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교육

마 5장 6절 산상수훈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01-31 17:49
Views
1031


1. 미시간 Sleeping Bear Sand Dune

2014년 여름 휴가를 미시간 호수 북쪽의 아름다운 Traverse City 근처로 떠났습니다. Sleeping Bear Sand Dune이라는 유명한 모래언덕을 방문해서 저 멀리 Lake Michigan을 바라보니 세 아이들을 데리고 충분히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들게 커다란 모래 언덕을 하나 넘으니 미시간 호수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모래 언덕이 나옵니다. 다시 힘들게 모래 언덕을 넘으니 또 다른 모래 언덕이 나옵니다. 4살 막내 아들 동률이, 10살 둘째 딸 가은이, 13살 큰 딸 가영이를 데리고 언덕을 계속 넘는데 광야 같은 이곳이 인생이구나 깨달았습니다. 미시간 호수의 모래들이 쌓여 만든 이 광야같은 모래 언덕 길 1시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광야 였습니다. 문제는 마실 물이 없습니다. 뜨거운 태양 빛에 목은 마르고, 배도 고픈 상태였습니다. 힘들게 겨우 겨우 3시간 정도 걸어서 드디어 미시간 호수에 도착했습니다. 잠시 호수에 발을 담그고 돌아갈 길을 생각하니 까마득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습니다. 어린 세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돌아갑니다. 광야 같은 곳에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이 다시 3시간을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을 끌고 모래 언덕을 넘어서 드디어 Sand Dune 정상에서 저희 자동차로 달려가서 가장 먼저 물을 마시고, 차에 있는 음식을 꺼내서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그 6시간의 목마름과 배고픔이 어찌 그리 우리의 힘들고 고단한 인생을 닮았는지, 저에게도 아이들에게도 큰 교훈이었습니다. 가장 힘든 순간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이 아니라, 정말 목마른데 마실 물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마태복음 5장 6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의 산상수훈의 여섯번째 말씀은 우리에게 주리고, 목마른 것이 무엇인지 말씀합니다. 주리고 목마른 것은 그냥 약간의 배고픔과 약간의 목마름이 아닙니다. 목이 말라서 갈증으로 목숨을 잃을 뻔한 경험이 있습니까? 배가 고파서 정신을 잃은 경험이 있는지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물이 귀하고 여행이 힘든 세상에 살았기에 그들은 주리고 목마른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예수님은 갈증으로 인해서 목숨을 잃을 뻔한 상황에서 물을 찾는 것과 똑같은 열정으로 우리 인생에서 의, 하나님의 의를 구해본적이 있는지 말씀하십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는 것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의, 하나님의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의 아주 중요한 말씀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입니다.

2. 주리고 목마른 자의 의미

오늘 본문 말씀, 마태복음 5장 6절 천천히 생각하면서 읽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표준새번역 성경을 보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의를 위해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다 얻을 것이다” NIV 성경을 보면, Blessed are those who hunger and thrist for righteousness, for they will be filled.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메세지 성경을 보면, You are blessed when you’ve worked up a good appetite for God, He’s food and drink in the best meal you’ll ever eat. 하나님께 입맛이 당기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분은 너희 평생에 맛볼 최고의 음식이요 음료다.

다양한 번역본을 읽어본 느낌이 어떠십니까?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 예수님 보시기에 복된 사람입니까? 예수님의 팔복의 네번째 복을 보면 세 가지 아주 중요한 강조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는 무엇에 주리고 목이 마른가? 둘째는 의는 무엇인가? 세째는 배부를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산상수훈의 말씀은 세상 사람들에게 주시는 윤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 하나님 나라의 제자에게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심령이 가난한 자였습니다. 애통하는 자였으며, 온유한 자였습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속한 그 나라의 백성, 그 나라의 제자의 삶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영적인 시금석 test 입니다.

주리고 목마른 것은 우리가 정말 간절하게 바라고 원하는 갈망입니다. 시편 42편을 보면 갈망하는 사람의 모습이 나옵니다. 시편 42편 1-2절 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팔레스타인의 유대 땅에 사는 사슴은 녹지가 많은 지역의 사슴이 아니라, Sleeping Bear Sand Dune 같은 광야에 사는 사슴입니다. 그 사슴이 목이 마릅니다. 목이 말라 죽어갑니다. 그러기에 필사적으로 시냇물을 찾습니다. 지금 시인의 마음은 그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그 영혼이 갈급하며 갈망합니다. 시인이 지금 갈망하는 것은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합니다. 그는 인생의 위기 가운데 있습니다. 그는 낙심하며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인생의 광야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필사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찾습니다. 그의 인생의 문제는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해주실 수 있기에 타는 목마름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또 찾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1년 대학교에 입학해서 학생들이 열심으로 모이는 데모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가슴 깊이 불렀던 노래 가운데 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고 김광석이 부른 민중가요의 가사가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광야에서, 그 날이 오면,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타는 목마름으로, 저도 함께 얼마나 열심이 부르면서 이 땅에 군부독재가 물러나고 민주주의가 오기를 저도 얼마나 갈망하였는지요! 타는 목마름으로 후렴 가사가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여 만세” 제가 계속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면 아마도 민주주의 운동에 헌신했을지도 모릅니다.

수원에서 서울로 통학을 하다가 통학 시간이 아까워서 학교 근처 고시원에서 몇 개월 살았습니다. 타는 목마름과 가사는 비슷한데 전혀 내용은 다른 목마른 사슴의 찬양을 서울 서빙고에 있는 온누리 교회 두란노 경배와 찬양 목요 찬양집회에서 불렀습니다.“목마른 사람, 시냇물을 찾아 헤메이듯이 내 영혼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주님만이 나의 힘 나의 방패 나의 참소망, 나의 몸 정성 다 바쳐서 주님 경배합니다. 금보다 귀한 나의 주님 내게 만족주신 주, 당신만이 나의 기쁨 또한 나의 참 보배, 주님만이 나의 힘 나의 방패 나의 참소망 나의 몸 정성 다 바쳐서 주님 경배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어떤 노래를 부르는가가 우리 인생의 간절히 바라는 갈망을 보여줍니다. 저에게는 군사독재를 타도하고 이 땅에 자유와 민주주의가 오는 것도 좋지만,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한 마음으로 찬양하며 부른, 오직 주님만이 나의 힘, 나의 방패, 나의 참소망 나의 몸 정성 다 바쳐서 주님 경배합니다. 그 시편 42편의 말씀이 제 인생의 평생의 갈망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타는 목마름으로,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으로 여러분이 이 땅에서 찾고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요? 전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힘들고 어려운 때에 주식은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고, 부동산은 천정부지로 가격이 올라갑니다. 바이러스로 건강을 잃고 일자리를 잃어버려 경제적인 심각한 위기 가운데 몰린 안타까운 분들도 계시지만, 더 많은 사람들의 갈망과 추구가 점점 더 돈과 주식과 부동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땅에서 갈망하고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가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줍니다.

3.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예수님은 선언하십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도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이 땅에서 진정으로 갈망하고 추구하는 바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의라고 말씀하십니다. 산상수훈의 네번째 복인 의는 8번째 복과도 연결됩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의는 영어로는 righteousness, 히브리어로는 차디크, 헬라어로는 디카이오쉬네 라는 아주 중요한 단어입니다. 합동신학대학원에서 한학기동안 ‘하나님의 의’라는 주제로 연구수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앨리스터 맥그라스 교수님의 하나님의 의라는 책을 매주 읽고 연구하고 발표하면서 하나님의 의라는 주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배운적이 있습니다. 의는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중의 하나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에서 가장 중요한 의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서의 의입니다. 의가 다이아몬드라면, 이 다이아몬드같은 의에는 세 가지 중요한 다이몬드처럼 빛나는 의가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의는 첫번째 법정적인 의 입니다. 법정적인 의미의 의는 나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는 의롭지 못한데, 하나님께 의롭지 못한 나를 의롭다라고 선언해주시는 마치 법정에서 너는 이제 의인이라고 인정해주시는 하나님의 의로 칭의 (justification)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3장 21절부터 24절 너무나 중요한 하나님의 의의 말씀 같이 읽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아멘.

우리가 열심히 율법으로 지켜서 노력해서 얻는 나의 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한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한 죄인이며, 그래서 의가 없는 자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있는 속량,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선언하시는 법정적인 칭의가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의입니다. 롬 3장 27-28절 우리의 의가 아니기에 우리는 자랑할 수 없습니다. 다만 감사할 뿐입니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우리가 주리고 목마르게 추구하는 하나님의 의는 지금도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에게 주시는 너는 의롭다 선언하시는 법정적인 칭의의 하나님의 의입니다. 법정적인 칭의의 하나님의 의는 어떻게 얻습니까?

찬송가 494장 만세 반석 열리니 3절, 4절 가사를 보면 이렇게 얻습니다.“빈손 들고 앞에 가 십자가를 붙드네 의가 없는 자라도 도와 주심 바라고 생명샘에 나가니 나를 씻어주소서”“살아생전 숨쉬고 죽어 세상 떠나서 거룩하신 주 앞에 끝날 심판 당할 때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우리는 의가 없는 자입니다. 그러나 빈손 들고 앞에 가, 나 같은 의가 없는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보혈을 흘리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를 얻습니다. 우리가 이 땅의 삶을 마무리하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우리가 의지하고 붙들 수 있는 의는 우리의 의가 아니라 죄인을 의롭다 여겨주시고, 의롭다 칭해주시는 하나님의 의, 예수 그리스도의 의 입니다.

찬송가 488장 4절 가사 “바라던 천국 올라가 하나님 앞에 뵈올 때 구주의 의를 힘입어 어엿이 바로 서리라 주 나의 반석 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천국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때 나의 의가 아니라 구주의 의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의를 얻으셨는지요? 구주의 의, 하나님의 의, 그리스도의 의가 여러분의 의가 되셨는지요? 이 의를 발견한 사도 바울의 눈에는 너무나 안타까운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이 땅에는 하나님의 의를 모르는 불쌍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로마서 10장 1-4절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같은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 안타까움의 핵심은 하나님께 열심있는 동족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의인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자기의 의를 세우는데 열심을 내기 때문입니다.

한때 바울도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열심으로 추구하던 과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자랑하던 할례와 베냐민 지파와 율법을 자랑하던 바리새인이 추구하던 의를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빌 3장 7-9절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우리 믿음의 사람이 평생토록 주리고 목마르게 추구해야 하는 의는 예수 그스도의 의, 하나님의 의, 죄인을 의롭다 여겨주시는 하나님께부터 난 의입니다.

다이아몬드 같은 의의 두번째는 하나님의 의, 그리스도의 의를 받은 우리의 의입니다. 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정의되기에 우리의 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의입니다. 마태복음 5장 20절 예수님은 다시 의를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의를 받은 너희의 의는 최소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는 더 나은 의여야 하며, 너희의 의가 바리새인보다 서기관보다 못하다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는 율법을 외형적으로 지키는 의라면, 너희의 의는 율법을 외형적으로 지키는 것을 넘어서 마음과 뜻과 동기의 내면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의 입니다.

누가복음 18장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다시 한번 살펴봅니다. 외형적인 의와 내면적인 의를 비교해보면 누구의 의를 하나님께서 인정하십니까? 누가복음 18장 9-14절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삭제)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율법을 외형적으로 지키는 면에서는 바리새인을 따라 갈 수가 없습니다. 그는 사람들 보기에 자기를 스스로 의롭다 여길만합니다. 그는 토색, 불의, 간음을 하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은 일주일에 두번씩 금식하며, 소득의 십일조를 드립니다. 세리는 정 반대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내세울 자신의 의가 없습니다. 다만 불쌍히 여겨달라고 다만 죄인입니다 고백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외형을 보시지 않고 우리의 내면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기를 높이는 바리새인의 의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세리를 의롭다 인정하십니다.

다이아몬드 같은 의의 세번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만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정의입니다. 바리새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외적으로 지키는 자기의 의를 자랑했지만 그는 사람을 무시하고 사람을 멸시합니다. 그러기에 그의 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의도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의를 받은 사람이 그 하나님의 의를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타내지 못한다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습니다.

왜 오늘날 교회가 세상에서 소금 역할을 못하고,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의 역할을 못합니까? 세상 사람과의 관계에서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의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기에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집단이기에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못미치기는 의가 없기에 욕을 먹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욥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욥 29장 12-17절 우리가 배워야 하는 욥의 의입니다. “이는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 줄 자 없는 고아를 내가 건졌음이라 망하게 된 자도 나를 위하여 복을 빌었으며 과부의 마음이 나로 말미암아 기뻐 노래하였느니라 내가 의를 옷으로 삼아 입었으며 나의 정의는 겉옷과 모자 같았느니라 나는 맹인의 눈도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의 발도 되고 빈궁한 자의 아버지도 되며 내가 모르는 사람의 송사도 돌보아 주었으며 불의한 자의 턱뼈를 부수고 노획한 물건을 그 잇새에서 빼내었느니라” 의로운 욥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았습니까? 그는 그의 인생에 재앙이 닥쳤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로운 욥은 사람 앞에서 어떻게 살았습니까? 하나님 앞에서만 의로운 것이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의로웠습니다. 그는 부르짖는 빈민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았고, 도와줄 자 없는 고아를 모르척하지 않고 건져주었습니다. 그는 앞 못보는 맹인의 눈이 되어 주었고, 다리 저는 사람의 발이 되어 주었고, 가난하고 어려운 빙궁한 자의 아버지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는 모르는 살마의 송사도 돌보아 주었으며 불의한 사람의 턱뼈를 부수고 불의한 자의 탐욕스러운 노략한 물건을 빼앗아주었습니다. 그는 힘있는 사람에게 아부 하지 않고, 힘 없는 사람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욥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한 우리 예수님의 사람에게 행하는 의를 행하며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은 무엇에 주리고 목마르십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의, 그리스도의 의를 입어, 우리 내면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우리의 삶은 이 세상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의로운 삶을 살아갑니까?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를 것이다.

예수님은 선언하십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번역처럼, 하나님께 입맛이 당기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분은 너희 평생에 맛볼 최고의 음식이요 음료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이미 이 땅에서 배부른 삶이 무엇인지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이미 시작한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감사와 만족의 삶입니다. 이 땅에서 시작한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부익부, 빈익빈의 원리입니다. 이 땅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점점 더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를 맛보아 누리며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시편 107편 4-9절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배부름의 충만한 은혜가 있습니다.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여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안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아멘.

우리 광야같은 인생에서 방황할 때, 주리고 목마른 인생을 살아갈 때, 우리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며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자에게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가득 채워주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 백성에게 약속하십니다. 요한복음 6장 35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생명의 떡이 되어주셔서 결코 주리지 아니하며 목마르지 않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또 약속하십니다. 요한복음 7장 37-39절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믿음의 성도들에게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 생수같은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약속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주시는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그 은혜를 누리고 계신지요? 결코 주리지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한 그 예수님의 생명의 떡을 받아 먹고 마시고 감사함으로 만족하고 계시는지요? 믿는 자에게 흘러 넘치는 생수의 강 같은 성령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를 경험하고 계시는지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이미 이 땅에서 배부름의 은혜를 경험하다가, 마지막 새 하늘과 새 땅이 완성되는 종말의 그날, 참된 배부름의 은혜를 평생 누리게 됩니다. 우리 요한계시록 7장 15-17절 함께 읽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임이라” 아멘.

5. 우리의 기도

이 시간 기도할때 우리 팔복의 네번째 복으로 간절히 합심하여 기도하길 원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마르십니까? 누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의,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의 의가 된 사람만이 구주의 의를 힘입은 사람만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우리의 의는 외형적으로만 나타나는 의가 아닌 우리 내면에서 갈망하고 추구하는 내면적인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받은 우리는 욥처럼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줄 자 없는 고아를 건지며 망하게 된 자 과부의 마음도 헤아려주는 의입니다. 맹인의 눈이되고 다리 저는 자의 발이 되어주고 빈궁한 자의 아버지가 되어주는 의 입니다. 이 시간 간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게 하옵소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 살아가며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만족을 누리며, 그리스도의 생명의 떡과 성령의 생수의 강을 충만히 누리는 의인의 삶을 살게 하시며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는 하나님 나라의 충만한 은혜를 소망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의인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가 이 땅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우리 믿음의 삶을 바라보시고 인정하시고 복주시는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의 기도를 들어주옵소서.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는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값없이 누리는 의의 공동체 되게 하시며, 하나님의 의가 우리 내면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아 날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슴같은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광야 같은 이곳 뉴 멕시코에서 외롭지 않게 하시며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는 하나님의 의를 날마다 경험하게 하시며, 생명의 떡이 되신 그리스도의 의로 주리고 목마르지 않게 하시며, 우리의 삶에서 생수의 강처럼 흘러 넘치는 성령 충만한 의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종말의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누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는 충만한 은혜를 소망하며 이 땅에서 의인의 삶을 소금으로 빛으로 드러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Total Reply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