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교육

산상수훈 (14) 마 5장 38-48절 악한 자와 원수를 만났을 때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04-11 18:26
Views
754


1. 플란다스의 개의 소년 네로의 비참한 죽음

어린 시절에 재미있게 본 만화영화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결말을 알고 엄청나게 큰 충격을 받은 영화가 있었습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만화 영화 <플란다스의 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플란다스의 개 그 만화 영화 보셨습니까? 혹시 영화의 결말을 아십니까?

벨기에 플란다스 지역의 앤트워퍼 도시의 소년 네로는 부모님이 일찍 죽고 우유배달을 하는 할아버지와 함께 가난하지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소년으로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어느날 길가에 버려진 파트라슈라는 개를 데리고 와서 극진히 간호하는 착한 소년으로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천재화가 루벤스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가를 꿈꾸며 성실히 우유 배달하며 그림을 그리며 살아갑니다. 할아버지가 병으로 죽은 이후에 생활이 너무 어려워서 월세도 내지 못하고, 동네의 풍차 화재 사건의 주범으로 오해받고, 지역의 유지인 코제트 아저씨에게 미움을 받다가, 그의 마지막 희망인 미술대회에 입상하지 못하고, 눈보라 치는 추운 겨울 동네의 앤트워프 성당에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루벤스의 그림인 <십자가에서 내림> (Descent from the Cross)이라는 그림을 보면서 파트라슈와 함께 성당에서 얼어죽었습니다.

소년 네로와 파트라슈의 비참한 죽음이 얼마나 불쌍하게 느껴지고, 불쌍한 네로와 파트라슈를 비참하게 죽게 만든 그 사회가 얼마나 비정하고 안타까웠는지 다 큰 어른이 되어 그 플란다스의 개를 혼자 보다가 엉엉 울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집 아이들에게 그 비참한 만화 영화를 함께 보면서 이토록 안타까운 일이 우리의 삶에 일어나지 않게 하자고 다짐하면서 그 슬픈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안타까운 것은 소년 네로 같은 불쌍한 아이를 위해서 단 한 사람의 어른이라도 그 아이를 돌보아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러번 생각했습니다. 또 소년 네로가 너무 착하기만 하지 말고, 조금 자기 생각도 하고, 도움도 구하면서 사는 네로가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어려분, 우리 주위에 소년 네로같은 착하고 마음이 여린 소년 가장이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겠습니까? 소년 네로는 자신을 오해하고 미워하고 자신의 딸 아로아를 만나지도 못하게 하는 코제트 아저씨를 향하여서 싫은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악하게 대하는 코제트 아저씨의 전 재산을 눈보라가 가득한 추운 날씨에 찾아주고 코제트 아저씨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이 땅을 살아가면서 우리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은 우리에게 잘 해주고, 우리에게 선을 베푸는 사람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마음 착한 소년 네로처럼 우리에게 악을 행하고, 심지어 우리에게 원수처럼 대하는 원수같은 사람들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 가장 어렵고 힘들고 심지어 불가능하게 보이는 경우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인생에서 만난 최고로 악한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을 가장 힘들게 하고 상처주고 고통스럽게 만든 그 사람 어떤 사람이 생각나십니까? 만일 우리에게 원수같은 그 사람에게 복수할 기회가 주어지면 여러분은 어떻게 멋지게 복수하시겠습니까?

2. 하나님 나라 백성의 6가지 삶의 방식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산상수훈의 팔복에 이어서,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 하나님 나라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어떻게 이 땅에서 우리 지역에서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는 산위의 동네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지, 예수님의 6가지 삶의 방식 마무리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다룬 6가지 삶의 방식을 함께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첫째는 살인이었습니다. 마음으로 형제에게 노하고,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고 욕하는 것이 살인이었습니다. 마음에 여자와 남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이 간음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정당한 이유 없이 결혼 언약을 깨는 것이 이혼이었습니다. 정당한 맹세가 아닌 헛된 맹세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맹세도 다루었습니다. 4가지 삶의 방식에 이어서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두 가지 삶의 방식이 더 추가됩니다. 악한자를 만났을 때의 보복의 문제와 원수같은 이웃을 만났을 때의 사랑의 문제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방식 다섯번째는 선한 자가 아닌 악한 자에게 행하는 보복의 문제입니다. 보복의 문제에 대해서 옛 언약에 속한 율법은 38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구약 출애굽기 21장 22-25절의 인용입니다.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임신한 여인을 쳐서 낙태하게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재판장의 판결을 따라 낼 것이라.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구약의 이 말씀은 동해보복법으로 무서운 형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과도한 복수를 막는 최소한의 형벌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누군가가 우리의 눈을 상하게 한다면 우리는 눈만 상하게 하겠습니까? 우리의 눈을 상하게 한 그 사람을 원수로 여기고, 평생 원수가 되어 눈만이 아니라 원수의 모든 재산, 명예,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복수하려고 하고, 심지어 생명까지 취하려고 할 것입니다.

구약의 악한 사람으로 동생을 죽인 최초의 살인자 가인의 후손인 더 악한 라멕이 나옵니다. 라멕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결혼 언약을 깨뜨리고 두 아내를 두었습니다. 두 아내 아다와 씰라에게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창 4:23-24). 우리도 악한 라멕처럼 1:1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칠배를 넘어서 칠십칠배의 복수를 하려는 악한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동해보복법의 구약의 율법은 더 커질 수 있는 보복의 폐혜를 어느 정도 막을 수는 있지만 진정한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이 법은 이대로 지킨다고 해도 결국에는 서로에게 깊은 상처가 남습니다. 어떻게 하면 보복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종천 교수님의 강의대로 Pain Cylce이 아닌 Peace Cycle을 만들수 있겠습니까?

보복의 문제에 대한 우리 예수님의 새로운 해석입니다. 39절부터 42절 까지의 말씀입니다. 우리 마음에 새기며 함께 읽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보복의 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입니다. 선한 자가 아니라 악한 자입니다. 악한 자에게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주는 것을 넘어서 아예 악한 자라 할지라도 대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복의 문제를 언급하는 예를 보면, 대적이 아니라 너그러운 관용입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메세지 성경에서 이 말씀의 현대적 의미를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옛말이 또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문제가 해결되겠느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절대로 되받아치지 마라. 누가 너를 치거든 그 자리에서 맞아라. 누가 너를 법정으로 끄록 가서 네 셔츠를 달라고 소송하거든 네 가장 좋은 외투까지 잘 포장해서 선물로 주어라. 그리고 누가 너를 억울하게 이용하거든 종의 삶을 연습하는 기회로 삼아라. 똑같이 갚아주는 것은 이제 그만 하여라. 너그럽게 살아라”

우리에게 해를 가한 악한 사람에게 우리 예수님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보복이 아니라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고, 오히려 너그러운 마음의 관용을 베풀라고 명령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계속 Pain Cycle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너그러운 마음의 관용은 어떻게 베푸는 것입니까?

첫번째 예를 보면, 누군가가 우리의 오른편 뺨을 때립니다. 우리가 오른손을 사용하면 대개는 상대편의 오른쪽 뺨이 아닌 왼쪽 뺨을 때립니다. 오른손을 사용하는 사람이 상대의 오른편 뺨을 때리는 것은 손바닥이 아니라 손등으로 때리는 것이며, 이것은 우리에게도 당시의 유대 문화에도 엄청 큰 수치심을 주는 우리의 명예에 대한 모독입니다. 우리 명예에 대한 모독의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가르침은 보복이 아니라 오히려 왼편도 돌려 댐으로 자신을 낮추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법정에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선한 사람이 아니라 악한 사람에게 속옷 만이 아니라 겉옷까지 가지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 당시 문화에서 겉옷은 속옷보다 더 중요합니다. 겉옷은 밤에 잘 때는 덮고자는 담요기능도합니다. 겉옷은 우리가 아끼고 아끼는 가장 좋은 외투를 잘 포장해서 선물로 주는 것입니다.

로마 병사가 민간인을 징집해서 억지로 짐을 가지고 오 리를 가지고 청할 때는 오리가 아니라 기꺼이 십리까지 동행합니다. 예수님께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셨을 때 그 십자가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잘 지지 못하셨을 때 누가복음 23장 26절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대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로마의 군병들은 억지로 구레네 시몬에게 십자가를 지웁니다. 그럴 권한이 있습니다. 악한 자의 오 리를 가지는 부담스러운 요구에 오 리만이 아니라 십리까지 동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악한 자에게 보복하는 방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아니라 우리에게 무엇인가 구하는 사람에게는 아까워하지 말고, 기꺼이 주며,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고, 자신의 마땅한 권리까지 포기하고, 기꺼이 낮아지고, 관용하고 사랑을 베푸는 것이 악한 사람에게 진짜 멋지게 복수하는 우리 예수님의 방식이며,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에게 기대하시는 삶의 방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예수님의 멋진 복수의 방법 우리가 악한 사람을 만날 때 이렇게 복수하시며 이 말씀 그대로 순종하시며 행하시길 원하십니까? 세상 사람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되어 보이는 복수의 방법을 하라고 하십니까? 산상수훈의 팔복 가운데 첫번째 복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 5:3). 심령이 가난한 사람의 심령은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채울수 없는 가난함이고, 오직 이 마음은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마음이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외에는 채울 수 없는 마음의 가난함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격 없는 자들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과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이지, 천국이 무엇인지를 이 땅에서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바랄 것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이민 사회에서 같은 한국 사람들에게 손해 날까봐 의도적으로 한국 사람 피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부당하게 대우를 받은 대로, 당한 대로 꼭같이 보복하며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치면 맞고, 달라 하면 주고, 가자고 하면 그 이상을 가고, 구하는 자에게 주는 너그러운 관용의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입니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고, 너그럽게 관용을 베푸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입니다.

3. 원수같은 이웃 사랑

다섯번째 악한 자에게 대하는 보복의 문제는 여섯번째 이웃 사랑과 원수 사랑의 문제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6번째 주제 가운데 마지막 주제인 최고의 높은 관문은 이웃 사랑을 넘어서는 원수 사랑입니다. 우리 삶에서 원수를 만났을 때, 어떻게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할 것인가? 예수님의 이웃과 원수에 관한 말씀은 43절입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하나님은 한번도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구약 레위기 19장 18절의 부분 인용입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구약 레위기에서 원수를 갚지 말라고 했지, 원수를 미워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원수를 미워하라는 것은 예수님 당시에 구약의 율법을 해석하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방식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같은 동족과 이방인을 구분하여 대하였습니다. 원수는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에 속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를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원수는 마땅히 사랑하지 않고 미워해도 괜찮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가르침은 44절 말씀입니다. 같이 읽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메세지 성경은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너희는 옛 율법에 기록된 친구를 사랑하라는 말과 기록에는 없지만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을 잘 알고 있다. 나는 거기에 이의를 제기한다. 원수가 어떻게 하든지 너희는 최선의 모습을 보여라. 누가 너희를 힘들게 하거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여라.”

원수를 미워하는 것에서, 원수에게 원수를 갚지 않는 것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원수처럼 박해하는 자를 위해서 심지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웃 사랑의 방식에서는 원수와 이웃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을 구분하여 대하는 것은 우리 예수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46-47절 말씀입니다.“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심지어 죄인의 대명사인 세리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제자들의 수준은 세상 사람의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온전하신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아들의 수준입니다. 온전하신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 나라의 아들의 수준은 우리 하나님처럼 소중한 해와 비를 의로운 사람에게도 악한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내려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착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친절한 사람이든 비열한 사람이든, 상관없이 모두에게 가장 좋은 것을 부어주십니다. “너희가 사랑할만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고작이라면 상급을 바랄 수 있겠느냐? 그것은 누구나 하는 일이다. 너희가 만일 너희에게 인사하는 사람에게만 겨우 인사한다면 상급을 바랄 수 있겠느냐? 그것은 죄인도 흔히 하는 일이다”

로마서 12장 14-21절,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이웃 원수 사랑의 가르침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있는 체 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구약의 옛 언약의 율법을 뛰어넘는 예수님의 피와 살에 참여하는 새로운 언약의 하나님 나라에 속한 제자의 삶의 핵심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온전하심입니다. 산상수훈 5장의 결론은 48절 말씀입니다. 같이 읽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한마디로 내 말은 성숙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너희는 천국 백성이다. 그러니 천국 백성답게 살아라. 하나님이 주신 너희 신분에 합당하게 살아라.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하시는 것처럼 너희도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너그럽고 인자하게 살아라”

4.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한 손양원 목사님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마치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자를 보복하는 대적하지 않고 너그러운 관용을 마음을 품으며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수준을 넘어서 원수를 사랑하며, 원수를 불쌍히 여기며 기도해줄 수 있겠습니까? 말씀을 시작하면서 생각나는 그 악한 사람, 그 악한 원수 어떻게 하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온전하신 그 사랑과 관용과 선함이 우리 안에 충만해서 우리의 인간관계의 Pain Cycle을 끊고 Peace Cycle을 만들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정말 가능할까요?

한국 교회 역사에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별명을 가진 손양원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1902년 경남 한안에서 태어나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전라남도 여수의 나병 환자들의 교회인 여수 애양원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셨습니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는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일본에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는 십계명의 1계명과 우상에게 절하지 말며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의 2계명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일제에 끌려가 5년동안 감옥 살이를 하시고 광복을 맞이하셨습니다.

감옥에서 돌아와 다시 여수 애양원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데 3년이 못되어 여순 반란사건으로 지역의 청년 가운데 안재선이라는 청년이 공산당원이 되어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 고등학생 동인이와 중학생 동신이를 예수님을 포기하면 살려주겠다는 협박에 끝까지 예수님을 전하던 동인이와 동신이를 총으로 죽였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두 아들의 장례식에서 유명한 열가지 감사 기도를 하나님께 올리면서, 일곱번째 감사 기도에서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일으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고백했습니다.

자신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죽인 원수 안재선을 마음 속으로 이미 용서하고 양아들 삼기로 기도하며 중학생 딸 손동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딸 손동희 권사님은 이 때의 사건을 <나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라는 책에서 회고하였습니다. “동희야, 제1, 2계명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도 똑같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런데 어느 것은 순종하면서 어느 것은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 모순이 어디 있겠니?...두 오빠는 천국에 갔으나 그들을 죽인 자는 지옥에 갈 것이 분명한데, 목사로서 그 사람이 지옥 가는 것을 어떻게 보고만 있으람 말이냐? 동희야, 성경 말씀을 자세히 보아라. 분명히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다. 용서만 가지고는 안 돼. 그 학생을 살려주는 것만으로도 부족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사랑하기 위해 내 아들로 삼아야 돼. 이 아비의 뜻을 따라주렴.”

손동희 권사님은 아버지의 말씀대로 안재선이 처형당하기 직전에 눈물로 아버지의 뜻을 전하며 그 원수 안재선을 살려주었고, 안재선은 손양원 목사님의 양아들이 되었습니다. 2년후 손양원 목사님은 공산당에게 48세의 젊은 나이에 순교를 당하셨고, 안재선도 비교적 젊은 48세의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 손동희 권사님을 찾아와서 “동희야, 나는 곧 하나님 나라로 간다. 내가 죽어서 천당에 가면 네 두 오빠에게 무릎꿇고 사죄하련다”는 용서의 말을 남기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후 손양원 목사님의 양아들 안재선의 아들 안경선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관계를 고3 겨울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알게 됐습니다. 손 목사님의 아들인 손동길 목사님께서 저를 찾아와 내가 너의 작은 아버지다고 말씀하시면서 사랑의 원자탄 이라는 책을 주셨습니다. 그 책을 읽고서야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후두암으로 48세에 숨을 거두기 직전에 아들 안경선에게 “신학교에 가서 목회자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유언을 남겼습니다. 아버지 안경선은 손양원 목사님의 도움으로 신학을 전공하고 목회자가 되려고 하셨는데,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이 이뤄달라고 유언을 했습니다.

플란다스의 개 소년 네로가 마지막 까지 보고싶었던 루벤스의 그림, 십자가에서 내렴의 작품에서, 우리 주 예수님은 고통스러운 십자가에서 달리시면서 말씀이“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온전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을 믿는 우리는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절),“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롬 5:10절).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이었을때에,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온전하신 사랑으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화목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용서받고 사랑받은 죄인입니다.

5. 우리의 기도

다같이 일어나셔서 새찬송가 620장 여기에 모인 우리 함께 찬송합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는 용서받고 사랑받은 우리 입니다. 악한 자로 용서받고 원수로 사랑받은 우리는 이제 세상에서 우리 온전하신 하나님처럼 온전하신 예수님처럼 너그러운 마음으로 관용하고 원수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갑니다.

이 시간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으로 특별히 우리의 인간관계를 돌아보면서 기도하길 원합니다. 첫째는 우리의 인간관계에서 악한 사람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수준으로 보복하지 않게 하시며, 보복을 넘어 기꺼이 주며, 거절하지 말며, 마땅히 자신의 권리까지 포기하고 관용하고 사랑하는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둘째는, 우리의 인간관계에게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어려움을 준 우리 가족, 우리 공동체 내의 원수같은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우리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충만해서 기꺼이 사랑으로 품을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조롱하고 박해하던 자를 위하여 우리 예수님 기도하시면서 하신 말씀대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게 하여 달라고 이 시간 간구합니다.

악인과 선인에게 해를 비추시며, 의인과 불의한 자에게도 비를 내려주시는 우리 자비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 시간 하늘 아버지의 온전하심이 이 땅의 하나님의 아들과 딸인 우리를 통해서도 이루어지길 간구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도 온전한 자가 되어 이 땅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지극히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사랑하심과 용서하심을 드러낼 수 있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 하나님 나라의 제자로 살게 하옵소서. 우리의 모든 인간관계 속에서 악을 악으로 갚지 말게 하시며,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화목하며, 선으로 악을 이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왼편도 돌려대며, 겉옷까지도 주며, 십리까지 동행하고, 주며, 거절하지 않으며, 원수를 사랑하며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넉넉한 관용과 사랑을 부어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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