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0장 19-26절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03-20 09:06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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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새벽기도회 설교 음성파일은 왼쪽에 있습니다.
1. 예루살렘 성전에서 받은 질문
갈릴리에서 시작된 긴 여정 끝에 예수님은 마침내 예루살렘에 도착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중심은 성전입니다. 다윗이 마음을 다해 준비하고,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을 하나님께 봉헌하면서 솔로몬은 성전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소로 봉헌했습니다. 성전은 이 땅의 모든 만민이 만민을 위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룩한 기도의 집으로 성전을 봉헌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루살렘의 성전은 우리 예수님 보시기에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강도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핵심 세력들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백성의 지도자들은 성전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고 계신 예수님을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누가복음 19장 47-48절 이들의 생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
예수님을 향한 예루살렘 성전 세력들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그들은 이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바로 앞의 본문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들은 그들은 이제는 더 이상 자신들의 생각을 감추지 않고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죽일지 구체적으로 음모를 실행합니다. 누가복음 20장 19-20절 이들의 음모의 실천입니다.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이에 그들이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다스림과 권세 아래에 넘기려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성전에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보낸 스파이 정탐들은 마태복음에서는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전의 핵심 세력인 대제사장과 서기관,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바리새인들, 그리고 로마 제국에 기댄 정치 세력인 헤롯당원들이 결합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도무지 하나가 될 수 없는 정치적으로 보면 극과 극의 서로 다른 사람들인데 공통의 목표인 예수님 제거를 위해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오늘 본문 누가복음 19장 22절의 질문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 하니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이르시되” 이 간교한 질문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가장 골치아프고 의견이 분분한 로마 제국의 시민이 아닌 속국의 백성들이 로마 제국에 바치는 한 데나리온의 인두세 문제입니다. 로마 제국의 황제에게 집적 내는 인두세는 같은 동족 세리가 걷는 세금과 구분되는 세금입니다. 로마 제국에 내는 인두세는 로마 황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기에 거부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주후 6년 갈릴리 지역의 유대인들은 인두세 내기를 거부하며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인두세에 관한 이 질문은 로마 제국을 인정하는 것이 옳습니까? 아니면 로마 제국을 인정하지 않고 세금도 내지 않고 이스라엘의 독립을 추구하는 저 열심당원의 행동처럼 하는 것이 옳습니까?라는 질문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보통 질문이 아니라 상당히 논쟁적이고 정치적인 질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만약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다고 한다면,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많은 백성들을 잃을 것이고,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면 로마에 대한 반역세력이라고 로마 총독에게 고소의 근거가 되어 로마 총독의 다스림과 권세 아래에 넘길 수 있게 됩니다.
2. 가이사의 것
예수님은 이 질문이 그들의 간교한 계략임을 아시고, 24절에 오히려 이렇게 질문하시고 답변하셨습니다.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누구의 형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예수님 당시 데나리온 동전 앞면에는 로마 황제인 티베리우스의 형상과 뒷면에는 “티베리우스 황제 지존한 신의 아들 지존자”라는 글귀와 황제의 어머니 리바아의 모습과 황제의 또 다른 직책인 “PONTIF MAXIM(대제사장)”라는 글귀가 새겨져있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이 일상의 삶에서 사용하는 데나리온은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형상이 새겨져 있지만 데나리온 동전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로마 제국의 영향력 안에서 살아가려면 싫든 좋든 모두 데나리온을 사용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셨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는 것입니다. 가이사에게 인두세를 내는 것을 부정하신 것이 아니라 인정하신 것입니다. 로마 정부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로마 정부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세금을 마땅히 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 민족주의자들과 열심당원들의 정치적인 가르침처럼 로마 제국을 정복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정치적 메시야가 아닙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에 놓인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세상 나라의 왕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왕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장 7-7절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비슷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바치는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이 땅을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하나님 나라에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세상의 삶도 있습니다. 우리는 두 나라 국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정부주의자들이 아니라 마땅히 정부에 세금을 잘 내야 합니다. 미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도 미국의 조세 규정을 따라 간접적인 세금도 내고, property tax 재산세도 내고, 소득에 따라 연방세, Social Security tax, Medicare tax도 내야 합니다. 2021년은 2월 12일부터 시작해서 4월 15일에서 한달 더 연장을 받아 5월 17일까지 2020년 텍스 보고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로마 제국에 내는 인두세를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마치 예수님이 친 로마 정부적인 가르침에 동의하신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로마 정부의 법을 준수하고, 세금도 내야하지만, 하나님의 법과 반대가 되는 로마 정부의 모든 법을 다 준수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3. 하나님의 것
가이사의 것이 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것도 있습니다. 로마의 황제 가이사보다 더 크신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 드릴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매년 예루살렘 성전을 위한 반 세겔의 성전세입니다. 유대인들은 매년 성전의 유지, 관리를 위해서 반 세겔의 성전세를 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손으로 지은 성전보다 크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이시지만, 예수님은 제자 베드로와 함께 성전세를 내셨습니다. 마태복음 17장 27절에서 제자 베드로에게 성전세를 위하여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예수님은 제자 베드로와 예수님 자신을 위해서 돈 한 세겔의 성전세를 내셨습니다.
하나님의 것은 성전세가 전부가 아닙니다.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바 마태복음 23장 23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정의와 긍휼과 믿음도 중요하지만 박하와 회향과 근채와 같은 사소한 것의 십일조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 십일조에 대해서 논란이 많습니다. 십일조는 율법 이전에 아브라함도 자발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왕이며 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감사함으로 드렸습니다.
얼마 전 둘째 딸 가은이가 여름방학에 미시간 꼭 가고 싶다고 한달동안 열심히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소중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저와 아내의 마음이 어찌 그리 감사했는지요!!! 셀폰비 40불도 받았다가 다시 돌려주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는 정직하라고 감사하라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선물로 주셨는데 그 중에서 십분의 일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마땅히 드려야한다고 가르쳐주었습니다. 가정의 부모님이 우리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십일조 드리는 훈련을 시킨다면 우리 자녀들 믿음의 길에서 어떻게 떠나겠습니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다 드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도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잘 드려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전세와 십일조만 하나님의 것입니까?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 받아 누리는 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에 언젠가는 다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이 땅의 삶이 끝나서 하나님이 불러주시면 우리가 그동안 소중하게 모은 모든 재산도 재물도 예금과 주식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어려운 질문으로 예수님을 책잡으려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의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지혜로운 답변에 책잡지 못하고 그저 놀랍게 침묵할 뿐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이 말씀에 순종하길 원합니다. 예수님을 따라는 제자의 길은 친 로마도 반 로마도 아닙니다. 국가를 부정하지 않고 인정합니다. 트럼프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세금을 내야하고, 바이든이 마음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미국에 사는동안에는 세금을 내야합니다. 그러나 국가가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따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재물 얻을 수 있는 힘도 주시고 지혜도 주신 하나님께 몸과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온전히 산 제사로 드립니다.
4. 우리의 기도
이 시간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서 기도하길 원합니다. 첫째, 가이사에게 속한 가이사의 것이 있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삶에서도 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세상에서 감당해야 하는 마땅한 의무가 있습니다. 불성실한 모습으로 세상에 책 잡히지 않고 우리의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행합니다. 둘째, 가이사보다 크신 살아계신 하나님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하는 신앙의 의무도 있고, 신앙의 의무를 넘어 우리의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다해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헌신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 삶의 모든 것의 주인되신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예수님을 통해서 주신 말씀을 순종하길 원합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귀한 말씀을 받으며 오늘도 말씀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 (벧전 2:13) 하길 원합니다. 폭력과 혁명이 아닌 법과 질서를 따라 살아가는 성숙한 변혁의 시민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며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세상으로 보내신 것처럼, 우리도 세상에 보냄받은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기억하며 오늘도 믿음으로 신실하게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예루살렘 성전에서 받은 질문
갈릴리에서 시작된 긴 여정 끝에 예수님은 마침내 예루살렘에 도착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중심은 성전입니다. 다윗이 마음을 다해 준비하고,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을 하나님께 봉헌하면서 솔로몬은 성전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소로 봉헌했습니다. 성전은 이 땅의 모든 만민이 만민을 위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룩한 기도의 집으로 성전을 봉헌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루살렘의 성전은 우리 예수님 보시기에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강도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핵심 세력들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백성의 지도자들은 성전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고 계신 예수님을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누가복음 19장 47-48절 이들의 생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
예수님을 향한 예루살렘 성전 세력들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그들은 이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바로 앞의 본문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들은 그들은 이제는 더 이상 자신들의 생각을 감추지 않고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죽일지 구체적으로 음모를 실행합니다. 누가복음 20장 19-20절 이들의 음모의 실천입니다.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이에 그들이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다스림과 권세 아래에 넘기려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성전에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보낸 스파이 정탐들은 마태복음에서는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전의 핵심 세력인 대제사장과 서기관,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바리새인들, 그리고 로마 제국에 기댄 정치 세력인 헤롯당원들이 결합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도무지 하나가 될 수 없는 정치적으로 보면 극과 극의 서로 다른 사람들인데 공통의 목표인 예수님 제거를 위해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오늘 본문 누가복음 19장 22절의 질문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 하니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이르시되” 이 간교한 질문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가장 골치아프고 의견이 분분한 로마 제국의 시민이 아닌 속국의 백성들이 로마 제국에 바치는 한 데나리온의 인두세 문제입니다. 로마 제국의 황제에게 집적 내는 인두세는 같은 동족 세리가 걷는 세금과 구분되는 세금입니다. 로마 제국에 내는 인두세는 로마 황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기에 거부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주후 6년 갈릴리 지역의 유대인들은 인두세 내기를 거부하며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인두세에 관한 이 질문은 로마 제국을 인정하는 것이 옳습니까? 아니면 로마 제국을 인정하지 않고 세금도 내지 않고 이스라엘의 독립을 추구하는 저 열심당원의 행동처럼 하는 것이 옳습니까?라는 질문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보통 질문이 아니라 상당히 논쟁적이고 정치적인 질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만약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다고 한다면,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많은 백성들을 잃을 것이고,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면 로마에 대한 반역세력이라고 로마 총독에게 고소의 근거가 되어 로마 총독의 다스림과 권세 아래에 넘길 수 있게 됩니다.
2. 가이사의 것
예수님은 이 질문이 그들의 간교한 계략임을 아시고, 24절에 오히려 이렇게 질문하시고 답변하셨습니다.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누구의 형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예수님 당시 데나리온 동전 앞면에는 로마 황제인 티베리우스의 형상과 뒷면에는 “티베리우스 황제 지존한 신의 아들 지존자”라는 글귀와 황제의 어머니 리바아의 모습과 황제의 또 다른 직책인 “PONTIF MAXIM(대제사장)”라는 글귀가 새겨져있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이 일상의 삶에서 사용하는 데나리온은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형상이 새겨져 있지만 데나리온 동전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로마 제국의 영향력 안에서 살아가려면 싫든 좋든 모두 데나리온을 사용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셨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는 것입니다. 가이사에게 인두세를 내는 것을 부정하신 것이 아니라 인정하신 것입니다. 로마 정부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로마 정부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세금을 마땅히 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 민족주의자들과 열심당원들의 정치적인 가르침처럼 로마 제국을 정복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정치적 메시야가 아닙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에 놓인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세상 나라의 왕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왕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장 7-7절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비슷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바치는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이 땅을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하나님 나라에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세상의 삶도 있습니다. 우리는 두 나라 국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정부주의자들이 아니라 마땅히 정부에 세금을 잘 내야 합니다. 미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도 미국의 조세 규정을 따라 간접적인 세금도 내고, property tax 재산세도 내고, 소득에 따라 연방세, Social Security tax, Medicare tax도 내야 합니다. 2021년은 2월 12일부터 시작해서 4월 15일에서 한달 더 연장을 받아 5월 17일까지 2020년 텍스 보고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로마 제국에 내는 인두세를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마치 예수님이 친 로마 정부적인 가르침에 동의하신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로마 정부의 법을 준수하고, 세금도 내야하지만, 하나님의 법과 반대가 되는 로마 정부의 모든 법을 다 준수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3. 하나님의 것
가이사의 것이 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것도 있습니다. 로마의 황제 가이사보다 더 크신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 드릴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매년 예루살렘 성전을 위한 반 세겔의 성전세입니다. 유대인들은 매년 성전의 유지, 관리를 위해서 반 세겔의 성전세를 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손으로 지은 성전보다 크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이시지만, 예수님은 제자 베드로와 함께 성전세를 내셨습니다. 마태복음 17장 27절에서 제자 베드로에게 성전세를 위하여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예수님은 제자 베드로와 예수님 자신을 위해서 돈 한 세겔의 성전세를 내셨습니다.
하나님의 것은 성전세가 전부가 아닙니다.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바 마태복음 23장 23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정의와 긍휼과 믿음도 중요하지만 박하와 회향과 근채와 같은 사소한 것의 십일조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 십일조에 대해서 논란이 많습니다. 십일조는 율법 이전에 아브라함도 자발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왕이며 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감사함으로 드렸습니다.
얼마 전 둘째 딸 가은이가 여름방학에 미시간 꼭 가고 싶다고 한달동안 열심히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소중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저와 아내의 마음이 어찌 그리 감사했는지요!!! 셀폰비 40불도 받았다가 다시 돌려주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는 정직하라고 감사하라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선물로 주셨는데 그 중에서 십분의 일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마땅히 드려야한다고 가르쳐주었습니다. 가정의 부모님이 우리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십일조 드리는 훈련을 시킨다면 우리 자녀들 믿음의 길에서 어떻게 떠나겠습니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다 드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도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잘 드려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전세와 십일조만 하나님의 것입니까?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 받아 누리는 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에 언젠가는 다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이 땅의 삶이 끝나서 하나님이 불러주시면 우리가 그동안 소중하게 모은 모든 재산도 재물도 예금과 주식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어려운 질문으로 예수님을 책잡으려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의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지혜로운 답변에 책잡지 못하고 그저 놀랍게 침묵할 뿐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이 말씀에 순종하길 원합니다. 예수님을 따라는 제자의 길은 친 로마도 반 로마도 아닙니다. 국가를 부정하지 않고 인정합니다. 트럼프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세금을 내야하고, 바이든이 마음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미국에 사는동안에는 세금을 내야합니다. 그러나 국가가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따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재물 얻을 수 있는 힘도 주시고 지혜도 주신 하나님께 몸과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온전히 산 제사로 드립니다.
4. 우리의 기도
이 시간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서 기도하길 원합니다. 첫째, 가이사에게 속한 가이사의 것이 있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삶에서도 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세상에서 감당해야 하는 마땅한 의무가 있습니다. 불성실한 모습으로 세상에 책 잡히지 않고 우리의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행합니다. 둘째, 가이사보다 크신 살아계신 하나님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하는 신앙의 의무도 있고, 신앙의 의무를 넘어 우리의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다해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헌신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 삶의 모든 것의 주인되신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예수님을 통해서 주신 말씀을 순종하길 원합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귀한 말씀을 받으며 오늘도 말씀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 (벧전 2:13) 하길 원합니다. 폭력과 혁명이 아닌 법과 질서를 따라 살아가는 성숙한 변혁의 시민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며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세상으로 보내신 것처럼, 우리도 세상에 보냄받은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기억하며 오늘도 믿음으로 신실하게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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