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5장 4절 산상수훈 (4) 애통하는 자의 복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01-17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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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건을 열망하는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에게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른 무엇인가 분명히 있는 것이 있습니다. 토마스 왓슨이 쓴 <경건을 열망하라> (The Godly Man’s Picture)라는 책이 있습니다. 왓슨의 시기에 영국은 세상에서 가장 경건한 나라였습니다. 경건한 나라의 경건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 책에서 왓슨은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사람들과 구분되는 24가지의 중요한 삶의 특징이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 24가지 중에서 우리는 몇 가지에 해당하는지 먼저 여러분 집에 있는 남자, 남편와 아들을 그리고 우리 자신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경건한 남자의 24가지 삶의 특징: 지식이 있는 남자, 신앙에 의해 지배되는 남자, 사랑이 있는 남자, 예수님을 닮은 남자,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일에 신중한 남자, 사람보다는 하나님을 섬기는 남자, 그리스도를 최고로 아는 남자, 눈물이 있어 울 수 있는 남자,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는 남자, 하나님의 영이 늘 그 속에 있는 남자, 겸손한 남자, 기도의 남자, 신실한 남자, 하늘을 소망하는 남자, 정열이 있는 남자, 인내하는 남자, 감사할 줄 아는 남자, 성도를 사랑하는 남자, 죄악에 자신을 방임하지 않는 남자, 인간 관계에 있어 선한 남자, 영적 방식으로 영적 일들을 처리하는 남자, 신앙적으로 잘 훈련된 남자,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남자, 다른 사람들을 경건하게 만드는 데 자신이 도구가 되기를 힘쓰는 남자.
왓슨은 이런 특징들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인지 아닌지 입증하는 중요한 항목들이라고 강조하며, 이런 종류의 사람은“이미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고, 아울러 천국에 들어가기로 확증된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경건한 남자들이 우리 교회에 가득하고 우리 집안에도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의 남편, 여러분의 아들은 이 중에서 몇 개 정도가 해당됩니까? 여러분은 이 중에서 몇 개 정도가 해당되는지요?
2.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의 애통
왓슨이 이야기하는 경건한 사람들의 특징들이 성경 전체에서 가장 잘 나타난 사람중의 한 사람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의 전 생애 가운데 우리 하나님은 언제 가장 기뻐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삶에서 언제 가장 기뻐하실까요? 신약성경 누가복음 15장의 읽은 양의 비유, 잃어버린 드라크마의 비유,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를 보면,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눅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눅 15:10)
한 사람의 죄인이 진심으로 회개할 때 하늘에서는 하나님앞에 큰 기쁨이 있습니다. 하늘의 기쁨만이 아닙니다. 회개하는 사람에게도 큰 기쁨이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에 비추어 참회록을 남긴 어거스틴은 시편 32편 다윗의 회개의 시편을 가장 좋아하였습니다.
시편 32편과 시편 51편의 배경은 동일합니다. 다윗의 생애게 가장 지워버리고 싶은 추악한 사건인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또한 충성을 다한 신하 우리야를 야비한 방법으로 죽인 이후에 다윗은 하나님 앞에 정죄를 당했지만, 자신의 죄를 지속적으로 숨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숨긴 상태에서 의로우시며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할리 없습니다. 마음에는 평안이 없고 불안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다윗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참회의 마음에서 시편 32편과 51편을 눈물로 기록했습니다. 이 두 시편은 다윗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회개한 이후의 죄 용서함을 받은 기쁨과 감사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윗 자신의 삶의 경험에서 나온 죄 용서함의 기쁨과 감격의 은혜를 이제는 다윗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리고 우리도 함께 죄 사함의 기쁨과 감격을 누리도록 초청하고 있습니다.
시편 32편 5-6절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시편 51편 16-17절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나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구하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다윗은 우리에게 참된 기쁨과 감사와 위로의 길로 초청하고 있습니다. 그 길은 우리의 허물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자복하고 우리의 죄악을 숨기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구하는 제사와 예배는 형식적으로 올려드리는 제사와 예배가 아닌 상한 심령으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예배입니다.
3.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의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팔복의 두번째 복을 읽으면 눈물이 있어 울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얼마나 복된 사람인 깨닫게 됩니다. 눈물로 상한 심령으로 시편 32편과 51편을 기록한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이 얼마나 복된 사람인지 발견합니다. 산상수훈의 팔복의 두번째 복 4절 말씀입니다. 우리 마음에 새겨며 함께 읽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Blessed are those who mourn, for they will be comforted.
공동번역, 표준새번역, 현대인의 성경은 모두 번역이 같습니다.“슬퍼하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지난 주일에 소개해드린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메세지 성경을 보면 애통의 복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느끼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에야 너희는 가장 소중한 분의 품에 안길 수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서 무엇이 우리를 슬프게 만드는지요? 세상에는 기쁜 일보다 세상에는 웃을 수 있는 일보다, 슬프고 안타깝고 우는 일이 더 많습니다. 창세기 37장을 보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어버린 아버지 야곱의 애통이 기록되어있습니다. 형들의 시기를 받아 애굽으로 팔려간 아들 요셉이지만, 형들은 요셉의 채색옷에 숫 염소 피를 묻혀 아버지에게 가져갔습니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 야곱의 애통의 모습입니다. 창세기 27장 33-35절 말씀입니다.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르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도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하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사랑하는 아들, 채색옷까지 입혀가면서 정말로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낳아준 금쪽같은 그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하니 야곱은 정말 애통하고 애통합니다. 아무리 다른 아들들이 위로를 해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야곱은 애통에 자신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아들 요셉을 위하여 울고 또 울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복이 되겠습니까?
우리의 인생에서 경험하는 모든 애통의 눈물이 복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애통이 복이 될 수도 있고, 애통이 저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똑같은 애통의 상황인데 복이 되는 애통이 있는가 하면, 저주가 되는 애통이 있습니다. 그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존 오트버그의 <관계훈련>에 복이 되는 애통과 저주가 되는 애통의 차이점이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탄식을 명령하고 원망을 금하셨다.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 탄식은 ‘하나님께’ 불평하는 것이고 원망은 ‘하나님에 관해’ 불평하는 것이다. 탄식은 하나님의 면전에서 이루어지지만 원망은 하나님의 등 뒤에서 이루어진다. 성경을 보면 사람들은 슬픔과 고통을 견디다 못해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서 탄식했다. 반면에 원망은 장막 안에서 은밀히 한다. 원망하는 자들은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고 착각하며 제멋대로 자신의 시각에서 상황을 과장하고 엄연히 자신의 불순종으로 찾아온 결과인데 오히려 남을 탓했다. 탄식과 원망의 이런 차이는 상대가 하나님이든 사람들이든 친밀함에 대해서도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탄식은 친밀함을 증폭시키지만 원망은 친밀함을 파괴한다. 원망은 또한 전염성이 강하다. 부정적인 원망을 일삼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함께 원망할 사람들을 찾게 되어있다”
얼마나 탁월한 설명과 분석인지요!!! 우리의 인생에서 찾아온 원치 않는 슬픔이 탄식이 되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면전에서 이루어지는 애통은 복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에서 찾아오는 슬픔이 하나님의 뒤에서 이루어지는 원망이 된다면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그 원망으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집니다. 이러한 원망은 복이 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애통은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지는 애통인지요? 아니면 그 애통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하고, 그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지요?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의 길로 걸어간 유다의 13대왕 히스기야는 선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려고 얼마나 노력한 왕이었는지요? 그런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옵니다.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사 38:1). 이제는 죽고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습니다. 애통의 상황입니다. 애통의 상황에 히스기야의 반응이 나옵니다. 우리 이사야 38장 2-6절 함께 읽습니다.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위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가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병들어 죽게된 히스기야는 그의 얼굴을 하나님께 향합니다. 그리고 눈물로 통곡하며 애통의 눈물을 하나님 앞에 흘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애통이 복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느끼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에야 너희는 가장 소중한 분의 품에 안길 수 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느꼈을 때 그는 하나님 앞에 눈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는 가장 소중한 분의 품에 안기는 복을 경험합니다.
4.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님의 눈물
우리 예수님의 공생애를 자세히 살펴보면, 단 한번도 크게 웃는 모습이 없습니다. 그러나 눈물 흘리신 장면은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눈물을 보면 우리가 우리 시대에 어떻게 애통의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십니다.
누가복음 19장 41-44절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에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마 23:37-38).
우리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어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지금은 평화롭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성 처럼 보이지만 날이 이르면 구체적으로 AD 70년에 로마의 군대에 의해서 짖밟혀질 예루살렘의 비극적 미래을 아셨기에 우셨습니다. 그 예루살렘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있는 모습을 보고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인들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23장 28-30절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그때에 사림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5. 진리 이후의 우리 시대 우리와 자녀를 위하여 울라
지금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예수님을 위해서 울 것이 아니라,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시대의 미국을 바라보면, 미국의 교회와 교회의 성도들을 바라보면 정말 얼마나 안타까운 상황인지 눈물이 납니다. 최근의 신조어 Post-Truth 시대 진리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객관적인 사실이 참과 거짓을 결정하는 시대가 아니라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에서 느끼는 감정과 의견이 진리를 결정하는 Post – Truth 시대입니다. Post – Truth 시대에 온갖 종류의 Fake News가 범람합니다. 이제는 무엇이 진리인지가 중요한 시대가 아니라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성향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참과 거짓을 분별해야 하는 시대인데 온갖 종류의 거짓 뉴스를 믿고 따르고 전달하고 휘둘리는 너무나 안타까운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극단적 선교단체인 인터콥의 세대주의 종말론 사상인 BTJ: Back to Jerusalem 비밀집회에서 나온 누적 확진자만 576명이고, 3000여명의 BTJ 방문자 가운데 70%이상이 코로나 검사도 받지 않고 계속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인터콥 대표인 최바울 선교사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세계에 1억명 가까이 확진이 되고, 2백만명 이상이 죽어가는 이 비참한 상황에서 빌 게이츠를 비롯한 세계 기술 부자들이 코로나 백신으로 DNA를 조작해서 세계 시민을 노예로 만들려 한다는 세대주의 종말론에 근거한 음모론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 그리고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이 살아야 하는 우리 시대를 위하여 우리는 애통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5절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애통의 시대에 우리는 우리 주변의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야 합니다. 이것이 애통의 시대에 우리의 사명입니다. 요한복음 11장 33-35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사랑하는 제자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던 마리아와 마르다의 눈물을 보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이 어찌 그리 큰 슬픔인지 아셨기에 함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것이 위로입니다. 위로는 외롭고 눈물나는 사람과 함께 울어주는 것입니다. 위로는 함께 하면서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내가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고통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위로는 누군가가 비를 맞고 있을 때 우산을 받쳐주는 것이 아니라, 위로는 함께 비를 맞아주는 것입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아내에게 물어봤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눈물나던 애통의 순간이 언제였는지 물으니, 아내가 이렇게 말합니다. 2006년 가을 미국 유학 첫 해에 돈 없고, 남편인 저는 매일 학교에서 새벽에나 들어오고, 온 몸은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한 움큼 약을 먹고 류마티스 관절염 약 부작용으로 온 몸이 힘들고, 학교에서 교회에서 경험하는 처음 경험해보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으로 너무나 힘들었을 때라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찬양은 아닌데, 찬양의 가사처럼 들리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You Raise me up. When I am down and, oh my soul, so weary When troubles come and my heart burdened be Then, I am still and wait here in the silence Until you come and sit down awhile with me.
내 마음이 우울하고, 나의 영혼이 많이 지칠 대, 어려운 일들을 만나서 마음이 무거울 때, 그럴 때면 나는 모든 것을 멈추고 이 조용한 자리에서 기다려요. 당신이 찾아와서 잠시 나와 함께 앉아 있어 줄때까지.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당신은 나를 높이 올려 산꼭대기에 설 수 있게 해주고, 당신은 나를 높이 올려 폭풍이 부는 바다를 걷게 해줘요 당신의 어깨 위에 올라설 때 나는 강한 사람이 되고, 당신은 나를 높게 올려 나의 한계를 넘어서게 해줘요.
노래를 들으며, 노래를 찬양처럼 하나님 앞에 부르며 간절히 눈물로 기도합니다. 3년 넘게 고통스럽게 자가 면역체계가 망가진 류마티스 관절염이 사라지고 고통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치유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에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그 때에야 가장 소중한 분의 품에 안길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애통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궁극적인 위로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제한적으로 경험하는 위로이지만 온전한 위로, 완성된 위로, 최종적인 위로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3-4절 어렵고 힘든 시기, 교회의 박해가 극에 달했을 로마 제국의 시대에 우리 예수님께서 환난 당하는 교회를 위한 위로의 그 말씀 우리도 기억하길 원합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느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6. 우리의 간구
다같이 일어나셔서 선한 능력으로 함께 찬양합니다. 그 선한 힘에 고요히 감싸여 그 놀라운 평화를 누리며, 나 그대들과 함께 걸어가네 나 그대들과 한 해를 여네. 지나간 허물 어둠의 날들이 무겁게 내 영혼 짓 눌러도 오 주여 우릴 외면치 마시고 약속의 구원을 이루소서 주께서 밝히신 작은 촛불이 어둠을 헤치고 타오르네 그 빛에 우리 모두 하나되어 온 누리에 비추게 하소서 이 고요함이 깊이 번져갈 때 저 가슴 벅찬 노래 들리네 다시 하나가 되게 이끄소서 당신의 빛이 빛나는 이밤 그 선한 힘이 우릴 감싸시니 믿음으로 일어날 일 기대하네 주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셔 하루 또 하루가 늘 새로워.
이 시간 기도할 때 우리 팔복의 두번째 복으로 간절히 합심하여 기도하길 원합니다.“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의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애통할 일로 가득차 있습니까? 우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고 느끼십니까? 우리의 죄와 악함이 가득해서 하나님 앞에 눈물로 회개로 나아가셨습니까? 우리의 몸에 심각한 병에 걸려서 죽을 위기 가운데 있는지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의 애통의 순간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애통하는 자와 함께 눈물 흘리십니다. 애통하는 자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함께 하시고 위로하십니다. 애통하는 자에게 그 모든 눈물을 닦아주십니다. 그러기에 이 시간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 하나님 우리의 애통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아버지 앞에 간절한 기도를 회복하게 하옵소서. 애통하는 자의 애통을 외면치 않게 하시며 함께 울어주는 애통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죄와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하여 애통하는 애통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시대의 죄악을 애통하며 하나님 앞에 애통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 시간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가 이 땅에서 경험하는 눈물과 애통을 아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 예수님의 심한 통곡과 눈물로 올려드리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선한 히스기야 왕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생명을 15년 연장시켜주시는 은혜와 자비와 궁휼과 눈물의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 시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애통의 복을 간구합니다. 우리의 더럽고 추악한 죄악을 회개하는 애통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사랑하는 자녀의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 사랑하는 가족의 구원을 위하여 애통하게 하옵소서. 우리 이 시대의 거짓과 죄악을 회개하며 애통하게 하시며, 애통하는 자에게 주시는 소중한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참된 위로와 평안을 부어주옵소서. 참된 위로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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