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교육

마 5장 10-12절 산상수훈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의 복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02-28 17:51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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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팔복의 마지막 복

오늘은 그동안 함께 묵상한 팔복의 마지막 여덟번째 복입니다. 10-12절 말씀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면서 읽으면 좋겠습니다.“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오늘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복을 여러분도 정말 받고 싶습니까? 그 귀한 복을 사모하십니까? 아마 오늘 팔복의 마지막 복 만큼은 받고 싶은 분들이 한 분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박해를 받는 자가 복이 있다.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 너희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 복이 진짜 복이라면, 반면에 화는 무엇입니까? 산상수훈과 아주 비슷한 누가복음의 평지설교를 보면, 팔복의 복과 대조되는 세가지 화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24-26절 말씀은 세 가지 화를 말씀합니다.“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예수님 보시기에는 세상에서 부요한 것이 이미 위로를 받은 것이기에 화가 있는 것이며, 지금 애통하지 않고 웃는 것이 회이며, 모든 사람이 칭찬하는 것이 화라고 말씀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 땅에서 추구하는 복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은 정 반대의 복 처럼 들립니다. 우리가 보기에 세상에서 누가 복이 있는 것입니까? 이 땅에서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누리고, 배 골지 않고 배부르며, 슬픈 눈물보다는 유모가 넘치고, 사람들에게 욕 먹는 대신에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삶이 복이 아닙니까?

지난 주 토요일 새벽기도회에서 살펴본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보면, 세상에서는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이름있는 거지 나사로가 아니라 이름없는 부자가 정말 복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부자에게는 화려한 옷이 있었고, 넘치는 잔치 음식이 있었고, 화려한 집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졌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입을 옷이 없었고, 배불리 먹을 음식이 없었고, 살 집도 없었습니다. 누가 복된 사람입니까? 만일 이 땅의 삶이 전부라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름없는 부자가 복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땅의 삶의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 하늘 나라, 천국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은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영원의 관점에서의 복입니다. 이 땅에서 잠시 살 동안 누리는 복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정말 영원의 관점에서 누리는 복이 정말 좋겠습니까?

팔복의 마지막 여덟번째 복, 이 땅에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천국의 복은 팔복의 첫번째 복과 동일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팔복은 천국에서 시작해서 천국으로 마칩니다. 천국이 이 땅에서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이기에 천국의 복을 소유하면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입니다.

2.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의 복

오늘 예수님의 마지막 여덟번째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의 복의 말씀, 그 의미를 번역본들을 통해서 살펴보길 원합니다. 공동번역, 현대인의 성경, 새번역 개역개정과 거의 비슷합니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옛 예언자들도 너희에 앞서 같은 박해를 받았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메세지 성경의 번역은 읽으면 얼마나 탁월한 번역인지 그 의미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하나님께 헌신했기 때문에 박해를 받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 박해로 인해 너희는 하나님 나라에 더 깊이 들어가게 된다. 그뿐 아니다. 사람들이 내 평판을 떨어뜨리려고 너희를 깔보거나 내쫓거나 너희에 대해 거짓을 말할 때마다 너희는 복을 받은 줄로 알아라.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진리가 너무 가가이 있어서 그들이 불편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 너희는 기뻐해도 좋다. 아예 만세를 불러도 좋다! 그들은 싫어하겠지만 나는 좋으니 말이다! 온 천국이 박수를 보낼 것이다. 또한 너희만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라. 내 예언자와 증인들은 언제나 그런 고생을 했다.”

사람이 제일 참기 힘든 것은 억울하게 당하는 모욕과 터무니 없는 말과 갖은 비난입니다. 누군가 우리를 깔보거나 내쫓거나 거짓말로 우리를 모욕한다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제 인생을 돌아보니 제일 어렵고 힘든 순간이 있었습니다. 미시간의 칼빈신학교로 유학을 와서 제일 기대했던 것이 학교에서 마음껏 배우는 개혁신학과 더불어 학교 기혼자 기숙사에서 같은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추구하는 목사님들과의 평생을 쌓을 수 있는 동역자를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밤새도록 마음껏 원없이 공부했고, 학교에서 섬길 기회가 주어질 때 피하지 않고 성실하게 섬겼고, 지역의 어려운 한인교회에서 어려운 영혼들을 돌보며 살았습니다. 천국인줄 알았던 목사님들 공동체에서 온갖 시기와 치열한 경쟁과 치욕스러운 모욕의 말을 들었습니다. 문화적 차이로 왕따를 당하는 목사님과 사모님 편에서 섰다가 온갖 종류의 비난을 들었습니다. 지역의 어려운 영혼들을 돌보다가 교회 개척하려고 하느냐는 억울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 예수님의 복된 말씀이 저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요!!! “그런 일이 일어날 때 너희는 기뻐해도 좋다. 아예 만세를 불러도 좋다! 그들은 싫어하겠지만 나는 좋으니 말이다! 온 천국이 박수를 보낼 것이다.“ 제 인생에서 가장 가장 힘든 순간 이었는데 오늘 예수님은 기뻐해도 좋다. 아예 만세를 불러도 좋다! 나는 좋으니 말이다. 온 천국이 박수를 보낼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정도로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면 그 복은 우리가 간절히 사모할 만한 복입니다.

중요한 이 복은 세상의 모든 박해와 욕과 거짓이 아닙니다. 아주 중요한 가치가 있는 복입니다. 10절은 의를 위하여, 11절에서는 나로 말미암아 당하는 박해와 욕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벧전 2장 19-20절에서 의와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아닌 다른 고난도 있음을 말합니다.“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벧전 4장 14-16절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의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는 것은 억울한 것이 아닙니다.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삶에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고난을 당하고 있는가입니다.

3.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의 복의 이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눈 앞에 두고 사랑하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당부한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8-20절 말씀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다 한 말로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우리가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께 속한 사람이기에, 세상에서 우리는 예수님께 택하심을 받은 사람이기에, 박해 박는 것이 당연합니다. 어두운 세상에 참된 빛이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참된 빛이신 예수님을 세상은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고, 싫어하고 영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 빛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복된 사람들입니다. 참 빛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예수님의 빛을 받아 반사하는 영적인 빛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그 빛은 강해집니다. 언덕위의 도시처럼, 산 위의 동네처럼 숨겨질 수 없는 탁월한 빛입니다. 참 빛이신 예수님을 미워하는 어두운 세상은 세상에 속하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도 미워하고, 하나님 자녀의 삶의 방식도 싫어하고, 하나님 자녀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하는 복음은 더욱 더 싫어합니다.

딤후 3:12절 우리 같이 읽습니다.“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무릇 in fact,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이 땅에서 세상의 방식으로 살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방식을 추구하는 경건한 삶을 살고자 하면 할수록 박해를 받으리라.

4. 신실한 제자의 박해

제일 먼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으로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지고 나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첫번째 박해가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죽인 박해자들이 유대인의 공식 기구인 산헤드린 공의회를 통해서 예수님의 길을 따르며 담대하게 예수님의 이름과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을 위협하며 말합니다. 행 4장 17-20절 “이것이 민간에 더 파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박해 가운데 있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더욱 간절히 기도로 하나가 됩니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소서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행 4:29-31절).

박해 가운데 있는데 교회는 주눅들지 않습니다. 쫄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더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 이름을 전하지 말라고 해도 더욱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의 이름으로 병을 낫게 하시며 표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박해 가운데 있는데 더욱 성령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행 5장 40-42절 우리 같이 읽습니다.“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예수님을 전하는 복음 때문에 옥에 갇히고 채찍질을 맞는고 모욕과 능욕을 당하는데도 그들은 예수님 말씀대로 기뻐합니다. 날마다 더욱 담대히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으로 하나되고 전도하기를 그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담대히 증거한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 중의 하나인 스데반은 돌에 맞아서 죽어가면서도 성령 충만함으로 박해를 이기고 견딘 이유가 있습니다. 그의 영적인 눈은 활짝 열려있습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행 7장 55-56).

오늘날 우리 시대의 교회가 능력을 잃어버린 이유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담대히 확신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사람들의 약간의 싫은 반응이 무섭고 두렵습니다. 그러니 성령의 충만함도 잃어버렸습니다.

제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을 때는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였습니다. 여름에는 대학부 학생들도 농촌으로 봉사활동하면서 예수님을 전하는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겨울에는 필리핀으로 단기선교 여행을 하면서 영어도 부족한데 무슨 용기가 있었는지 필리핀 최고의 대학 University of Philippines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면 전할수록 더욱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복음에 반응하여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들의 반응과 기도에 성령으로 충만해집니다.

5. 서머나 교회의 박해

요한계시록의 초대의 일곱교회 가운데 우리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시고 인정하신 교회는 가장 크고 전통적인 에베소 교회가 아닙니다. 가장 부요하고 안정적인 부자 교회 차지도 덥지도 않은 라오디게아 교회도 아닙니다. 살아있으나 영적으로 죽은 사데교회도 아닙니다. 그들은 다 책망을 받았습니다. 유일하게 책망이 없는 빌라델피아 교회와 서머나 교회입니다. 두 교회의 특징은 교회가 부족하고 능력이 없지만 고난과 박해 가운데 있는 교회였습니다. 사랑하는 서머나 교회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권면하십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계 2:10).

초대의 교회가 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까지 무려 10차례의 큰 박해가운데 있었습니다. 박해의 세가지 큰 원인은 로마의 황제 가이사가 주님이십니다를 거부하고 오직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고 주님이시다고 고백했기에 무신론자라는 이유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모일때마다 예배드리며 예수님의 살과 예수님의 피를 먹고 마시는 성찬으로 인해서 식인풍습의 사람들이라고 욕을 먹었습니다. 남여와 신분의 차이를 거부하고 주 안에서 모두 형제와 자매라 부르며 가족처럼 친밀하게 지내는 근친상간으로 오해를 받았습니다.

주후 64년 네로황제부터 313년까지 무려 250년의 긴 세월동안 엄청난 박해를 받았습니다. 네로 황제는 로마의 대화재의 원인을 무신론자, 식인풍습과 근친상간의 죄를 물어 억울하게 기독교인을 본격적으로 박해 했습니다. 그렇게 기독교인을 박해하던 네로는 나이 30세에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끊었습니다. 유명한 스토아 철학자 명상록의 저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황제가 된 이후에 기독교인을 찾아내서 채찍질하고 잔혹하게 죽였습니다. 수많은 신실한 주님의 제자들이 이 시기에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초대교회사 가운데 가장 영광스러운 서머나교회의 감독이던 폴리갑의 순교이야기는 아직도 초대의 역사학자 유세비우스의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86세의 나이, 폴리갑은 그리스도인을 수색하는 사람들에게 붙잡혀 서머나 시의 원형 경기장으로 끌려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비난하고 가이사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라는 총독의 명령과 회유를 받았습니다. 폴리갑은 담대히 고백합니다. “나는 86년동안 그분을 섬겨왔는데 그동안 그분은 한번도 나를 부당하게 대우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이제까지 섬겨온 나의 왕 그리스도를 모독할 수 있겠습니까?...당신은 잠시 붙었다가 곧 꺼져버리는 불로 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장차 임할 심판과 악인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형벌의 불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왜 치체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원하는대로 하십시오 이렇게 말하는 그는 확신과 기쁨으로 가득차 있었고 그의 얼굴은 은혜로 충만했습니다.” (유세비우스, 4. p. 15. 서머나교회에서 온 편지 - 폴리갑의 순교). 폴리갑은 감사의 기도를 올려드리면서 화형을 당했습니다.

로드니 스타크 기독교 사회학자 교수님은 박해 시기의 기독교인의 통계를 분석하면서, 흥미로운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제자로 시작한 기독교인은 AD 40년 천여명의 교인으로 전체 로마 인구의 0.0017%에서 시작하여 혹독한 로마의 10박해를 거치면서 점점 작아지지 않고, 매10년마다 약 40%의 경이로운 성장율을 거쳐서 AD 313년 로마의 기독교 공인의 년도에는 인구의 10.5%, AD 350년은 인구의 56.5%로 경이로운 성장을 했습니다.

기독교 2천년 역사를 통해서 볼때, 교회와 성도에 대한 박해가 없는 오늘 서구의 교회들은 경이로운 쇠퇴와 소멸의 세속화를 겪고 있습니다. 박해의 시대에 사도 베드로가 고백한 “은과 금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행 3:6).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의 이름, 복음의 강력한 능력을 잃어버린 대신에 교회는 은과 금을 얻게 되었지만, 세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고 못하고, 오히려 세상에서 조롱과 수치를 당하며 영향력을 현격하게 상실하고 있습니다.

산상수훈의 팔복의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우리 기독교와 교회 위기의 시대에 산위의 동네처럼 어두운 세상을 비출 수 있는 소금과 빛과 등불로 쓰임받을 수 있는 비결은 우리 예수님이 기뻐하시고 환영하시고 우리 믿는 성도들이 구하는 산상수훈의 팔복임을 기억하고 구하길 원합니다. 제가 팔복의 앞 부분 이야기하면 여러분은 다시금 뒷 부분을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6. 우리의 간구

다같이 일어나셔서 새찬송가 336장 환난과 핍박중에도 함께 찬송합니다.

이 시간 다같이 기도합니다. 이 시간 기도할때 우리 팔복의 마지막 복으로 합심하여 기도하길 원합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도 의를 위하여, 우리 주 예수님 때문에 박해받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때문에 욕먹고 악한 말을 당하고, 어려움을 기꺼이 당하게 하옵소서. 그런 일이 우리의 삶에도 일어나게 하시며, 기뻐하게 하게 하시며, 만세 불르게 하시며, 우리 주님의 고난의 좁은 길로 걸어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무엇보다 스데반이 바라본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임재를 보게 하시며, 성령의 충만함으로 담대히 우리 시대에 신실한 복음 증거자가 되게 하옵소서.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감사합니다. 찬양 올려드립니다. 오늘 우리 교회 공동체에 주시는 팔복의 말씀 우리 마음에 깊이 새기게 하옵소서. 의를 위하여 박해 받을 수 있는 믿음의 담대함을 주옵소서. 주님 때문에 당하는 욕과 박해와 악한 말도 기꺼이 감당하며 감사하고 행복해 할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이 땅이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하늘의 천국이 우리의 것이 되게 하시며, 이 땅의 보상과 상급이 전부가 아니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크다는 우리 예수님의 칭찬과 인정이 있게 하옵소서. 우리의 보물을 땅에만 쌓아두지 않게 하시며,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하나님 나라에 점점 더 쌓아두게 하옵소서. 우리로 인하여, 우리의 연약한 복음 증거를 통해서 한 영혼이라도 주님께 돌아오게 하시며, 우리 사랑하는 가족들 주님께 인도하게 하시며, 우리 광야같은 알버커키에서 산위의 동네로 하나님 말씀과 선한 행실의 선한 영향력을 미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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