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5장 7절 산상수훈 (7)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02-0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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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상수훈 팔복의 다섯번째 복
저녁을 먹고 아내와 함께 저녁 산책을 하면 우리 지역을 비추는 빛들이 참 많고 아름답습니다. 그 많은 불빛 가운데 항상 주목해서 바라보는 곳이 있습니다. 샌디아 산의 언덕 위의 있는 집입니다. 어느날 하루는 저녁이 되었는데 밝게 빛나야 할 그 집의 불이 꺼져있었습니다. 무슨 일일까 궁금했습니다. 다음날도 주목해 보니 불이 밝게 비추어있습니다. 산 위에 있는 그 집의 불을 보면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의 성도들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저렇게 산위의 동네로 우리 지역을 비추는 삶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산상수훈의 팔복의 말씀을 계속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까지 팔복 가운데 4가지 복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 앞에서 복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첫째 그는 무엇보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둘째 그는 애통하는 사람입니다. 셋째 그는 온유한 사람입니다. 넷째 그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 하나님 보시기에 자기 죄로 인해서 애통하는 자, 하나님 앞에서 교만치 아니하고 온유한 자, 그리고 하나님의 의를 주리고 목마르게 사모하는 자,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복된 자입니다.
이제 팔복의 다섯번째 복은 하나님 앞에서 복된 사람이 이제는 사람 앞에서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 처럼 복된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입니다. 7절 말씀 우리 함께 천천히 읽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성경을 읽고 그 의미를 생각할 때 여러 번역본을 함께 읽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공동번역 마 5:7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공동번역은 긍휼을 자비로 번역합니다. 표준 새번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번역 마 5:7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비롭게 대하실 것이다. 현대인의 성경 마 5:7 남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나님도 그들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다. 현대인의 성경은 긍휼을 불쌍히 여기는 것으로 번역합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메세지 성경 마 5:7 남을 돌보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렇게 정성 들여 돌보는 순간에 너희도 돌봄을 받는다. (You are blessed when you are, At the moment of being careful, you find yourselves cared for.)
팔복의 다섯번째 복 긍휼은 자비, 불쌍히 여김, 인자, 민망히 여김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긍휼을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하나님의 성품으로 라힘, 또는 우리가 잘 아는 헤세드로 번역합니다. 긍휼은 남을 불쌍히 여겨서 돕는 것입니다. 긍휼은 그냥 감정이 아니라, 감정에서 나오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2. 왜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는가?
왜 우리 예수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실까요? 긍휼은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에서 나오는 성품이 아닙니다. 긍휼은 우리 하나님의 성품이며, 긍휼은 우리 예수님의 성품이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우리 성령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가장 먼저 나타난 말씀은 출애굽기 33장 19절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모세가 하나님께 십계명의 말씀을 받으러 시내산으로 올라갈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이라고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했습니다.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온유한 모세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위하여 간구합니다. 그리고 모세는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간구합니다. 모세의 간구에 하나님께서 어떤 하나님이신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나님의 지극히 선하심을 보여주시며, 모세에게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시며, 하나님은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십니다.
출애굽기 33장 19절 은혜롭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 모세가 섬기는 하나님이며,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긍휼의 하나님, 너무나 중요한 하나님의 성품이기에 신약 로마서 9장 15-16절 사도 바울은 이 구절을 그대로 인용하여 우리 같은 죄인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 설명합니다. 우리 같이 읽습니다.“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 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우리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가만히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지극히 큰 구원의 은혜는 다른 이유로는 도무지 설명이 안됩니다.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지극한 긍휼하심의 결과입니다. 구원은 구원을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구원을 위해서 달음박질하는 자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긍휼히 여겨주시는 하나님을 잘 알고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의 삶에서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은 인생에서 가장 심각한 죄를 범했을 때, 도저히 부끄럽고 뻔뻔스러워서 기도할 자격도 없을 때 그럼에도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다윗이 나아간 우리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시편 51편 표제어를 보면,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에” 기록한 시편입니다. 1절 다윗의 간구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다윗의 그 큰 죄를 사하시는 우리 하나님은 주의 인자 (헤세드)를 따라서,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구합니다.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서 그 큰 죄악을 지워달라고 간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같은 죄인도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 같은 죄인에게도 긍휼을 베풀어주십니까? 자녀를 키우다보면 열 받는 순간이 있습니다. 엊그제 금요일 막내 아들 동률이 수영 연습 시간이 되어서 금쪽같이 귀한 시간을 내어 수영 라이드를 했습니다. 그리고 차에서 긍휼에 관한 설교 준비하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들이 차로 다시 돌아와서 가방에서 수영복을 찾고 있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데, 그 순간 어떻게나 열이 받는지, 집으로 다시 돌아가서 수영복 가져 올 수도 없고, 아내에게 수영복 찾아서 갖다달라고 하니 시간이 너무 걸려서 하는 수 없이 그냥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손 들어 시키고, 집에서 반성문 쓰게했습니다. 아들이 정성껏 쓴 반성문을 보니 화가 난 마음이 가라앉고 제 안에 조금씩 긍휼의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긍휼하심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다윗은 시편 103편 13-14절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노래하고 있습니다.“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 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김십니다. 마치 아버지가 연약한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그렇게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시편 103편 8절의 노래입니다.“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나이가 많아 이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다리는 노년의 다윗의 간구와 노래는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젊은 시절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을 때도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늙어 나이가 많아도 그는 긍휼이 풍성하신 우리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고 기도하고 노래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도 그 크신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합니까? 우리 인생이 죄로 가득차 있을 때, 우리 인생이 참으로 괴롭고 힘들고 곤고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필요한지요? 히브리서 4장 16절 제가 기도의 순간에 나아갈 때 늘 붙드는 우리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하나님의 보좌는 은혜의 보좌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하심이 필요한 연약한 인생입니다. 그러기에 긍휼하심이 필요하기에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담대히 나아가 우리 삶에 필요한 긍휼을 얻습니다.
3. 긍휼을 베푸시는 예수님
신학자 윌리엄 바클레이는 “긍휼은 다른 사람과 자기를 동일화 시킬때 온다”고 설명합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연약한 인간과 자기 동일화 시킨 사건이 있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아예 인간과 같이 자신을 동일화시킨 사건이 하나님의 아들, 우리 예수님이 육신을 입어 성육신 하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의심이 될 때 우리는 우리 연약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똑같은 시험을 받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합니다. 우리가 담대하게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와 근거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4-16절 다시 읽습니다.“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은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기 위하여, 우리와 똑같은 시험을 받으신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그 크신 긍휼하심입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가 태중에 예수님을 잉태하고 부른 마리아 찬가를 보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노래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종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심이라고 고백합니다.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눅 1:50, 1:54).
하나님이 보내신 우리 긍휼의 예수님이 이 땅에서 행하신 공생애의 사역을 보면, 그 사역의 동기가 모두 긍휼하심이었습니다. 마태복음 9장 35-38절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갈릴리의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열심으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는 하나님 나라 사역의 이유는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 긍휼이었습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을 바라보시는 우리 예수님의 긍휼하심이 사역의 동기였습니다.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시는 예수님의 동기도 아직도 세상에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 방황하는 영혼들이 너무나 많기에 그 영혼들을 긍휼히 여길 추수하는 일꾼들이 되어 달라고, 영혼을 긍휼히 여길 추수하는 일꾼들을 더 보내달라고 간구하십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욕을 먹던 세리인 마태를 부르시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9장 12-13절 말씀입니다.“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날마다 제사를 드리던 바리새인입니다. 날마다 제사를 드리고, 일주일에 한번 제사를 드리고, 절기마다 제사를 드리던 바리새인들이지만, 그들에게는 제사는 있지만 가장 중요한 긍휼이 없습니다.“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3). 그들에게는 영혼을 바라보면서 불쌍히 여기시는 우리 예수님의 긍휼의 마음이 없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바라보면서 판단하고, 정죄하고, 심판합니다. 자기의 눈에 있는 들보는 못 보면서 다른 사람들의 눈 안에 있는 티끌은 기가막히게 찾아냅니다. 제사와 십일조는 드리지만, 율법의 더 중요한 하나님의 성품이 반영된 정의, 긍휼, 믿음은 없습니다. 세리 마태 얼마나 흠이 많은 제자입니까? 바리새인의 눈으로 보면 도저히 예수님의 제자가 될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의 긍휼의 눈으로 보면 건강하지 못한 병든 자 같은 세리 마태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얼마든지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추수하는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4. 긍휼히 여기는 자가 받는 긍휼의 복
사랑하는 여러분, 긍휼의 하나님을 여러분 인생에서 만나셨습니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받으셨는지요?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를 구원의 자리로 부르신 우리 긍휼의 예수님의 은혜를 받았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긍휼이 풍성하신 우리 예수님은 우리가 이땅에서 우리 지역에서 긍휼히 여기는 자로 살아가길 기대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몰라주어도 우리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기대하시는 삶은 Here and Now 긍휼히 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제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돌아보니, 하나님께서 저의 인생을 불쌍히 여겨주셔서 너무나 큰 긍휼을 베풀어 주셨고, 인생에서 어렵고 힘든 순간에 긍휼의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2006년 가을 칼빈신학교로 유학을 와서 첫 해가 지나고 여름방학이 되었습니다. 박사과정 진학에 참 중요한 시기인데, 유학을 와서 라이드로 도와주신 신실한 목사님 가정이 있었습니다. 참 성실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학교에서 청소하며 아르바이트하며 힘들게 힘들게 공부하시다가, 박사과정 진학이 안되어 한국으로 돌아가 목회하시겠다는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돌아갈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저와 제 아내 마음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목사님은 유학 2년동안 너무나 힘들게 공부하시고 일하시느라 여행 한번 못 가셨습니다. 제가 보기에1년만 더 공부하시면 좋은 학교 박사과정에 틀림없이 진학하실 실력있는 목사님인데 그냥 한국으로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목사님 가정에 이제 막 태어난 2달된 딸 아이와 사모님과 저희 집 그때는 두 아이 데리고 두 가정이 2박 3일 미시간의 첫번째 국립공원 저 북 미시간의 메키나 아일랜드를 다녀왔습니다. 그림같은 메키나 아일랜드를 구경하고 그림같이 아름다운 미시간 호수의 길을 타고 내려오는 길에 중간 즈음에 있는 wonderful Traverse City에 들러서 하룻밤을 더 보내면서 목사님 가정과 깊은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목사님은 그 때가 신혼여행 때 보다 더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목사님 가정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저희는 칼빈신학교에 남아서 박사과정에서 학업을 하면서 디트로이트로 주말마다 사역을 하는데, 2년이 지났습니다.
아내가 막내 동률이 임신 4개월중에 추수감사주일이 되어서 그랜드래피즈에서 디트로이트로 왔다가 추수감사주일 저녁 식사를 잘하고,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서 고통스러운 적이 있습니다. 외과 의사로 은퇴하신 장로님과 산부인과 의사로 계시는 집사님이 오셔서 진찰하시고 보시더니 쓸개가 문제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급하게 Providence병원 응급실로 가니 Xray를 찍어보니 쓸개에 문제가 생겨서 담낭제거 수술하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병원비와 수술비에 큰 돈이 없어서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때 마침 오하이오의 어느 한인교회에서 장학생 한명을 뽑는데 저도 지원을 했다가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목사님께서 개인적으로 적지 않은 액수의 체크를 보내주시고, 언제 시간이 되면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해 달라고 하셔서 부흥회를 잘 마치고 목사님과 마지막 교제하는데 그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제가 칼빈신학교에서 긍휼의 마음으로 섬겼던 바로 그 목사님의 친형님 목사님이셨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저는 지금도 이 말씀의 은혜를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긍휼히 여기는 자를 복되다 감탄하시며, 긍휼히 여기는 자에게 긍휼히 여겨주시는 복을 주시는지요? 우리 예수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번역대로, 남을 돌보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렇게 정성 들여 돌보는 순간에 너희도 돌봄을 받는다 (You are blessed when you are, at the moment of being careful, you find yourselves cared for).
교회가 세상에 빛을 잃어버리고 욕을 먹는 이유는 언론이 교회를 탄압하고 정부가 예배를 못 드리게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교회와 성도가 스스로 오직 자기 자신의 생존과 안위만 생각하는, 너무나 이기적인 성도, 너무나 이기적인 교회 공동체가 되어 하나님이 참으로 우리 삶에서 기대하시는 세상과 세상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그 긍휼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긍휼함이 멸시되던 로마 시대에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열심으로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병들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고치주신 것은 지금도 하나님의 넘치는 긍휼함을 받고, 예수님의 긍휼하심의 은혜를 입은 갈릴리의 제자들이 긍휼의 사람이 되어 이 땅에 긍휼이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성품으로 이 땅을 긍휼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 우리 하나님께서 그냥 두시지 않습니다. 그도 언젠가 이 땅에서 그리고 미래의 종말의 심판의 순간에 반드시 긍휼히 여김을 받는 복을 부어주십니다.
사도 바울의 마지막 서신, 디모데후서를 보면 사도 바울이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구한 귀한 믿음의 사람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15-18절 말씀입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차가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순교를 눈 앞에 둔 사도 바울의 마음에 깊은 감사함으로 남던 긍휼의 사람 오네시보로가 있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9절 마지막 마무리 인사를 할 때에도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또 오네시보로를 언급합니다. 사도 바울의 평생의 동역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언급하면서 오네시보로를 언급하는 이유는,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긍휼의 사람 오네시보로를 통해서 많은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감옥에 갇혀 쇠사슬에 매인 사도 바울을 사람들이 버렸을 때, 함께 사역하던 동역자였던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사도 바울을 배반하고 떠났을 때, 오네시보로는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을 위험을 무릎쓰고 자주 찾아와 격려해 주고, 사슬에 매인 사도 바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지런히 찾아와 만나주었습니다. 이것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긍휼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도 오네시보로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합니다.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그 뿐 아닙니다.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옵소서. 그 날은 오네시보로가 이 땅의 삶을 마무리하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종말의 그날입니다.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하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넘치는 긍휼의 은혜를 입으셨습니까? 우리 예수님의 긍휼의 은혜를 입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이 척박한 광야같은 알버커키 뉴멕시코에서 저와 여러분은 긍휼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부어주신 것 처럼, 긍휼의 사람이 되어, 긍휼의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가 되어,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저 산 위의 동네교회로 쓰임받는 긍휼이 넘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의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5. 우리의 기도
이 시간 다같이 일어나셔서 아버지 품으로 함께 찬양합니다.
이 시간 기도할때 우리 팔복의 다섯번째 복으로 합심하여 기도하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을 돌아볼 때 우리는 사람 앞에서 긍휼히 여기는 삶을 사시고 계십니까? 하나님 앞에서 심령이 가난한 사람, 애통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사람은 이 땅에서 사람앞에서는 긍휼히 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마땅합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약 2:13). 이 땅에서 긍휼을 행하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는 복을 누리지만, 이 땅에서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기다립니다. 이 시간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긍휼을 베풀지 못한 우리의 삶을 돌이켜 회개하오니, 우리는 우리 가정은 우리 교회는 참으로 긍휼의 사람, 긍휼의 가정, 긍휼의 갈릴리 장로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그 긍휼함으로 영혼을 살리고, 영혼을 구하고, 영혼을 세우는, 목자 없는 양같이 고생하며 기진하고 있는 우리 지역의 불쌍한 영혼을 긍휼의 하나님 품으로 인도하는 참으로 긍휼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합심하며 기도합니다.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 크신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는 긍휼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그 크신 긍휼함을 입었습니다. 연약한 우리 인생에는 한 순간도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기에 오늘도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담대히 긍휼하심의 은혜를 구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그러나 긍휼함을 받는 자로만 살지 않게 하시며, 아버지의 풍성한 긍휼하심을 받아 우리의 삶에 긍휼함을 흘려보내는 긍휼이 풍성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형편과 상황만 생각하지 않게 하시며, 우리의 눈을 들어 지금도 우리의 긍휼함이 필요한 연약한 자에게, 우리 예수님 처럼, 오네시보로처럼 기꺼이 찾아가게 하시며, 위로하게 하시며, 격려하게 하시며, 우리 지역에서 긍휼이 넘치는 긍휼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리함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 긍휼이 여김을 받는 복에 복을 더하여 주옵시며, 마지막 심판의 그날 우리 하나님 앞에 긍휼의 사람으로 긍휼함을 받는 긍휼의 복을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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