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3장 22-25절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02-13 10:25
Views
619
토요 새벽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은 왼쪽 아래에 첨부되어 있습니다.
1.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의 중대한 질문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관점 중의 하나는 장소의 이동입니다. 오늘 본문 22절을 보면, 누가는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예루살렘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중심지인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의 여행은 언제부터 시작된 여행입니까? 누가복음 9장 51절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는 예수님의 굳은 결심이 나옵니다.“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예수님의 예루살렘 행은 즐거운 여행길이 아니라 마음이 무거운 여행길입니다. 승천하실 기약이 가까왔다는 것은 동시에 예수님의 죽음도 바로 눈 앞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굳은 결심이 필요한 예루살렘 여행 길입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행 길에서 예수님은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수 많은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셨으며, 필요할 때에는 귀신들을 쫓아내셨고 병든 사람들을 고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직접 먹고 마신 사람들 얼마나 복된 사람입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들은 사람들은 얼마나 복된 사람입니까?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얼마나 복된 사람들입니까?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 함께 먹고 마시며 기적을 목격하며 가르침을 받은 그 수 많은 복된 사람들은 모두 구원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편안함와 안전함만을 느낀 것이 아니라 특별히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에 적잖게 당황하고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종종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3-24). 예수님의 가르침은 쉽고 편한 구원의 길이 아니라 때로는 어렵고 힘든 구원의 길, 아니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한 구원의 길을 말씀하십니다.
그 가르침을 들은 어느 한 사람이 오늘 본문 23절에서 아주 중요한 질문을 예수님께 말합니다.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예수님께 이 질문을 한 사람의 의도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는 불안합니다.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들으니 더 불안합니다. 과연 나는 구원을 받은 자인가 그렇지 않은가 걱정되고 염려되고 불안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 중요한 질문,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2. 예수님의 첫번째 답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첫번째 답변은 24절 말씀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입니다. “구원은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라는 직접적인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질문에 대한 정답을 주고 있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예수님은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면 적다, 많으면 많다라고 직접적으로 답변하시지 않으시고 대신 구원을 얻은 자라면 현재에 마땅히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권면하십니다. 여기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표현은 쉬운 가르침이 아닙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전심전력, 모든 노력을 다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전쟁과 운동경기에서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그냥 열심히 하는 정도가 아니라 목숨을 걸고 현재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며, 운동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서 지금 전심전력을 다하라는 표현입니다.
구원은 과거의 칭의, 현재의 성화, 미래의 영화 모두와 연관된 포괄적인 개념이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가와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 매일의 삶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전심전력으로 힘쓰지 않으면 안됩니다. 지금 이 땅에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이냐는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씀을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 7:13-14) 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습니다. 찾는 사람도 심히 적습니다. 반면에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사람이 이 땅에서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그 길로 걸어갑니다. 그러니, 우리 인생에서 구원의 좁은 문을 발견한 것이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그 좁은 문, 좁은 길로 걸어가는 사람이 현재 구원의 길로 바르게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두번째 답변: 문을 한번 닫은 후에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두번째 답변은 25절입니다.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얼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말씀하십니다.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으면 더 이상의 구원의 기회는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활짝 열려있는 구원의 문은 언젠가는 반드시 닫힐 날이 옵니다. 구원의 문이 닫힌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오려면 애를 쓰며 구할 것이지만 그때는 너무 늦고 맙니다. 한번 닫혀진 구원의 문은 다시는 열수가 없습니다. 고후 6장 2절 지금이 구원의 은혜가 활짝 열린 구원의 날이라고 말씀하는 사도 바울의 중요한 권면입니다.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아직은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날이며, 지금은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려져 있는 날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은혜 받을 수 있고 구원의 문이 열려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은혜의 구원의 문이 닫힐 날이 반드시 옵니다. 그때는 많은 사람이 간절히 찾고 찾아도 더 이상의 기회는 없습니다.
구원의 문이 닫힌 날 누가 가장 당황하겠습니까? 이미 그 나라에 들어왔다고 착각한 사람들입니다. 누구입니까? 26절의 사람들입니다.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구원을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서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말씀하십니다. 이들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이들은 닫혀진 구원의 문 밖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고 있습니다.
4.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될 자
반면에,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구원의 잔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29-30절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리라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동서남북에서 온 수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스스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후손이라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서 배제되고 있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이방인들이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민족적 혈통과 관계된 것도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할례를 받은 아브라함의 언약의 자손이며 언약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이 마땅히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착각했습니다. 200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했고, 그들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선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 보인 반응이 무엇입니까? 31절 “곧 그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스스로 선민으로 주장한 유대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했던 헤롯을 핑계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그저 떠나보내고 싶어합니다.
34절-35절 예수님의 은혜로운 구원의 부르심을 거부하는 유대인들을 바라보시는 우리 예수님의 안타까운 애통의 음성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시대에도 구원을 받는 자가 적을까요?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받은 자입니까? 누가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사람들입니까? 여러분은 구원을 받은 사람이며,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사람들입니까? 지금이 중요합니다. 현재가 중요합니다. 지금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지금 회개하고 지금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지금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사람들이며, 지금 하나님의 나라에 속해, 장차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비록 나중된 자들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먼저 될 사람들입니다. 신앙의 몇 대손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로 걸어가는 믿음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5. 우리의 기도
이 시간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간절히 기도하길 원합니다. 첫째,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지금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제자의 삶은 쉽지 않습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이 좁은 문에 들어선 좁은 길을 힘쓰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둘째, 언젠가는 구원의 문이 완전히 닫힐 그 날이 점점 옵니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도 들어가야 하지만, 아직 구원의 문에 들어가지 못한 수 많은 사람들을 우리 그냥 모른체 내버려두지 않고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우리가 되게 하여달라고 그러기 위해서 천국 복음의 씨를 이 어려운 시대에도 열심으로 뿌리고 거두어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영혼 구원의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다가 구원의 밝은 빛을 보게 하시며 하나님의 은혜로 활짝 열려진 천국의 문에 들어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미 들어선 구원의 문이지만, 오늘 하루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길 힘쓰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아직은 열려진 구원의 문이오니 이 땅의 멸망으로 달려가는 수 많은 영혼들 불쌍히 여기며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은혜를 부어주시오며, 특별히 영혼 구원을 위하여 준비된 추수할 일꾼들이 많은 교회로 준비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의 중대한 질문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관점 중의 하나는 장소의 이동입니다. 오늘 본문 22절을 보면, 누가는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예루살렘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중심지인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의 여행은 언제부터 시작된 여행입니까? 누가복음 9장 51절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는 예수님의 굳은 결심이 나옵니다.“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예수님의 예루살렘 행은 즐거운 여행길이 아니라 마음이 무거운 여행길입니다. 승천하실 기약이 가까왔다는 것은 동시에 예수님의 죽음도 바로 눈 앞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굳은 결심이 필요한 예루살렘 여행 길입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행 길에서 예수님은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수 많은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셨으며, 필요할 때에는 귀신들을 쫓아내셨고 병든 사람들을 고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직접 먹고 마신 사람들 얼마나 복된 사람입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들은 사람들은 얼마나 복된 사람입니까?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얼마나 복된 사람들입니까?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 함께 먹고 마시며 기적을 목격하며 가르침을 받은 그 수 많은 복된 사람들은 모두 구원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편안함와 안전함만을 느낀 것이 아니라 특별히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에 적잖게 당황하고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종종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3-24). 예수님의 가르침은 쉽고 편한 구원의 길이 아니라 때로는 어렵고 힘든 구원의 길, 아니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한 구원의 길을 말씀하십니다.
그 가르침을 들은 어느 한 사람이 오늘 본문 23절에서 아주 중요한 질문을 예수님께 말합니다.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예수님께 이 질문을 한 사람의 의도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는 불안합니다.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들으니 더 불안합니다. 과연 나는 구원을 받은 자인가 그렇지 않은가 걱정되고 염려되고 불안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 중요한 질문,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2. 예수님의 첫번째 답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첫번째 답변은 24절 말씀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입니다. “구원은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라는 직접적인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질문에 대한 정답을 주고 있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예수님은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면 적다, 많으면 많다라고 직접적으로 답변하시지 않으시고 대신 구원을 얻은 자라면 현재에 마땅히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권면하십니다. 여기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표현은 쉬운 가르침이 아닙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전심전력, 모든 노력을 다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전쟁과 운동경기에서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그냥 열심히 하는 정도가 아니라 목숨을 걸고 현재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며, 운동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서 지금 전심전력을 다하라는 표현입니다.
구원은 과거의 칭의, 현재의 성화, 미래의 영화 모두와 연관된 포괄적인 개념이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가와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 매일의 삶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전심전력으로 힘쓰지 않으면 안됩니다. 지금 이 땅에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이냐는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씀을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 7:13-14) 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습니다. 찾는 사람도 심히 적습니다. 반면에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사람이 이 땅에서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그 길로 걸어갑니다. 그러니, 우리 인생에서 구원의 좁은 문을 발견한 것이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그 좁은 문, 좁은 길로 걸어가는 사람이 현재 구원의 길로 바르게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두번째 답변: 문을 한번 닫은 후에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두번째 답변은 25절입니다.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얼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말씀하십니다.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으면 더 이상의 구원의 기회는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활짝 열려있는 구원의 문은 언젠가는 반드시 닫힐 날이 옵니다. 구원의 문이 닫힌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오려면 애를 쓰며 구할 것이지만 그때는 너무 늦고 맙니다. 한번 닫혀진 구원의 문은 다시는 열수가 없습니다. 고후 6장 2절 지금이 구원의 은혜가 활짝 열린 구원의 날이라고 말씀하는 사도 바울의 중요한 권면입니다.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아직은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날이며, 지금은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려져 있는 날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은혜 받을 수 있고 구원의 문이 열려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은혜의 구원의 문이 닫힐 날이 반드시 옵니다. 그때는 많은 사람이 간절히 찾고 찾아도 더 이상의 기회는 없습니다.
구원의 문이 닫힌 날 누가 가장 당황하겠습니까? 이미 그 나라에 들어왔다고 착각한 사람들입니다. 누구입니까? 26절의 사람들입니다.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구원을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서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말씀하십니다. 이들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이들은 닫혀진 구원의 문 밖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고 있습니다.
4.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될 자
반면에,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구원의 잔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29-30절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리라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동서남북에서 온 수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스스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후손이라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서 배제되고 있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이방인들이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민족적 혈통과 관계된 것도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할례를 받은 아브라함의 언약의 자손이며 언약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이 마땅히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착각했습니다. 200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했고, 그들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선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 보인 반응이 무엇입니까? 31절 “곧 그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스스로 선민으로 주장한 유대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했던 헤롯을 핑계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그저 떠나보내고 싶어합니다.
34절-35절 예수님의 은혜로운 구원의 부르심을 거부하는 유대인들을 바라보시는 우리 예수님의 안타까운 애통의 음성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시대에도 구원을 받는 자가 적을까요?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받은 자입니까? 누가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사람들입니까? 여러분은 구원을 받은 사람이며,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사람들입니까? 지금이 중요합니다. 현재가 중요합니다. 지금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지금 회개하고 지금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지금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사람들이며, 지금 하나님의 나라에 속해, 장차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비록 나중된 자들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먼저 될 사람들입니다. 신앙의 몇 대손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로 걸어가는 믿음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5. 우리의 기도
이 시간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간절히 기도하길 원합니다. 첫째,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지금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제자의 삶은 쉽지 않습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이 좁은 문에 들어선 좁은 길을 힘쓰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둘째, 언젠가는 구원의 문이 완전히 닫힐 그 날이 점점 옵니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도 들어가야 하지만, 아직 구원의 문에 들어가지 못한 수 많은 사람들을 우리 그냥 모른체 내버려두지 않고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우리가 되게 하여달라고 그러기 위해서 천국 복음의 씨를 이 어려운 시대에도 열심으로 뿌리고 거두어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영혼 구원의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다가 구원의 밝은 빛을 보게 하시며 하나님의 은혜로 활짝 열려진 천국의 문에 들어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미 들어선 구원의 문이지만, 오늘 하루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길 힘쓰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아직은 열려진 구원의 문이오니 이 땅의 멸망으로 달려가는 수 많은 영혼들 불쌍히 여기며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은혜를 부어주시오며, 특별히 영혼 구원을 위하여 준비된 추수할 일꾼들이 많은 교회로 준비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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