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2장 14-26절 죽은 믿음과 살아있는 믿음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07-0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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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새벽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은 왼쪽 아래에 있습니다.
1. 살았으나 죽은 사데교회
우리 하나님 보시기에 살아있으나 죽은 것 처럼 믿음의 사람도 있고, 살아있으나 죽은 것 처럼 보이는 교회도 있습니다. 살아있는 믿음 같기도 하고 죽은 믿음 같기도 한 구별하기 애매한 믿음이며 교회입니다. 요한계시록 2-3장의 초대교회의 일곱교회 가운데 사데교회를 보시고 우리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라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분명한 믿음의 사람처럼 보이는 데 믿음에 합당한 행위가 없으니 우리 예수님 보시기에는 살았다하는 이름을 가졌는데 죽은 자처럼 보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지는 이신칭의의 복음을 말합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서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이신칭의: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복음을 강조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발견은 성경적 믿음의 재발견이었습니다. 루터는 이신칭의의 복음이 잘 나타나있는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의 복음을 강조하느라 이신칭의의 복음이 잘 나타나지 않은 야고보서는 지푸라기같은 복음이라고 평가절하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동생가운데 초대교회의 기둥같은 일꾼이 된 야고보가 기록한 야고보서는 살아있는 믿음과 죽은 믿음의 차이를 강조하여 우리에게도 교훈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살아있는 믿음과 죽은 믿음의 차이가 있습니다.
2. 첫번째 차이는 말 뿐인 믿음인가, 말과 함께 행함이 있는 믿음인가?
14-16절 말씀입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한 믿음의 공동체의 형제와 자매가 추운 겨울에 먹을 양식이 없을 정도로 굶주렸습니다. 이때에 형제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함입니다. 그런데 그냥 말만합니다.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평안할 수 없고, 추워서 더울 수 없고, 배 고파서 배부를 수 없는데 말만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배는 드리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는데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지도 않고, 하나님 말씀 배우는 성경공부는 참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데 하나님을 향하여 아무 것도 행하지 않고, 이웃을 향하여 아무런 행함도 없습니다. 그런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이 아니라 죽은 믿음이며, 믿음이 전혀 없는 것과 같습니다.
갈라디아서의 말씀은 이방인의 구원을 향한 복음의 말씀이기에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을 향한 믿음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4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가장 강조하시는 믿음은 하나님을 향해서 큰 믿음을 가졌다고 하는 사람들의 위선입니다. 죽은 믿음, 위선적 믿음이며, 행함은 없고 말만 있는 믿음입니다. 17-18절 말만 하는 위선적 믿음을 향하여 야고보는 말합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2. 믿음의 세가지 본질적 요소: 지식, 확신, 신뢰
그 자체가 죽은 믿음은 믿음의 가장 본질적인 세 가지 요소가 없거나 결여되어 있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본질적인 요소 첫번째는 지식, 두번째는 확신, 세번째는 신뢰입니다. 지식만 있는 믿음 부족하고 불완전한 믿음입니다. 지식과 더불어 확신이 있는 믿음, 더 나아가서 지식과 확신이 있으면 신뢰의 행동으로 나가야 진짜 믿음입니다.
진짜 믿음이 아닌 죽은 믿음의 두번째 차이는 지식만 있는 믿음입니다. 귀신의 믿음입니다. 19-20절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귀신은 하나님이 한 분이실줄 알고 믿습니다. 여기서 귀신의 믿음은 알기만 하는 믿음입니다. 지식으로는 아는데 확신이 없고, 신뢰도 없습니다. 그러니 아는데 순종하고 행하는 믿음은 없습니다.
누가복음 4장 40-41절 우리 예수님은 귀신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
귀신이 말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사람이 고백했다면 얼마나 칭찬받는 믿음이겠습니까? 귀신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줄 알고, 그리스도인줄 믿습니다. 문제는 딱 거기까지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리스도인줄 믿는다면 마땅히 예배하고, 찬양하고, 섬기고, 예수님의 뜻대로 행해야하는데 그와는 정 반대의 모습입니다.
목사로 교회를 섬기면서 가장 안타까운 믿음의 성도님들이 계십니다. 성장하는 믿음, 자라라는 믿음이 보일 때 그렇게 감사함이 넘칩니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되어도 전혀 믿음의 진보가 보이지 않을때 답답하고 힘이 듭니다. 믿음의 지식, 믿음의 확신, 믿음의 신뢰로 점점 삶이 믿음으로 성장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다른 부족한 사람을 섬길 수 있는 정금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3. 아브라함의 진짜 믿음
수 많은 믿음의 사람 가운데 야고보에게 두 사람의 믿음의 모습이 기억이 났습니다. 첫번째는 아브라함, 두번째는 기생 라합입니다. 21-24절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모습입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이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은 말 만하는 믿음, 알기만 하는 믿음, 죽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의 믿음은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시면서 두 가지 약속을 하셨습니다. 땅과 자손을 주겠노라.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환경을 바라보니 아브라함도 흔들립니다. 그러나 창세기 15장 아브라함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시며 하늘의 뭇 별을 보여주시며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믿음의 지식, 믿음의 확신, 믿음의 신뢰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창세기 15장 6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그 귀한 믿음을 하나님은 의로 여겨주셨습니다. 로마서 4장 17-22절 아브라함의 의로 여기심을 받은 믿음을 사도 바울은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알고 확신하는 것을 넘어서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진짜 믿음입니다. 그 진짜 믿음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의로 여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테스트 시험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 태어나고 성장했을 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그 믿음이 진짜임을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면서 보여주었습니다.
4. 이방인 기생 라합의 믿음
아브라함의 진짜 믿음과 함께 야고보는 여리고 성의 이방인 기생 라합의 믿음이 진짜 믿음임을 말합니다. 25-26절 “또 이와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여호수아 2장 11절 기생 라합의 행동하는 믿음의 이유입니다.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여리고 성에 기생으로 살면서 라합은 하나님깨서 행하신 일을 들었습니다. 믿음의 지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녹을 정도로 마음에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하나님이심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여리고 성을 정탐한 두 정탐꾼을 목숨을 걸고 숨겨주었습니다.
5. 우리의 기도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하나님의 벗이라고 불림받은 아브라함의 그 믿음, 목숨을 걸고 믿음을 보인 기생 라합의 믿음, 지식과 확신, 신뢰의 믿음입니다. 이 시간 그 믿음을 구하길 기도합니다. 말만 하는 믿음이 아니라, 지식만 있는 믿음이 아니라, 지식과 확신과 전폭적인 신뢰의 믿음의 사람이 되게하옵소서. 믿음이 없는 불신의 시대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 인정받고 칭찬받고 교회의 기둥같은 일꾼으로 쓰임받는 복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 시간 우리의 입으로 우리 마음으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입술과 마음의 고백을 넘어서 온전히 확신하게 하시며,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믿음은 말만 하는 믿음이 아니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되게 하시며, 지정의 전인격적인 믿음으로 인정받는 하나님의 벗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자라고 자라서 30배, 60배, 100배 열매맺어 성장하는 믿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살았으나 죽은 사데교회
우리 하나님 보시기에 살아있으나 죽은 것 처럼 믿음의 사람도 있고, 살아있으나 죽은 것 처럼 보이는 교회도 있습니다. 살아있는 믿음 같기도 하고 죽은 믿음 같기도 한 구별하기 애매한 믿음이며 교회입니다. 요한계시록 2-3장의 초대교회의 일곱교회 가운데 사데교회를 보시고 우리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라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분명한 믿음의 사람처럼 보이는 데 믿음에 합당한 행위가 없으니 우리 예수님 보시기에는 살았다하는 이름을 가졌는데 죽은 자처럼 보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지는 이신칭의의 복음을 말합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서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이신칭의: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복음을 강조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발견은 성경적 믿음의 재발견이었습니다. 루터는 이신칭의의 복음이 잘 나타나있는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의 복음을 강조하느라 이신칭의의 복음이 잘 나타나지 않은 야고보서는 지푸라기같은 복음이라고 평가절하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동생가운데 초대교회의 기둥같은 일꾼이 된 야고보가 기록한 야고보서는 살아있는 믿음과 죽은 믿음의 차이를 강조하여 우리에게도 교훈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살아있는 믿음과 죽은 믿음의 차이가 있습니다.
2. 첫번째 차이는 말 뿐인 믿음인가, 말과 함께 행함이 있는 믿음인가?
14-16절 말씀입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한 믿음의 공동체의 형제와 자매가 추운 겨울에 먹을 양식이 없을 정도로 굶주렸습니다. 이때에 형제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함입니다. 그런데 그냥 말만합니다.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평안할 수 없고, 추워서 더울 수 없고, 배 고파서 배부를 수 없는데 말만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배는 드리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는데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지도 않고, 하나님 말씀 배우는 성경공부는 참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데 하나님을 향하여 아무 것도 행하지 않고, 이웃을 향하여 아무런 행함도 없습니다. 그런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이 아니라 죽은 믿음이며, 믿음이 전혀 없는 것과 같습니다.
갈라디아서의 말씀은 이방인의 구원을 향한 복음의 말씀이기에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을 향한 믿음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4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가장 강조하시는 믿음은 하나님을 향해서 큰 믿음을 가졌다고 하는 사람들의 위선입니다. 죽은 믿음, 위선적 믿음이며, 행함은 없고 말만 있는 믿음입니다. 17-18절 말만 하는 위선적 믿음을 향하여 야고보는 말합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2. 믿음의 세가지 본질적 요소: 지식, 확신, 신뢰
그 자체가 죽은 믿음은 믿음의 가장 본질적인 세 가지 요소가 없거나 결여되어 있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본질적인 요소 첫번째는 지식, 두번째는 확신, 세번째는 신뢰입니다. 지식만 있는 믿음 부족하고 불완전한 믿음입니다. 지식과 더불어 확신이 있는 믿음, 더 나아가서 지식과 확신이 있으면 신뢰의 행동으로 나가야 진짜 믿음입니다.
진짜 믿음이 아닌 죽은 믿음의 두번째 차이는 지식만 있는 믿음입니다. 귀신의 믿음입니다. 19-20절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귀신은 하나님이 한 분이실줄 알고 믿습니다. 여기서 귀신의 믿음은 알기만 하는 믿음입니다. 지식으로는 아는데 확신이 없고, 신뢰도 없습니다. 그러니 아는데 순종하고 행하는 믿음은 없습니다.
누가복음 4장 40-41절 우리 예수님은 귀신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
귀신이 말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사람이 고백했다면 얼마나 칭찬받는 믿음이겠습니까? 귀신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줄 알고, 그리스도인줄 믿습니다. 문제는 딱 거기까지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리스도인줄 믿는다면 마땅히 예배하고, 찬양하고, 섬기고, 예수님의 뜻대로 행해야하는데 그와는 정 반대의 모습입니다.
목사로 교회를 섬기면서 가장 안타까운 믿음의 성도님들이 계십니다. 성장하는 믿음, 자라라는 믿음이 보일 때 그렇게 감사함이 넘칩니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되어도 전혀 믿음의 진보가 보이지 않을때 답답하고 힘이 듭니다. 믿음의 지식, 믿음의 확신, 믿음의 신뢰로 점점 삶이 믿음으로 성장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다른 부족한 사람을 섬길 수 있는 정금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3. 아브라함의 진짜 믿음
수 많은 믿음의 사람 가운데 야고보에게 두 사람의 믿음의 모습이 기억이 났습니다. 첫번째는 아브라함, 두번째는 기생 라합입니다. 21-24절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모습입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이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은 말 만하는 믿음, 알기만 하는 믿음, 죽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의 믿음은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시면서 두 가지 약속을 하셨습니다. 땅과 자손을 주겠노라.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환경을 바라보니 아브라함도 흔들립니다. 그러나 창세기 15장 아브라함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시며 하늘의 뭇 별을 보여주시며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믿음의 지식, 믿음의 확신, 믿음의 신뢰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창세기 15장 6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그 귀한 믿음을 하나님은 의로 여겨주셨습니다. 로마서 4장 17-22절 아브라함의 의로 여기심을 받은 믿음을 사도 바울은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알고 확신하는 것을 넘어서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진짜 믿음입니다. 그 진짜 믿음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의로 여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테스트 시험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 태어나고 성장했을 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그 믿음이 진짜임을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면서 보여주었습니다.
4. 이방인 기생 라합의 믿음
아브라함의 진짜 믿음과 함께 야고보는 여리고 성의 이방인 기생 라합의 믿음이 진짜 믿음임을 말합니다. 25-26절 “또 이와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여호수아 2장 11절 기생 라합의 행동하는 믿음의 이유입니다.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여리고 성에 기생으로 살면서 라합은 하나님깨서 행하신 일을 들었습니다. 믿음의 지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녹을 정도로 마음에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하나님이심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여리고 성을 정탐한 두 정탐꾼을 목숨을 걸고 숨겨주었습니다.
5. 우리의 기도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하나님의 벗이라고 불림받은 아브라함의 그 믿음, 목숨을 걸고 믿음을 보인 기생 라합의 믿음, 지식과 확신, 신뢰의 믿음입니다. 이 시간 그 믿음을 구하길 기도합니다. 말만 하는 믿음이 아니라, 지식만 있는 믿음이 아니라, 지식과 확신과 전폭적인 신뢰의 믿음의 사람이 되게하옵소서. 믿음이 없는 불신의 시대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 인정받고 칭찬받고 교회의 기둥같은 일꾼으로 쓰임받는 복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 시간 우리의 입으로 우리 마음으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입술과 마음의 고백을 넘어서 온전히 확신하게 하시며,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믿음은 말만 하는 믿음이 아니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되게 하시며, 지정의 전인격적인 믿음으로 인정받는 하나님의 벗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자라고 자라서 30배, 60배, 100배 열매맺어 성장하는 믿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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