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5장 13-16절 산상수훈 (1) 산 위의 동네 교회 -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Author
김민순 목사
Date
2021-01-01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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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음성 파일은 왼쪽 아래에 있습니다.
1. 역병의 시대에 교회는 세상의 소망인가?
2020년 올 한 해의 마지막 순간입니다. 2020년을 돌아보니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3월부터 시작된 팬더믹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에서 새로운 가족들을 많이 보내주셨고 아직은 미약한 공동체이지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지난주 임시 카운실에서 2020년 을 돌아보니, 우리 교회는 팬더믹 상황에서도 유일하게 성장한 교회가 우리 교회가 아닌가 그런 은혜의 말씀도 나누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AD 165년 로마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시대에 치명적인 역병이 일어나 황제를 포함해서 인구의 1/3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때의 역병은 천연두 였습니다. 한 해만 역병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AD 260년에 또 다른 치명적인 역병이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는 홍역입니다. 로마 제국의 쇠망에 결정적인 원인인 도덕적인 타락와 함께 역병으로 일어난 급격한 인구의 감소가 새로운 원인이었다는 로드니 스타크의 <기독교의 발흥>이라는 책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역병이 일어나는 때에 오히려 기독교는 엄청나게 회심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흥미롭게도 역병의 때에 수 많은 사람들은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죽음의 악취가 진동하는 도시의 한 복판에서, 사방에서 가족과 친지들이 쓰러가 가며, 우리도 언제 병에 걸릴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인간은 왜?라고 묻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왜 모두 죽게될까? 이 다음 세상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AD 260 디오니시우스는 이교도와 기독교의 결정적인 차이가 역병의 상황에서 일어났다고 기록했습니다. “이교도들은 질병이 처음 발생하자 아픈 자들을 내쫓았고 가장 가까운 자로부터 도망쳤으며 병자가 죽기도 전에 거리에 내다버리고 매장하지 않은 시신을 흙처럼 취급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치명적인 질병의 확신과 전염을 피하고자 했으나 이내 아무리 몸부림쳐도 도망치기 어려움을 깨달았습니다”
기독교인은 역병의 시대에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우리 기독교인 형제들은 대부분 무한한 사랑과 충성심을 보여주었으며 한시도 몸을 사리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아픈 자를 도맡아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필요를 공급하고 섬겼습니다. 그리고 병자들과 함께 평안과 기쁨 속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들은 환자로부터 병이 옮자 그 아픔을 자신에게로 끌어와 기꺼이 고통을 감내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다른 이를 간호하고 치유하다가 사망을 자신에게로 옮겨와 대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우리 형제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중에는 크게 칭찬 받는 장로와 집사와 평신도들이 있었고 큰 경건과 강건한 믿음의 결신인 이런 죽음은 어느 모로 보나 순교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팬더믹 시대에도 기독교는 여전히 세상에 소망을 줄 수 있습니까?
2. 언덕위의 도시의 비전을 품고
합동신학대학원애서 신학석사과정을 공부하면서 “언덕위의 도시” (A City Upon A Hill)라는 인상적인 청교도들의 비전을 발견했습니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해서 추수감사절을 지낸 분리주의 청교도들이 아니라, 1630년 3월 영국에서 아르벨라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영국에서 출발하기 위해 모인 성도들을 위한 출발 예배에서 영국의 존 코튼 목사님은 그들에게 새로운 대륙에 도착해서 새로운 국가를 만들때 모든 나라들이 우러러 보는 “언덕 위의 도시”같은 나라를 만들어달라고 축복하며 설교했습니다. 미국의 보스턴에 도착하기 전에 아벨라르호 선상에서 그들의 지도자 존 윈스럽도 “기독교 자비의 모델(A Model of Christian Charity)에서 “우리는 언덕 위의 도시로 세워질 것입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언덕위의 도시 얼마나 멋진 이상이요 비전입니까? 언덕위의 도시는 그냥 구호만이 아니라 언덕위의 도시 같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세 가지 실천 사항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개인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 백성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개인언약을 강조했습니다. 개인인 언약의 자녀들이 모인 가정에서 자녀들을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하려했습니다 둘째는 교회도 교회언약을 맺어 개인 개인의 성도들을 하나의 영적인 공동체로 묶어서 서로 교제하고 서로 기도하고 서로 믿음 안에서 경건하게 살아갈 것을 격려했습니다. 개인과 가정과 교회만이 아니라 사회 – 세상도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의 공동체임을 기억하기 위하여 사회언약을 맺었습니다.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사회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 공동체임을 강조한 그들의 비전이 오늘날 세계의 초강대국 미국을 만든 원동력이었습니다.
미국을 세운 초기 청교도들의 언덕위의 도시라는 이상은 그들의 생각이 아니라 마태복음 5장14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산상수훈의 내용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A City on a hill cannot be hidden). 예수님이 말씀하신 산 위에 있는 동네는 우리 알버커키 지역과 비슷합니다. 저 멀리 리오랜초에서도 보이는 산디아 산을 보면 얼마나 웅장하지 모릅니다. 저녁이 되어서 샌디아 산에 있는 집을 보면 밝은 빛을 비추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산 아래에서도 보이는 저 빛나는 집에 사시는 분은 누굴까 가끔 궁금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0201년을 기도하면서 준비하면서 우리 삶을 보고 누군가 몹시 궁금한 산 위의 동네같은 삶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2021년 교회 표어를 산위의 동네 같은 교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로 정했습니다.
3.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선언
마태복음 5장 13-14절 우리 같이 읽습니다.“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을 가리키는 4가지 단어가 나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 너희는 세상의 빛, 산 위에 있는 동네, 등불입니다. 한번 따라하겠습니다. 우리가 누구라구요?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 산 위에 있는 동네, 등불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조금 생각해보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되어야 한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그냥,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선언하시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의 정체성을 말합니다. 제자들은 산위의 동네같은 존재이며, 제자들은 세상의 소금이며, 세상의 빛이며, 제자들은 등불이다라고 선언합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온 세상의 사람들을 위해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그리 대단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갈릴리에서 물고기 잡던 어부들이고, 세상 사람들에게 욕먹는 세리였고, 학력이 대단한 사람들도 아니고,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향해서 너희는, 아니 너희만 세상의 소금이고,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요, 산위의 동네요, 등불로 부르셨습니다.
에베소서 5장 8절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전에는 우리도 어둠이었습니다. 우리 안에 더러운 죄와 악함이 가득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런 어둠이 가득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셔서 이제는 주안에서 빛으로 삼아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이한 빛을 받은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와 그의 보배로운 소유가 된 백성으로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어 무엇이 되라고 부르셨습니까?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 산 위의 동네, 등불이 되라고 부르셨습니다. 왜 이렇게 우리를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산 위의 동네로 등불로 부르셨습니까?
4. 우리는 세상에서 소금과 빛처럼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소금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빛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세상에 소금이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에 빛이 없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말이 안됩니다. 우리는 뉴 멕시코에서 알버커키에서 리오랜초에서 있으나마다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 지역에 꼭 꼭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가정에서 음식을 만들 때 소금은 꼭 필요합니다. 냉장고가 없던 예수님 시대에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지만 음식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소금이 없으면 금방 부패되는 음식도 소금을 치면 한달 두달 세달도 넘게 음식이 보존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라는 것은 죄와 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래도 죄와 악으로 가득한 세상의 죄와 부패를 방지하라고 우리를 세상에서 부르시고 세상으로 파송하십니다.
기독교인이 세상으로 들어가면 세상에서 천대받던 어린아이들도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가 되어집니다. 복음이 세상으로 들어가면 가정에서 억울하게 대접받던 여인들도 소중한 존재가 되어집니다. 빌레몬의 종, 노예였던 오네시모같은 사람도 교회의 영적인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진짜 기독교인이 정말 세상에 들어가면 세상의 죄와 부패가 사라집니다. 그러니 너희는 우리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소금만이 아니라 빛은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필요합니까? 빛이 없는 세상에서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빛이 비추어지면 어두움이 일순간에 물러갑니다. 집안에 있는 등불 얼마나 필요합니까? 등불이 있어야 어둠을 물러나 살 수 있습니다.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와 우리 성도들이 알버커키에 있는 이유는 우리 지역의 소금처럼, 빛처럼, 등불처럼 산위의 동네같은 교회로 지금 여기에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산위의 동네처럼 우리 알버커키, 뉴 멕시코를 비추는 우리 교회, 우리 성도가 우리 지역에는 꼭 필요합니다.
5. 소금과 빛은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소금은 짠맛을 내야 합니다. 짠 맛을 내지 못하는 소금은 소금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합니다. 빛은 세상을 비추어야 합니다. 빛이 어둠에 비추지 않으면 어둠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소금과 빛은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13절 말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저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짠 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아무도 찾지 않습니다.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힙니다. 짠맛을 잃은 소금은 헬라어 모라이어 – 영어의 moron (모론) 입니다. 어리석은 자입니다. 세상의 소금같은 성도가 세상에 드러내야 하는 일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14- 15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세상의 빛, 산위의 동네는 세상을 비춥니다. 저 샌디아 산에 있는 동네 밤 마다 저기에 집이 있음을 밝히 비추입니다.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는 집은 아무도 없습니다. 등불은 등경 위에 두어야 집안의 모든 사람에게 비춥니다.
어떻게 하면 짠맛을 드러내는 소금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어둠을 비추는 빛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출애굽기 34장 29-30절에 그 비결을 보여주는 사건이 있습니다.“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으므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모세의 얼굴에 빛나는 광채가 납니다. 모세의 나이 80세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얼굴에 광채가 납니다. 비결은 어디에 있습니까? 시내산에서 40일 40야를 하나님과 함께 만나며 대화하며 받은 하나님의 빛이 모세의 얼굴에도 비추었습니다.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나는 것을 모세의 형님 아론도 알고 온 이스라엘 자손도 다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 세상에서 소금처럼 짠 맛을 내며, 어두운 세상을 비출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새해에는 빛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우리는 더욱 빛을 밝히 드러낼 것입니다. 우리에게 참 빛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9-12절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참 빛이신 하나님이 보내신 빛 중의 빛이신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세상은 참 빛이신 예수님을 모르지만 영접하는 자 곧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는 빛이 계십니다. 이 참 빛에 가까이 하는 삶,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자가 점점 더 빛으로 가까이 나아가는 삶은 예배입니다. 새해에는 무엇보다 참 빛에 나아가는 예배자가 되십시오. 우리가 참된 예배자가 되면 될수록 우리가 받는 빛으로 어두운 세상을 비출 수 있는 빛이 많아집니다.
두번째는 하나님을 함께 섬기는 우리 빛된 믿음의 형제 자매와의 교제입니다. 작은 모닥불 하나는 세상에 큰 영향력이 없지만, 작은 모닥불이 모이고 모이면 커다란 횃불이 됩니다. 믿음의 형제 자매와의 교제가 끊어지면 우리의 빛은 점점 작아집니다. 믿음의 형제와 자매와 교제가 왕성하면 할 수록 우리이 세상적인 생각을 내려놓게되고 점점 더 어두운 세상을 비출 수 있는 빛이 강해집니다.
셋째는 훈련입니다. 마태복음 4장 23-24절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예수님의 3가지 사역: 가르치시며 전파하시며 고치시니 – 예수님의 3가지 사역을 이어가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가기 위해서 훈련하는 일에 열심을 내면 낼수록 우리가 세상에 빛을 비출수 있는 영향력은 점점 커져갑니다. 새해에는 교회에서 제공되는 훈련에 무슨 일이 있어도 빠지지 않고 다 받으리라고 결심합니다.
이번 성탄절에 받은 카드 가운데 제 마음을 감동시킨 카드가 있었습니다. 저 멀리 디트로이트에서 저희 교회 홈페이지를 보고 구약의 파노라마, 신약의 파노라마 음성 강의와 강의안을 보고 한해 동안 열심히 공부하시고 성경을 통독하신 집사님 한 분이 보내온 감사의 카드였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과함께 공부한 것을 녹음해서 교회 홈페이지에 올려 놓기만 했는데 그것을 열심으로 듣고 배우고 성경 전체를 통독한 것이 큰 은헤가 되었다는 집사님의 감사의 카드가 얼마나 행복했는지요!
넷째, 훈련을 받았으면 사역을 해야 합니다. 배웠으면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재능과 은사를 가지고, 달란트와 므나를 가지고, 땅에 묻어두지 않고 세상에서 열심히 장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독특한 성격이 있습니다. 아주 독특한 은사와 재능이 있습니다. 아끼지 말고 땅에 묻어두지 않고, 열심으로 장사해서 이윤을 남기는 사역을 감당합니다.
다섯번째, 복음 전도와 선교입니다. 이사야 42장 6-7절 말씀입니다.“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두운 세상에서 부르신 이유는 이방의 빛을 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의 빛이 되기를 거부하면 온 세상은 소망이 없습니다. 지금도 세상은 너무나 어두운 흑암에 앉은 백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합니까? 교회가 세상에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교회 내에서 서로 성격이 다르다고 갈등하고 싸우다 스스로 빛을 잃어버리고 망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복음 전도과 선교에 힘을 쓰면 어두운 세상은 다시 빛으로 돌아옵니다. 우리 지역에 빛을 잃고 방황하는 잃어버린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어떻게 해야합니까?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6. 소금과 빛은 세상에서 숨어 있지 말고, 세상에 드러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한해 여러분과 함께 이토록 어려운 시간을 예배하며, 교제하며, 훈련받으며, 사역하며, 전도하고 선교하면서 볼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2021년 하나님께서 우리 생애에 1년을 더 연장하여주신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세상에서 우리 지역에서 숨어있지 말고, 당당하게 세상에 드러나야 합니다.
참 빛이신 우리 하나님, 우리 예수님의 빛을 받아 여러분의 가정에서 환하게 비추는 삶을 살아갑시다. 우리 직장과 사업터 삶의 터전에서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는 짠 맛나는 소금으로, 어두운 세상을 밝히 비추는 세상의 빛으로, 우리 산위의 동네 알버커키의 언덕위의 도시로 우리 도시를 환하게 밝게 비추어 줍시다.
7. 2020년을 마무리하고 2021년을 위한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2020년 과거를 돌아볼 때,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하신 그 크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구원하시며 지금까지 지켜주신 크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도 어려움 가운데 성장하게 하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현재 우리의 삶의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께 믿음으로 간구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현재의 건강과 재정과 우리 인간관계와 삶의 절박한 어려움, 잘 아시지요? 주님께 의탁합니다. 건져주옵소서. 이 어려움에서 꼭 이겨 내어,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진정한 주인이심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2021년 미래를 주님께 의탁합니다. 올해는 무엇보다 가정과 삶의 현장과 우리 지역에서 소금으로 빛으로 산위의 동네로 등불로 환하게 비추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러기 위해서 더욱 예배하며, 더욱 교제하며, 더욱 훈련받으며, 더욱 사역하며, 더욱 전도와 선교에 힘쓰는 빛을 가까이 하며 빛을 비추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로 인해서 우리 가정에 사업터에 우리 지역에 복된 미래, 영광스러운 미래를 확신하며 오늘도 승리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역병의 시대에 교회는 세상의 소망인가?
2020년 올 한 해의 마지막 순간입니다. 2020년을 돌아보니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3월부터 시작된 팬더믹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에서 새로운 가족들을 많이 보내주셨고 아직은 미약한 공동체이지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지난주 임시 카운실에서 2020년 을 돌아보니, 우리 교회는 팬더믹 상황에서도 유일하게 성장한 교회가 우리 교회가 아닌가 그런 은혜의 말씀도 나누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AD 165년 로마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시대에 치명적인 역병이 일어나 황제를 포함해서 인구의 1/3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때의 역병은 천연두 였습니다. 한 해만 역병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AD 260년에 또 다른 치명적인 역병이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는 홍역입니다. 로마 제국의 쇠망에 결정적인 원인인 도덕적인 타락와 함께 역병으로 일어난 급격한 인구의 감소가 새로운 원인이었다는 로드니 스타크의 <기독교의 발흥>이라는 책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역병이 일어나는 때에 오히려 기독교는 엄청나게 회심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흥미롭게도 역병의 때에 수 많은 사람들은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죽음의 악취가 진동하는 도시의 한 복판에서, 사방에서 가족과 친지들이 쓰러가 가며, 우리도 언제 병에 걸릴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인간은 왜?라고 묻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왜 모두 죽게될까? 이 다음 세상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AD 260 디오니시우스는 이교도와 기독교의 결정적인 차이가 역병의 상황에서 일어났다고 기록했습니다. “이교도들은 질병이 처음 발생하자 아픈 자들을 내쫓았고 가장 가까운 자로부터 도망쳤으며 병자가 죽기도 전에 거리에 내다버리고 매장하지 않은 시신을 흙처럼 취급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치명적인 질병의 확신과 전염을 피하고자 했으나 이내 아무리 몸부림쳐도 도망치기 어려움을 깨달았습니다”
기독교인은 역병의 시대에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우리 기독교인 형제들은 대부분 무한한 사랑과 충성심을 보여주었으며 한시도 몸을 사리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아픈 자를 도맡아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필요를 공급하고 섬겼습니다. 그리고 병자들과 함께 평안과 기쁨 속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들은 환자로부터 병이 옮자 그 아픔을 자신에게로 끌어와 기꺼이 고통을 감내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다른 이를 간호하고 치유하다가 사망을 자신에게로 옮겨와 대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우리 형제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중에는 크게 칭찬 받는 장로와 집사와 평신도들이 있었고 큰 경건과 강건한 믿음의 결신인 이런 죽음은 어느 모로 보나 순교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팬더믹 시대에도 기독교는 여전히 세상에 소망을 줄 수 있습니까?
2. 언덕위의 도시의 비전을 품고
합동신학대학원애서 신학석사과정을 공부하면서 “언덕위의 도시” (A City Upon A Hill)라는 인상적인 청교도들의 비전을 발견했습니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해서 추수감사절을 지낸 분리주의 청교도들이 아니라, 1630년 3월 영국에서 아르벨라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영국에서 출발하기 위해 모인 성도들을 위한 출발 예배에서 영국의 존 코튼 목사님은 그들에게 새로운 대륙에 도착해서 새로운 국가를 만들때 모든 나라들이 우러러 보는 “언덕 위의 도시”같은 나라를 만들어달라고 축복하며 설교했습니다. 미국의 보스턴에 도착하기 전에 아벨라르호 선상에서 그들의 지도자 존 윈스럽도 “기독교 자비의 모델(A Model of Christian Charity)에서 “우리는 언덕 위의 도시로 세워질 것입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언덕위의 도시 얼마나 멋진 이상이요 비전입니까? 언덕위의 도시는 그냥 구호만이 아니라 언덕위의 도시 같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세 가지 실천 사항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개인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 백성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개인언약을 강조했습니다. 개인인 언약의 자녀들이 모인 가정에서 자녀들을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하려했습니다 둘째는 교회도 교회언약을 맺어 개인 개인의 성도들을 하나의 영적인 공동체로 묶어서 서로 교제하고 서로 기도하고 서로 믿음 안에서 경건하게 살아갈 것을 격려했습니다. 개인과 가정과 교회만이 아니라 사회 – 세상도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의 공동체임을 기억하기 위하여 사회언약을 맺었습니다.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사회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 공동체임을 강조한 그들의 비전이 오늘날 세계의 초강대국 미국을 만든 원동력이었습니다.
미국을 세운 초기 청교도들의 언덕위의 도시라는 이상은 그들의 생각이 아니라 마태복음 5장14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산상수훈의 내용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A City on a hill cannot be hidden). 예수님이 말씀하신 산 위에 있는 동네는 우리 알버커키 지역과 비슷합니다. 저 멀리 리오랜초에서도 보이는 산디아 산을 보면 얼마나 웅장하지 모릅니다. 저녁이 되어서 샌디아 산에 있는 집을 보면 밝은 빛을 비추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산 아래에서도 보이는 저 빛나는 집에 사시는 분은 누굴까 가끔 궁금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0201년을 기도하면서 준비하면서 우리 삶을 보고 누군가 몹시 궁금한 산 위의 동네같은 삶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2021년 교회 표어를 산위의 동네 같은 교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로 정했습니다.
3.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선언
마태복음 5장 13-14절 우리 같이 읽습니다.“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을 가리키는 4가지 단어가 나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 너희는 세상의 빛, 산 위에 있는 동네, 등불입니다. 한번 따라하겠습니다. 우리가 누구라구요?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 산 위에 있는 동네, 등불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조금 생각해보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되어야 한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그냥,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선언하시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의 정체성을 말합니다. 제자들은 산위의 동네같은 존재이며, 제자들은 세상의 소금이며, 세상의 빛이며, 제자들은 등불이다라고 선언합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온 세상의 사람들을 위해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그리 대단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갈릴리에서 물고기 잡던 어부들이고, 세상 사람들에게 욕먹는 세리였고, 학력이 대단한 사람들도 아니고,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향해서 너희는, 아니 너희만 세상의 소금이고,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요, 산위의 동네요, 등불로 부르셨습니다.
에베소서 5장 8절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전에는 우리도 어둠이었습니다. 우리 안에 더러운 죄와 악함이 가득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런 어둠이 가득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셔서 이제는 주안에서 빛으로 삼아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이한 빛을 받은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와 그의 보배로운 소유가 된 백성으로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어 무엇이 되라고 부르셨습니까?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 산 위의 동네, 등불이 되라고 부르셨습니다. 왜 이렇게 우리를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산 위의 동네로 등불로 부르셨습니까?
4. 우리는 세상에서 소금과 빛처럼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소금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빛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세상에 소금이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에 빛이 없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말이 안됩니다. 우리는 뉴 멕시코에서 알버커키에서 리오랜초에서 있으나마다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 지역에 꼭 꼭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가정에서 음식을 만들 때 소금은 꼭 필요합니다. 냉장고가 없던 예수님 시대에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지만 음식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소금이 없으면 금방 부패되는 음식도 소금을 치면 한달 두달 세달도 넘게 음식이 보존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라는 것은 죄와 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래도 죄와 악으로 가득한 세상의 죄와 부패를 방지하라고 우리를 세상에서 부르시고 세상으로 파송하십니다.
기독교인이 세상으로 들어가면 세상에서 천대받던 어린아이들도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가 되어집니다. 복음이 세상으로 들어가면 가정에서 억울하게 대접받던 여인들도 소중한 존재가 되어집니다. 빌레몬의 종, 노예였던 오네시모같은 사람도 교회의 영적인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진짜 기독교인이 정말 세상에 들어가면 세상의 죄와 부패가 사라집니다. 그러니 너희는 우리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소금만이 아니라 빛은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필요합니까? 빛이 없는 세상에서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빛이 비추어지면 어두움이 일순간에 물러갑니다. 집안에 있는 등불 얼마나 필요합니까? 등불이 있어야 어둠을 물러나 살 수 있습니다.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와 우리 성도들이 알버커키에 있는 이유는 우리 지역의 소금처럼, 빛처럼, 등불처럼 산위의 동네같은 교회로 지금 여기에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산위의 동네처럼 우리 알버커키, 뉴 멕시코를 비추는 우리 교회, 우리 성도가 우리 지역에는 꼭 필요합니다.
5. 소금과 빛은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소금은 짠맛을 내야 합니다. 짠 맛을 내지 못하는 소금은 소금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합니다. 빛은 세상을 비추어야 합니다. 빛이 어둠에 비추지 않으면 어둠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소금과 빛은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13절 말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저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짠 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아무도 찾지 않습니다.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힙니다. 짠맛을 잃은 소금은 헬라어 모라이어 – 영어의 moron (모론) 입니다. 어리석은 자입니다. 세상의 소금같은 성도가 세상에 드러내야 하는 일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14- 15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세상의 빛, 산위의 동네는 세상을 비춥니다. 저 샌디아 산에 있는 동네 밤 마다 저기에 집이 있음을 밝히 비추입니다.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는 집은 아무도 없습니다. 등불은 등경 위에 두어야 집안의 모든 사람에게 비춥니다.
어떻게 하면 짠맛을 드러내는 소금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어둠을 비추는 빛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출애굽기 34장 29-30절에 그 비결을 보여주는 사건이 있습니다.“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으므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모세의 얼굴에 빛나는 광채가 납니다. 모세의 나이 80세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얼굴에 광채가 납니다. 비결은 어디에 있습니까? 시내산에서 40일 40야를 하나님과 함께 만나며 대화하며 받은 하나님의 빛이 모세의 얼굴에도 비추었습니다.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나는 것을 모세의 형님 아론도 알고 온 이스라엘 자손도 다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 세상에서 소금처럼 짠 맛을 내며, 어두운 세상을 비출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새해에는 빛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우리는 더욱 빛을 밝히 드러낼 것입니다. 우리에게 참 빛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9-12절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참 빛이신 하나님이 보내신 빛 중의 빛이신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세상은 참 빛이신 예수님을 모르지만 영접하는 자 곧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는 빛이 계십니다. 이 참 빛에 가까이 하는 삶,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자가 점점 더 빛으로 가까이 나아가는 삶은 예배입니다. 새해에는 무엇보다 참 빛에 나아가는 예배자가 되십시오. 우리가 참된 예배자가 되면 될수록 우리가 받는 빛으로 어두운 세상을 비출 수 있는 빛이 많아집니다.
두번째는 하나님을 함께 섬기는 우리 빛된 믿음의 형제 자매와의 교제입니다. 작은 모닥불 하나는 세상에 큰 영향력이 없지만, 작은 모닥불이 모이고 모이면 커다란 횃불이 됩니다. 믿음의 형제 자매와의 교제가 끊어지면 우리의 빛은 점점 작아집니다. 믿음의 형제와 자매와 교제가 왕성하면 할 수록 우리이 세상적인 생각을 내려놓게되고 점점 더 어두운 세상을 비출 수 있는 빛이 강해집니다.
셋째는 훈련입니다. 마태복음 4장 23-24절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예수님의 3가지 사역: 가르치시며 전파하시며 고치시니 – 예수님의 3가지 사역을 이어가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가기 위해서 훈련하는 일에 열심을 내면 낼수록 우리가 세상에 빛을 비출수 있는 영향력은 점점 커져갑니다. 새해에는 교회에서 제공되는 훈련에 무슨 일이 있어도 빠지지 않고 다 받으리라고 결심합니다.
이번 성탄절에 받은 카드 가운데 제 마음을 감동시킨 카드가 있었습니다. 저 멀리 디트로이트에서 저희 교회 홈페이지를 보고 구약의 파노라마, 신약의 파노라마 음성 강의와 강의안을 보고 한해 동안 열심히 공부하시고 성경을 통독하신 집사님 한 분이 보내온 감사의 카드였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과함께 공부한 것을 녹음해서 교회 홈페이지에 올려 놓기만 했는데 그것을 열심으로 듣고 배우고 성경 전체를 통독한 것이 큰 은헤가 되었다는 집사님의 감사의 카드가 얼마나 행복했는지요!
넷째, 훈련을 받았으면 사역을 해야 합니다. 배웠으면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재능과 은사를 가지고, 달란트와 므나를 가지고, 땅에 묻어두지 않고 세상에서 열심히 장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독특한 성격이 있습니다. 아주 독특한 은사와 재능이 있습니다. 아끼지 말고 땅에 묻어두지 않고, 열심으로 장사해서 이윤을 남기는 사역을 감당합니다.
다섯번째, 복음 전도와 선교입니다. 이사야 42장 6-7절 말씀입니다.“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두운 세상에서 부르신 이유는 이방의 빛을 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의 빛이 되기를 거부하면 온 세상은 소망이 없습니다. 지금도 세상은 너무나 어두운 흑암에 앉은 백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합니까? 교회가 세상에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교회 내에서 서로 성격이 다르다고 갈등하고 싸우다 스스로 빛을 잃어버리고 망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복음 전도과 선교에 힘을 쓰면 어두운 세상은 다시 빛으로 돌아옵니다. 우리 지역에 빛을 잃고 방황하는 잃어버린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어떻게 해야합니까?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6. 소금과 빛은 세상에서 숨어 있지 말고, 세상에 드러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한해 여러분과 함께 이토록 어려운 시간을 예배하며, 교제하며, 훈련받으며, 사역하며, 전도하고 선교하면서 볼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2021년 하나님께서 우리 생애에 1년을 더 연장하여주신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세상에서 우리 지역에서 숨어있지 말고, 당당하게 세상에 드러나야 합니다.
참 빛이신 우리 하나님, 우리 예수님의 빛을 받아 여러분의 가정에서 환하게 비추는 삶을 살아갑시다. 우리 직장과 사업터 삶의 터전에서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는 짠 맛나는 소금으로, 어두운 세상을 밝히 비추는 세상의 빛으로, 우리 산위의 동네 알버커키의 언덕위의 도시로 우리 도시를 환하게 밝게 비추어 줍시다.
7. 2020년을 마무리하고 2021년을 위한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2020년 과거를 돌아볼 때,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하신 그 크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구원하시며 지금까지 지켜주신 크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 갈릴리 장로교회도 어려움 가운데 성장하게 하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현재 우리의 삶의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께 믿음으로 간구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현재의 건강과 재정과 우리 인간관계와 삶의 절박한 어려움, 잘 아시지요? 주님께 의탁합니다. 건져주옵소서. 이 어려움에서 꼭 이겨 내어,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진정한 주인이심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2021년 미래를 주님께 의탁합니다. 올해는 무엇보다 가정과 삶의 현장과 우리 지역에서 소금으로 빛으로 산위의 동네로 등불로 환하게 비추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러기 위해서 더욱 예배하며, 더욱 교제하며, 더욱 훈련받으며, 더욱 사역하며, 더욱 전도와 선교에 힘쓰는 빛을 가까이 하며 빛을 비추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로 인해서 우리 가정에 사업터에 우리 지역에 복된 미래, 영광스러운 미래를 확신하며 오늘도 승리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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