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교육

마 5장 3절 산상수훈 (3)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01-10 17:46
Views
911


1. 팔복의 은혜

2021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제 마음의 소원은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한 분도 빠짐없이 하나님이 주시는 강복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강복의 은혜를 받아야, 서로 축복하는 삶을 살 수 있고, 서로 축복하는 삶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복을 돌리는 송축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해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이 주시는 강복의 은혜로 가득차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믿음의 사람에게 주시는 강복 중의 강복 지난 주일에 산상수훈에 나오는 팔복을 전체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마음에 새겨면서 다시 한번 팔복이 무엇인지 마태복음 5장 1-12절 다시 한번 읽습니다. 제가 앞 부분을 읽으면 여러분은 뒷 부분의 복을 읽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이 땅에서부터 천국을 소유하는 사람,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사람, 땅을 기업으로 받는 사람, 배부를 사람, 긍휼히 여김을 받은 사람,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는 사람, 그리고 하늘에서 상이 큰 사람이 얼마나 복된 사람입니까? 팔복은 이러한 복을 누릴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의 영혼의 상태와 성품이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팔복 중에서 앞의 네 가지 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복이었고, 뒤의 네 가지 복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받는 복이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 애통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마음 자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은 이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 수단으로 대하지 않고 청결한 마음으로 대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화평케 하는 피스메이커로 살아가며, 기꺼이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삶을 살아갑니다.

여덟가지 복 가운데 오늘은 가장 첫번째 나오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의 복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2. 왜 심령이 가난한 복이 첫번째 복인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팔복은 그 내용이 서로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는 이유는 심령이 가난해지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백성입니까? 누가 이 땅에서 천국의 백성입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고 예수님이 당당하게 말씀해 주시는 이 복된 사람들은 이 땅에서 천국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이 땅에서 천국을 발견한 사람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면, 모두 예외없이 심령이 가난합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의미는 영어 성경을 보면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그는 영혼의 가난함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의 심령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가난함입니다. 세상의 돈, 세상의 부와 명예가, 세상의 쾌락이 그 심령의 가난함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이 사람의 마음은 오직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가난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으로 채울 수 없는 마음의 가난함입니다. 세상의 부, 명예, 쾌락을 좇아 살던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은혜로 심령의 가난함을 경험하고 나서 고백록에 나오는 유명한 고백을 합니다. "당신에게 찬양을 드릴 때에 우리에게 기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께서는 우리를 당신을 위한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이오며, 그리하여 주님 안에서 안식을 발견하기 까지 우리의 마음은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서 언제 하나님을 경험하셨는지요? 유진 피터슨은 메세지 성경에서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벼랑 끝에 서 있는 너희는 복이 있다. 너희가 작아질수록 하나님과 그 분의 다스림은 커진다.”심령의 가난함을 벼랑 끝에 서 있는 너희라고 해석합니다. 얼마나 적절한 해석인지요? 우리 인생이 잘 나갈 때 심령의 가난함을 경험하기 힘이 듭니다. 우리의 인생이 승승장구할 때 심령의 가난함이 아니라 심령의 교만으로 가득찹니다. 심령의 교만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경험하기 쉽지 않습니다.

지난 한 주간 우리 교회 새가족과 함께 훈련하면서 간증문 작성 과제를 받았습니다. 정성껏 작성해주신 간증문을 읽으면서 제 마음이 감사함이 넘쳤습니다. 한 형제님의 간증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인생에서 정말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에 주신 신명기 8장 11-20절 말씀이 마음에 남아있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이 어렵고 힘든 시기에 자신을 살피시고 하나님을 기억하는 희망의 말씀이며, 교만한 때가 찾아올 때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경계하는 말씀으로 삼고, 죽는 날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살겠다는 아름다운 고백이었습니다. 신명기 8장 12-18절 말씀입니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우리 인생에서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소와 양이 번성하며, 은과 금이 증식되어 소유가 다 풍부할 그 때에는 심령의 가난함이 아니라 심령의 교만함이 찾아오기 얼마나 쉬운지요! 그 순간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간절히 구하지도 않습니다. 이 때가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그러나,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인생에서 벼랑 끝을 경험하고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낮추실 때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낮추고 낮추시어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하실 때 그 때가 참으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벼랑 끝에 서 있는 너희는 복이 있나니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때입니다.

심령의 가난함 헬라어 프토코스(ptokos)는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이 구하는 간구입니다. 마치 하루 구걸해서 하루 먹을 수 있는 homeless의 간절한 간구입니다.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절박하게, 절실하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그때 지금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합니다.

마태복음 13장 천국, 하나님의 나라의 비유에 등장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 사람이 천국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마 13장 44-46절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있습니다. 너무 기뻐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삽니다. 이 사람이 천국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진주 장사가 평생에 좋은 진주를 구합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인생에서 최고의 극상품 진주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밭에 감추인 보화인 천국을 발견합니다. 극히 값진 진주를 발견합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는 극히 값진 진주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의 눈에만 발견됩니다. 그러니 심령이 가난한 것이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숨은보배>라는 귀한 책을 대학시절 감명있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유명한 맹인 점장이인 백사겸의 하나님 나라 천국의 발견 이야기입니다. 백사겸은 남을 속여먹는데는 도가 튼 눈치와 짐작으로 점을 치는 조선 최고의 점장이였습니다. 점을 치러 오는 사람이 얼마나 물 밀듯이 찾아오는지 돈은 자꾸 불어갔고 곡식도 쌓이고 패물도 쌓이고 이렇게 쌓이는 것에 비례하여 마음에 공포심도 쌓여갑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고백인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인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눅 12:19). 그러나 마음의 평안을 누려 보려고 애를 쓰지만, 그 생각도 잠시 뿐, “남을 속여서 평안을 누리려 하는 자여, 오늘 밤 네 생명을 찾아가면 네가 예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이 생각이 양심에 찾아오고 공포심을 더 커져만 갑니다. 그래서 남을 속여서 번 돈으로 고아도 돌보고, 구제도 하지만 마음의 불안함이 커져가고 양심의 소리에 뼈가 마를듯한 번민으로 괴로워합니다.

그러던 백사겸은 한 전도자의 예수 믿는 도리가 적힌 작은 전도지를 통해서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믿게 되었습니다. 밭에 감추인 숨은 보배를 발견했습니다. 더 이상 양심의 가책이 찾아와 그 돈 잘벌던 23년간의 점쟁이 일을 내려놓고 차라리 남의 집 문전에 다니며 구걸하는 걸인이 되려고 작정을 합니다. 사람을 속이던 점치는 기구를 다 불살라 버렸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을 아내가 읽어주면 그 말씀을 하루 종일 암송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암송할 때 모든 염려가 다 물러가고 기쁨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천국이 그의 마음에 임했습니다.

3. 심령의 가난함을 잃어버린 바리새인

심령이 가난해서 하나님 나라를 발견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반대로 심령이 교만해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잃어버린 사람도 나옵니다. 누가복음 18장 9-14절 심령의 가난함을 잃어버린 안타까운 바리새인의 기도가 있습니다.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입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르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바리새인은 자기를 의롭다고 여기고 자기보다 조금도 의롭지 못한 사람들은 다 멸시합니다. 그의 교만한 기도는 감사함이 있지만 심령의 가난함을 잃어버린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안타까운 기도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이 얼마나 의로운지, 자신은 다른 사람과 달리 토색, 불의, 간음, 죄인처럼 살지 않고 의롭게 살아간 사람이라 자부합니다. 그는 죄인의 대명사 세리와도 같지 않습니다. 일주일에 두번이나 금식 기도를 합니다. 소득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 앞에서의 심령의 가난함을 잃어버렸습니다.

반면에 죄인 세리는 그 당시 유대 사회에서 가장 돈이 많은 죄인입니다. 그는 감히 성전의 앞자리에 나와오지 못하고 저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볼 자격도 없다고 여기고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겨달라고 나는 죄인입니다 겸손하게 고백합니다. 의로운 바리새인과 죄인인 세리 중에서 누가 심령이 가난합니까? 누가 의롭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누구를 더 좋아하겠습니까?

심령의 가난함을 잃어버리면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회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 스스로 너무나 의로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벼랑끝에 서 있지 않고 은금도 풍부하고 소유도 풍부하고 소와 양이 늘어나니 감사함이 있지만, 절박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 믿음에 찾아온다면, 우리의 영혼의 상태가 그러하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절실한 은혜는 우리가 절박하게 구해야 하는 하나님의 복은 심령의 가난함입니다.

4. 심령의 가난함을 잃어버린 교회

개인만이 심령의 가난함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믿음을 고백하는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도 심령의 가난함을 잃어버린 교회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에 있는 스스로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있습니다. 무역의 중심지로 섬유 산업과 금융이 발달하고 아주 좋은 의료학교가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물질적인 부로 말미암아 심령의 가난함을 잃어버린 교회가 되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풍부하고 풍요롭고 다 가진 교회처럼 보이비다. 그러나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 교회의 주인이신 우리 예수님은 진단하시고 경고하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 15-19절 “내가 네 행위를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심령이 가난하지 않고 심령이 부요하니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고 아주 미지근합니다. 마치 근처의 두 도시에서 나오는 뜨거운 온천 같은 물이 나오는 히에라폴리스와 냉수처럼 시원한 물이 나오는 골로새 교회와는 다르게 파이프를 통해서 미지근한 물을 공급받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마시면 토할 것 같은 영적으로 심령의 가난함을 잃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심령이 부요한 부자 교회가 되었습니다.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이니 회개도 없고 주를 향한 열심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 보시기에는 그가 얼마나 가증한지 그 입에서 토하여 버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눈의 아닌 우리의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보시기에 라오디에가 교회는 얼마나 곤고한 지, 얼마나 가련하고 가난한지, 얼마나 눈 멀고 벌거벗었는지 지금 이렇게 심령이 부요한 교회를 향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유일한 치료책은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아야 합니다. 물질적으로 부요한 교회에 진정 필요한 것은 불로 연단된 금을 사서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영적인 부요함이 필요하며, 우상숭배로 얻은 물질적인 부로 만족하지 말고 흰옷을 사서 입어 하나님 백성의 정결한 정체성을 입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자신들의 영적인 분별력이 없음을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대로라면 라오디게아 교회는 너무나 위험합니다. 지금, 책망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여 불타는 열심을 회복해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와 정반대의 심령의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도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황제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이 도시에 황제가 주님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믿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황제 숭배의 중심도시에 예수님이 주님이시니 믿는 성도들은 제대로 직장을 가질 수도 없고 가난하고 궁핍합니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를 향한 우리 주님의 위로와 격려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9-10절 가난한 서머나 교회를 향한 우리 주님의 위로와 격려의 말씀입니다.“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환난과 궁핍 가운데 있는 교회이지만 우리 주님 보시기에는 서머나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와는 다르게 실상은 부요한 교회입니다. 자칭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말미암아 늘 물질적으로 어려움과 환난 가운데 있지만 우리 주님을 향한 심령은 부요한 교회가 서머나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심령이 가난한 성도입니까? 우리는 영적으로 참으로 가난한 교회입니까?

5. 심령의 가난함을 잃어버린 한국교회의 정인아 미안해

지난 한 주간 한국에서는 정인아 미안해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2021년 1월 새해 첫 방송인 그것이 알고싶다는 정인이는 왜 죽었나 방송이 있었습니다. 생후 7개월 무렵 양부모에게 입양된 이후에 271일만에 숨진 정인이의 죽음을 다루었습니다. 정인이의 양부모는 정인이가 소파 위에서 놀다가 떨어져 사고사로 죽었다고 하지만, 전문가는 사망한 정인의 상태를 보고 배가 피로 가득차 있었고 췌장은 완전히 절단돼 있고, 정인이의 양쪽 팔과 쇄골, 다리에 골절이 있음을 발견했고 명백한 아동학대가 죽음의 원인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정인이를 입양한 양부모 엄마의 이름은 장하영, 아빠의 이름은 아빠는 안성은 모두 이름처럼 기독교인입니다. 장하영과 안성은은 기독교 명문대학인 한동대학교 출신에, 장하영은 포항 제자들 교회 목사님 딸이고, 안성은은 안동침례교회 목사님 아들입니다. 둘다 목사님의 자녀로 태어나 가정에서 신앙 교육을 받고 명문 기독교 대학을 나오고, 안성은은 CBS 기독교 방송국 피디였습니다. 한국교회는 어느덧 심령이 가난함을 잃어버리고 심령이 부유한 교회, 타락한 교회, 세상의 기준에도 못미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정인이가 잠들어있는 무덤을 찾아가 눈물로 회개한 이동원 목사님과 홍정길 목사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널 사랑하심, 널 사랑하심, 하나님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돌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를 용서해 주세요. 한국교회를 용서해주세요. 이 땅에 살고있는 모든 어른들을 용서해주세요. 정인이가 다 누리지 못한 사랑을 주님의 품안에서 누리게 해주세요”

어제 저녁 주일 말씀을 준비하고 있는데, 시애틀에 계신 한 권사님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목사님, 기도 부탁드려요. 미국을 위해서 미국의 교회를 위해서 정말 기도 부탁드리고, 성도님들과 함께 깨어 기도부탁드려요. 하나님이 세우신 미국이 이 땅의 교회가 너무나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어요. 한국 교회가 참으로 능력을 잃어버렸어요. 같이 기도하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심령의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이시간 우리가 정말로 새해 구할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을 구하길 원합니다. 우리 교회 심령이 부자인 성도의 교회가 아니라, 심령이 부자인 교회가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성도들, 심령이 가난한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6. 우리의 기도

선한 능력으로 함께 찬양합니다. 그 선한 힘에 고요히 감싸여 그 놀라운 평화를 누리며, 나 그대들과 함께 걸어가네 나 그대들과 한 해를 여네. 지나간 허물 어둠의 날들이 무겁게 내 영혼 짓 눌러도 오 주여 우릴 외면치 마시고 약속의 구원을 이루소서 주께서 밝히신 작은 촛불이 어둠을 헤치고 타오르네 그 빛에 우리 모두 하나되어 온 누리에 비추게 하소서 이 고요함이 깊이 번져갈 때 저 가슴 벅찬 노래 들리네 다시 하나가 되게 이끄소서 당신의 빛이 빛나는 이밤 그 선한 힘이 우릴 감싸시니 믿음으로 일어날 일 기대하네 주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셔 하루 또 하루가 늘 새로워.

이 시간 기도할 때 우리 팔복의 첫번째 복으로 간절히 합심하여 기도하길 원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벼랑끝에 서 있습니까? 앞이 보이지 않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앞에서 낮추시고 낮추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가진 것으로,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으로 자신을 높여서는 안됩니다. 이 시간 간절히 기도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을 얻게 하옵소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누리게 하옵소서. 미국과 미국의 교회가, 한국과 한국의 교회가 영적으로 잠들지 않고, 깨어 하나님 앞에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상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회개하게 하옵소서. 심령의 부함을 회개하고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모습을 돌이켜 열심을 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살아가는 제자의 삶이 감추어지지 아니하며 이 땅에서 우리 지역에서 세상의 소금으로, 세상의 빛으로, 산위의 동네로, 등불로 밝히 드러나는 우리의 착한 행실로 하나님 아버지께 온전히 영광이 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의 그들의 것임이요 말씀하시며 그 복을 찾고 구하길 원하시는 우리 주님, 이 시간 아버지 앞에 회개하고 돌이킵니다. 우리이 마음이 너무나 부해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낮추시고 낮추시던 때를 잊어버리고 교만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고 너무나 미지근한 모습으로 살아왔습니다. 이 시간 간절히 구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이 우리에게 우리 교회에게 임하게 하옵소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는 천국이 우리에게 임하게 하옵소서. 밭에 감추인 보화, 극히 값진 진주같은 숨은 보배를 찾고 구하게 하시며, 누리게 하시며, 이 타락의 시대에 어두운 세대에, 세상의 썩어짐을 방지하는 짠 맛나는 소금으로,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환한 빛된 삶으로 우리 지역에서 산위의 동네로 등불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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