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25) 마 6:25-34절 염려하지 말라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07-0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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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염려의 여신 쿠라의 소유인 사람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재미있는 관점으로 설명을 했습니다. 로마 신화 가운데 특이한 여신이 있습니다. 염려의 신 쿠라입니다. 염려의 신 쿠라가 강을 건너다가 멋진 흙 덩어리를 발견하고 자신을 닮은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주피터라는 신이 다가오자 쿠라는 자신이 만든 형상에 혼을 넣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주피터는 그 형상에 혼을 넣었는데 그렇게 만든 것이 바로 사람입니다. 사람이 너무나 멋지게 만들어졌기에 염려의 신 쿠라는 사람을 염려의 신의 이름을 지으려고 했고, 주피터는 자신이 사람에게 혼을 불어 넣어서 자신의 이름을 붙이려고 합니다. 그때 땅의 신 텔루스가 다가오더니 사람은 땅에서 흙으로 만들어졌기에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을 붙이려고 합니다. 세 신 사이에 싸움이 생겼습니다.
시간의 신 사투르누스에게 어떻게 해야하는지 질문합니다. 사투르누스는 주피터는 혼을 만들었으니 사람이 죽으면 혼을 가지고 가고, 텔루스는 사람에게 흙으로 육체를 만들었으니 육체를 가지고 가고, 쿠라는 처음 사람을 만들었으니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쿠라의 것이다라는 판결을 내렸고, 사람의 이름 때문에 싸움이 생기니 사람의 이름을 흙으로 만들었으니 호모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염려의 신 쿠라의 것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일평생 염려의 신 쿠라의 것이되어 염려하며 살아간다고 설명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염려의 신 쿠라의 것입니까? 그래서 일평생 염려하고 근심하고 걱정하며 살아가는 것입니까? 남녀노소 염려가 끊이지 않습니다. 10대는 인생의 진로문제로 염려하고, 20대는 등록금과 취업으로 염려하고, 30대는 주택문제로 염려하고, 40대는 자녀교육비로 염려하고, 50대는 자녀 결혼으로 염려하고, 60대는 노후 걱정으로 염려합니다.
2. 하나님 없는 이방인의 삶의 특징인 염려
지난 시간에 산상수훈의 주기도문의 기도를 마치고, 예수님은 성경에서 가장 많이 말씀하신 돈과 재물에 관한 3가지 대조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늘에 쌓아든 보물인가? 땅에만 쌓아 둔 보물인가? 성한 눈인가? 나뿐 눈인가?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인가? 돈이 인생의 주인인가?
하늘이 아니라 땅에만 보물을 쌓아두는 사람은 성한 눈이 아니라 나쁜 눈으로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돈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입니다. 세 가지 대조의 특징을 보이는 사람은 하나님과 전혀 상관이 없는 하나님없이 살아가는 이방인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이방인의 삶의 특징은 염려의 여신 쿠라의 소유인 염려입니다. 마태복음 6장 31-32절 예수님은 이방인의 삶의 특징이 염려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오늘의 짧은 본문을 보면 염려라는 단어가 무려 6번이나 반복해서 나옵니다. 사람은 하루 종일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어느 어머니에게 사랑하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늘 두 아들을 위해서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큰 아들의 일은 냉수를 팔고, 작은 아들의 일은 우산을 팝니다. 날이 좋으면 어머니는 작은 아들의 우산 파는 일을 염려하고, 날이 안 좋으면 어머니는 큰 아들의 냉수파는 일을 염려합니다. 그러니 하루도 쉬지않고 계속 염려합니다. 아니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날이 좋으면 큰 아들의 냉수 파는 일로 염려하지 않고 기뻐하고, 날이 좋지 않아서 비가 내리면 작은 아들의 우산 파는 일로 염려하지 않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매일 매일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3. 염려하지 말라 그 세 가지 이유
문제는 염려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제자들의 삶도 이방인처럼 돈 염려하며 염려의 신의 소유된 것처럼 염려하며 살아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오늘 강력하게 염려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25절 말씀 우리 같이 읽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왜 염려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까? 오늘 본문의 시작은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지난 주일의 말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면, 우리의 성한 눈으로 살아가면,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며 살아가면 정말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가? 그렇게 살아가면 우리의 땅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먹는 문제, 마시는 문제, 입는 문제가 해결되는가? 질문에 대한 해답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은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해서 염려는 생각과 걱정 만이 아닙니다. 열심히 일하고,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자신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서 무엇인가 열심히 노력하고 애를 쓰면서 염려에 빠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첫번째, 염려는 우리에게 아무런 이익이 되지 못하고 해롭기에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27절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겠느냐?” 염려해서 키가 한 자만 더 클수있다면 저는 염려를 많이 하고 싶습니다. 27절의 영어번역본을 살펴보면 대부분 키가 아니라 생명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생명을 한 시간이나 더할 수 있느냐?” 염려는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키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입니다. 염려는 우리의 생명을 단축시킵니다.
현대의학에서 스트레스는 모든 병의 근원입니다. 고혈압, 당뇨, 비만의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원인이 염려의 스트레스입니다. 스트레스가 생기면 우리 몸은 스트레스를 이기기 위한 방어수단으로 우리 몸의 부신피질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이라는 부신피질호르몬을 배출합니다.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시거나, 수면이 부족하거나,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거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면 코티졸 호르몬이 늘어납니다. 코티졸 호르몬이 늘어나면, 혈당조절을 방해해서 당뇨가 생깁니다. 위산분비를 촉진해서 위에 궤양이 생깁니다. 몸 속에 수분과 염분을 축적해서 몸이 붓습니다. 골격 생성이 느리게 되어 골다공증 위험이 생기고, 고혈압을 발생하게 합니다. 그러니 염려는 우리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심각하게 단축시킵니다.
두번째, 염려는 우리의 행복을 빼앗고 우리의 괴로움을 더해갑니다.
34절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두 도둑이 있습니다. 과거의 후회와 내일의 염려가 우리 인생에 찾오는 도둑들입니다. 우리 인생에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도둑이 찾아와서 도둑처럼 염려로 우리의 행복과 기쁨을 빼앗아갑니다. 염려하고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 우리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심리학자 어넷 제네스키의 리서치는 우리의 염려를 분석했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염려하는가? 40% 전혀 발생하지 않을 미래의 것을 염려합니다. 30% 이미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고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과거의 상처를 붙들고 염려합니다. 22% 전혀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너무 사소한 것을 염려합니다. 나머지 4% 우리가 염려해도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이니 염려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사람음 염려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 10절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찾아오는 도둑은 우리가 과거에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만들고, 미래에 다가오지 않은 것은 현재에 염려하게 만들어 버려서 결국에는 아무 것도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니 얼마나 비극적 인생을 살아갑니까? 잠언 27장 22절 “마음의 즐거움은 양악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우리의 도둑 사탄은 우리에게 뼈를 마르게 하는 마음의 염려를 심어 놓아 양약같은 마음의 즐거움을 빼앗아 버립니다.
도둑이 찾아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담대하게 소리를 질러야 합니다. 도둑이야!!! 우리 올해 함께 본 영화 워룸을 보면 신시아는 사탄을 향해서 담대하게 선포합니다.“마귀, 네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내 말 들을 수 있단 걸 알아 넌 내 마음을 갖고 놀았고 오랫동안 네 마음대로 했지. 더는 안 돼. 이제 넌 끝장이야. 예수님께서 이 집의 주인이야. 너는 여기서 더는 머물 수 없다는 뜻이야. 거짓말과 계략과 비난을 모두 가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당장 나가. 넌 내 결혼을 가질 수 없어. 넌 내 딸을 가질 수 없어. 분명히 내 남자도 가질 수 없어. 이 집은 새로운 주인이 다스린다. 너는 나가야 한다는 뜻이야. 또 하나, 내 기쁨을 훔쳐가는 네가 진절머리나 그것도 변할 거야. 내 기쁨은 친구에게서 오지 않아. 내 일에서 오지도 않고 내 남편에게서 오지도 않아. 내 기쁨은 예수님에게서 나와. 잊었을까 봐 다시 말하지만 예수님은 이미 널 물리치셨어. 그러니 네가 속하는 지옥으로 돌아가고 내 가족은 내버려둬.”
우리의 행복과 기쁨을 빼앗아버리고 괴로움을 더해가는 도둑의 도둑질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후회도 내일의 염려도 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후회는 과거가 하도록 내 버려두고, 내일의 염려는 우리가 아니라 내일이 하도록 내 버려둡니다.
세번째,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염려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죄악입니다.
누가복음 21장 34-36절 같이 읽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우리 예수님 보시기에 생활의 염려는 방탕함과 술취함과 같은 심각한 죄악의 위치에 놓여있습니다. 방탕함과 술취함은 함께 가는 죄악입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우리 하나님 보시기에 술 좋아하는 선한 사람은 없습니다. 방탕함은 인생의 목적을 상실하고 되는대로 살아가는 허비하는 삶입니다. 방탕함과 술취함과 동일한 죄악이 생활의 염려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깨어있지 못하게 하고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성령 충만함을 방해합니다.
미시간에서 한번은 커다란 규모의 식당을 방문해서 개업 예배를 드렸습니다. 디트로이트의 중심도로 Telegraph 선상에 위치한 한국식당으로 유명했던 뉴서울가든을 완전히 리모델링하여, 한식당은 진지(Jinji)로, 고기집은 대박(Daebak)으로, 팥빙수와 뺭을 파는 곳은 묘미(Myomee)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사업체를 운영하시는 집사님이 걱정이 태산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능력있는 사업가이며, 충분히 경쟁력도 있고, 이름처럼 진지와 묘미로 대박날 사업체로 보였습니다. 말씀을 인도하면서 오늘 본문 말씀을 전했습니다. 집사님 염려할 능력과 염려할 시간 대신에 염려할 수 있는 만큼 기도하십시오. 집사님이 하시는 염려는 인생과 사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해롭지만, 기도하시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빌립보서 4장 6-7절 말씀을 암송하게 했습니다.“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4. 염려 대신에 주시는 세 가지 해결책
사랑하는 여러분, 염려 대신에 기도와 간구로 나아가면 우리 하나님 얼마나 기뻐하시며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굳건하게 지켜주시겠습니까? 염려 대신에 기도와 간구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세 가지 해결책이 있습니다. 기억하기 쉽게 3가지 F입니다. Father, Faith, First 입니다.
첫째 F는 Father 우리 하늘 아버지입니다. 26절 말씀입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우리에게는 하늘 우리 아버지가 계십니다. 예수님은 염려로 가득찬 제자들에게 공중의 새를 보라고 하십니다. 공중의 새는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는데 염려 없이 잘 살아갑니다. 그 이유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길러주십니다. 그런데 너희는 공중의 새도 훨씬 더 귀하지 아니하냐?
우리 하늘 아버지에게는 공중의 새도 훨씬 더 귀하고 소중한 하나님의 자녀가 있습니다. 공중의 새도 먹이시고 길러주시는 하늘 아버지시라면 공중나는 새 보다 훨씬 더 귀한 우리를 먹여주시고 길러주시지 않겠습니까? 염려가 갑자기 찾아올 때 우리는 밖으로 나가서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를 가만히 바라봅니다. 저 날아다니는 새 어떻게 먹고 살아간다구요? 하늘 아버지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먹여주시고 길러주신다면 우리는 어떠하겠습니까? 벧전 5장 7절 말씀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두번째 F 는 Faith 믿음입니다. 28-30절 말씀입니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이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공중의 나는 새도 먹이시는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는 들에 핀 백합화도 입혀주십니다. 들의 백합화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지만 하늘 아버지께서 입혀주신다면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우리가 염려하는 이유 하늘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너무나 작기 때문에 생기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어제 새벽기도회 말씀을 전하면서 믿음의 세 가지 본질적인 요소인 지식, 확신, 신뢰의 말씀을 나눴습니다. 믿음에는 지식이 필요하고, 확신이 필요하고, 마지막으로 우리 삶을 전적으로 의탁하는 신뢰가 필요합니다. 공중나는 새도 먹여주시는 하늘 아버지를 믿음으로 신뢰한다면 염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번째 F는 First 먼저 구해야 하는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의의 소명입니다. 33절 같이 읽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의식주 염려 대신에 하늘 아버지를 신뢰하는 우리가 이 땅에서 제일 우선적인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 나라가 임하시오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기도하는 믿음의 사람의 최우선순위의 소명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 없는 이방인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를 신뢰하며,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제일 소명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염려하지 않아도 First 최우선순위의 소명이 분명한 삶을 살아가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5. 결코 염려하지 않는 사람 - 티테디오스 (Titedios)
말씀을 준비하면서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이름앞에 별명처럼 붙인 인상적인 말이 있었습니다. 티테디오스 (Titedios)입니다. 바울의 이름 앞에는 티테디오스 바울, 베드로는 티테디오스 베드로입니다. 티테디오스는 ‘결코 염려하지 않는 사람’ 염려에서 해방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이름 앞에 티테디오스를 붙인 이유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믿음의 사람은 그 어떠한 환경에서도 염려하지 않고 근심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임을 증거하는 삶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저의 이름은 티테디오스 민순입니다. 우리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염려는 아무런 이익이 되지 못하고 해롭습니다. 우리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염려는 우리의 행복과 기쁨을 빼앗고 우리의 괴로움을 더해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염려는 우리 하늘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염려 대신에 우리는 기도합니다. 염려 제목을 기도 제목으로 바꾸어 티테디오스 염려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공중나는 새도 먹여주시는 우리 하늘 아버지가 계시기에, 들에 핀 백합화도 입혀주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기에, 우리는 먼저 구해야 하는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소명이 있기에 염려하지 않습니다. 이 시간 염려대신에 기도하길 원합니다.
6. 우리의 기도
살아계신 하늘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 시간 하늘 아버지 앞에 나아와 예배하며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염려 대신에 기도와 간구로 아버지 앞에 나아갑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우리 염려와 근심을 내려놓고 오직 모든 것을 더하시는 하늘 아버지 하나님을 굳건하게 신뢰하며 이 땅에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아버지의 신실한 자녀, 하나님의 나라의 신실한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삶을 받아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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