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교육

산상수훈 (20) 마 6:9-13절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05-30 23:39
Views
976


1. Quanz Auto의 Our Daily Bread

지난 한 주간 아리랑에 방문했다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우리 지역을 방문한 3분의 시니어분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RV를 타고 우리 지역의 Carlsbad 동굴, White Sand를 방문하시고, 아리랑에서 점심을 드시고 이제 알버커키와 산타페를 방문하시려는 분들이었습니다. 점심 식사후에 Old Town을 방문하신다고 해서, Sandi Tram도 타시고, Santa Fe도 방문하시라고 몇 가지 정보를 드리고, 복잡한 Sanfrancisco에서 우리 지역이 은퇴후에 살기 좋은 곳이라고 자랑도 하면서 연락처도 드렸습니다.

하루 지나고 전화가 왔는데, 힘이 없는 목소리여서, Sandia Tram은 타셨냐고 물어보니, 아리랑에서 나오시는 길에 바로 자동차 사고가 나서 아무 것도 못하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자동차 견적과 수리기간을 받아보니 최소 4주 – 길게는 6주 정도는 걸린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우리 지역의 Body Shop을 찾아보니 Juan Tabo 와 Candelia 선상에 Quanz Auto에 전화해서 함께 찾아갔습니다.

Quanz Auto 사무실에 들어가니 제일 먼저 벽 면에 큰 글자로 적인 여호수아 1장 8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Do not let this Book of the Law depart from your mouth; meditate on it day and night, so that you may be careful to do everything written in it. Then you will be prosperous and successful.) 그 말씀이 얼마나 은혜가 되는 말씀입니까? 사장님이 앉은 정면에 붙어 있는 말씀 액자였습니다.

사무실 오른쪽 테이블 위에는 방문한 손님을 위한 커피와 음료수가 배치되어 있고, 방문한 손님을 위해서 사무실 입구의 제일 좋은 자리에 Our Daily Bread 말씀 묵상 책자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 1장 8절 말씀과 함께 Our Daily Bread 말씀 묵상지를 사업체에 둘 정도면 정말 믿음으로 사업을 운영하는구나, 정직한 업체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참 대화를 나누며 견적을 주는데 다른 업체보다 3000불은 적게 견적이 나왔는데, 문제는 현재 일이 너무 많고, 팬더믹에 부품 주문하고 도착하해서 일을 시작하려면 6월 말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돌아섰지만, 주인이 어떤 신앙인인지 궁금해서 어느 교회에 다니십니까? 질문을 하니 아이들과 함께 Trinity Church에서 신앙생활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친절하면서, 정직하게 사업을 운영하며, 사업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려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의 공식 말씀 묵상지는 성서유니온에서 나온 매일성경입니다. 6년이면 성경 전체를 전부 묵상할 수 있는 참 좋은 말씀 묵상지입니다. 미국에서는 한국의 매일성경이나 생명의 삶 같은 말씀 묵상지보다는 Our Daily Bread 같은 더 짧은 말씀 묵상지를 사용합니다. Our Daily Bread 우리의 일용할 양식입니다. 우리에게는 일용할 양식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육적으로도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고, 영적으로도 일용할 양식이 필요합니다. 일용할 양식이 필요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2. 우리의 일용할 양식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일용할 양식 잘 드시고 계시는지요? 오늘 우리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하나님 기도 다음에 이어지는 이 땅에서 지금 기도를 드리고 있는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2인칭 기도에서 이제는 우리를 위한 1인칭 기도로 변합니다.

우리의 필요 가운데 가장 첫번째 필요를 구하는 기도가 마태복음 6장 11절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입니다. 영어로는 Give us today our daily bread.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이 기도를 “든든한 세 끼 식사로 우리가 살아가게 하소서”(keep us alive with three square meals) 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든든한 세끼 식사는 굶주린 겨우 먹는 음식이 아니라, 영국 해군에서 군인들에게 제공되는 만족할 만한 풍성한 정사각형 식판에 담겨있는 풍성한 음식입니다.

1세기 유대인들은 아침에는 오늘의 양식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고, 저녁에는 내일을 위한 양식을 구했습니다. 하루의 시작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루의 마무리를 하면서 다음 날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오늘날 미국처럼 음식이 풍성한 문화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그리 절박하지 않을 수 도 있지만,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하루의 일당 1 데나리온을 받아서 하루를 겨우 연명하는 문화에서는 너무나 중요한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3. 풍성한 양식을 주시는 우리 하나님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창조의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셨을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인간에게는 선물로 풍성하게 주셨기에 일용할 양식을 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먹을 거리를 선물로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창조의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지으시고,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을 창세기 1장의 마지막 사건은 인간에게 먹을 거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 1:29-30절). 아담이 매일 먹는 양식 그냥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운 풍성한 선물이었습니다.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를 인간에게도 주시고,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새에게도 먹을 거리를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언제가 공중의 날아가는 많은 새를 보고 저 많은 새들은 도대체 어떻게 먹고 살까 궁금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찾아보니, 2021년 5월 25일 기준 전 세계 인구는 78억 6천8백만명이고, 전 세계의 새는 그 6배가 넘는 약 500억 마리의 새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영국의 뉴사우스 웨일스 대학 연구팀은 전 세계의 모든 새는 약 9천 700여종으로 계산하고 있습니다. 지구상에 존재 하는 그 많은 사람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 그 많은 새들 어떻게 먹고 살아가는 것입니까? 인간은 노동해서 먹고 산다고 해도, 가축들은 사람들이 먹여서 키운다고 해도, 하늘의 그 수 많은 새들은 어떻게 먹고 사는 것입니까?

산상수훈 마태복음 6장 26절 우리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는 심지 않고, 거두지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 많은 새들 잘 먹고 잘 살고 새끼 키우면서 염려없이 걱정없이 살아갑니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너희는 이것들보다 공중의 나는 새들보다 더 귀하다면,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도 기르시고 우리도 거두어주십니다.

창세기 2장 16-17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You are free to eat from any tree in the garden)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단 하나의 나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고,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마음껏 먹으라고 풍성한 선물로 먹을 거리를 거저 주셨습니다. 아담은 얼마나 풍성한 먹을 거리가 있었습니까? 창조의 하나님께서 피조물 인간인 아담을 만드시고 맺으신 창조 언약, 행위 언약이었습니다. 10계명도 아니고 단 하나의 계명, 창조주 하나님과 인간이 맺은 너무 쉬운 언약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한 이후에 하나님 창조의 대리인은 인간은 타락한 존재가 되어 모든 상황이 비참하게 바뀌었습니다. 땅에서 나는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던 인간에게 이제는 노동의 고통과 노동의 수고를 해야만 땅의 소산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 17절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cursed is the ground because of you; through painful toil you will eat of it all the days of your life).

인간은 평생 수고 해야 땅의 소산을 먹을 수 있는 비참한 존재로 타락했습니다. 타락한 인간을 홍수로 심판하신 이후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새로운 먹을 거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창세기 9장 3절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타락 이전에 채소도 주시는 하나님, 과일도 선물도 주시는 하나님은 타락 이후에도 채소와 과일과 열매만이 아니라 고기도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 아니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모든 필요를 다 채워주시는 여호와 이레: 준비하여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4. 이것이 무엇이냐?

다 준비하여 주시는 하나님 앞에 오늘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우리의 자세는 무엇이어야 합니까? 출 16장 13-15절 말씀 우리 같이 읽습니다.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What is it?)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31절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이것이 무엇이냐? 히브리어 만: 무엇입니까? 후: 이것, 그래서 만후는 이것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하늘의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만나: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 꿀 섞은 과자 같이 만나는 만나입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일용할 양식은 만나: 이것이 무엇이냐? 감탄입니다. 놀람과 감격입니다. 아니 내가 무엇이라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큰 은혜를 주시는가?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감격입니다. 웬 은혜인가? 우리 말로는 이것이 웬 떡이냐? 감탄입니다.

5. 오늘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그 기도의 두 가지 의미

오늘 하늘이 아니라 이 땅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우리에게 필요한 우리의 일용할 양식은 매일 매일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하고 신뢰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우리의 기도입니다.

우리 지역의 UNM 어느 교수님이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박사 과정을 마칠 때 너무 너무 간절해서 밥 먹듯이 올려드렸던 기도 제목이 있었습니다. “밥 벌이 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로, 만후: 이것이 무엇인가? 미국에서 박사과정 졸업하고 우리 지역의 교수로 부임해서 밥 벌이 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지금 밥 벌이 하고 살고 있는 것이 주님의 은혜이요 주위의 도움 덕분임을 고백하며, 요즘 밥 먹을 때마다 구하는 기도가 있다고 합니다. “밥 값하게 해 주십시오. 밥값하며 살고 있습니다. 도움 받은 만큼 이제는 도우며 살고싶습니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첫째, 하나님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십니다. 과거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고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필요합니다. 은혜를 구하는 기도합니다. 먹고 살 만한 지금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에서 이것이 무엇이냐 만나를 먹여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신 8:11-14절 말씀 기억합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소와 네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 버릴까 염려하노라.” 16-18절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의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오늘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는 이유는 모든 것이 우리의 능력과 손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풍성한 은혜임을 기억하고 또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소와 양이 번성할 때, 통장의 잔고가 늘어나고, 보유하고 있는 땅과 집의 가치가 폭등하고, 주식이 올라가고, 경제적인 풍성함을 누릴 때에 우리의 지혜와 우리의 능력를 자랑하여 교만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 있는 치명적인 죄악에 빠질 수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 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사람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겸손하고 겸손합니다. 남 보다 조금 더 있다고 교만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께 감사하고 나 같은 자에게 풍성하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둘째, 나의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우리의 일용할 양식임을 기억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풍성하게 부어주신다면 오직 나 만을 위한 양식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일용할 양식으로 삼고, 풍성하게 부어주신 만큼 나누고 섬기고 받은 은혜를 우리를 통해서 흘려보내도록 은혜 베푸는 삶을 살을 살겠다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있는 이 땅에 있는 공동체에는 항상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우리보다 더 가난하고 연약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알버커키 지역에는 더 가난하고 불쌍하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다른 지역보다 더 많습니다. 왜 우리를 이곳으로 보내셔서 일용할 양식을 넘어서 풍성한 양식을 부어주셨을까요? 혼자만 누리지 말고 혼자만 풍성한 삶을 누리지 말고 나누어 주라고, 섬기는 자로 살라고, 하나님 은혜의 통로가 되라고 풍성히 부어주셨습니다. 일용할 양식은 나에게만 필요한 양식이 아니라 우리의 일용할 양식, 우리 공동체의 필요한 일용할 양식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대학원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마쳤습니다. 더 깊이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싶어서 유학 준비하다가 천당 위의 분당에서 학생들 과외하다가 너무 잘 되어서 유학도 포기하고 사역도 포기하고 싶은 적이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성한 삶이 무엇인지 저에게도 아내에게도 큰 유혹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8개월 큰 딸 가영이 교통사고 나고 다 내려놓고 다시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역자의 길로 어렵게 돌아왔습니다. 만 4년 가까이 풀 타임 사역하다가 신학 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서 유학의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했는데, 제 생각에는 역사신학으로 제일 좋은 학교 제일 좋은 교수님 밑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유학오기 전에 주신 그 말씀, 미시간에 도착해서 처음 받은 그 말씀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굳게 그 말씀 의지하며 그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 의지하며 2006년 가을 학기부터 죽도록 공부하는 험란한 유학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학기 학비내고 자동차 사고 월세 내고 나니 통장 잔고는 거의 바닥입니다. 그때 친한 동기 목사님 소개로 어느 교회에서 한달에 100불 장학금 주는 교회 장학생 신청했다가 떨어졌습니다. 저는 새벽 2시에 집에 들어오는데 아내는 장학생 신청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밤 하늘의 수 많은 별을 보고 하나님은 살아계신데 우리는 왜 이렇게 삶이 어려운지 펑펑 울었습니다. 그렇게 울고 나서 한 주 정도 지났는데 한국에서 서울 사랑의 교회 옥한흠 장학생으로 선정되어서 저와 가족에게는 꼭 필요한 정말 거액의 장학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박사과정 합격하고 나서 식도암으로 투병중이었던 아버지 소천후에 남가주 사랑의 교회에서 진행하는 제자훈련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식사 시간에 바로 옆 자리에 앉은 목사님, 어디선가 많이 본 목사님인데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장학생 지원했던 그 교회의 부목사님이었습니다. 목사님께 제 소개하고 그 장학생 신청했다가 떨어졌다고 하니 이력서와 지원서를 보내달라고 해서 떨어진 그 장학금 매월 100불 2년후에 4년동안 받게 되었습니다. 필라델피아 챌튼햄장로교회의 장학 목회자에 선정이 되어 매년 여름에 필라델피아에서 3박 4일 같은 유학생 목사님 모임에 참여하는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매달 보내주시는 그 100불의 장학금이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은혜가 되는지 혼자만 누릴 수 없어 어려운 유학생을 위로하며 나누며 섬기는 자로 살고 싶다고 기도하던 기도에 감사해서 매년 칼빈신학교에 오는 신입생 환영회에, 지역을 떠나시는 목사님들 가정을 보내면서, 추수감사절에 집으로 초대해서 풍성하게 음식 준비하고 함께 먹고 나누며 섬기는 삶을 살수 있었습니다. 칼빈에서 석사과정 마치고 박사과정 동안에 하나님은 얼마나 풍성하게 일용할 양식을 주셨는지 디트로이트에서 사역도 하게 해 주시고, 학교에서는 박사과정 full scholarship과 생활비도 받게 해 주시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지원하지도 않은 장학금도 받게 해 주시고, 후히 넘치도록 부어 주셨습니다. 신학 유학생으로 한국에서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은 다 받게 해 주셨습니다.

6.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기도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오늘도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우리의 기도입니다. 우리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양식이 있습니다.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풍성히 부어주십니다. 우리에게 절실한 일용할 양식을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신뢰하며 구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풍성히 부어주셨을 때 교만치 않게 하시며 우리 힘과 지혜로 얻었다 자랑하지 않게 하시며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드리며, 풍성히 주신 양식 우리 자신 만을 위하여 쓰지 않게 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우리 공동체를 위하여 나누며, 섬기며, 베풀며, 하나님의 은혜를 흘려보내는 은혜의 섬김과 통로로 사용되게 하옵소서 이 시간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참 좋으신 하늘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 시간 사랑하는 자녀를 위하여 돌이 아닌 떡을 준비하시며, 뱀이 아닌 생선을 주시는 아버지 앞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오늘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우리에게 풍성한 양식을 주시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하늘 아버지 우리 하나님이심을 겸손히 인정합니다. 고백합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늘에서 만나를 먹이신 것 처럼 오늘 우리에게 이것이 무엇이냐? 이것이 웬 은혜인가? 감격으로 감사함으로 모든 풍성한 것을 선물로 주시는 하늘 아버지께 인정하게 하시며, 감사하게 하시며, 찬양하게 하시며, 고백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을 돌아볼 때 우리의 연약함과 게으름과 약함에도 불구하고 풍성하게 채워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잊을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의 탐심을 채우기 위해서 더 많이 가지지 못해서 늘 부족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의 것을 탐내지 말게 하시며, 도둑질 하지 말게 하시며,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드리게 하시며, 풍성하게 부어주신 그 은혜를 우리만 누리지 않게 하시며, 더 부족하고 연약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아낌없이 나눠주고 섬겨주고 베풀어주는 은혜의 통로로 쓰임받게 하옵소서. 우리 공동체에서 어렵고 힘든 분들 이 있습니다. 주님, 아시지요. 공중나는 새도 먹이시는 그 은혜의 하나님을 어떠한 형편과 환경에서도 신뢰하게 하시며 일어서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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