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4장 1-19절 공동체를 세우는 지혜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05-30 23:15
Views
367
1. 세우는 자와 허무는 자
잠언의 주요 주제인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의 대조가 14장에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누가 지혜자이며, 누가 어리석은 자입니까? 지혜자는 세우는 자이며, 어리석은 자는 파괴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의 집을 세웁니다. 미련한 여인은 자기의 손으로 자기의 집을 헐어버립니다. 지혜자가 있는 가정은 세워집니다. 미련한 사람이 있는 가정은 파괴됩니다.
11절도 같은 말씀입니다.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망하는 집과 흥하는 집의 차이는 그 집에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에 있습니다. 비단 가정만이 아닙니다.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혜자가 있는 공동체는 세워지나, 미련한 자가 있는 공동체는 파괴됩니다. 가정과 공동체를 세우는 지혜의 비결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2. 가정과 공동체를 세우는 첫번째 비결인 말의 지혜
3절“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처하고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하느니라”5절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느니라" 7절 "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
말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정에서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인간 관계가 어려워지는 이유는 말에 있고, 인간 관계가 좋아지는 이유도 말에 있습니다. 가정을 세우는 말이 있고, 가정을 파괴하는 말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최초의 가정인 아담의 가정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 후에 아담에게 이끌어 올때 아담은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 (창 2:23). 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나의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리의 말로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축복하는데 어떻게 인간관계가 나빠지고, 공동체가 파괴돌 수 있습니까? 세워지는 집안에는 서로 인정하고 세워주는 말로 가득합니다. 파괴적인 공동체는 서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서로 세워주지 않습니다. 대신 서로 비판하고 비난하고 모든 책임을 상대방에게 돌립니다.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있다고 고백하였던 아담은 범죄 한 후에 자신의 죄의 책임을 아내에게 돌립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2). 서로를 비난하고 책임전가하고 비판하는 공동체는 결코 세워질 수 없고, 허물어집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에도 말은 관계를 세울 수도 있고, 관계를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권면의 말씀입니다. 엡 4장 29절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덕을 세워주는 선한 말,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는 말을 하는 자는 관계를 세워줍니다.
덕을 세워주는 선한 말도 있고, 입밖에도 내지 말하야 하는 더러운 말도 있습니다. 엡 5장 31-32절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교회 공동체 가운에 있는 모든 관계는 남남이 아니라 형제와 자매의 관계입니다. 형제와 자매를 향하여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는 것, 비방하는 것을 버리고, 말로 친철함을 베풀고, 말로 불쌍히 여기고, 말로 서로 용서한다면 관계를 파괴하지 않고 세울 수 있습니다.
3. 가정과 공동체를 세우는 두번째 지혜는 불편하고 귀찮은 사람도 함께 품고 가는 지혜입니다.
4절 말씀입니다.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집안에 소가 있으면 불편하고 귀찮습니다. 차라리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고 좋습니다. 그래서 불편하고 귀찮은 존재, 늘 먹을 것을 준비해 주어야 하는 소를 만약 농부가 없애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요? 당장은 구유를 청소할 일이 없다고 좋아해야 합니까? 당장 먹을 것을 준비해주지 않아도 귀찮은 존재가 사라졌다고 좋아해야합니까?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소를 버리면 조금 불편하고 귀찮은 것 때문에 더 큰 유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사도 행전을 보면 이방인 선교를 위한 큰 역할을 감당한 안디옥 교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안디옥 교회는 스데반의 순교로 인해서 예루살렘 교회의 핍박이 시작되었을 때 핍박은 받은 사람들이 안디옥까지 가서 복음을 전해서 세워진 교회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에도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의 소식을 듣고 바나바를 파송합니다. 사도행전 11장 24절에 바나바를 평가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동시에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바나바의 헌신적인 사역으로 많은 사람들이 주께 더하여졌습니다.
안디옥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러 다소까지 친히 찾아가서 사울을 만나 설득하여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바나바와 사울이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을 말씀으로 잘 양육을 합니다. 바나바가 데리고 온 사울이 누구입니까? 예수님 믿는 자들을 핍박하며, 자기 의로 가득찬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어느 누구도 쉽게 인정하지 않았던 위험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힌 사울이었습니다. 그런 사울을 찾으러 바나바는 다소까지 몸소 찾아가 사울을 데리고 와서 안디옥에서 함께 사역을 합니다.
부족하고 위험해 보이는 사울을 찾으러 다소까지 찾아간 바나바는 얼마나 마음이 넓은 사람입니까?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동시에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가장 먼저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고, 안디옥 교회에서 본격적인 선교운동이 시작된 것은 부족하고 연약한 사울 같은 사람도 품어주던 바나바의 그 착하고 넉넉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셨습니다. 교회 공동체가 건강하게 세워지는 비결은 나와 마음이 잘 맞지 않아도 나에게 불편하고 귀찮은 존재여도 우리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기꺼이 찾아가서라도 모셔올 수 있는 인격적인 너그러움이 필요합니다.
고린도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간곡한 권면의 부탁의 말씀입니다. 고후 6:11-13절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입이 열리고, 마음을 넓히는 것이 관계를 회복하는 지름길입니다. 가정을 세우는 원리, 공동체를 세우는 원리,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원리는 모두 같습니다. 말로 세워주고, 인격적으로 품어주는 것입니다.
4. 입과 마음으로 품어 주어야 하는 이유
우리가 왜 이렇게 해야합니까?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 4:32b).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해주시고 품어주셨습니다.
남편과 아내에게 주시는 권면의 말씀의 근거는 부족하고 연약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드리신 우리 예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엡 5:25-27). 교회가 깨끗하고, 티도 주름도 없어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더럽고 티 많고 주름 많은 부족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시고, 물로 씻어 주시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시며,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워주시려는 우리 예수님의 넓고도 크신 너그러운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용서하심을 경험한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 받은 그 사랑과 은혜로 가정을 세우고, 남편과 아내를 세우고, 우리 자녀들을 세우고, 우리 공동체를 세워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를 바랍니다.
5. 우리의 기도
이 시간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지혜의 말씀으로 기도하길 원합니다. 첫째는 우리 가정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가정을 말로 사랑으로 세울 수 있는 지혜로운 자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둘째는 우리가 속한 우리 교회 공동체를 세울 수 있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말로 사람을 세워주고, 불편하고 귀찮은 사람도 세워주어 우리 공동체에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우리 예수님의 사랑이 넘칠 수 있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허물많고 부족하며 티와 주름 잡힌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용서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그 크신 은혜를 인하여 감사합니다. 우리의 말에 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마음을 넓혀주옵소서. 어리석은 말로 우리 주님이 보혈을 흘려 세우신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자녀를 말로 깍아내리지 않게 하시며, 우리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 마음을 넓혀 서로 존중하며 세워가게 하옵소서.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의 모든 가정이 주 안에서 아름다운 말의 지혜와 서로 품어주는 너그러움이 가득하게 하시며, 우리 교회에도 말의 지혜와 넓은 마음으로 서로 용서하며 이해하며 세워가게 하옵소서.
이 시간 7월 25일 제직으로 안수받을 권사님, 안수집사님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기도로 잘 준비되게 하시며,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고 수고할 일꾼으로 잘 훈련되게 하시며, 그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어 우리 교회가 하나님 말씀 위에 든든하게 세워지게 하옵소서. 아무런 어려움이 없도록 가정과 사업과 자녀를 지켜주옵시고, 우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충만하게 부어주시며,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맡겨질 사역 잘 감당케 하옵소서.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잠언의 주요 주제인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의 대조가 14장에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누가 지혜자이며, 누가 어리석은 자입니까? 지혜자는 세우는 자이며, 어리석은 자는 파괴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의 집을 세웁니다. 미련한 여인은 자기의 손으로 자기의 집을 헐어버립니다. 지혜자가 있는 가정은 세워집니다. 미련한 사람이 있는 가정은 파괴됩니다.
11절도 같은 말씀입니다.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망하는 집과 흥하는 집의 차이는 그 집에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에 있습니다. 비단 가정만이 아닙니다.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혜자가 있는 공동체는 세워지나, 미련한 자가 있는 공동체는 파괴됩니다. 가정과 공동체를 세우는 지혜의 비결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2. 가정과 공동체를 세우는 첫번째 비결인 말의 지혜
3절“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처하고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하느니라”5절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느니라" 7절 "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
말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정에서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인간 관계가 어려워지는 이유는 말에 있고, 인간 관계가 좋아지는 이유도 말에 있습니다. 가정을 세우는 말이 있고, 가정을 파괴하는 말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최초의 가정인 아담의 가정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 후에 아담에게 이끌어 올때 아담은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 (창 2:23). 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나의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리의 말로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축복하는데 어떻게 인간관계가 나빠지고, 공동체가 파괴돌 수 있습니까? 세워지는 집안에는 서로 인정하고 세워주는 말로 가득합니다. 파괴적인 공동체는 서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서로 세워주지 않습니다. 대신 서로 비판하고 비난하고 모든 책임을 상대방에게 돌립니다.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있다고 고백하였던 아담은 범죄 한 후에 자신의 죄의 책임을 아내에게 돌립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2). 서로를 비난하고 책임전가하고 비판하는 공동체는 결코 세워질 수 없고, 허물어집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에도 말은 관계를 세울 수도 있고, 관계를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권면의 말씀입니다. 엡 4장 29절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덕을 세워주는 선한 말,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는 말을 하는 자는 관계를 세워줍니다.
덕을 세워주는 선한 말도 있고, 입밖에도 내지 말하야 하는 더러운 말도 있습니다. 엡 5장 31-32절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교회 공동체 가운에 있는 모든 관계는 남남이 아니라 형제와 자매의 관계입니다. 형제와 자매를 향하여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는 것, 비방하는 것을 버리고, 말로 친철함을 베풀고, 말로 불쌍히 여기고, 말로 서로 용서한다면 관계를 파괴하지 않고 세울 수 있습니다.
3. 가정과 공동체를 세우는 두번째 지혜는 불편하고 귀찮은 사람도 함께 품고 가는 지혜입니다.
4절 말씀입니다.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집안에 소가 있으면 불편하고 귀찮습니다. 차라리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고 좋습니다. 그래서 불편하고 귀찮은 존재, 늘 먹을 것을 준비해 주어야 하는 소를 만약 농부가 없애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요? 당장은 구유를 청소할 일이 없다고 좋아해야 합니까? 당장 먹을 것을 준비해주지 않아도 귀찮은 존재가 사라졌다고 좋아해야합니까?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소를 버리면 조금 불편하고 귀찮은 것 때문에 더 큰 유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사도 행전을 보면 이방인 선교를 위한 큰 역할을 감당한 안디옥 교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안디옥 교회는 스데반의 순교로 인해서 예루살렘 교회의 핍박이 시작되었을 때 핍박은 받은 사람들이 안디옥까지 가서 복음을 전해서 세워진 교회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에도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의 소식을 듣고 바나바를 파송합니다. 사도행전 11장 24절에 바나바를 평가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동시에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바나바의 헌신적인 사역으로 많은 사람들이 주께 더하여졌습니다.
안디옥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러 다소까지 친히 찾아가서 사울을 만나 설득하여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바나바와 사울이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을 말씀으로 잘 양육을 합니다. 바나바가 데리고 온 사울이 누구입니까? 예수님 믿는 자들을 핍박하며, 자기 의로 가득찬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어느 누구도 쉽게 인정하지 않았던 위험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힌 사울이었습니다. 그런 사울을 찾으러 바나바는 다소까지 몸소 찾아가 사울을 데리고 와서 안디옥에서 함께 사역을 합니다.
부족하고 위험해 보이는 사울을 찾으러 다소까지 찾아간 바나바는 얼마나 마음이 넓은 사람입니까?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동시에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가장 먼저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고, 안디옥 교회에서 본격적인 선교운동이 시작된 것은 부족하고 연약한 사울 같은 사람도 품어주던 바나바의 그 착하고 넉넉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셨습니다. 교회 공동체가 건강하게 세워지는 비결은 나와 마음이 잘 맞지 않아도 나에게 불편하고 귀찮은 존재여도 우리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기꺼이 찾아가서라도 모셔올 수 있는 인격적인 너그러움이 필요합니다.
고린도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간곡한 권면의 부탁의 말씀입니다. 고후 6:11-13절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입이 열리고, 마음을 넓히는 것이 관계를 회복하는 지름길입니다. 가정을 세우는 원리, 공동체를 세우는 원리,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원리는 모두 같습니다. 말로 세워주고, 인격적으로 품어주는 것입니다.
4. 입과 마음으로 품어 주어야 하는 이유
우리가 왜 이렇게 해야합니까?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 4:32b).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해주시고 품어주셨습니다.
남편과 아내에게 주시는 권면의 말씀의 근거는 부족하고 연약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드리신 우리 예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엡 5:25-27). 교회가 깨끗하고, 티도 주름도 없어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더럽고 티 많고 주름 많은 부족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시고, 물로 씻어 주시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시며,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워주시려는 우리 예수님의 넓고도 크신 너그러운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용서하심을 경험한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 받은 그 사랑과 은혜로 가정을 세우고, 남편과 아내를 세우고, 우리 자녀들을 세우고, 우리 공동체를 세워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를 바랍니다.
5. 우리의 기도
이 시간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지혜의 말씀으로 기도하길 원합니다. 첫째는 우리 가정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가정을 말로 사랑으로 세울 수 있는 지혜로운 자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둘째는 우리가 속한 우리 교회 공동체를 세울 수 있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말로 사람을 세워주고, 불편하고 귀찮은 사람도 세워주어 우리 공동체에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우리 예수님의 사랑이 넘칠 수 있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허물많고 부족하며 티와 주름 잡힌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용서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그 크신 은혜를 인하여 감사합니다. 우리의 말에 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마음을 넓혀주옵소서. 어리석은 말로 우리 주님이 보혈을 흘려 세우신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자녀를 말로 깍아내리지 않게 하시며, 우리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 마음을 넓혀 서로 존중하며 세워가게 하옵소서.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의 모든 가정이 주 안에서 아름다운 말의 지혜와 서로 품어주는 너그러움이 가득하게 하시며, 우리 교회에도 말의 지혜와 넓은 마음으로 서로 용서하며 이해하며 세워가게 하옵소서.
이 시간 7월 25일 제직으로 안수받을 권사님, 안수집사님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기도로 잘 준비되게 하시며,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고 수고할 일꾼으로 잘 훈련되게 하시며, 그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어 우리 교회가 하나님 말씀 위에 든든하게 세워지게 하옵소서. 아무런 어려움이 없도록 가정과 사업과 자녀를 지켜주옵시고, 우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충만하게 부어주시며,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맡겨질 사역 잘 감당케 하옵소서.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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