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5장 1-12절 산상수훈 (2) 새해의 복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01-03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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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1년 새해 복 많이 받으소
2021년이 한국에서는 신축년 흰 소의 해입니다. 새해 덕담으로 주고 받는 소와 연관된 퀴즈가 있습니다. 세 개의 퀴즈가 있습니다. 연습삼아서 한번 해 보면 좋겠습니다. 소가 거지가 되면? 우거지, 소가 소금을 먹으면? 우짜지, 소가 진흙탕에 빠지면? 우습지,
이번에는 소를 주제로 한 열개의 넌센스 퀴즈를 내겠습니다. 6개 이상이상 맞추시면 천재입니다. 소 한 마리를 두 글자로 줄이면? 소원, 소 두마리를 두 글자로 줄이면? 투우, 소 네마리를 두 글자로 줄이면? 소포, 소 여러마리를 두 글자로 줄이면? 소스 (소s), 소 여러마리가 단체로 노래를 부르는 것은? 단체소송, 죽은 소는? 다이소, 소가 위로 올라가면? 소오름, 발이 두 개 달린 소는? 이발소, 소가 웃는 소리를 세 글자로 하면? 우하하, 마지막으로 서울로 가는 소는? 소설가
한해를 시작하면서 많은 분들에게 소로 끝나는 재미있는 인사를 받았습니다. 소의 해에 새해 복 많이 받으소, 행복하소, 건강하소, 사랑하소, 소원성취하소, 대박나소, 바라는 바 다 이루는 한 해 되소. 사랑하는 여러분, 꼭 그렇게 되시길 간절히 축복합니다.
2. 축복, 강복, 그리고 송축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에게 주시는 복을 우리는 축복이라고 하지 않고, 강복이라고 합니다. 복과 연관된 세 가지 중요한 구분이 있습니다. 축복, 강복, 그리고 송축이 있습니다. 축복은 복을 빌어주는 것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축복할 수 있습니까? 축복은 우리 사람끼리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축복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4절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우리는 서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축복이 아니라 강복이라고 합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늘에서 복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하지 않으시고, 강복하십니다. 축복은 복을 빌어 주는 것이기에 우리 하나님이 복을 빌어줄 대상이 없기에 우리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축복이 아니라 강복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복을 내려주시는 것이 강복입니다.
우리는 강복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축복과 강복의 귀한 말씀 민수기 6장 22-27절 아론과 그의 아들들인 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축복과 그 축복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강복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합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제사장의 그 축복에 우리 하나님은 함께 계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이것이 강복입니다.
하나님께 강복의 은혜를 받은 우리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복도 있습니다. 무슨 복이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복을 송축이라고 합니다. 시편 145편 1-2절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2021년 한 해 하늘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강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우리는 서로 서로를 향해서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강복의 넘치는 은혜를 받은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서 전심으로 송축합니다. 강복과 축복과 송축의 은혜가 여러분의 삶에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3. 산상수훈의 팔복과 우리가 구해야 할 복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우리 인간이 구하는 세상적인 복 되신에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바라시는 강복중의 강복이 있습니다. 가장 큰 강복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산상수훈의 팔복입니다. 마태복음 5장 3-12절 산상수훈의 팔복의 말씀 우리 마음에 새기며 함께 읽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헬라어 성경과 영어 성경으로 보면, 마카리오이!!! Blessed!!! 복되도다 감탄사로 시작합니다. 이 사람들은 복을 받을 사람들이 아닌, 이 사람들은 이미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주시는 강복의 복을 이미 받아 누린 사람들이 어떠한 사람인지 보여줍니다. 어떠한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인지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팔복의 복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팔복이 우리에게도 해당이 되는지요? 여덟가지 복 가운데 단 하나라도 해당이 되는지요? 진심으로 축하하고, 축하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하나님의 강복을 받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여덟가지 복이 정말 나에게는 하나도 해당이 안된다면 이 시간 진지하게 우리 자신을 돌아보야합니다. 여덟가지 복이 나에게 하나도 해당이 안된다면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최우선순위로 구해야 하는 복은 다른 복이 아니라 팔복입니다.
오늘은 송구영신 예배의 마 5:13-16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말씀에 이어서 산상수훈 두번째 말씀입니다. 산상수훈의 팔복으로 시작을 했으니 오늘은 산상수훈 팔복의 일반적인 가르침부터 시작하고, 다음주일 부터는 팔복의 내용 하나 하나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부어주실 새해의 복을 누리면 좋겠습니다.
4.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인 산상수훈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는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산상수훈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다섯번의 가르침 (5-7장, 10장, 13장, 18장, 24-25장) 가운데 제일 먼저 나오는 말씀이며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의 핵심이 산상수훈입니다. 그동안 우리의 제자도의 가르침을 19번에 걸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가르치신 사역의 핵심이며, 우리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이 반드시 배우고, 배운 그 가르침을 누군가에게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 산상수훈으로 들어갑니다.
산상수훈을 생각하니 제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도의 비폭력 평화주의자 마하트마 간디가 생각이 납니다. 간디는 산상수훈을 즐겨 읽고 암송하면서 인도의 비폭력 운동을 이끌어 왔지만, 자신이 기독교인이 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기독교인들이 산상수훈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라고 불평을 했습니다. 간디는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산상수훈대로 살아간다면 인도의 모든 힌두교인도 불교인도 모두 기독교로 개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개독교라 불리우는 이유를 우리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는 그리스도인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2절 산상수훈의 시작입니다.“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에서 수 많은 무리들을 보셨는데, 그 무리들 중에서 예수님께 나아온 제자들이 있습니다. 산에서 가르치신 말씀을 산상수훈이라고 합니다. 산상수훈의 가르침과 아주 비슷한 가르침이 누가복음 6장 20-49절에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20절부터 49절까지는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의 산상수훈에 해당되는 평지수훈, 혹은 평지설교라고 합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산이 아니라 평지에 서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평지설교나 산상설교나 말씀의 핵심 내용은 세상 나라의 도덕이 아닌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의 가르침입니다.
마태의 산상수훈의 가르치신 시점과 누가의 평지수훈을 하신 시점이, 열 두명의 제자를 부르신 이후에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 말씀을 전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산상수훈과 평시수훈의 가르침을 들어야 하는 사람은 세상 사람이 아닌 밤이 새도록 기도하면서 부르신 하나님 나라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입니다. 많이 배우지 못하고, 인격적으로 부족하고 능력없는 제자들이지만, 앞으로의 하나님 나라는 바로 이 제자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제자들이 어떠한 삶을 사는가는 제자들이 전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합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조금만 살펴보아도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지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지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산상수훈의 말씀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5장 38-42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엑 거절하지 말라.“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어떻게 이런 가르침을 정말 지키면서 사는 것이 가능한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산상수훈의 가르침은 결코 세상의 도덕이나 도덕의 반성적인 행동인 윤리가 아닙니다. 절대로 세상 사람들은 이런 가르침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산상수훈의 예수님의 가라침을 지킬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전제는 세상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한 것입니다. 산상수훈은 세상 나라의 윤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속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윤리이며, 세상 나라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인 제자들에게만 주신 하나님의 나라의 가장 본질적인 성격을 설명하는 영적인 가르침입니다.
마태복음 4장 23-25절 말씀을 보면, 5장부터 시작하는 산상수훈 이전에 예수님께서 어떤 사역을 하셨는지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의 말씀을 하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이미 하나님 나라의 복음,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천국 복음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 가운데 이루어지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임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마지막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예수님의 재림때에 이루어지지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 들린 자들을 고치신 것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능력으로 임하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마태복음 12장 28절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쫒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고, 시작되었습니다. 산상수훈은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 백성을 위한 가르침입니다.
5. 하나님 나라의 복의 성격
누가 세상에서 진정으로 복있는 사람입니까? 누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까? 산상수훈의 팔복은 세상의 복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고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복의 내용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복과는 정 반대 성격의 복입니다. 그러나, 팔복은 하나님 나라의 복이 무엇인지, 누가 진정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복된 사람인지 알려줍니다.
팔복의 복의 내용을 조금 자세히 살펴봅니다. 팔복 중에서 앞의 네 가지 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복이며, 뒤의 네 가지 복은 주로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복입니다.
첫째,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의 심령은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채울수 없는 가난함입니다. 세상의 돈이 그 심령의 가난함을 채울수가 없습니다. 이 사람의 마음은 오직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가난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으로 채울 수 없는 마음의 가난함입니다.
둘째, 애통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이들이 애통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가난한 마음 가운데 자신을 바라보니, 자신의 허물과 죄악이 너무나 큰 것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동시에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에 너무나 많은 죄와 악과 고통이 있기 때문에 애통합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지만, 세상에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세상, 악한 사람들이 가득하기에 이들의 마음은 애통합니다.
셋째, 온유한 자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리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본다면 결코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교만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온유한 사람이 사람들 앞에서는 겸손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반대로 사람들에게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온유한 사람이 아닙니다. 온유한 사람이 받을 복은 땅입니다. 구약에서는 약속하신 언약의 땅은 눈에 보이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었지만, 하나님 나라에서의 땅은 예수님과 함께 다스리고 통치하는 통치의 권세입니다.
넷째,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사람은 하나님의 의가 이 땅에 실현되는 것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의는 죄인을 값없이 의인으로 칭해주시는 믿음으로 얻는 칭의,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의,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서 행동하는 거룩함의 의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모두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나오는 의 입니다.
이 네 가지 상태는 모두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만 가능한 복입니다. 시편 42편의 목마른 사슴처럼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한 마음의 상태가 네 가지의 복된 마음의 상태입니다. 시편 42편 1-2절 시인의 간절한 간구입니다.“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은 하나님을 갈망하고 전적으로 의지하는 심령이 가난한 자들의 것이며, 애통하는 자들의 것이며, 온유한 자들의 것이며,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의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정말 복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누리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이 받는 복이 있습니다.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미래 시제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누리는 천국입니다.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배부를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누리는 하나님이 강복하시는 복이 있습니다. 이 강복의 복은 누가 주시는 것입니까? 마태복음 5장의 팔복의 복은 구약성경 이사야서 61장 1-3절의 복과 일치합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이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습니다. 여기서 내게는 누구입니까? 그 분이 오셔서 기름부음을 받으시고, 메시야가 되셔서 이 땅에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가난한 사람에게 아름다운 소식 복음을 전하십니다. 죄로 인해서 그 마음이 상하고 슬픈 자를 고치시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선언하십니다. 드디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해가 시작되었고, 이제는 이 땅에서 죄로 인해서 슬픈 자, 애통하는 자를 위로하시며, 화관을 주어 기쁨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시는 분이 오십니다.
누가복음 4장 16-21절 우리 예수님은 구약 이사야 61장 1-3절 말씀을 나사렛 회당에서 읽으시면서 이 말씀으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이 일을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포로된 자에게 진정한 자유를, 눈 먼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시기 위해서,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며, 이제는 주의 은혜의 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시작되었다는 선포하기 위하여 우리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어두운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는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 산위의 동네, 등불 같은 하나님의 사람은 바로 하나님과 관계에서 강복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복된 사람들의 삶은 이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다섯번째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사람을 긍휼히 여길 수 있는 사람은 자신도 연약하고 실수하고 범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로 사람들을 대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수가 있는가가 아니라, 사람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여섯번째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사람을 대할 때 사심이 없이 사람을 대합니다. 사람을 이용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 진실되이 사랑하고 섬겨주며 사람을 대합니다.
일곱번째 화평케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화목화게 된 사람이 사람들 사이에서 피스메이커가 되는 것는 것입니다.
여덟번째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삶을 이 땅에서 사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받는 어려움과 고통입니다.
6. 누가 복이 있는 사람인가?
팔복의 말씀을 마무리 하면서, 예수님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결론을 짓고 있습니다. 11-12절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여기에서 말씀하는 너희는 그냥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무리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서 살기로 헌신하고 작정한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의 길은 이땅에서 누릴 것 다 누리고, 예수님을 이용해서 하나님께 복을 구하고 구해서 더 복 받고 더 편안하게 더 안락하게 살아가려는 삶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 좋아하고, 미워하는 사람 더 싫어하는 삶이 아닙니다. 죄가 가득한 불의한 세상에서 전적으로 하나님 의지하고 사람 사랑하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 말미암아 기꺼이 고난과 고통 당하였던 구약의 선지자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진정한 제자의 삶의 모습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동일하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전적으로 다릅니다. 그들의 삶은 마치 이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이며,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환한 빛입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숨어살 수 없고, 오히려 정반대로 산 위의 동네처럼 이 땅에서 환하게 드러나는 삶입니다. 그들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의 나라와 달리 얼마나 영광스러우며 복된 나라인지 나타납니다. 그들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영광받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021년 새해 무슨 복을 구하셨습니까? 무슨 복을 구해야 합니까? 세상의 복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을 구하십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저 구할 복이 있습니다.
2020년에 발견한 귀한 시와 찬양이 있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의 옥중서간에 나오는 1944년 12월의 마지막 날 기록한 소중한 시입니다. 새로운 한 해를 기대하면서 남긴 소중한 보물같은 시입니다. 본회퍼 목사님은 독일 브레슬라우에서 정신과 의사 칼 본회퍼의 여섯째 아들로, 독일의 명문 튀빙겐 대학교, 베를린대학교, 그리고 미국의 유니온 신학교에서 유학한 천재적인 신학자이자, 독일 루터교회 목회자이자, 반 나치 운동 운동가이며, 나치운동에 반대하는 독일고백교회 목사이며 고백교회 신학교 교수였습니다. 1943년 1월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와 약혼하고 결혼을 눈 앞에 두고 4월 5일 히틀러 암살모의로 체포되어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다가 1945년 제2차세계대전 종전을 한달 앞두고 4월 9일 새벽에 교수형으로 처형되었습니다. 교수형으로 처형될 것을 알지만 그는 감옥에서도 하나님의 선한 능력을 깊이 깊이 체험합니다.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그 선한 힘에 고요히 감싸여 그 놀라운 평화를 누리며, 나 그대들과 함께 걸어가네 나 그대들과 한 해를 여네. 지나간 허물 어둠의 날들이 무겁게 내 영혼 짓 눌러도 오 주여 우릴 외면치 마시고 약속의 구원을 이루소서 주께서 밝히신 작은 촛불이 어둠을 헤치고 타오르네 그 빛에 우리 모두 하나되어 온 누리에 비추게 하소서 이 고요함이 깊이 번져갈 때 저 가슴 벅찬 노래 들리네 다시 하나가 되게 이끄소서 당신의 빛이 빛나는 이밤 그 선한 힘이 우릴 감싸시니 믿음으로 일어날 일 기대하네 주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셔 하루 또 하루가 늘 새로워.
7. 우리의 간구
선한 능력으로 함께 찬양합니다.
오늘 이 시간 기도할때 하나님 나라의 복된 삶의 모습이 우리에게도 나타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길 원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돌아보며, 우리의 마음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심령이 가난하며, 애통하며, 온유하며,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둘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모습이 우리가 사람들을 대하는 삶의 태도에도 더욱 선명하게 나타나 사람을 긍휼히 여기며, 청결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여, 화평케 하며, 의를 위하여 기꺼이 박해를 받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살아가는 제자의 삶이 감추어지지 아니하며 이 땅에서 세상의 소금으로, 세상의 빛으로, 산위의 동네로, 등불로 밝히 드러나는 우리의 착한 행실로 하나님 아버지께 온전히 영광이 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상태와 우리의 행동을 보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의 복된 마음의 상태가 늘 유지되게 하옵소서. 심령이 가난하며, 애통하며, 온유하며, 의에 주리고 목마른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마음이 되게 하옵소서. 그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할 때 진정으로 긍휼히 여기며, 청결한 마음으로 대하게 하시며, 화평케 하는 사람으로, 의를 위하여 기꺼이 박해받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이 땅에서 복된 마음의 상태와 사람들을 대하는 착한 행실로 세상의 썩어짐을 방지하는 짠 맛나는 소금으로,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환한 빛된 삶으로 우리 지역에서 산위의 동네로 등불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하옵소서. 이 시간 하나님의 주시는 선한 능력이 작고 연약한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 성도들의 마음에 충만히 임하여 세상에서 그 어떠한 환난을 당해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충만한 은혜를 부어주옵소서. 감사드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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