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2장 11-25절 고통을 들으시는 하나님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04-11 18:13
Views
530
1. 고통이 변하여 은혜로, 은혜가 변하여 고통으로
지난 수요일부터 매일성경 말씀은 구약의 출애굽기의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은 종종 전화위복과 새옹지마라는 중국의 고사성어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전화위복은 화가 변하여 복이 된다는 의미이며, 새옹지마는 새옹이라는 사람의 말이라는 고사성어입니다. 중국의 변방지역의 노인이 멋진 말을 데리고 오는데 사람들이 축하해주는데도 노인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얼마 후에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발이 부러졌습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노인은 별로 슬퍼하지 않는다. 발이 부러진 아들은 마침 전쟁에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전화위복, 새옹지마 같은 우리 인생의 모습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나쁜 일이 때로는 좋은 일이되기도 하고, 반면에 좋은 일은 나쁜 일이 되기도 합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애굽으로 팔린 일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온 세상의 가뭄의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셉 덕분에 애굽에서 잘 먹고 살면서 엄청나게 많은 인구로 불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씨에 관한 언약이 성취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요셉이 죽고 요셉의 시대 사람이 다 죽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의 2백만명 이상의 엄청난 인구로 늘어나고 애굽에도 새로운 왕조가 바뀌었습니다. 애굽의 새로운 왕조가 일어나서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살인적인 노동을 부과하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삶의 현실로 바뀌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은 지금 고통이신지요? 아니면 고통이 변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있는지요?
2. 모세의 고통의 시작
오늘 본문의 모세의 삶은 하루 아침에 바로의 공주의 아들에서 미디안 광야의 비참한 삶의 고통으로 변화되어집니다. 2장 10절 모세의 성장배경입니다.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사내 아이는 죽이라는 애굽의 바로의 명을 거절한 제사장 지파인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난 아들이었습니다. 부모가 석달동안을 숨어서 키우다가 도저히 감당이 안되어 애굽의 나일 강가에 두었는데, 마침 애굽의 바로의 공주의 딸이 모세를 물에서 건져내어서 아들로 삼았습니다. 하루 아침에 그 신분이 죽임을 당할 위기에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엄청난 은혜이며 복입니다.
그런데, 그 모세의 마음에는 늘 자신의 정체성이 애굽의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의 애굽 사람이 아닌, 고통 받는 히브리 사람의 마음에 있습니다. 계속해서 고통받는 동족 히브리 사람의 고통을 그냥 지켜만 볼 수 없기에 11-12절 모세는 의도하지 않게 애굽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의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같은 동족인 고통받는 히브리 사람을 도와주다가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에서 하루 아침에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동족의 고통받는 모습을 도와주다가 모세의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15절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살인자 모세를 죽이고자 하는 바로의 명령에 살인자 모세가 피할 수 있는 곳은 유목민인 미디안 사람이 거주하는 땅으로 도망치게 되었습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40년간 호와롭게 살던 모세의 삶이 이제는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을 치는 비참한 삶으로 고통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무려 40년간을 잊혀진 사람으로 고통 속에서 살아갑니다. 제사장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고 모세는 그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다는 나그네, 외국인 거류민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지금 미국 이 땅에 살지 않고 우리 조국에서 살았더면 더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가끔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곳에 두셨을까? 조국에 있다면 말 통하고 누구든지 만날 수 있고, 우리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가족이 있고 친구도 있는데 나그네처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참 힘들고 더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3.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스러운 삶
미디안 광야에서의 모세의 고통스러운 삶은 마치 애굽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삶 같습니다. 23절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스러운 삶입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기근이 가득했던 가나안 땅에서 애굽으로 이민을 와서 자녀들을 낳고 잘 살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셉이 죽고 애굽의 왕조가 바뀌자 하루 아침에 고된 노동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비참한 고통의 연속입니다. 하루 하루 고된 노동으로 그들은 고통스럽습니다. 고된 노동으로 인해서 탄식하는 한 숨이 가득합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계속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시편 44편을 보면, 애굽에서 겪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하나님 백성들의 고통의 모습이 나옵니다. 시편 44편 9절-15절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하게 하시고…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웃에게 욕을 당하게 하시니 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조소하고 조롱하나이다 주께서 우리를 뭇 백성 중에 이야기거리가 되게 하시며 민족 중에서 머리 흔듦을 당하게 하셨나이다 나의 능욕이 종일 내 앞에 있으며 수치가 내 얼굴을 덮었으니.”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는데 주어가 놀랍게도 우리가 아니라 주께서, 우리 주님이십니다. 주께서 우리를 대적들에게 지게하시고, 넘겨주셨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지금의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고난도 이길 수 있고, 전쟁도 승리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우리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마치 우리를 잡아 먹힐 양처럼 우리의 대적들에게 넘겨주시고 어떻게 주님의 백성을 헐값에 파시는 것 처럼 파신다는 말 입니까? 어떻게 주님의 백성을 온 백성의 조소거리, 조롱거리로 만듭니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지금의 상황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해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하셨다면,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고통 가운데 놓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로소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고통 가운데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통 가운데 두셨다면 가장 먼저 그 고통의 상황에서 부르짖으면서 기도하는 법을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24-25절 고통 가운데 부르짖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우리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 같이 읽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 가운데 올려드리는 그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들으십니다. 과거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을 잊지 않고 반드시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돌보십니다. 고통 가운데 올려드린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돌보셨습니다.
4. 우리의 기도
이시간 조용히 우리의 삶의 고통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며 기도하길 원합니다. 건강에 문제가 있는지요? 삶이 어렵고 힘든지요? 이해하기 힘든 고통의 상황인지요? 이 시간 그 아픔과 고통과 절망도 우리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냥 넘어져 주저 앉지 않게 하시며, 절망 속에서도 우리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끈을 놓지 않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깨시옵소서. 오, 하나님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하나님 아버지의 그 은혜와 인자하심을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역사하여주시길 간구합니다.”
은혜와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에 부어주시는 풍성한 은혜로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그러나 현재 겪고 있는 고난과 고통이 너무 괴롭고 이해되지 않습니다. 모세의 삶을 하루 아침에 바로의 공주의 아들에서 미디안의 비참한 목동으로 살게 하시는 하나님, 애굽에서 비참한 노예로 하루 하루 고된 노동으로 부르짖는 하나님 백성으로 살게 하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산다고 살았지만 왜 이런 어려움이 있는지 때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 오직 하나님만 바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여, 도우소서. 주여, 일어나 깨시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실 분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하게 하시며, 찬양하게 하시며, 기도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게 하옵소서. 이 시간 우리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 나이들고,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외롭고 힘들지라도 우리 하나님 힘 주시고, 위로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어 강건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고통을 들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넉넉히 이기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지난 수요일부터 매일성경 말씀은 구약의 출애굽기의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은 종종 전화위복과 새옹지마라는 중국의 고사성어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전화위복은 화가 변하여 복이 된다는 의미이며, 새옹지마는 새옹이라는 사람의 말이라는 고사성어입니다. 중국의 변방지역의 노인이 멋진 말을 데리고 오는데 사람들이 축하해주는데도 노인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얼마 후에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발이 부러졌습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노인은 별로 슬퍼하지 않는다. 발이 부러진 아들은 마침 전쟁에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전화위복, 새옹지마 같은 우리 인생의 모습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나쁜 일이 때로는 좋은 일이되기도 하고, 반면에 좋은 일은 나쁜 일이 되기도 합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애굽으로 팔린 일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온 세상의 가뭄의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셉 덕분에 애굽에서 잘 먹고 살면서 엄청나게 많은 인구로 불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씨에 관한 언약이 성취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요셉이 죽고 요셉의 시대 사람이 다 죽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의 2백만명 이상의 엄청난 인구로 늘어나고 애굽에도 새로운 왕조가 바뀌었습니다. 애굽의 새로운 왕조가 일어나서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살인적인 노동을 부과하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삶의 현실로 바뀌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은 지금 고통이신지요? 아니면 고통이 변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있는지요?
2. 모세의 고통의 시작
오늘 본문의 모세의 삶은 하루 아침에 바로의 공주의 아들에서 미디안 광야의 비참한 삶의 고통으로 변화되어집니다. 2장 10절 모세의 성장배경입니다.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사내 아이는 죽이라는 애굽의 바로의 명을 거절한 제사장 지파인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난 아들이었습니다. 부모가 석달동안을 숨어서 키우다가 도저히 감당이 안되어 애굽의 나일 강가에 두었는데, 마침 애굽의 바로의 공주의 딸이 모세를 물에서 건져내어서 아들로 삼았습니다. 하루 아침에 그 신분이 죽임을 당할 위기에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엄청난 은혜이며 복입니다.
그런데, 그 모세의 마음에는 늘 자신의 정체성이 애굽의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의 애굽 사람이 아닌, 고통 받는 히브리 사람의 마음에 있습니다. 계속해서 고통받는 동족 히브리 사람의 고통을 그냥 지켜만 볼 수 없기에 11-12절 모세는 의도하지 않게 애굽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의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같은 동족인 고통받는 히브리 사람을 도와주다가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에서 하루 아침에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동족의 고통받는 모습을 도와주다가 모세의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15절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살인자 모세를 죽이고자 하는 바로의 명령에 살인자 모세가 피할 수 있는 곳은 유목민인 미디안 사람이 거주하는 땅으로 도망치게 되었습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40년간 호와롭게 살던 모세의 삶이 이제는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을 치는 비참한 삶으로 고통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무려 40년간을 잊혀진 사람으로 고통 속에서 살아갑니다. 제사장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고 모세는 그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다는 나그네, 외국인 거류민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지금 미국 이 땅에 살지 않고 우리 조국에서 살았더면 더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가끔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곳에 두셨을까? 조국에 있다면 말 통하고 누구든지 만날 수 있고, 우리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가족이 있고 친구도 있는데 나그네처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참 힘들고 더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3.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스러운 삶
미디안 광야에서의 모세의 고통스러운 삶은 마치 애굽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삶 같습니다. 23절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스러운 삶입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기근이 가득했던 가나안 땅에서 애굽으로 이민을 와서 자녀들을 낳고 잘 살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셉이 죽고 애굽의 왕조가 바뀌자 하루 아침에 고된 노동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비참한 고통의 연속입니다. 하루 하루 고된 노동으로 그들은 고통스럽습니다. 고된 노동으로 인해서 탄식하는 한 숨이 가득합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계속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시편 44편을 보면, 애굽에서 겪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하나님 백성들의 고통의 모습이 나옵니다. 시편 44편 9절-15절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하게 하시고…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웃에게 욕을 당하게 하시니 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조소하고 조롱하나이다 주께서 우리를 뭇 백성 중에 이야기거리가 되게 하시며 민족 중에서 머리 흔듦을 당하게 하셨나이다 나의 능욕이 종일 내 앞에 있으며 수치가 내 얼굴을 덮었으니.”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는데 주어가 놀랍게도 우리가 아니라 주께서, 우리 주님이십니다. 주께서 우리를 대적들에게 지게하시고, 넘겨주셨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지금의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고난도 이길 수 있고, 전쟁도 승리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우리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마치 우리를 잡아 먹힐 양처럼 우리의 대적들에게 넘겨주시고 어떻게 주님의 백성을 헐값에 파시는 것 처럼 파신다는 말 입니까? 어떻게 주님의 백성을 온 백성의 조소거리, 조롱거리로 만듭니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지금의 상황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해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하셨다면,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고통 가운데 놓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로소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고통 가운데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통 가운데 두셨다면 가장 먼저 그 고통의 상황에서 부르짖으면서 기도하는 법을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24-25절 고통 가운데 부르짖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우리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 같이 읽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 가운데 올려드리는 그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들으십니다. 과거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을 잊지 않고 반드시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돌보십니다. 고통 가운데 올려드린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돌보셨습니다.
4. 우리의 기도
이시간 조용히 우리의 삶의 고통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며 기도하길 원합니다. 건강에 문제가 있는지요? 삶이 어렵고 힘든지요? 이해하기 힘든 고통의 상황인지요? 이 시간 그 아픔과 고통과 절망도 우리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냥 넘어져 주저 앉지 않게 하시며, 절망 속에서도 우리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끈을 놓지 않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깨시옵소서. 오, 하나님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하나님 아버지의 그 은혜와 인자하심을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역사하여주시길 간구합니다.”
은혜와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에 부어주시는 풍성한 은혜로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그러나 현재 겪고 있는 고난과 고통이 너무 괴롭고 이해되지 않습니다. 모세의 삶을 하루 아침에 바로의 공주의 아들에서 미디안의 비참한 목동으로 살게 하시는 하나님, 애굽에서 비참한 노예로 하루 하루 고된 노동으로 부르짖는 하나님 백성으로 살게 하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산다고 살았지만 왜 이런 어려움이 있는지 때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 오직 하나님만 바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여, 도우소서. 주여, 일어나 깨시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실 분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하게 하시며, 찬양하게 하시며, 기도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게 하옵소서. 이 시간 우리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 나이들고,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외롭고 힘들지라도 우리 하나님 힘 주시고, 위로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어 강건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고통을 들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넉넉히 이기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Total Reply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