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5장 17-26절 산상수훈 (11) 율법과 더 나은 의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03-0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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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로나 시대의 유익과 사역의 우선순위
답답한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를 보내고 있지만, 코로나 시대의 가장 큰 유익은 너무나 많은 좋은 강의들이 무제한으로 온라인으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 마음만 먹으면 이 어려운 시기를 평생 학습을 위한 단단한 기초로 쌓을 수 있는 역사상 가장 복된 시기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난 주일 저녁에는 고등학교 동창이며 총신대 신학대학원 동기인 친구 이종필 목사님이 한국에서 밴쿠버 지역의 목사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 감사함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목회자라는 주제로 줌으로 하는 강의를 하는 시간에 뉴멕시코에서 살고 있는 저도 감사함으로 참여를 했습니다. 어렴풋이 알고있던 그리스 로마 신화와 현대 문화의 중요성을 배우고 더 깊이 알고 싶어서 유투브에 올라와 있는 서울대 인문학부 김헌 교수님의 최강 1교시 그리스 로마 신화 강의를 정말 재미있게 들으면서 정리를 하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유럽 중세사를 전공했고 밴쿠버의 기독교 세계관 대학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시는 최종원 교수님과 함께 하는 기독교 역사와 교회 이야기 강의를 정말 재미있게 수강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역사를 사회학적인 시각으로 강의해 주시는 교수님을 통해서 새로운 통찰력을 얻고 있습니다.
수요일 저녁 우리 성도님들과 온라인 줌으로 구약의 파노라마를 공부하면서 어려운 구약의 말씀을 재미있는 방식으로 공부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저도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갈릴리장로교회 담임목회자로 살면서 지금도 저의 가장 우선순위는 세 가지입니다. 생각나실 때마다 기도 부탁도 드립니다. 첫째는 가르치기 위해서 열심히 배우는 사역입니다. 배움과 가르침의 저의 모토는 오늘 배우지 않으면 내일 가르칠 수 없다! 가르치거나 배우거나! 달라스 신학대학원의 하워드 핸드릭슨 교수님의 소중한 가르침입니다. 제가 잘 가르치기 위해서 열심으로 배울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3월 고난주간의 말씀 사경회를 위해서 성도를 세우는 5가지 기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4월 이종천 교수님과 함께 하는 세미나와 가정을 세우는 크리스천 홈 세미나를 위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전파하기 위해서 열심히 배우고 훈련하고 복음 전하는 사역입니다. 천하 보다 귀한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고 구원하기 위하여 발과 손으로 부지런히 움직이고 열심을 품고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로 살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셋째는 치유하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는 사역입니다. 격주로 목요일 오전 시간은 탁월한 기도의 멘토 다니엘 헨더슨 목사님께서 사도행전 6장 4절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이 말씀을 중심으로 쓰신 Old Paths and New Power라는 책을 미국 전역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10분의 미국 목사님들과 삶과 사역을 나누며 배우고 훈련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함으로 기도 사역을 배우고 도전 받고 있는지요!!!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하는 사역 우리 예수님의 이 땅에서 메시야로 사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신 세 가지 사역입니다. 예수님의 세 가지 사역을 보면 우리 예수님의 메시야,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의 세 가지 아주 중요한 직분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치유하시는 우리 예수님의 사역은 제사장직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죄를 위하여 스스로 제물이 되어주신 대제사장이십니다. 전파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음을 보여주시며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이 땅에 임하였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가르치시는 우리 예수님의 사역은 예수님이 선지자로 이 땅에 오셨음을 말씀합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는 제사장이 되시는 예수님, 우리가 믿음을 고백하고 우리의 삶을 전적으로 헌신해야 하는 왕이신 예수님, 그리고 우리가 듣고 배우고 가르침을 받아야 할 선지자이신 우리 예수님의 3가지 직분과 사역을 우리도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
2. 산상수훈의 하나님 나라의 윤리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예수님의 가르치심의 사역의 가장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계속 살펴보면서 예수님이 선포하시고 가르셔주시는 하나님 나라, 하늘 나라, 천국의 가르침을 깊이 있게 생각하며 배우고 있습니다. 산상수훈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입니다. 세상의 나라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백성들, 제자들의 윤리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계시는 산상수훈의 하나님 나라의 윤리는 구약의 옛 언약과는 연속성도 있고, 분명한 차이점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옛 언약에 속한 율법과 선지자를 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연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율법보다 더 나은 의를 요구하시는 측면에서 구약의 율법을 더 심화시켜서 해석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20절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5:20).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가르치는 구약의 율법보다 더 나은 의를 요구하십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가르치는 구약의 율법보다 더 나은 의를 예수님은 옛 언약의 율법과 대조를 보이는 새 언약의 성격에 대해서 6개의 대조를 가지고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산상수훈 5장에 나타나 있는 6가지 주제는 살인, 간음, 이혼, 맹세, 보복, 이웃 사랑입니다. 산상수훈의 형식을 보면, 이 6가지 주제에 대해서 옛 언약의 질서에 속한 율법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중에서 첫번째 가르침인 살인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3. 살인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오늘 본문 21-22절 말씀 같이 읽습니다.“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이 구약의 말씀은 지금도 우리가 순종하고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살인하지 말라. 출애굽기 19장에서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율법 가운데 십계명에 속하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3절 말씀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신명기 5장 이번에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모압에서 출애굽 2세대들과 맺은 모압 언약의 말씀으로 주신 십계명의 5번째 계명인 신명기 5장 17절 “살인하지 말라” 말씀입니다. 레위기 24장 17절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살인하는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명은 반드시 죽이라는 말씀입니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언약의 말씀, 모압에서 출애굽 2세대들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언약의 말씀인 십계명의 5번째 계명을 오늘날 21세기 미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지켜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오늘 마태복음 5장 17-19절의 예수님의 말씀은 십계명의 말씀이 오늘날도 우리에게 유효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페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 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예수님은 옛 언약에 속한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지 않고, 완전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의 일점 일획도 온 세상이 없어지기 전에는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진다고 말씀합니다. 옛 언약에 속한 말씀도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그 말씀을 버리고, 그 말씀을 버리라고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사람이며, 그 말씀을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이 살인하지 말라는 5번째 계명의 말씀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시는 소중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정말 살인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와 근거는 무엇입니까? 살인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와 근거는 신약 성경이 아니라 구약 성경에 있습니다. 창세기 9장 6절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언약을 맺으시면서 주신 하나님 말씀입니다. 창세기 9장 1-6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슴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시고, 노아와 그 세 아들들에게 주신 선물이 있습니다.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피채 먹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생명의 피라고 말씀합니다. 피는 생명의 근원입니다. 생명의 근원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기에 금하십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지 말아야 하는 아주 중요한 이유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외모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있는 지식과 의와 거룩같은 하나님의 형상을 사람에게만 주었기에 사람은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어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주 존귀한 존재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살인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율법의 6계명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했습니다. 사람의 피를 흘리지 않으면 살인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로 말씀하십니다. 22절 말씀 우리 다시 한번 천천히 읽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살인하지 말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명백한 말씀에도 살인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살인하지 말라는 그 귀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살인하지 않도록 만들 수 있는 있는 능력이 있습니까? 살인하지 말라는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우리는 살인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받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3-4절에서 그 중요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옛 언약의 율법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담겨있지만, 그 율법은 연약하여, 그 율법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율법의 말씀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주지 못합니다. 살인하지 말라.
그 말씀의 근본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사람을 문자적으로 죽이는 것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더 깊이 나아갑니다. 형제에게 노하는 자는 살인입니다. 형제에게 라가라 하는 자도 살인입니다.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고 말하는 것도 살인입니다. 형제에게 노하는 것은 분노하는 것입니다. 분노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살인입니다. 형제에게 라가라 하는 것은 형제에게 바보라 하는 것이며,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는 것은 말로 모욕하는 것은 입니다. 다른 계명은 몰라도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켰다고 자부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율법을 새롭게 해석하시면서 그 율법의 근본적인 의미를 밝혀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해석에 의하면 우리는 살인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어기며 살고 있습니까?
마태복음 5장 23-24절 살인의 의미를 더 깊이 해석하십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예물을 제단에 드리는 일은 예수님 당시에는 오직 예루살렘에서만 드립니다. 예물을 드리는 제사를 드리기위해서 엄청난 시간과 물질을 들여 하나님 앞에 정성껏 제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그 소중한 제사를 드리는 문제보다 더 심각하게 여기는 것이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가? 형제와 화목하는가? 그것이 소중한 제사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저 멀리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100마일이 넘는 거리이며, 작정하고 걸으면 35시간 걸리는 엄청나게 먼 거리인데,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면 당장 제사를 멈추고 형제와 화목하는 문제가 더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5장 25-26절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사람의 마음이 완왁해서 한 번 마음에 먹은 분노를 거두려하지 않습니다. 한번 마음에 새긴 상처를 두고 두고 마음에 쌓아두고 사화 settle 해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형제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마음 속에 계속 품고 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살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남편과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마음에서 분노를 품습니다. 마음속에서 라가라는 말이 목 구멍까지 올라옵니다. 저 미련한 놈이라는 저주의 욕설이 우리도 모르게 입에서 나옵니다. 남편과 아내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어도 화목하려고 하지 않고 두고 두고 마음에 담습니다. 남편과 아내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계속 마음속에 품고 품습니다. 야고보서 3장 9-10절 “이것으로 우리가 주 하나님을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4. 새 언약의 더 나은 의의 은혜
사랑하는 여러분, 마땅하지 아니한 저주의 살인이 계속 우리의 마음 속에 샘솟듯이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너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어찌해야 하는 것입니까? 옛 언약인 율법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이지만 우리를 의롭다 하지 않고 우리를 끊임없이 정죄하고 우리를 죽입니다.
로마서 7장 7-10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죄로 가득차 있는지 폭로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는 우리의 내면, 우리의 마음을 보지 못하고 우리의 외면으로 만족합니다. 그들은 단 한번도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의 말씀을 불순종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들이 얼마나 의로운지 얼마나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에 순종하는지 자랑합니다. 그들은 율법의 본질을 깨우치지 못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그러한 의로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는 더 나은 의가 필요합니다. 더 나은 의는 어떠한 의입니까? 히브리서 8장 6-13절 옛 언약의 율법과 새 언약의 의를 비교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시내산에서 맺은 옛 언약은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않는 이스라엘로 말미암아 파기되었습니다. 첫 언약의 율법은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우리를 끊임없이 정죄합니다. 우리는 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첫 언약을 파기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짐승의 피와 짐승의 제사는 우리의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더 좋은 새 언약의 중보자로 오신 우리 예수님이 계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보혈로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신 예수님의 몸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며, 우리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시며, 우리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시며 예수님의 의로우신 행동을 마치 우리가 한 것처럼 의로 여겨주십니다.
새 언약의 의는 우리의 의가 아니라 우리 예수님의 의를 우리의 의로 인정하시고 여겨주시고, 죄인을 마치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하십니다. 의롭게 여김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제 그 마음에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지킬 수 있는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십니다. 새 언약의 핵심은 마음과 성령입니다.
에스겔 36장 26-27절 새 언약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새 언약의 약속의 성령이 우리의 죄로 인하여 굳은 마음에 임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은 마음이 새 마음이며, 그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에 임한 새 영이신 성령으로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살인하는 자로 분노와 욕설과 저주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찬송의 말이 나오게 하시며, 더러운 말이 아니라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게 하여 듣는 자들에게 말로도 은혜를 끼치게 하십니다. 새 언약의 성령이 임한 사람에게는 음탕하고 희롱하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진실과 감사함이 넘치는 말이 나오게 하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의를 옷처럼 덧입은 우리에게 우리 예수님이 기대하시는 더 나은 의입니다.
5.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십계명 제6계명 해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제6계명 해설은 너무나 탁월하게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의 의미를 해설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 계명 제가 질문하면 여러분은 답변으로 우리 마음에 새깁니다.
105 문) 제6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105 답) 내가 이웃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그들을 미워하거나 해치거나 죽이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생각이나 말이나 몸짓으로 무엇보다도 행동으로 그리해서는 안되고 다른 사람을 시켜서 해도 안 되며 오히려 모든 복수심을 버려야 합니다.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해쳐서도 안되고 부주의하게 위험에 빠뜨려서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살인을 막기 위해서 국가는 또한 칼을 가지고 있습니다.
106 문) 그런데 이 계명은 살인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까?
106 답)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인을 금함으로써 살인의 뿌리가 되는 시기, 증오, 분노, 복수심 등을 미워하시며 이 모든 것을 살인으로 여기신다고 가르칩니다.
107 문) 앞에서 말한 우리 이웃을 죽이지 않으면 그것으로 이 계명을 다 지킨 것입니까?
107 답)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기와 증오와 분노를 정죄하심으로써 우리가 우리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여 인내와 화평과 온유와 자비와 친절을 보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해악으로부터 보호하며 심지어 원수에게도 선을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07문의 답에서 심지어 원수에게도 선을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12장 19-21절 말씀의 인용입니다. 살인하지 않는 것은 이렇게 행하는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사랑하는 여러분, 가정에서 살인하지 않고, 우리 회사에서, 지역사회에서 악에게 지지 않고 선을 행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우리의 간구
다같이 일어나셔서 새찬송가 448장 이 몸의 소망 무엇가 함께 찬송합니다.
이 시간 다같이 기도합니다. 이 시간 기도할때 오늘 우리에게 주신 새 언약의 말씀 마음 깊이 새깁니다. 형제에게 노하는 것이 살인입니다. 형제에게 바보, 미련한 놈이라고 우리의 입술로 내 뱉는 말이 살인입니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을 하고 화목하지 않는 것이 살인입니다. 고발하는 자와 화해하지 않고 악한 마음을 품는 것이 살인입니다. 이 시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억하며, 우리의 모든 살인의 죄를 회개합니다. 이 시간 우리의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시며, 이제는 우리의 마음에 그 말씀 새기며 성령의 충만함과 은혜로 우리 마음의 더러운 살인의 죄를 넘어 사랑하며, 용서하며, 칭찬하며, 격려하며, 도와주며, 우리의 원수까지에게도 선을 행하며 생명을 살리게 하옵소서.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우리를 하나님의 지식과 의와 거룩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주심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사람을 분노와 욕설로 대하지 않으며, 사랑과 칭찬과 용서로 대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마음과 입은 사람을 죽이는 더러운 말은 입밖에도 내지 않게 하시며 오직 덕을 세우는 선한 마음과 선한 말로 가득하게 하옵소서.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충만한 감사와 기쁨이 가득차서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의로운 자녀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로 인해서 우리의 가정이 살아나게 하옵소서. 우리로 인해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랑하는 자녀들이 살아나게 하시며, 우리로 인해서 우리 지역의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오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입은 우리로 인하여 광야같은 알버커키에서 산위의 동네로 어둠을 밝히는 세상의 빛으로 하나님 말씀과 선한 행실의 선한 영향력을 미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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