 작은 나무 조각이고, 들보는 건축물의 기둥같은 커다란 나무 기둥입니다. 믿음의 공동체의 형제의 눈 속에 아주 작은 티가 있는데, 문제는 내 눈에는 사실 그것보다 훨씬 더 커다란 들보가 있는데 들보에 가려져서 내 눈이 온전하지 못하면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아주 작은 티를 꺼내려 합니다.
예수님은 이것이 외식하는 것이라고 외식하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우리 형제와 자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눈 속에 있는 커다란 문제인 내 눈의 들보가 문제입니다.
커다란 들보같은 죄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 눈에는 더 커다란 들보같은 죄가 숨겨져 있는데, 믿음의 공동체의 형제 자매의 아주 작은 티 같은 죄만 보입니다. 그러니 비판하고 헤아려서 가혹하게 심판하고 정죄합니다. 이것이 외식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우리 눈 속의 들보를 빼내고, 그 후에야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라고 하십니다. 먼저 철저하게 자신부터 점검하고 또 점검한 후에야 형제의 티 같은 연약함을 교정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절 말씀의 가르침도 동일합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너 자신을 살펴 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형제 자매의 티 같은 실수와 연약함과 죄악을 교정할 때 온유한 심령으로 너그러운 마음으로 관대함으로 바로 잡되, 우리도 언제든지 실수하고 연약함으로 넘어질 수 있음을 기억합니다.
5. 마지막으로 남을 대하는 황금율과 믿음의 공동체의 형제 자매를 대하는 관대함과 자신을 대하는 방법을 넘어서 마지막 어려운 관계의 사람이 있습니다.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에서 나오는 사람들입니다. 6절 말씀입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개는 누구이며, 돼지는 누구입니까? 거룩한 것은 무엇이며, 너희 진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들에게 맡겨주신 사명으로 주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을 믿는 성도의 삶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신실하게 전파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관계에서 황금율로 대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 진주같이 소중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거부하며, 악의적으로 반대하는 개와 돼지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개는 유대인들에게는 이방인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유대인들이 유대인들에게 사용하기도 하며, 악한 사람들, 배교자들도 가리킵니다. 돼지도 개와 같은 의미의 사람들입니다. 잠언 23장 9절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네 지혜로운 말을 업신여길 것임이니라”
사랑하는 제자들을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세상으로 파송하시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개와 돼지 같은 사람들도 만날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하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변화될 것을 기대하지 않으십니다. 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복음을 방해하고, 악의적으로 비방하고, 반대하고, 복음 전하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악한 사람들 어떻게 해야합니까?
마태복음 10장 14-16절 말씀입니다.“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개와 돼지와 이리 모두 같은 사람들입니다. 황금율로 대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모욕입니다. 최대한 관대하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려고 하지만 방해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일반적이지 않고 특별한 예외적인 사람들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이런 사람들을 만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우리는 더이상 상대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저의 부족한 목회 기간에 저에게 황금율로 대해주신 수 많은 좋은 분들의 얼굴이 한 분 한 분 생각이 났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사역에 비판과 헤아림이 아니라 부족함을 채워주신 너그럽고 관대하게 대해주신 분들의 과분한 사랑의 섬김도 기억이 났습니다. 우리 믿음의 공동체에서는 무엇이 사람을 변화시킵니까? 비판의 말이 아닙니다. 사랑의 행동이며, 사랑의 섬김입니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기어코 빼내려는 위선이 아니라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가려주고 감싸 안아 주려는 너그러운 사랑입니다.
얼마 전에 어느 성도님으로부터 제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선물을 받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22년 사역을 하면서 섬기는 성도님에게는 처음 받아본 선물이었습니다. 생일이 되면 아이들이 생일 선물로 무엇을 갖고 싶냐고 물어볼 때 거의 항상 1순위 선물이었습니다. 그 성도님 눈에 저의 부족한 모습이 보였나 봅니다. 조용히 저에게 면도기 선물을 주셨습니다. 요즘 날마다 그 좋은 면도기를 사용하면서 좋은 목사가 되어야지, 우리 성도님들 진심으로 사랑하는 목사가 되어야지 날마다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판이 아니라 너그러운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날카로운 비판과 헤아림의 말은 깊은 상처가 되지만, 황금율로 시작해서 황금율을 넘어서 너그러운 사랑이 사랑을 변화시킵니다.
6. 우리의 기도
이 시간 조용히 우리를 돌아보면서 기도하길 원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이 땅에서 하늘 하나님 우리 아버지가 기대하시는 우리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우리는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는 황금율의 삶을 살아갑니다. 황금율에서 조금 더 나아가서 믿음의 공동체의 형제 자매 비판하지 않고 헤아리지 않고 전심으로 사랑하게 하옵소서. 형제의 눈 속에 티가 보인다면 먼저 우리 눈 속의 커다란 들보를 빼내게 하시며 너그럽고 인자하고 관대하고 따뜻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과 은혜가 넘쳐 흘러가게 하옵소서.
살아계신 하늘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 시간 하늘 아버지 앞에 나아와 예배하며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말씀의 가르침을 받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들보를 보지 못하고 형제의 티를 발견하고 비판하고 헤아린 우리의 외식을 이 시간 인정하며 회개합니다. 우리의 사랑 없음으로 우리의 너그럽지 못함으로 수 많은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실족시켰다면 오 하나님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시며,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아껴주시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기꺼이 십자가 보혈을 흘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크신 사랑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지금 보다 더 너그러운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지금 보다 더 관대한 우리 예수님 닮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 믿음의 공동체는 서로 사랑만 가득하며, 서로 연약한 모습을 서로 짊어지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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