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5장 5절 산상수훈 (5) 온유한 자의 복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01-2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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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등학교 졸업 사진
한 초등학교 졸업 사진을 보면 재미있는 모습이 나옵니다. 사진 한 가운데는 아름다운 여 선생님이 계시고, 사진 맨 아랫줄 양쪽 끝에는 서로 인상을 쓰고 있는 두 꼬마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 두 꼬마들이 이렇게 얼굴에 인상을 쓰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사진을 찍어야 되는데, 반 학생 수는 60명이 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옆 자리는 겨우 2자리 뿐인지라, 서로 그 선생님 옆 자리를 차지하려다가, 두 꼬마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내가 선생님 옆 자리에 앉을 거야!!! 아냐 내가 선생님 옆 자리에 앉을 거야!!! 결국에는 둘 다 선생님 옆 자리에 앉지 못했습니다. 두 꼬마들의 실랑이를 보다 못한 사진사가 강제로 한 꼬마는 선생님을 기준으로 오른쪽 맨 끝에 앉히고, 다른 친구는 반대편 왼쪽 끝에 자리를 앉힙니다. 그 꼬마들은 얼굴에 인상을 쓰며 사진을 겨우 찍습니다.
그 초등학교 졸업사진을 다 찍고 그 둘은 서로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둘은 씩씩거리고 학교를 나와서, 학교 근처에 있는 야산에 올라가서 결투를 시작합니다. 서로 치구 받고 결사적으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저의 짧은 인생에서 가장 크게 싸워본 경험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태권도를 배웠는데, 매일 2시간씩 훈련하면서 6학년 졸업 때니 태권도 2단에, 태권도 겨루기 시합을 나가려고 체중감량도 하고, 지독하게 훈련했으니 옆차기, 앞차기, 뒤 돌려차기를 얼마나 잘 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싸움이 다 끝나고 나서 후회가 막 밀려옵니다. 왜 이렇게까지 서로 싸웠을까? 이제 졸업하면 얼굴 보기도 힘든 그동안 참 정든 친구였는데, 왜 그토록 미워하고, 서로 그렇게 열심히 싸웠을까?
사랑하는 여러분, 어제 말씀 묵상 질문을 만들면서 첫번째 질문으로 우리가 가진 힘을 잘못 사용하여 곤란한 경험이 있었는지 질문을 드렸습니다. 여러분의 경험은 어떠하신지요?
2. 산상수훈의 이상한 복
오늘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다섯 번째 말씀은 온유한 자의 복입니다. 예수님은 5절에서 이렇게 감탐하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영어성경에는 Blessed are the meek, for they will inherit the earth. 현대인의 성경은 온유한 자를 유순한 자로 번역하여, “유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이 땅을 물려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번역과 해석은 재미있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 만족하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 너희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모든 것의 당당한 주인이 된다. You are blessed when you’re content with just who you are – no more, no less. That’s the moment you find yourselves proud owners of everything that can’t be bought.
아무리 보아도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이 정말 복인지, 복이 아닌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현실을 보면, 정말 온유한 자가 복이 있습니까? 온유한 자가 정말 땅을 차지할 수 있습니까? 만일 제가 초등학교 졸업 사진 찍는 그날 선생님 옆 자리를 그 친구에게 양보했다면 저는 제가 참으로 좋아하는 그 선생님 옆자리를 앉을 수 있었을까요? 여러분 같으면 선생님 옆 자리를 앉기 위해서 어떻게 하셨을까요?
철학자 니체에게 물어봤습니다. 니체 선생님,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어요? 신은 죽었다고 주장한 니체는 말합니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약자의 덕이며, 노예의 덕이지 강자의 덕이 아니라고 비웃습니다. 니체는 약자의 덕, 노예의 덕을 버리고 우리는 세상에서 초인의 힘, 초인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슈퍼맨의 정신을 가져야 세상을 이길 수 있고 이 험한 세상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철학자 니체의 주장을 아주 좋아하던 정치가가 있었습니다. 아돌프 히틀러 그는 니체의 초인의 힘과 초인의 정신을 물려받아 온 독일 사람들을 선동하여 광기 어린 세상과 전쟁터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참된 덕은 두 극단 사이의 중용을 강조하였습니다. 온유는 무모함과 비겁함의 중도이기에, 온유는 마땅히 분을 내야 할 사람을 상대로 마땅한 이유에 근거하여 마땅한 방법으로 마땅한 순간에 마땅한 시간만큼 분을 내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유를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온유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신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힘을 가지고 자신보다 부족한 연약한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괴롭히고 군림하는 강자의 논리도 무모함과 비겁함의 중용의 온유도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예수님이 강조하시는 온유가 아닙니다.
3. 그렇다면 온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온유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납니까? 어떻게 온유함이 나타나는가? 구약성경 창세기 13장을 보면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거부가 되어 가나안 땅, 그가 처음으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던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은 소와 양의 소유가 심히 많아서 땅이 부족했습니다. 땅이 부족하니 아브라함의 목자와 조카 롯의 목자가 서로 싸우는 상황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이렇게 제안합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너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창 13:8-9절).
조카 롯을 자식처럼 키운 삼촌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기꺼이 선택권을 주고 양보합니다. 조카 롯보다 더 힘이 있는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위해서 기꺼이 양보합니다. 이것이 온유입니다. 조카 롯에게 양보를 해도 아브라함은 넉넉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선물로 얻은 넉넉함에 아브라함은 그 힘을 이용해서 더 가지려 하지 않고 조카 롯에게 양보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십니다. 창세기 13장 14-18절 말씀입니다. 우리 같이 읽습니다.“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라 그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하나님 앞에 온유한 아브라함의 모습은 사람 앞에서도 온유합니다. 그는 자신의 힘을 이용해서 연약한 롯을 강압적으로 빼앗지 않고 오히려 양보합니다. 그렇게 온유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눈을 들어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땅만이 아니라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능히 셀 수 없을 많은 믿음의 자손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온유한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 그 약속의 자손들은 마땅이 온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온유한 자에게 땅을 선물로 주십니다.
온유한 아브라함의 약속의 자손 이삭은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셔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창세기26장 12-15절 말씀입니다.“이삭이 그 땅에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삭은 거부가 되었습니다.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들도 심히 많습니다. 이삭을 시기하던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판 우물을 막아 흙으로 메워버렸습니다. 온유한 이삭 어떻게 행합니까? 이삭은 싸우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팠던 소중한 우물 그냥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가서 다시 우물을 팝니다. 다시 그랄 사람들이 이삭의 목자와 우물을 두고 싸우니 이삭은 싸우지 않고 다시 지역을 옮겨서 다시 우물을 파고 그 우물의 이름을 르호봇이라고 짓습니다. 르호봇은 장소가 넓다는 뜻입니다. 싸우지 않고 넒은 장소로 이동하는데 그의 마음은 사람을 향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합니다. 이삭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창 26장 22절). 이삭의 힘은 사람을 향하지 않습니다. 이삭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온유한 사람 그는 사람만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얻는 이유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그 온유함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온유한 아브라함의 자손, 온유한 이삭의 자손, 모세를 우리 하나님은 평가하십니다. 민수기 12장 3절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사람의 평가가 아닌 우리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이 사람 모세는 그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저는 이 말씀을 볼때마다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아버지, 모세의 그 온유함 저도 갖게 하옵소서. 저의 까칠하고 모나고 짜증나는 모습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살지 않고 그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도 더한 온유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온유의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까? 온유를 위하여 기도해야겠습니까? 여기 온유로 번역한 히브리어 이나우는 두 가지 의미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첫째 의미는 상처받은, 비참한의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에 광야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살아가는 모세는 힘들고 비참하고 계속 상처를 받습니다. 이렇게 힘들고 비참하고 상처받고 살아가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는 모세였습니다. 백성들의 원망도 힘든데, 지금 누구보다 모세를 이해해주고 아껴주어야 할 가장 가까운 위치의 누이 미리암과 형 아론의 원망과 불평은 모세를 더욱 비참하고 상처받게 하였습니다. 온유한 모세는 지면의 모든 사람들보다 가장 비참한 사람입니다. 온유함의 두번째 의미는 겸손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모세는 겸손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들보다 더하도다. 누이 미리암과 형 아론의 원망과 불평에 모세가 보인 반응이 겸손과 온유입니다. 겸손과 온유한 사람 상대방의 부당한 원망과 불평에 맞대응하지 않습니다. 왜 자신을 몰라주냐고 항변하지도 않고, 자기 변호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읠 의지하며 묵묵히 침묵하며 인내합니다.
사랑하는 어려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온유하면, 하나님께서 온유한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주십니다. 구지 사람앞에서 변명하지 않아도, 왜 몰라주냐고 투정부리지 않아도, 우리 하나님은 온유한 사람을 알아봐주시고 인정해주시고, 온유함을 인정하지 않는 누이 미리함과 형 아론에게 모세를 인정해주십니다. 민수기 12장 7-8절 말씀입니다.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하나님은 온유한 모세를 내 종 모세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종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4. 우리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
우리 예수님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약속을 하십니다. 온유한 자가 받을 기업이 있습니다. 땅입니다. 땅을 유난히 좋아하는 한국사람들은 온유함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온유한 자가 받은 복인 땅에는 관심이 많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온유한 자가 받는 땅의 복은 구약 시편 37편이 배경입니다. 시편 37편 9절, 11절, 22절, 29절 무려 네번이나 땅을 약속하십니다.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주의 복을 받은 자들은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들은 끊어지리로다”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서 영원히 살리로다” 땅, 땅, 땅, 땅, 누가 땅을 얻습니까? 악을 행하는 자가 아니라 여호와를 소망하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는 사람앞에서 살아가지 않고 하나님 앞에 살아가니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온유한 자는 복이 있으니 그들은 땅을 차지합니다.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온유한 자가 의인이며 의인이 땅을 차지하고 거기서 영원히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정말 온유한 자에게 땅을 선물로 주십니까?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 중에, 예수님의 제자중에도, 열심당원이 있었습니다. 헬라제국에 빼앗기고, 로마제국에 빼앗긴 땅을 찾기 위해서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힘을 기르고 권력을 길러서 빼앗긴 땅을 다시 찾아오자는 유대 민족주의 마카비 운동이며, 열심당 운동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정 반대로 말씀하십니다. 아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그들만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우리 예수님이 보여주신 땅을 기업으로 받을 온유의 모습은 미국 국회 의사당을 폭력으로 들어가서 무력으로 쟁취하려는 모습도 아니고, 좁고 좁은 한반도를 땅 투기하고 아파트 투기해서 한 몫 잡으려는 모습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에게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 11:28-30절) 말씀하십니다.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마 12:20절) 말씀하십니다. 연약한 사람을 향하여는 한 없이 인자하시고 겸손하신 모습이 우리 예수님의 온유입니다. 칼과 몽치를 가지고 예수님을 잡으로 온 사람들을 향하여 칼을 빼 들고 대제사장의 귀를 잘랐던 베드로에게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 아느나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마 26:52-54).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시려는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의 온유입니다.
5. 온유한 자가 얻는 기업으로의 땅
온유한 사람이 얻는 땅, 첫째는 눈에 보이는 땅이 아니라 이 땅에 경험하는 하나님 나라의 만족과 감사과 기쁨입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번역과 해석은 바로 그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하나님 나라 백성이 누리는 만족입니다.“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 만족하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 너희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모든 것의 당당한 주인이 된다.” You are blessed when you’re content with just who you are – no more, no less. That’s the moment you find yourselves proud owners of everything that can’t be bought.
고린도후서 6장 8-10절 온유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만족을 깊이 누린 사도 바울의 고백이 있습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르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아무 것도 없는 바울은 어찌 그리 당당합니까?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땅을 가진 사람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며 소유하며 누리는 참 만족과 기쁨과 감사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땅을 구하지 않았으나, 땅을 받았습니다. 이삭도 땅을 구하지 않았으나, 풍성한 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온유한 자가 받는 땅은 이 세상에서 땅을 추구하는 자가 받는 기업이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온유하게 살아가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이 땅에서 누리는 자기 만족의 은혜를 넘어서 우리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약속하십니다. 마태복음 19장 28-30절 약속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이 말씀에서 핵심은 여러 배가 아니라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심판하시는 권세 있으신 우리 예수님의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와 다스림에 동참하는 은혜가 성도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땅은 동서남북 눈에 보이는 땅이 아니라 지금도 부활 승천하시어 보좌에 앉아계시는 우리 하나님, 우리 예수님과 더불어 이 땅의 참된 주인이 되어 다스리고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의 권세를 누리는 복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 땅에서 땅 한평 없이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이 땅에서 한 영혼을 긍휼히 여기시며 구원하시고, 이 땅이 하나님의 땅임을 인정하시며 이 땅에서 열심으로 일하시며, 제자 삼으시며 사랑하심으로 이 땅을 통치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에게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땅은 그냥 소유하는 땅이 아니라 지금도 이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이 땅에서 창조하고,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 삼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 땅의 참된 주인의 선한 청지기 입니다. 우리에게 땅은 하나님 나라의 세 가지 요소인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하나님,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 그 백성이 선물로 받은 땅에서 감당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사명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땅에서 만족을 누리며,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이 땅에서 사명을 감당하는 자에게 선물로 주시는 마지막 그 땅은 지금 이 땅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최종적으로 완전하게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종말의 그 땅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4절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마지막 그 땅 함께 마음에 새기며 읽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분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더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에서 하나님 앞에서 온유한 삶을 살아가는 자에게는 이 땅이 전부가 아니라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이 열립니다. 땅 한평 없었던 박해 가운데 있던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로 말미암은 자기 만족과 기쁨과 감사를 넘어서, 이 땅에서 신실하게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사명을 감당하는 제자들에게 주시는, 마지막 땅의 약속은 하나님이 준비하여 주시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지금은 초라하게 보이는 박해받는 교회가 아니라 영광스럽게 변화되어 단장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되어 하나님이 친히 인정하시는 신부 같은 교회, 하나님 함께 하시는 교회, 하나님이 그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시는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한 자, 온유한 자가 누리는 그 충만한 하나님 나라의 새 땅을 누리는 은혜가 있습니다.
6. 우리의 기도
이 시간 다같이 일어나셔서 선한 능력으로 함께 찬양합니다. 그 선한 힘에 고요히 감싸여 그 놀라운 평화를 누리며, 나 그대들과 함께 걸어가네 나 그대들과 한 해를 여네. 지나간 허물 어둠의 날들이 무겁게 내 영혼 짓 눌러도 오 주여 우릴 외면치 마시고 약속의 구원을 이루소서 주께서 밝히신 작은 촛불이 어둠을 헤치고 타오르네 그 빛에 우리 모두 하나되어 온 누리에 비추게 하소서 이 고요함이 깊이 번져갈 때 저 가슴 벅찬 노래 들리네 다시 하나가 되게 이끄소서 당신의 빛이 빛나는 이밤 그 선한 힘이 우릴 감싸시니 믿음으로 일어날 일 기대하네 주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셔 하루 또 하루가 늘 새로워.
이 시간 기도할때 우리 팔복의 세번째 복으로 간절히 합심하여 기도하길 원합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 온유하십니까?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결코 온유할 수 없습니다. 온유한 자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합니다. 온유한 자는 참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소망합니다. 온유한 자는 이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무엇보다 온유한 자가 되길 간구합니다. 오, 하나님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온유한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온유한 아브라함처럼, 온유한 이삭처럼,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한 하나님 앞에 충성된 모세처럼 온유하게 하옵소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우리 예수님처럼 온유하게 하시며, 이 땅에서 금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 답게 신실하게 충성스럽게 사명감당하는 온유한 자가 되게 하옵소서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가 이 땅에서 경험하는 심령의 가난함과 애통을 아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온유한 자에게 약속하시는 그 땅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온유한 자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누리는 참된 만족과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하시며, 온유한 자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왕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에 동참하는 이 땅의 주인이 되어 창조하고, 구원하고, 제자삼고, 사랑하는 사명 감당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 땅에서 온유한 자에게만 약속하시는 그 새 하늘과 새 땅을 우리의 영적인 눈이 활짝 열려 보게 하시고 사모하게 하시며 믿음으로 바라보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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